(101)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객이 될 수 있어요? 우리 인생에서 방관자가 될 수 있냐고, 손 놓고 우리 인생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있냐고, 없죠? 근데 여행을 가면 남의 인생의 객이 되어서 그들의 인생을 구경할 수 있는 거야. 방관해도 된다고. 여행지니까, 남의 인생이니까. 그러니까 여행을 가면 맨날 인생에서 주인이 돼야 하네, 주체가 되어야 하네, 그런 부담 좀 덜고 한 발짝 떨어져서 인생을 좀 느긋하게 관망하고 즐길 수가 있는 거라고. 인생에서 방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고.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야.”


(180)

골 빠지게 애써봐야 결국은 한두 개, 많아 봐야 몇 가지 깨달음 안에 갇혀서 사는 거예요. 표현만, 말만, 단어만 좀 바꿔가면서, 지가 깨달은 그 몇 가지 안에 갇혀서 답답하게 사는 거라고. 그러니까 인생이 이렇게 지루한 거야. 결국 반복일 뿐이니까.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하고, 애써서 깨닫게 되는 게 결국 인생은 뻔하고 지루한 반복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라고. 그걸 깨닫기 전에는 다들 인생이 졸라, 뭔가 있을 줄 알지.”


(332-333)

나는 노인이 돼서,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면 좋겠어. 식당은 아주 붐비지는 않고, 그렇지만 단골들이 있어서 문닫을 걱정은 없어. 그래서 구석 자리라면 종일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아.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지만, 주로 커피와 차를 팔아. 근데 게다가, 술도 내어줘. 여름엔 시원한 술, 겨울엔 따뜻한 술, , 가을엔 대충 사장 맘대로 술, 그런 식당엘, 오후에 찾아가서, 앉은 채로 졸아. 배를 먼저 채우고 커피를 기다리는 그사이를 늙은 몸이 못 견디고 조는 거야. 고개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아무도 깨우지 않아. 귀에 익은 소음에 스스로 깨어보면 식당은 여전히 적당히 분주하고, 앞에는 커피가 적당히 식어도 맛있어. 어느 날은 식당이 끝날 때까지 졸고, 가까운 지인이기도 한 사장이 나를 깨워서 집으로 보내주는 거지. 그런 식당이, 늙었을 때는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에크라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이 책은 작년에 아빠의 친구가 추천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당시 구입해 놓고 언젠가 읽어야지, 하던 책이란다. 그런데 최근에 신간 코너에서 관심이 가는 책이 하나 있었어. <붙잡지 않는 삶>이란 책인데, 그 책을 살펴보니 지은이가 에크하르트 톨레더구나. 그래서 <붙잡지 않는 삶>이라는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야기가 이어지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먼저 출간된 책부터 읽는 게 낫겠다 싶었지.

지은이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번에 처음 들어본 사람인데, 지은이 소개를 보니 달라이 라마, 틱닛한과 함께 21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라고 써 있었어. 달라이 라마와 틱닛한은 아빠도 잘 알고 그 분들 책도 여러 권 읽어 본 만큼 꽤나 유명한 사람인데 그들과 대등한 위치라고? 너무 부풀린 소개 아닌가 싶었는데, 아빠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보던 엄마가 에크하르트 톨레를 어떻게 알고 이 책을 읽냐고 물어 보더라구엄마는 에크하르트 톨레를 이미 알고 계시더구나. 하기야 엄마는 오쇼 라즈니쉬를 엄청 좋아하시니 명상가로 유명한 에크하르트 톨레를 알고 계신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겠구나. 엄마도 알고 계신 사람이라면 달라이 라마와 틱닛한과 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까?

이 책의 옮긴이는 아빠도 좋아하는 류시화 작가님이란다. 그래서 이 책에 더욱 호감이 갔어. 옮긴이의 글을 보니 오래 전에 번역 출간한 적이 있었대. 그런데 본인이 스스로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고 절판시키고 제대로 심혈을 기울여 재번역하여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오랜만에 마음을 치유하고 명상을 생각하게 하는 책을 읽었는데, 소문난대로 책이 너무 좋았단다. 기대 이상이었어. 책을 다 읽고 나서 지은이 에크하르트 톨레를 달라이 라마와 틱닛한과 대등한 위치로 인정할만하고 생각했어. 최소한 아빠의 기준에서는

 

1.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왜냐하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모든 내용이 아빠의 마음을 흔들었거든. 지구의 역사부터 시작하면서 인간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인류의 현재 상태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다. 집착과 탐욕으로 가득 차버린 에고를 품고 있는 아빠의 현재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 아무리 욕심을 갖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주 깊게 각인되어 있는지 욕심을 버리지 싶지 않단다.

================

(76)

어떻게 하면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결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물질에 대한 집착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그때까지는 자신이 물질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어떤 것을 잃거나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즉 자신이 그것에 동일화되어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다. 잃어버릴까 봐 화를 내거나 불안해한다면 당신이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물질과 동일화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면 그 동일화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 ‘집착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그 알아차림이 바로 나 자신이다.’ 그것이 의식 변화의 시작이다.

================

그런 욕심과 집착은 자신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너희들에게까지 전가된단다. 지은이는 아빠를 비롯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구나.

================

(142-143)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무엇이 너를 위해 가장 좋은지 내가 잘 안다라는 믿음은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커 갈수록 그것은 점점 더 진실이 아니게 된다. 아이의 삶이 어떻게 펼쳐져야만 하는가에 대해 기대가 크면 클수록, 당신은 아이를 위해 이 순간에 존재하기보다는 당신의 생각 속에 더 많이 사로잡혀 있게 된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아이도 언젠가는 실수를 저지를 것이고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 사실 그것들은 당신의 관점에서 볼 때만 실수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는 실수로 보여도 아이에게는 꼭 필요한 행동과 경험일 수도 있다. 가능한 한 도움과 조전은 주어야 하지만, 특히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는 때때로 실수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고통을 겪게 해주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고통은 뜻밖에 찾아올 수도 있고, 지신이 저지른 실수의 결과로 올 수도 있다.

================

그렇게 집착과 욕망에 물든 에고의 현 상태를 파악하고 그런 에고를 이해하는 단계로 넘어간단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는가? 고통체를 알아보면서 과거를 내려놓는 것을 해보라고 한다.

================

(188)

과거의 사건들은 기억으로 당신 안에서 계속 살아가지만, 그 기억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그뿐 아니라 기억 덕분에 과거로부터, 그리고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기억, 즉 과거에 대한 생각에 당신이 완전이 지배되고 그것이 짐으로 바뀔 때 비로소 기억이 문제가 된다. 또한 그것이 당신의 자아의식의 일부가 될 때, 과거에 의해 조건 지어진 성격이 당신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당신의 기억들에 자아의식의 옷이 입혀지고,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가 되어 버린다. 작은 나는 환상이며, 시간을 초월하고 형상을 초월한 현존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흐려 버린다.

================

고통체에서 해방하여 진정한 자신으로 진화하는 단계를 거쳐, 신인류의 등장과 새로운 지구를 희망하는 글로 책은 맺음을 한단다. 아빠가 섣불리 정리해서 이야기하다가는 책의 소중한 가치가 퇴색될까 봐 아주 간단히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이 책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너희들도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

아빠가 책을 읽고 나면 키보드롤 다시 두들기면서 발췌를 하잖아. 그런데 이 책은 좋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아빠가 책을 읽고 난 다음 발췌하는데 좀 애를 먹었단다. 시간이 한참 걸렸어. 그래도 다시 한번 읽으면서 두들기다 보니 머릿속에 조금이나마 더 새겨지는 것 같았어. 아빠의 지워지지 않는 집착과 욕심도 살짝 흐릿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아쉬움이 있었어. 그래서 한 가지 결심을 하기로 했단다. 이 책 전체를 필사해보겠다고 생각했어. 워낙 시간이 없어서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그보다 더 걸릴지 모르겠지만, 명상한다는 생각으로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필사를 해보려고 한단다. 너무 큰 소리를 쳐서 중도 포기를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구나.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을 때 더욱 이 책의 내용을 한 자 한 자 적으면 마음이 평온해 질 것 같구나. 아빠의 필사 도전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 1 4백만 년 전 어느 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이 바로 그중 한 사람이다.


말은 실체를 인간 마음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축소시킨다. 언어는 성대에 의해 생성되는 다섯 개의 기본적인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아, 에, 이, 오, 우’의 다섯 가지 모음이다. 나머지 소리들은 공기 압력 조절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 스, 프’ 등의 자음들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음의 몇 가지 조합만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아니면 한 그루의 나무나 돌멩이 하나에 대해서라도 그 깊은 곳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가? - P54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만큼 에고를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은 없다. 옳다는 것은 하나의 관점, 의견, 판단, 이야기 등과 같은 정신적 입장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옳기 위해서는 당연히 틀린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에고는 옳기 위해 누군가를 틀리게 만들기를 매우 좋아한다. 바꿔 말해, 자신의 더 강한 자아의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틀리게 만들 필요가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상황도 불만과 반응을 통해 틀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는 주장은,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과 상황에 대해 자신을 상상 속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에고가 갈망하는 것이 그 우월감이며, 그것을 통해 에고는 자신을 강화시킨다. - P101

소심함은 종종 눈에 띄게 부정적인 자아의식, 즉 자신에게 무엇인가 많이 부족하다는 믿음과 함께한다. 자기 자신을 이러저러하게 보는 관념 속 자아의식은 ‘내가 최고야.’라는 식의 두드러지게 긍정적이든, 아니면 ‘나는 형편없어.’라는 식의 부정적이든, 어느 쪽이든 에고이다. 모든 긍정적인 자아의식 뒤에는 그럼에도 아직 충분히 좋지 않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모든 부정적인 자아의식 뒤에는 최고가 되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 P125

어떻게 하면 지금 평화로울 수 있는가?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은 삶의 놀이가 일어나고 있는 장이다. 삶의 놀이는 다른 곳에서 펼쳐질 수 없다.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면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라. 자신에게 무엇이 가능한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삶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를, 삶의 예술에 대한 비밀, 모든 성공과 행복의 비밀을 전하는 세 단어가 있다. ‘삶과 하나가 되기’이다. 삶과 하나가 되는 것은 현재의 순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자신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당신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삶은 춤추는 자이고, 당신은 그 춤이다. - P159

인기 있는 대중 신문들은 뉴스를 팔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말해 고통체의 먹이를 파는 것에 중점을 둔다. 커다란 활자의 헤드라인에서 폭력과 범죄의 단어들이 난무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영국의 황색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이 점에서 탁월하다. 뉴스를 싣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부채질하는 편이 신문 판매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그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다. 텔레비전을 포함한 뉴스 매체 전체가 부정적인 뉴스를 먹고 사는 경향이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 될수록 아나운서와 사회자는 더 흥분하고, 언론 매체 자체가 종종 부정적인 흥분을 부채질한다. 고통체들은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 - P204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내용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의 내린다. 지각하고, 경험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내용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물이 관심을 완전히 차지해 버리며, 그들이 동일화되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할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인 삶’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혹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내용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 상태와 감정 상태는 물론 나이, 건강, 관계, 경제력, 일, 생활환경 등을. 사건들, 즉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당신 삶의 외부 환경과 마음의 환경, 당신의 과거와 미래 모두가 이 내용물의 영역에 속한다. - P250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보면 무의식적이 될 뿐 아니라 수동적이 되고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러므로 무작위적으로 시청하는 대신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기 몸 안의 생명력을 느끼는 것이 좋다. 혹은 때로는 자신의 호흡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각이 완전히 텔레비전에 점령되지 않도록 때때로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어야 한다. 청각이 압도되지 않도록 음량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하지 않는다. 상업 광고시간에는 음을 소거한다. 또한 텔레비전을 끄자마자 잠들지 않는 것이 좋다. 켜 놓은 채 자는 것은 더 나쁘다. - P294

자연은 무의식중에 전체와 하나가 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2004년 쓰나미 재난(3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동남아시아의 지진 해일)에서도 야생동물에게는 사실상 피해가 없었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인간들보다는 전체성과 더 많이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들은 보거나 듣기 훨씬 전에 쓰나미의 접근을 감지할 수 있었고 더 높은 지역으로 이동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러저러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마음이 실체를 분해하는 방식입니다. 반면에 자연은 전체와의 무의식적인 하나됨 속에서 살아갑니다. 전체와 의식적으로 하나가 되고, 우주의 지성과 의식적인 일치를 이룸으로써 이 세상 속으로 새로운 차원을 가져오는 것, 그것이 인간의 목적이자 운명입니다. - P349

미래의 사건으로서의 깨어남은 아무 의미가 없다. 깨어남은 ‘현존’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하늘, 즉 깨어난 의식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상태가 아니다.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당시의 머릿속에 있는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 너희 안에 있다." - P3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의 빛
강화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부터 인터넷 서점에 자주 노출되어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들어서 결국 읽게 된 책  강화길 님의 <치유의 빛>이 오늘의 책이란다. 강화길 님은 몇 년 전에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통해 단편만 두 편을 읽어보았단다. 아빠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구나. 젊은작가상 수상을 작품들 중에 한편이라고 생각했지. 이번 소설이 아빠가 읽은 제대로 된 강화길 님의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 그럼 곧바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꾸나.

주인공 박지수. 어렸을 때 작은 키에 삐쩍 마른 몸으로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단다. 그런데, 15살이 되자 갑자기 식탐이 엄청 커지면서, 키도 엄청 커지고, 덩치도 엄청 커졌어. 지금까지 입고 다녔던 교복도 작아서 입을 수 없었어. 중학교 1년밖에 안 남았는데 교복도 다시 사야 했고, 옷들도 다시 사야 했는데, 집안이 넉넉하지 않은 부모님에게는 이것 또한 걱정거리였단다. 그렇게 키도 갑자기 크고 덩치도 갑자기 커지자 남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어.

17살부터 지수는 다이어트에 혼신의 노력을 했단다. 적게 먹고, 가끔씩 굶고, 매일 운동하고 다이어트 약도 먹었어. 하지만 가끔씩 일어나는 폭식의 충동을 참지 못하고 폭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 그러면 다시 후회하여 일부러 구토도 하고, 다시 굶었단다.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지금 지수의 나이는 32. 그렇게 고생을 해서 지금은 176cm 키에 50kg의 몸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가끔씩 폭식의 충동은 여전히 있단다. 남자 친구도 있었어. 일도 열심히 하는 직장인이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몸 컨디션이 안 좋고 힘이 쭉 빠져서 병원에 가니 단순 감기몸살이라고 했어. 아마 그동안 다이어트한다고 몸을 혹사시켜서 그런 것 아닐까. 때마침 명절이라서 쉴 겸 고향 안진시로 향했단다. 평상시 명절에도 일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했는데, 이번 명절에는 고향집에 갔단다. 지수의 고향 안진시는 지은이가 만든 가상의 도시란다. 지도에서 찾아보지 말 것..^^ 몇 년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고향집에는 엄마 혼자 계셨어.

 

1.

고향집에서 엄마는 고향 소식들을 알려주었어. 그 중에는 아직 고향에 살고 있는 지수의 동창들에 대한 소식도 알려주었어. 지수와 친했던, 아니 사랑했던 해리아도 아직 고향에 있다고 했어. 해리아? 이름이 좀 독특하네, 이러면서 읽어나갔는데 소설 후반부에 해리아의 본명이 나오더구나. 해리아의 본명은 박해리. 그러니까 지수만 해리아라고 부른 거야. 해리아는 공부도 일등이고 운동도 잘하고 지수와 달리 중학교 때부터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로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좋았어. 그런데 어느날 수영 수업 때 해리아가 벽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정신을 잃었는데, 지수는 옆에 있으면서 놀라서 아무것도 못했어.

이 일 이후 친구들과 선생님들 마저 지수를 비난했어. 친구가 다쳤는데 보기도 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지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진학했단다. 그리고 대학교는 더 멀리 가겠다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했고, 결국 대학교는 서울로 갔어. 지수집은 안진시 영직동에 있었는데 그 동네에 있었던 사이비 교회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그래야 앞으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야. 예전에 영직동에 조칠현 교회가 있었어. 영직동 사람들 대부분이 이 교회에 다녔는데, 지수네는 안 다녔어. 그런데 그 교회 목사가 동네 사람들의 돈을 가지고 자취를 감추었어.

조칠현 교회가 찰떡궁합이던 민덕 병원이라는 병원이 있었는데, 이 병원의 병원장도 그 교회에 사기를 당하고 자살까지 했어. 민덕 병원은 영직동의 유일한 종합병원인데 지수는 이 병원을 싫어했어. 아버지가 몸이 불편해서 갔는데, 시금치 알레르기라며 알레르기를 처방해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간암이었거든. 엄청난 오진이었지. 제대로 진료만 했다면 아버지가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그런데 당시 아버지의 병을 오진했던 박근만이라는 작자가 지금은 민덕 병원의 병원장이었어. 그리고 해리아가 민덕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랬단다.

32살 때부터 시간이 또 흘러 5년이 지났어. 3년 전 엄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몇 년 전 지수는 오른쪽 날개뼈 아래에 심한 통증이 생겨났어. 그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갔어.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아도 특별히 이상한 곳 없이 다 정상이라고 했어. 하지만 통증은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했어. 그러다가 우연히 치유의 빛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어. 지은이가 낯익은 이름이었어. 해리아. 그리고 해리아의 블로그를 보니 해리아는 채수회관이라는 곳을 운영했는데, 통증을 가진 사람들을 치유 주는 곳이었어. 블로그에 보면 채수회관을 다녀오고 만성 통증이 사라졌다는 글들도 있었어. 지수는 통증도 치료하고 해리아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채수회관에 수련 코스를 신청했단다. 알고 보니 채수회관은 민덕 병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숲 속에 위치해 있었단다.

채수회관의 관리인들은 직급 비슷한 것이 있었어. 가장 말단은 직원은 지우’, 그 위는 지기’, 그 위는 심우’, 마지막 최상위는 이라고 불렀어. 현재 벗이 바로 해리아였어. 그리고 심우인 사람도 지수의 중학교 친구였던 신아였단다. 신아와는 좀 안 좋은 기억이 있었어. 지수가 해리아와 친해지려고 할 때, 신아가 방해하고 질투하고 그랬거든. 수영장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는 해리아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말이야.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친구였단다. 수련생들은 최상위 직급의 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 왠지 사이비 냄새가 풀풀 나는구나. 지수는 어떤 지우로부터 1:1 상담을 받고 관리를 받게 되었어.

 

2.

지수는 수련을 받은 지 한 달이 지나서도 통증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어. 그리고 해리아도 아직 만나지 못했어. 그러던 어느날 수영장에서 걷기 운동을 하다가 등에 심한 통증이 와서 고통스러웠는데 그때 해리아가 나타나 손으로 눈을 가려주면서 등의 통증을 완화시켜주었어. 지수는 드리어 만난 해리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 그렇다고 이전에 쌓였던 앙금을 풀고 그런 것은 아니었어.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이었어.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어. 그래서 자신의 담당 지우에게 벗을 만났다고 이야기하자, 지우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그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어. 심지어 그런 말로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지 말라고까지 했단다. 지우의 그런 반응이 생소했단다. 지우가 말하길 벗과 심우는 지난 1년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채수회관에 나타난 적이 없다고 했어.

지수의 담당 지우의 이름은 김용지라는 사람인데, 그도 처음에는 수련생으로 이곳에 왔다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취직을 하게 된 거야. 그런데 최근에 벗과 심우는 나타나지 않고 벗과 심우가 채수회관을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김용지는 벗과 심우에 대해 반감이 생기고 이곳 생활에 회의를 느꼈어. 최근에는 지우들과 지기들에 의해서만 채수회관을 꾸려나가고 있었어. 지수는 이곳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이곳의 불합리성이 보이기 시작했단다. 장기 수련생과 단기 수련생에 대한 관리가 다르고 식당 등 차별도 있었어. 지수는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채수회관에 없던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지수는 엄마의 레시피였던 단호박에 초청을 더한 음식을 만들어 수련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호응이 좋았어. 수련생들의 개별 행동이 아닌 그런 단체 활동을 보던 지우 김용지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떠 올랐단다. 그때만 해도 벗과 수련생들이 어울렸거든어쩌다 이렇게 변한 것일까. 지수가 단호박 행사를 마치고 방으로 오니 심우, 그러니까 신아와 와 있었어. 지수는 신아에게 해리아를 봤다고 하자 신아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어. 왜 다들 지수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 신아의 말 속에 마치 해리아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들렸단다.

신아는 지수를 데리고 숲 속으로 데리고 갔단다. 그곳에는 이상하게 생긴, 비닐하우스 같은 건축물이 있었고. 그 안에 해리아가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어. 신아가 이야기하길 해리아는 암 말기라고 했어. 지수는 신아에게 어떤 약을 먹여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하고, 지수는 드디어 1:1로 해리아를 만났단다. 해리아는 말도 못하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어. 해리아는 정신이 잠깐 돌아오더니 자신을 창문 가까이로 옮겨 달라고 했어그러면서 소설은 끝이 났는데, 아빠가 무엇인가 놓친 것이 있는지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읽어봤는데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단다. 중학교 시절 신아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이유는 무엇인지, 해리아가 침대를 창가로 끌어달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 소설이 정확하게 어떻게 끝난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못했단다. 결론을 압축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더 의아한 것은 에필로그에 나오는 내용인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 그곳에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빠는 이해가 가질 않더구나. 에필로그라서 마무리 한다는 생각으로, 마치 영화의 쿠키 영상 같은 느낌을 읽어서 뭔가 놓쳐서 그런가 싶어 다시 읽어봐도 음…. 이 소설의 결말에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인지 누군가 깔끔하게 정리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아참, 지수가 해리아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어. 지수가 중학교 때 해리아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어떤 소설 때문인데 아빠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소설 속 여왕님의 이름을 본 따 그렇게 불렀던 같아. 지수에서 해리는 이상향이자 이상형이었던 것 같아.

아무튼 전체적인 내용을 이야기해보면, 초반부와 중반주에 한창 재미있게 질주하던 내용이 갑작스러운 급브레이크와 함께 모르는 장소에 도착하면서 끝난 것 같은 기분이었단다. 강화길 님의 장편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데 다른 장편소설은 어떻게 마무리를 하셨는지 궁금해지더구나.

 

PS,

책의 첫 문장: 교복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책의 끝 문장: 계속 살아 있을게.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자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비현실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겨우 며칠 쉬었을 뿐인데, 온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대화를 하고 이메일과 문자에 답장을 하며 보내던 모든 일상이 죄다 꿈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그게 나의 삶이었냐? 나의 생활이었나? 그게 진짜 나였나? 혹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내 것을 착각한 것은 아니었나?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안감이 확 치솟았고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당장 사무실로 돌아가 밤새 커피를 들이키며 일을 하다 약간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27

끝났구나. 그래. 끝나버렸다. 무엇이? 삶이? 기다림이? 그래. 끝났어. 마음이 가볍다. 평온하다. 아, 사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 같아. 왜냐하면 지쳤으니까. 그리하여 내 마음도 너무 늙어버렸으니까. 이렇게 힘을 빼고 있으니 모든 것이 편하다. 진작 포기할 걸 그랬다. 이제 드디어 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조금 억울해. 그리고 아쉬워. - P281

그래. 미련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지. 하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가장 강렬한 감각은 통증이야. 그렇지 않니? 통증은 모든 걸 정지시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하지. 오르지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 그래.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거야. 하지만 그건 삶이 아니야. 통증을 인정하는 삶?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통증 이후의 삶? 정말 그걸 믿는 거야? 통증은 통증일 뿐이야. 교훈도 깨달음도 놀라운 반전도 없어. 내 육신이 쇠하는 과정을 절절히 느낄 뿐이야. 나는 덩어리야. 고통을 느끼는 덩어리. - P2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6)

이 나라 모든 남자에게는 원칙적으로 병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할지 말지 결정을 내릴 때는 모두가 참여하지 못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찬성의 외침이 울렸다.

법률에서는 이 나라 남자의 절반 이상에게 투표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에설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27)

누가 잘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전쟁을 벌이자는 결정을 내릴 때 참여 못한 사람들이 전쟁터에 나가 학살당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겁니다.”


(92)

모드는 곰곰이 생각했다. “신문들 대부분은 여전히 솜 강 전투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둔 척하고 있어요. 어떤 식으로든 현실적인 평가를 하려 들면 애국적이지 못하다는 식으로 낙인을 찍죠. 노스클리프 경은 정말로 군국주의 독재체제에서 살고 싶은 모양이에요. 하지만 대부분 우리 국민은 전쟁이 별 성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129-130)

이번에는 청중석에서 아까와 다른 편이 환호성을 질렀고, 피츠는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에설이 보기에는 논리가 빈약한 주장이었다. 모드가 일어서서 그 점을 지적했다. “전쟁이 벌어지는 건 어느 한 나라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독일에 대한 비난은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잡았고, 군국주의에 빠진 우리 언론은 그런 거짓을 더욱 조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마치 그 일이 정당한 이유 없이 벌어진 일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육백만 군대가 독일 국경으로 이동한 사실은 잊어버렸습니다. 프랑스가 중립선언을 거부했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몇몇이 야유했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소리를 들으면 갈채를 보내기 어려운 법이지. 에설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독일이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유럽의 안정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벨기에의 정의나 독일 군국주의의 처벌을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자존심 때문에 실수를 인정할 수 없어서 싸우는 겁니다.


(244)

블라디므로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으로 알려진 그는 마흔여석 살이었다.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에, 몸단장에 허비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나머지 깔끔하지만 고상하지는 않은 차림이었다. 한때는 머리 전체가 붉었지만 일찍 숱이 줄기 시작해 지금은 주변에 머리칼의 흔적만 남은 반짝이는 대머리였다. 세심하게 다듬은 반다이크 수염은 연한 적갈색에 회색이 섞여 있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 발터는 그가 매력도 없고 잘생긴 외모도 아니어서 그리 특별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393-394)

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책 한번 본 적 없는 조지 배로는 자신이 데카르트나 렘브란트, 베토벤보다 더 뛰어나다고 느꼈다. 그가 특이한 건 아니었다. 그들 모두 학교를 다니는 내내 과장된 선전을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영국 군대의 승리만 가르칠 뿐, 패배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런던의 민주주의는 가르치치만 카이로에서의 압제는 가르치지 않았다. 영국에서 실현되는 정의는 배우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행되는 태형이나 아일랜드의 기아, 인도에서의 학살은 알려주지 않았다. 가톨릭 신도가 신교도를 화형에 처한 일은 배우지만, 신교도 역시 기회만 있으면 가톨릭 신도에게 똑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빌리의 아버지처럼 선생들이 세상은 공상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아버지는 거의 없었다.


(497)

이른 새벽, 프랑스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달리는 기차에서 거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기차는 작은 마을을 지나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역플랫폼과 철도 옆 도로에 모여 기차를 지켜보는 모습에 그는 깜짝 놀랐다. 밖은 어두웠지만 그들의 모습은 전등 불빛 아래서 또렷이 보였다. 남녀와 아이들이 수천 명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리는 대신 매우 조용히 있었다. 남자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자를 벗었고, 경의를 표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거스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들은 세계의 희망을 싣고 지나가는 기차를 보기 위해 새벽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539)

빌리는 계속 말했다. “그럼 이제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보겠습니다. 이 전쟁은 영국 의회에서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모든 내용은 작전상 보안이라는 허울에 가려져 영국 국민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군이 떳떳하지 못한 비밀을 숨길 때는 쓰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싸우고 있지만 전쟁은 선포된 적이 없습니다. 영국 수상과 그의 동료들은 독일 카이저와 그 밑에서 싸운 장군들과 똑 같은 처지입니다.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제가 아니라 그들입니다.” 빌리는 자리에 앉았다.


(563)

모드는 마침내 거울의 방에 들어섰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웅대한 방들 중 하나로, 크기가 테니스코트 세 개를 붙여놓은 정도였다. 한쪽 벽에는 열일곱 개의 창문이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반대편 벽에는 열일곱 개의 아치형 거울이 창을 비추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이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첫번째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하고 프랑스에게 알자스로렌 지방을 포기하겠다는 서명을 강요했던 장소라는 점이었다. 이제 독일은 바로 그 원통형의 둥근 천장 아래서 치욕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미래에 입장이 바뀌어 복수할 날을 꿈꾸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남에게 수모를 주면 머지않아 돌아오는 법이지. 모드는 생각했다. 여기 조인식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632)

저는 그런 시절이 지났다는 걸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군대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빌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에 아버지가 설교할 때처럼 격정적인 흥분이 묻어났다. “이번 선거는 미래에 대한 것이고, 이 선거로 우리 아이들이 어떤 나라에서 자랄지 결정됩니다. 우리가 자랐던 나라와는 다른 나라에서 자랄 수 있도록 확실히 해야 합니다. 노동당은 혁명을 원치 않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를 보아온 결과 혁명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진정하고 중대하고 근본적인 변화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메리고 - 대항해 시대와 우연의 역사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신간 소식을 들었단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빠를 비롯하여 많은 팬들이 계셔서 그런지,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지만, 그의 숨겨진 작품들이 하나 둘 출간되어 아빠 같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구나. 이번에 출간된 책은 <아메리고>라는 책인데, 책 두께가 무척 얇은데도 가격은 만만치 않더구나. 그리고 같은 제목의 책이 두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더구나. 오래 전 책인데 우리나라의 다른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이 되다니… <아메리고>라는 책이 저작권이 풀리는 시점이었나? 싶었단다. 그 말이 맞다면 저작권료도 없을 텐데,  얇은 두께에 비해 책 가격은 왜 높게 책정한 거야? 츠바이크의 팬이라고 자처했는데, 이를 시험하는 것인가? 사실 조금은 망설였지만 곧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단다.

츠바이크의 글이라면 재미는 보장되어 있을 테고, 책 두께가 얇더라도 그 내용이 주는 중량감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긴 했는데, 그 동안 밀린 독서편지 때문에 이제서야 너희들에게 책 이야기를 하는구나. 예상했던 것처럼 이번 책도 재미있게 쭉 읽혔고, 대충 알고 있었던 아메리카의 어원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단다. 그리고 우연과 오해의 역사가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역사는 되는 현장을 함께 했었단다.

책 제목 <아메리고>는 사람 이름이란다. 이 사람의 이름, 무척 익숙하지 않니? 그래 맞아.. 바로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이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란다. 그런 것치고 아메리고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단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나 알듯이 콜럼버스란다. 그런데 왜 그 신대륙의 이름을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지 않고, 아메리고라는 낯선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을까? 그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단다. 스토리 전개도 흥미진진하여 재미있게 읽는데, 아빠의 까마귀 같은 기억력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읽다가 잠깐 멈추고 메모를 하면서 읽었단다. 아빠가 그 메모를 바탕으로 간추려 이야기해볼게. 메모와 아빠의 기억이 잘못되어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어도 양해바람.

 

1.

아메리고 베스푸치. 이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본토나 그가 태어난 유럽에서도 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구나. 남겨진 아메리고에 대한 기록은 40~50페이지가 전부라는구나. 아메리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몇 백 년 앞선 유럽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서기 1000년 전후 서양은 중세 암흑기였단다. 종말론이 유행하기도 했었어. 그러다가 1100년대에서 1200년대를 거치면서 십자군 원정이 있었어. 9차까지 이어지는 십자군 원정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단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동양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어. 동양의 문화, 물건들을 접하고, 그곳에서는 책도 많고 학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유럽에서는 동양처럼 대학을 세우고 학문을 중시는 풍토가 생겨나게 되었단다.

1300년대에는 너희들도 익히 들어본 르네상스가 서서히 꽃피우기 시작하면서, 화려했던 그리스 로마 문화의 복원에 힘쓰기 시작했단다. 단테, 조토, 베이컨 등 창조적인 인물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어. 그 당시 사람들은 공부를 하다 보니 호기심이 점점 커졌고, 넓디넓은 바다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졌어. 그 때까지 그들에게 있어 세상의 끝은 지브롤터 해협이었거든. 1289년 마르코폴로가 30년 동안 동방을 탐험하고 돌아와서 그가 경험한 것을 책으로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단다. 그러면서 동양을 동경하는 풍조가 생겨났어. 향신료도 유럽에 전래되기 시작했는데, 1400년대에는 향신료의 나라 인도를 가는 것이 유럽 사람들의 꿈이었단다.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인도로 가는 방법에 대해 철저히 연구를 했고, 항해학교, 관측소, 지도제작소를 세워서 사람들을 지원했어. 그의 이런 지원은 반세기가 지나면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단다. 1450년 포르투갈의 항해자들은 서아프리카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탐험을 시작했어. 그러면서 아프리카의 새로운 땅들을 차지해갔단다. 포르투갈의 마르톨로메우 디아스는 1486년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뱃머리를 틀었단다. 그리고 그 항해의 마무리는 우리도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바스코 다 가마가 이루어냈단다.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를 찍고 다시 포르투갈에 복귀를 했어. 1499년이었다. 그렇게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를 다녀오고 있을 때, 스페인 깃발을 달고 대서양을 향해 당시에는 무모해 보이는 항해를 하는 있었으니, 그가 바로 콜럼버스였단다. 1492년이었지. 그리고 콜럼버스는 따른 시간에 인도 땅에 도착했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인도를 다녀왔다고 선언했단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착각을 한 것이지.

================

(42)

콜럼버스는 수천 개의 섬을 혼자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낙원에서 발원하는 강물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인도의 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 모든 섬들과 이 특이한 땅들이 어째서 고대와 아랍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마르코 폴로는 어찌해서 그것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마르코 폴로가 말한 지팡구와 차이툰은 콜럼버스 제독이 발견한 땅과 얼마나 다른가? 그 모든 것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며 신비로 가득 차 있어서, 서쪽에 위치한 이 섬들에 대해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에는 줄줄이 바다로 향했단다. 1493년 콜럼버스는 1500년 대규모 인력을 데리고 다시 대서양을 향한단다. 1500년 이후에는 본격적인 신대륙 정복 경쟁이 시작되었단다. 이렇게 신대륙 진출이 활발해지던 1503 4~6장짜리 <신세계>라는 팸플릿이 퍼지기 시작했어. 이 팸플릿의 제목 <신세계>는 바로 대서양 너머의 대륙을 이야기하는데, 그 대륙을 처음으로 신세계라고 부르게 된 팸플릿이었단다. 이 팸플릿은 피렌체 출신 알베리쿠스 베르푸치우스라는 라틴식 이름을 가진 상인이 쓴 소책자란다. 원래는 매디치 가문에 보낸 편지로, 지금까지의 진행된 항해들을 잘 정리한 글이었단다.

지은이는 1501년 포르투갈 왕의 명을 받고 새로운 대륙에 다녀왔고, 그 경험을 정리하여 적으면서 다른 항해들에 대해서도 기술한 내용이었어. 그러면서 새로운 대륙의 사람들, 그곳의 모습에 대한 묘사도 포함되어 있었어. 그 모습을 지상낙원처럼 그려져서 많은 사람들은 이 팸플릿을 읽으면서 꿈을 꾸기 시작했지. 자신도 그곳에 가고 싶다고 말이야. 이 팸플릿이 유행하게 되자, 2~3년 뒤 팸플릿은 그 간의 항해 경험을 추가하여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제대로 된 이름으로 16장 짜리 책자로 출간하였단다. 그리고 그가 쓴 이 책자는 다른 항해사들이 쓴 글들과 함께 엮여서 좀 두꺼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어. 일종의 공저라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이 공동저자의 책 제목에 베스푸치의 이름만 포함되었대. 지은이 이름에는 공동저자의 이름이 다 있을지 모르지만, 책 제목에는 떡하니 베스푸치의 이름이 포함되었다는 거지. 그렇게 되자, 사람들이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베스푸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대. 당시 통신 기술이 그리 발달한 것도 아니니, 사람들의 입소문이 더 큰 역할을 했겠지.

 

2.

그리고 지은이 츠바이크는 갑자기 프랑스 생디에라는 작은 도시의 이야기를 한단다. 생디에라는 도시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단다. 당시 생디에는 르네 2세라는 사람이 다스리고 있었단다. 르네 2세는 출판업을 후원하기도 했는데, 르네 2세의 후원을 받은 보트랭 뤼드와 고티에 뤼가 1507, 생디에에 조그마한 출판사를 하나 개업했단다. 그들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지리학자인 마르틴 발트제뮐러와 협업을 했어. 그들은 신대륙 발견에 관한 책자를 하나 출간했는데, 르네 2세가 자신이 베스푸치와 친분이 있다면서, 베스푸치의 책자도 그 책에 포함시켰단다. 그리고 그 책에는 지도도 포함시켰는데, 오랜 과거부터 시작하여 당시에도 가장 유명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신세계를 추가한 지도였단다.

이 책에 널리 유명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는 신세계를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적혀 있었단다. 그리고 이 책에 포함된 지도의 신세계의 이름을 아메리쿠스의 땅이라는 뜻의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적었단다. 그러니까 프랑스 생디에라는 작은 도시에서 만든 책에 처음으로 신대륙의 이름을 아메리카라고 한 것이란다. 그런데 당시 지도의 신대륙은 오늘날 브라질 일부 지역만 표시된 넓지 않은 땅에 해당하는 지역만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불렀어. 그 이후 이후 만들어진 지도에는 그 땅을 아메리카로 적었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처음에는 브라질의 일부의 작은 땅만 아메리카로 불렀는데, 점점 개척되면서 아메리카로 부르는 땅이 넓어졌고, 15년 뒤에는 오늘날 남아메리카 전체를 아메리카로 불렀어. 당시에는 지금의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는 다른 대륙이라고 생각했대. 그래서 남아메리카만 아메리카로 불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대륙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대. 그래서 한 개의 대륙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으니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거대한 대륙의 이름이 아메리카로 정해진 것이란다.

================

(97-98)

지구상에서 북아메리카는 여전히 남아메리카와는 별개의 세계로 존재했다. 당시 사람들의 완고한 믿음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아시아의 일부라고 믿었고, 어떤 사람들은 상상 속에 해협으로 아메리고의 대륙과 분리되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람들은 이 대륙이 북쪽 빙해에서 남쪽 빙해까지 이어진 하나의 거대한 땅임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확인하였고, 이 대륙에는 단 하나의 이름이 붙여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오류와 진실 사이에서 탄생한 이 무적의 단어가 그 불멸의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힘차게 일어섰다. 이미 1515년에 뉘른베르크의 지리학자 요하네스 쉐너는 자신이 제작한 지구의에 덧붙인 글에서 아메리카 또는 아메리겜을 신세계인 네 번째 대륙으로 공언했다.

================

이제 모든 지도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적혔는데, 이를 거부한 이가 있었으니, 최초로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붙인 발트제뮐러라고 하는구나.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은이 츠바이크가 추측하길 발트제뮐러가 신세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아닌가 하고 추측했단다. 여기까지가 신대륙의 이름이 어쩌다 아메리카가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란다. 하지만 여기서 책은 끝나는 것이 아니란다. 아메리카의 이름에 대한 논쟁은 또다시 시작한단다.

콜럼버스와 베스푸치는 생전에 사이가 나쁘지 않았대. 하지만 그들은 죽고 난 후 후세에 의해 경쟁 관계가 되었단다. 처음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콜럼버스의 완벽한 패배였단다. 더욱이 신대륙을 처음 발견하고 돌아와서는 인도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결론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고, 나중에는 이것으로 사기꾼으로 몰리면서 명성을 바닥에 떨어졌고 사람들에게 잊혀져 갔단다. 이와 반대로 베스푸치의 명성은 나날이 올라갔단다.

16세기 세르베투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베스푸치가 과대평가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했단다. 베스푸치는 상인에 불과하다고 했어. 그리고 콜럼버스가 무시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신대륙에서 주교로 있었던 라스 카사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것을 폭로하는 <인디오의 역사>라는 책을 쓰기도 했어. 그는 1502 18살 나이에 신대륙에 건너가 73세까지 신대륙에서 지낸, 소위 신대륙 통이었어. 그는 콜럼버스가 신대륙 본토에도 먼저 도착했다고 했어. 책자에는 베스푸치가 1497년에 신대륙 본토에 도착했다고 써 있지만, 실제로는 1499년에 도착한 것이라고 했어. 이렇게 베스푸치를 비판하며 콜럼버스를 재평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콜럼버스의 명예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단다.

================

(128)

콜럼버스라는 한 인물이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은 후 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부당한 처우를 겪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는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콜럼버스는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그를 향한 모든 경멸과 그의 이미지에 드리워졌던 모든 그림자는 깨끗이 지워졌다. 사람들은 그의 형편없었던 통치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의 생애를 이상적으로 그려냈다. 그가 겪었던 어려움은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선원들의 모반을 제압하고 배를 끝까지 이끌었던 일, 한 악당의 음모로 쇠사슬에 묶여 고향으로 압송된 일, 굶주림에 처한 자식과 함께 라비다 수도원에 숨었던 일 등 이 모든 사건들은 이전에는 그의 업적을 칭송할 때 별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끊임없는 영웅화 욕구 덕분에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회자되었다.

================

뿐만 아니라 베스푸치가 쓴 것으로 알려진 항해서도 거짓일 수 있다고 제기되었어. 그것은 코라도 마그나기 교수가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근거는 베스푸치가 쓴 <신세계> <내 번의 항해>의 내용과 진짜로 밝혀진 베스푸치의 세 통의 편지와 상충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출판업자들이 베스푸치의 허락없이 그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단다. 그렇다면 베스푸치는 왜 침묵했을까?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해 보면베스푸치는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도 아니고, 책을 저술한 사람도 아닌 평범한 상인이었을 확률이 높단다. 우연과 착오와 착각 등에 의해 그의 이름으로 신대륙의 이름이 정해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신대륙의 이름을 바꿀 수도 없는 법. 지은이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를 꿈꾸는 아메리카의 이름을 평범한 시민의 이름으로 따온 것이 더 맞지 않냐고 말이야. 맑고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그 이름, ‘아메리카를 말이야.

================

(18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는 자신의 세례명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 이름은 올곧고 용감한 한 남자의 이름이다. 그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세 차례에 걸쳐 조그마한 배를 타고, 아직 탐험되지 않은 대양을 건너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 역시 시대의 모험과 위험 속에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수백 명의 이름 없는 선원들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민주주의 국가에 잘 어울리는 이름은 왕이나 정복자의 이름이 아니라 이름없이 용감했던, 그런 평범한 사람이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는 서인도라든가 뉴잉글랜드, 뉴스페인 또는 성스러운 십자가의 나라 같은 이름보다 분명히 더 공정한 명명일 것이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책은 얇지만, 담고 있는 내용들이 재미있고 알려주고 싶은 내용들이 많아서, 페이지에 비해 오늘 독서편지의 내용이 길어진 듯 하구나. 문득 유럽 대륙은 왜 유럽인지, 아시아 대륙은 왜 아시아인지, 아프리카 대륙은 왜 아프리카인지 궁금하구나.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이번 책도 실망시키지 않은 슈테판 츠바이크가끔씩 그가 남기고 간 책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아메리카 대륙은 누구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책의 끝 문장: 맑고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그 이름, ‘아메리카를 말이다.

 


인간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한다. 무엇인가에 열광하게 되면 그 열망을 한 마디 환호성으로 표현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우연의 바람이 불현듯 하나의 이름을 던져준 행운의 날,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울림 좋고 날개가 돋친 듯한 그 낱말을 서슴없이 받아들여 새로 발견한 세계를 아메리카라는 새롭고 영원한 이름으로 맞이했다. - P13

1200년,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묘를 되찾았다가 다시 빼앗겼다. 순례는 헛된 것이었다. 아니다. 헛되지만은 않았다. 이 원정을 통해 유럽은 비로소 깨어났기 때문이다. 유럽은 스스로의 힘을 깨닫고 용기를 시험했으며,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는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전혀 다른 하늘 아래 다른 땅, 다른 열매, 다른 물건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 다른 풍속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놀라움과 부끄러움 속에서 기사들과 시종들, 그리고 농부들은 자신들이 좁고 답답한 서양의 구석에서 얼마나 어리석게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반면에 사라센인들은 얼마나 풍요롭고 세련되게, 그리고 호화롭게 살아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 P22

베스푸치는 위대한 발견자인 콜럼버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냈다.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앞으로 얼마나 큰 의미를 갖게 될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대륙의 남쪽 부분이 독립된 새로운 땅임을 정확히 인지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베스푸치는 사실상 ‘아메리카’의 발견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발견이나 발명은 단지 그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의미와 영향을 인식한 사람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탐험과 발견이라는 공적을 세웠다면, 베스푸치는 앞서 언급한 선언을 통해 콜럼버스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라는 공적을 세웠다. 그는 앞선 사람이 몽유병 환자처럼 방황하며 발견한 것을, 마치 꿈의 해몽가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 P62

학자들의 세계에서 베스푸치가 이토록 엄청난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출간한 매우 얇고 신뢰성이 다소 의심스러운 두 권의 책들이 학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부여한 것은 무엇보다도 <지리학 입문>이라는 책이었다. 그러한 책을 최초로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베스푸치는 행동보다 말을 중시하는 학자들에 의해 서슴없이 신대륙의 발견자로 찬양받게 되었다. 지리학자인 쇼녀는 두 사람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으며 이렇게 말했다.
"콜럼버스는 단지 몇몇 섬만을 발견했을 뿐이고, 베스푸치는 진정한 신세계를 발견했다."
- P113

4세기에 걸쳐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를 던져준 이 남자는 정작 파란도 위대함도 없이, 소외된 채 조용히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베스푸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세계의 영역을 넓힌 사람도 아니었다. 위대한 저술가도 아니었고,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위대한 학자도, 심오한 철학자도, 천문학자도 아니었으며 코페르니쿠스나 튀코 브라헤와 같은 인물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를 위대한 항해자나 탐험가의 제일선에 놓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라도 모른다. 불운한 운명 탓에 어느 순간에도 주도권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쥐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나 마젤란처럼 함대를 지휘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주역이 아닌 조연에 머물렀고, 늘 다른 이들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 - P183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는 것은 발견 자체가 아니라 발견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베스푸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그것이 새로운 대륙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 단 하나의 업적이 그의 삶과 이름에 영원히 결부된 것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행위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떤 행위를 이야기하고 설명한 사람이 그것을 실제로 해낸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종종 아주 작은 계기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역사에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역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바라는 것이다. 종종 역사는 평범한 인물에게 불멸의 업적을 안겨주고, 진정으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채 던져버렸다. - P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