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형사들 - 사라진 기와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명섭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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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책은 정명섭 님의 <조선의 형사들>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도 너희들과 함께 읽으려고 산 책인데, 너희들은 바빠서 못 읽고, 아빠가 먼저 읽어보았단다. 정명섭 님의 책은 예전에 <유품정리사>라는 책을 한 권 읽었는데, 그 책의 시대적 배경이 조선시대 정조 때였는데, 이번에 읽은 <조선의 형사들>도 정조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더구나.

좌포도청 군관 이종원과 우포도청 군관 육중창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란다. 원래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은 영역이 달라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드문데, 이 소설에서는 두 군관이 함께 사건을 수사해 나간단다. 두 사나이의 브로맨스 이야기라고 할까. 그런데 두 사나이의 직급이 높지 않아서 간혹 직급이 깡패라는 것을 실감하는 경우도 있었단다. 그 때마다 등장하여 그들을 도와주는 이가 있었으니 형조참의 정약용이란다. 아빠도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 정약용이 등장하여 반갑더구나.

그런데 이종원, 육중창 두 군관은 지은이가 만들어낸 허구 인물일 거라 생각했는데, 두 군관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이라고 하는구나. 이 소설에서는 두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단다. 먼저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마마의 위패를 모신 의열궁의 기와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사도세자의 어머니라면 정조의 할머니가 아니더냐. 좌우 포도청은 난리가 났어. 좌우 포도청은 힘을 합쳐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능력 있는 군관을 한 명씩 발탁하여 수사하게 했단다. 그렇게 뽑힌 군관이 좌포도청의 이종원, 우포도청의 육중창이란다. 그런데 의열궁의 기와가 사라진 사건도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구나. 그 사건을 해결했던 이들도 이종원과 육중창이고 말이야. 소설이 그냥 소설인줄 알았는데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소설로 각색한 것이로구나.


1.

소설 속에서는 이종원과 육중창이 기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갈 즈음 모화관 앞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단다. 이십 대 여성의 시신으로 신분도 알 수 없는 시신이었어. 이종원과 육중창이 이 사건을 수사하다 보니 범인은 병조판서의 아들이 의심되었어. 하지만 병조판서의 집을 함부로 수사하기 어려웠어. 병조판서와 그의 아들은 수사에 대해 협조는 하지 않았고, 이 사건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을 사주하기도 했단다. 이 때 형조참의 정약용은 이종원과 육중창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을 믿게 되었단다. 정약용이 도움을 주어 이종원과 육중창은 이 살인 사건을 해결하게 된단다. , 이 사건도 그럼 실제 있었던 사건일까? 이 사건은 정조는 아니고 성종 때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구나.

….

이 살인사건을 마무리하고 소설의 앞부분에 등장했던 기와 사건에 집중을 하게 된단다. 이 사건은 연루되었던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것은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된단다. 이것은 정조 암살 미수 사건과 이어지게 되는데, 정조 암살 미수 사건은 역사적인 사실로, 많은 영화, 소설, 드라마에서 차용하는 소재 거리란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에게는 약간 식상한 듯한 이야기였단다. 이 책은 너희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 싶더구나. 조선 시대 수사관들에 어떻게 활동했는지 알 수 있고, 일부 역사적인 사실도 알 수 있고, 책도 얇고 쉽게 쓰여서 읽는데도 어려움이 없을 듯 하구나. 너희들이 좋아하는 추리 소설인 점도 있고

오늘은 짧게 끝.


PS,

책의 첫 문장: 한밤중의 한양은 고요했다.

책의 끝 문장: 그러자 다른 참석자들도 술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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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기묘한 양자 - 과학이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기묘한 6가지 이야기
존 그리빈 지음, 강형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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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그렉 이건의 <쿼런틴>이라는 소설을 읽었잖아. 그 책을 읽긴 했는데, 이해 안가는 부분들이 있어 유튜브를 좀 찾아봤단다. 그 중에 한 북튜버가 <쿼런틴>을 설명해주면서 도움이 된다면서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었는데 그 책이 바로 아빠가 이번에 읽은 존 그리빈의 <이토록 기묘한 양자>라는 책이란다. 아빠가 양자역학에 대한 책들을 여럿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이토록 기묘한 양자>가 가장 얇은 책이 아닐까 싶구나. 그래서 그 동안 읽었던 양자역학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려나, 하고 책을 펼쳤단다.

이 책은 양자역학의 여섯 가지 해석을 정리해 놓았단다. 아빠가 그 동안 읽은 양자역학의 책들은 주로 코펜하겐 해석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양자역학의 해석이 여섯 가지나 된다고? 이 책을 읽어보니 코펜하겐 해석을 제외한 나머지 해석들도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이었고, 그것을 주장한 사람들도 익숙했단다. 다만 이 책에서 짧게 정리한 내용을 읽고서는 이해하기가 정말 어려웠단다. 이 책을 소개해준 북튜브는 양자역학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인가보구나. 이렇게 짧게 정리한 내용은 다 이해를 한 것인가? , 아빠는 솔직히 쉽지 않았단다. 그 동안 양자역학 책들을 여럿 읽으면서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좌절을 맛보게 한 책이란다.


1.

여섯 가지 양자역학의 해석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간단히 설명해볼게.

해석1. 코펜하겐 해석. 가장 유명한 양자역학 해석으로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코펜하겐 연구소에서 내 놓은 해석으로 전자 같은 아주 작은 물질들을 우리가 입자를 찾으려고 하면 입자처럼 행동하고, 우리가 파동을 찾으려고 하면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파동 상태로 있고 관찰한 후에야 비로소 입자로 존재한다는 해석이란다. 코펜하겐 해석은 다른 책들 이야기할 때 여러 번 해서 좀 익숙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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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그저 당신이 입자를 찾을 때 전자가 마치 입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당신이 파동을 찾을 때 전자는 마치 파동인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전자가 입자 또는 파동이거나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 보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고, 당신이 보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볼지에 대해 내린 선택에 의존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전자와 원자 같은 양자적 개체들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는 이 개체들이 그 누구도 이들을 측정하지 않을 때-혹은 누구도 이들을 바라보지 않을 때-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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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파일럿 파동 해석. 프랑스의 대표적인 양자역학 물리학자인 루이 드 브로이가 제시한 해석으로 파동과 입자 모두 실재하고 입자는 보이지 않는 파동의 안내의 의해 움직인다고 한 해석이란다. 파동이 입자를 이동시킨다고 하였단다. , 파동의 속성은 측정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입자의 행동으로부터 파동의 존재를 추측할 수 있고, 입자는 관찰하기 전까지는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단다. 이것을 숨은 변수 이론이라고 했단다. 코펜하겐 해석은 파동과 입자가 양립할 수 없는데, 파일럿 파동 해석에서는 파동과 입자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 두 해석간의 차이라고 이해했는데, 아빠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단다. 나중에 시간 나면 쉽게 설명한 유튜브를 좀 찾아봐야겠구나.

세 번째, 다세계 해석. 이건 좀 익숙한 해석이란다. 휴 에버렛이라는 사람이 처음 제시했지만, 지은이 존 그리빈은 슈뢰딩거가 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했어. 양자약학이란 것이 물질들이 파동에 의해 확률로 존재하고 있다가 관찰하는 순간 존재하게 된다고 했는데, 그 존재하는 순간 나머지 경우의 수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해석이란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관찰하기 전, 살아 있을 확률 50%, 죽어 있을 확률 50%에서 관찰하게 되어 만약 고양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또 다른 세계의 나는 죽어 있는 고양이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란다. 다세계 해석이라고도 하고 평행우주라고도 하고 다중우주라고 하는데, 이 해석이 실재한다면 무수히 많은 너희들이 다른 우주에 존재하고 있을 거란다.

네 번째, 결어긋남 해석. 양자역학에서 결어긋남이라는 용어는 중요한 용어인데 아빠는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단다. 앤서니 레깃이라는 사람이 주장했는데, 결어긋남을 알기 위해서는 결맞음을 알아야 한단다. 운동장에서 파도파기 응원을 할 때 모든 사람들이 팔을 올렸다 내렸다를 잘 맞추면 멋진 파도파기 응원이 되는데 이때를 결맞음이라고 할 수 있고, 그와 달리 제각각 팔을 올렸다 내렸다를 못 맞추면 어지러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때를 결어긋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란다. 전자 같은 작은 물질을 관찰하기 전에는 결맞음을 유지하여 파동 형태를 띠는데 관찰하게 되면 결어긋남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파동함수의 붕괴가 되고 입자가 된다는 것이 이 해석의 주된 내용으로 아빠는 이해했단다. 얼핏 보면 코펜하겐 해석과 비슷하지?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는구나.

다섯 번째, 앙상블 해석. 소설 <쿼런틴>에서 나왔던 앙상블. 리 스몰린에 의해 정리된 이 앙상블 해석은 통계적으로 양자역학을 해석했다고 해서 통계적 해석이라고도 한대. 코펜하겐 해석을 그렇게 반대했던 아인슈타인은 이 앙상블 해석을 선호했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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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양상블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대안이며 아인슈타인이 선호했던 해석이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자이론적인 기술을 개별적인 계들에 대한 완전한 기술로서 생각하고자 하는 시도는 부자연스러운 이론적 해석으로 귀결된다. 만약 우리가 양자이론적인 기술을 개별적인 계들이 아니라 계들의 앙상블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을 수용할 경우, 앞서 언급했던 해석은 곧장 불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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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거래 해석. 리처드 파인만이 추론한 해석으로, 전자가 전기를 띤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을 할 때 파동의 절반으로 미래로 이동하고, 나머지 절반은 과거로 이동한단다 내용이란다. 물질이 파동 형태를 띠고 있다 보니, 반사파가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이 과거로 이동한다는 생각독창적인 해석인 것 같구나. 그럼 과거로 이동한 파동은 과거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것인가? 이 생각을 발전시키면 SF 소설도 하나 등장할 것 같지 않니? ㅎㅎ 그런데 이 거래 해석도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더구나.

오늘 독서 편지는 툭 하면 모르겠다고 해서 읽는 너희들도 답답해 할 수도 있겠구나. 그냥 저희가 그 책을 읽어볼게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듯 ㅎㅎ 앞서도 이 책이 너무 짧게 짧게 정리를 하다 보니 각 해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었단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여섯 가지 해석을 짧게 정리한 부분이 있는데 그거라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오늘 편지는 마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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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1 우리가 보지 않는 이상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 2 입자들은 보이지 않는 파동의 안내를 받아 움직이지만, 입자들은 파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해석 3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평행한 실재들의 배열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해석 4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실제로 이미 일어났고 우리는 오직 그 일부만 알아차린다.

해석 5 모든 것은 마치 공간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다른 모든 것들에 순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해석 6 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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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양자물리학은 이상하다.

책의 끝 문장: 그 누구도 어떻게 세계가 그렇게 돌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양자역학의 방정식들을 이용해서 원자가 공간에 전자를 방출하는 실험(이는 실제 실험으로 베타 붕괴라고 불린다)를 기술할 수 있다. 이상적인 실험에서 전자는 명확한 스핀을 갖는다. 스핀은 위 방향이거나 아래 방향이다. 그러나 스핀의 값이 무엇이 될지 사전에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각각의 확률의 50 대 50이다. 만약 당신이 실험을 1000번 하거나 동시에 원자 1000개로 실험할 경우, 당신은 전자 500개(여기서 몇 개를 더하거나 뺀 값일 수 있다)의 스핀이 위 방향이고 나머지 전자 500개의 스핀이 아래 방향임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전자 하나를 골라 스핀을 측정한다면, 당신은 전자를 들여다보기 전까지 그 전자의 스핀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 P36

반쪽 상자는 당신의 실험실에 그대로 두고, 나머지 반쪽 상자는 화성으로 가는 로켓에 실어 보내자. 보어에 따르면 전자가 연구실에 있는 상자나 화성에 있는 상자에서 발견될 확률은 50 대 50이다. 이제 당신의 실험실에서 상자를 열어보자. 당신은 전자를 발견하고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둘 중 어떤 경우에도 파동함수는 붕괴한다. 만약 열어본 상자에 전자가 없다면 전자는 화성에 있다. 이는 전자가 이 반쪽 상자 또는 저 반쪽 상자에 ‘항상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코펜하겐 해석은 실험실에서 상자 안의 내용물을 검토하는 경우에만 파동함수의 붕괴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EPR ‘역설’과 슈뢰딩거의 유명한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는 고양이에 관한 퍼즐의 근저에 있는 핵심 개념이다. - P62

각각의 스위치는 비트(bit)로 알려져 있고, 비트가 많을수록 컴퓨터는 더 강력해진다. 8개 비트는 1바이트가 되고, 오늘날 컴퓨터 메모리는 수십억 개의 바이트 즉 기가바이트(GB)를 통해 측정된다. 우리가 이진법을 다루고 있으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1기가바이트는 2^30바이트이지만, 대개 그대로 받아들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 속에 있는 각각의 스위치는 중첩된 상태들로 있을 수 있는 개체다. 대개 이들은 원자들이지만 당신은 이들이 스핀 값을 위 방향 또는 아래 방향으로 가질 수 있는 전자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차이는 바로 중첩 상태로서 전자들의 스핀은 위 방향이자 동시에 아래 방향이라는 것, 즉 0이고 1이라는 것이다. 각각의 스위치는 큐비트(qubit)라고 불린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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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4)

1940년의 뉴욕이란!

그런 뉴욕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뉴욕을 폄하할 생각은 물론 없다. 언제라고 뉴욕이 중요하지 않았겠니. 하지만 그때의 뉴욕은 그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그 도시, 오직 내 눈에만 새롭게 창조된 뉴욕은 다시 존재하지 못하겠지. 그 뉴욕은 책 사이에 끼워 말린 나뭇잎 책갈피처럼, 나만의 완벽한 뉴욕으로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단다. 너에게 너만의 완벽한 뉴욕이 있겠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의 뉴욕은 언제나 나만의 뉴욕이란다.


(357)

네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비비안. 너는 절대 흥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 물론 예쁘긴 하지. 하지만 그건 오직 젊기 때문이란다. 아름다움은 곧 사라져. 하지만 넌 결코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없어. 내가 이 말을 해주는 이유는, 네가 스스로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네 삶도 중요하다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넌 전혀 흥미롭지도 않고, 네 삶도 전혀 중요하지 않아. 한때는 나도 네가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어. 네 고모 페그가 바로 흥미로운 사람이야. 올리브 톰슨도 흥미로운 사람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야. 하지만 넌 전혀 흥미롭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니?”


(498)

아무나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해.” 올리브는 페그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해주신 말씀이지. 어른의 세상은 어린이의 세상과 다르다고. 너도 알다시피 아이들은 고통을 견딜 필요가 없지. 그런 기대를 받지도 않고.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려면 어른의 자리에 서야 해. 당연히 그런 기대도 받게 되고. 자기만의 원칙과 신념도 지켜야 하고. 희생도 필요하단다. 사람들은 널 판단하겠지. 실수를 하면 해결해야 하고. 어름이 되지 못한 사람보다 충동을 자제하고 더 고상한 입장을 취해야 할 때가 있을 거야. 물론 많이 아프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른의 자리가 힘든 거란다. 이해하겠니?”


(529)

나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아본 적은 없었다. 내 경험을 말로 표현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말한 어둠이 나 사악함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내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세상의 빛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오직 섹스만 그곳에 가닿을 수 있었다. 태곳적부터 내 안에 존재하는 곳, 문명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곳, 말이 가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우정으로도 불가능했다. 창의적 노력으로도, 경외와 기쁨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곳이었다. 내 안의 그 어둠은 오직 섹스를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그 어둡고 은밀한 공간에 도달하면 나는 마침내 나라는 인간의 기원에 내려섰다고 느꼈다.


(548)

잘 들어요, 프랭크 그레코. 당신이 겁쟁이라면 그래요, 당신 말대로 그렇다고 쳐요. 그래도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내 고모 페그는 알코올 중독이에요. 고모는 술을 절제하지 못해요. 그래서 인생이 엉망진창 꼬였죠. 그게 무슨 뜻일까요? 아무 뜻도 없어요. 그렇다고 고모가 나쁜 사람일까요? 술을 조절하지 못한다고 실패한 사람일까요? 당연히 아니에요. 고모는 그저 그런 사람인 거예요. 어쩌다 알코올 중독이 된 것뿐이에요, 프랭크. 누구나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예요. 그 사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없어요. 빌리 삼촌은 약속을 밥 먹듯 어기고, 여자에게 충실하지 못해요. 그것 역시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에요. 빌리는 멋진 사람이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삼촌은 그저 그런 사람인 거예요. 그뿐이지 아무 뜻도 없어요. 그래도 우린 그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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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 23일 스티븐스(일본 통감부 외교고문)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역 구내에서 장인환, 전명운 두 애국지사의 총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같이 행동한 게 아니라 서로 모른 채 각각 거사에 나섰다. 먼저 전명운이 권총을 쏘았으나 불발되자, 장인환이 다시 3발을 쏘아 2발은 스티븐스의 가슴과 허리를 관통했고 나머지 한 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맞았다. 스티븐스는 병원에 옮겨진 후 사망했다. 그는 보호조약을 강제로 맺게 함으로써 나의 강토를 빼앗았고, 나의 종족을 학살했기에 이를 통분히 여기어 그를 쏜 것이다라고 말했다.


(42-43)

(베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나는 죽더라도 신보는 앵생케 해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베델의 그런 한국 사랑은 그가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갖고 있는 웨일스 출신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걸까? 베델의 한국 사랑과 반일정신은 매우 투철해 한때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대한매일신보>의 통감부에 대한 공격을 중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베델을 암살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베델의 장례식은 동대문 밖 영도사에서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으며 그의 시신은 양화진(서울 합정동) 외국인 묘지에 묻혔고 그의 공적을 기리는 사람들의 성금에 의해 1910년 묘비가 세워졌다.


(132-133)

1910 2 7일 오전 9시 뤼순 법정. 당시 15만 부를 발간하던 영국 최대의 주간지 <그래픽>의 기자 찰스 모리머는 재판 참관기를 통해 세기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거머쥔 채 자랑스레 법정을 떠났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고 썼다. 모리머는 재판을 참관하던 많은 일본인들조차 안중근에게 지극한 존경심을 가졌으며 그들에게서는 살해된 정치인의 추억보다 안중근의 명성이 더럽혀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안중근에 대해 그는 삶의 포기를 열렬히 염원했다이 사건으로 인해 재판에 오른 건 다음 아닌 일본의 현대문명이었다고 말했다.


(184-185)

한국은 종교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활기찬 나라이나 어떤 단일 종교도 한국인들의 종교생활을 지배하고 있지 않고 있는 다종교 국가이다.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동구,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천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종교적 다원주의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종교적 평화의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은 유교의 문화적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나라이면서도 아시아적 가치를 변용하여 서구의 자유주의, 합리주의를 수용하는 데 가장 개방적인 나라이다. 한국은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의 가치가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한국은 새무얼 헌팅턴이 역설한 문명의 충돌에 대한 해답까지 제공해줄 수 있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한국의 극단주의는 신바람특성과 맞물린 것으로 늘 잠재돼 있긴 하지만 오래 지속되긴 어렵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도 있겠다. 한국인은 단기적으로 극단주의적이지만, 장기적으론 중용 지향적이다.


(189)

<독립신문> 1898 2 8일자 논설에 따르면, “사람이 시계를 살 때마다 기계 속을 모른즉 시계 좋고 아니 좋은 것을 아는 도리는 다만 전면에 비늘 둘이 시간과 분과 각을 옳게 가리키는지 아니 가리키는지 하는 것을 가지고 아는지라. 그것과 같이 사람을 옳고 그른 것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하는 행사를 가지고 알기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라. 설령 시계가 보기에 훌륭하고 금과 보석으로 꾸민 시계나 그 시계가 시를 맞추지 아니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시계가 아니라 일개 값진 물건이라. 금과 보석을 팔면 돈은 생길지언정 시계로 쓸 것은 못 되지 그것과 같이 사람도 외양이 좋고 의복을 잘 입어 보기에는 좋은 사람 같이 보이나 자기 맡은 직무를 못 할 지경이면 무용지안이라. 그러하기에 시계 살 때에 외양과 모양은 어떠하였든지 시만 잘 맞추면 그 물건이 쓸데 있는 물건이요 사람도 지체가 없고 오양도 준수치 않더라도 맡은 직무만 착락 없이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보배로운 사람이라.”


(288)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많은 한국인들에게도 먹혀 들어갔다면, 그건 조선이 망해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의 힘 때문일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조선이 망했는가? 이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우리 스스로 내놓지 못한 채 당파싸움 때문에 망한 건 아니댜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옹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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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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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소설 <누운 배>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 그 소설을 쓴 이혁진 님의 다른 책들을 찾아 보았단다. 그렇게 알게 된 책이 이번에 읽은 <관리자들>이라는 책이란다. 지난 번에 읽은 <누운 배>라는 책은 조선업 회사의 리얼한 현장감이 돋보이는 책이었다면, 이번 <관리자들>이라는 책은 토목건설의 공사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욕심과 야욕도 볼 수 있고, 반대로 따뜻한 인간애도 볼 수 있었단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 같은 시원한 복수극도 볼 수 있었단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전해주려는 주제가 뚜렷하고 짜임새도 좋은 소설이라서 재미있게 읽었단다.

소설가 이혁진 님의 소설은 이번에 두 번째였는데 두 권 모두 좋았단다. 그의 또 다른 소설을 찾아보게 만들었고, 그의 신간을 기다리게 되었구나. , 그럼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히 이야기해줄게.


1.

주인공은 굴착기 기사를 직업으로 하는 서현경이라는 사람이란다. 현경이라고 하면 보통 여자 이름이라서, 여자 이름을 가진 남자라고 생각했어. 굴착기 기사라고 하니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는 아빠의 못된 선입견. 읽다 보니 여자 굴착기 기사더구나. 현경은 도로 건설을 하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어.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한 숙소는 근처에 있는 모텔을 통째로 빌렸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어. 경력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이쪽 일과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어. 그 중에 선길이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선길은 7살이 된 어린 아들이 있는데, 그 어린 아들이 뇌종양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고, 세 번째 수술을 준비 중이라고 했어. 아들의 병 때문에 병원을 자주 가야 했고, 그러다 보니 직장을 제대로 갖지 못했어. 원래 하던 일은 회계 업무였는데, 아들의 병 때문에 그 전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어야 했어. 돈을 벌어야겠으니 이런 막노동 현장까지 오게 된 것이지. 이곳에 와서도 막일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어. 적성에 안 맞는 것보다 여전히 아들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워야 했기 때문이었어.

...

현장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곳을 함바식당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 속 근로자들도 함바식당을 이용해. 그런데 그 함바식당 근처에 멧돼지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었어. 어느날 식자재를 보관하는 비닐하우스가 다 찢어지고 그랬거든... 나중에 알려졌지만 현장소장의 짓이긴 했지만, 처음에는 다들 멧돼지의 소행이라고 했어. 그래서 멧돼지를 감시하자고 했어. 그것도 밤에... 그런데 그 일을 선길에게 시키려고 했어. 그가 현장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하니까 멧돼지라도 지키라는 것이었어. 옆에서 보고 있던 현경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관리자 중에 직급이 낮아 현장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한대리에게 이야기했어. 굴착기로 비닐하우스 주변을 깊게 파서 해자처럼 만들면 멧돼지가 접근하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선길은 야밤에 혼자 숲 속에서 보초를 서기 시작했어.

산 속에서 오는 온갖 짐승의 소리도 무서울 텐데, 한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사무실에게 근무를 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원래는 밤에 멧돼지를 감시하면서 전에 했던 회계사 공부를 다시 하려고 했지만, 그럴 환경이 아니었어. 고통과 추위와 두려움과 싸우다 보니 몸은 점점 초췌해졌어. 현경과 동료인 목 씨는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단다. 그들만 그렇지, 다른 인부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니 나 몰라라 했단다.

현경은 현장소장을 직접 찾아가서 선길에게 멧돼지 감시일을 그만하게 해 달라고 건의했지만,  거절 당했단다. 한 달 넘게 오지도 않는 멧돼지 감시를 한 선길은 거의 폐인이 되었어. 그 중에 아들의 세 번째 뇌종양 수술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단다. 현경은 다시 한번 굴착기로 해자를 만들자는 제안을 현장소장을 찾아가서 이야기했어. 현장소장도 돈 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 제안에 오케이를 했단다. 생각보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현경은 굴착지로 비닐하우스 주변을 다 파내었단다. 이제 선길이 돌아와도 멧돼지 감시를 안해도 될 것 같았어.

.....

어느날 깐깐하기로 소문난 소장이 돼지 두 마리를 잡아와서 회식 자리를 마련해주었어. 인부들은 다들 즐겁게 참여했지만, 목 씨는 이 일이 의심스러워 조사를 해보니, 인근 지역에 돼지열병 때문에 살처분된 돼지를 두 마리 싸게 사가지고 큰 덕 쓰는 것처럼 회식 자리를 만든 거였어. 목 씨는 이를 현경에게 미리 이야기하고 먹지 말라고 했단다.


2.

선길에 예상날짜보다 늦게 돌아왔단다. 선길은 얼굴이 밝았어. 아들의 수술이 잘 끝났다고 했어. 그리고 선길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왔단다. 그 개들로 하여금 멧돼지를 감시하게 하려고 말이야. 현경이 해자를 만들어 놓은 것을 몰랐던 것이지.

...

선길은 이제 다시 현장에 투입했어. 이제 아들 일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자, 선길은 일을 제대로 배우기로 마음 먹었단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선길은 업무 능력은 금방 쭉 올라갔단다. 회계사 경험이 있다 보니 현장에서 수치 계산하는 것도 금방 하고, 다른 일들도 똑 부러지게 해서 다른 인부들에게 인정을 받았어. 선길이 있는 조는 실적도 좋아서 십장들은 선길과 함께 일하려고도 했어.

현장소장은 다른 업체의 일까지 가지고 왔단다. 그 다른 업체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해서 짤렸다고 했거든. 현장소장은 일을 할 때 불도저 같은 스타일이었어. 일정 단축을 위해서 현장 인력들을 쥐어짰어.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작업절차도 무시하고 흙막이 같은 안전장치도 미설치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겨울철에 눈이 오면 공치니까 눈이 오지 않는다면 주말에도 일을 하라고 했고, 눈이 오면 쉬라고 했어. 하지만 그해 겨울은 춥기만 하고 눈은 오지 않았어. 쉬지도 못하면서 일하게 되자 인부들은 하나둘 공사현장에서 몰래 술자리를 벌이기도 했어. 목 씨, 선길, 현경은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았고, 한대리는 모른 척 했단다.

....

이렇게 엉망이 된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안 난다면 천운이겠지만, 결국 안전사고가 터졌단다. 그것도 착하고 성실하고 불쌍한 선길이 그만 안전 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어. 안전장치만 제대로 설치했어도 죽을 사고는 아니었으니 이것은 명백한 인재였단다. 이 일의 충격으로 현경도 며칠 동안 일을 나가지 못했어.

....

며칠 뒤 현경은 선길의 유품을 챙기러 모텔에 온 선길의 아내를 만났어. 선길의 아내가 이야기하기를, 선길이 술 먹고 작업장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고, 다른 이들에게 술도 권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반장이 된다고 떠들고 다녔다는 거야. 그러다가 술 취한 상태에서 안전사고를 당했다니... 그래도 현장소장이 적지 않은 보상금을 주었다고 했어.

현경은 분노가 치솟았어. 이것은 소장의 각본이었던 거야. 그런 잔머리를 세계최고니까.... 현경은 선길의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 있던 굴착기의 블랙박스의 메모리 카드를 가지러 갔어. 그런데 이미 그 메모리 카드는 사라지고 없었단다. 이미 소장의 측근들이 처리를 한 것 같았어.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던 것이 있었지. 액션캠으로도 녹화를 하고 있었는데, 굴착기 운전석 바닥에 떨어진 액션캠은 가져가지 못했단다.

현경이 그 액션캠을 확인해 보니...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었어. 소장이 일을 조작하는 것까지 말이야. 이것을 선길의 아내에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단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길고 긴, 힘든 재판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돈도 많이 들어갈 테고 말이야. 하지만 진실을 그렇게 묻어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편지와 메모리 카드를 선길의 아내에게 보냈단다.

....


3.

사고 발생 후 현장 인부들의 쳐진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현장소장은 또 회식을 한다고 했어. 이번에도 돼지 두 마리.. 이번 역시 그 돼지열병에 살처분된 돼지들... 그리고 거기에 추가된 것이 개고기..... 선길이 데리고 왔던 개를 잡은 거야..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를 도망가고 한 마리를 잡았다고 했어. 그 개들을 보살피고 정을 주었던 한대리는 울면서 현경에게 전화를 했어. 현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 죽은 동료의 개를 잡아 먹는 인간들.... 현경은 굴착기를 가지고 가서 인부들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있는 함바식당을 부셔버렸단다.

대경실색을 한 사람들은 도망가기 정신 없고.... 그 곳에 목 씨가 나타나 너희들이 먹은 돼지 고기는 돼지열병으로 살처분한 돼지라고 일갈했어. 당황한 현장소장에게 현경은 굴착기로 묵은 짬통을 들어 부어주었단다. 그리고 나서 굴착기를 몰고 그곳을 떠났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 <불도저를 타는 소녀>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했단다. 중장비를 몰고 가셔 건물을 통째로 부셔버리는 복수 씬.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약자가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사회란다. 법이라는 것도 약자와 강자에게 공평한지 모르겠고 말이야. 온갖 불법을 저지르면서 법을 피해가는 관리자들도 많고... 책임지려고 관리자들은 적고... 그렇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사건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고 말이야. 소설 속 일들이 실재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서 더욱 답답함을 느끼는구나.

...

이 책에는 아빠가 이야기한 내용 이외에 좋은 글들도 많이 담겨 있단다. 그런 내용을 찾으면서 읽어봐도 좋을 것 같구나. , 그럼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현경의 굴착기가 어둑한 현장 식당 옆에 멈춰 섰다.

책의 끝 문장: 얇은 보드라운 살갗이 따스했다.


"봐라, 너부터 당장 그러고 있잖냐.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 P46

역시나 관리자에게 필요한 것은 갈라 세우고 갈라 세우고 오로지 어떻게든 갈라 세우는 일이었다. 줄을 세우고 편을 갈라서 저희끼리 알아서 치고받도록. 그러느라 뭐가 중요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생각도 못 하도록. 인간이란 고작 그런 것이다. 서로 믿지 못하고 지기 싫어한다. 그 속성마저 남들만 그렇고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그래서 싸우고, 그렇게 싸우기 때문에 싸울수록 더 편향되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그 불신을 극복하지도, 서로 이기거나 져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진흙탕 밑바닥까지 서로 끌고 들어가기만 한다. 그러다 결국 자신들을 끄집어 올려 줄 관리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싸움은 끝나야 하고 누군가는 개처럼 물불 못 가리게 된, 자신들이 아니라 저것들을 따로 가둬야 하니까. - P94

그것이 중요했다. 이거 먹고 제발 입 좀 다물어 달라는 식이면 나중에 더 내놓으랄 수도, 또 어느 순간 죄책감에 혼자 미쳐 날뛸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의 힘은 늘 위대하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믿음은 모든 믿음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 세상에서 제일 참혹한 일을 벌였던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이 바로 자신은 착하고 항상 착하다는 믿음이었다. 그 사람들은 양면을 칼로 총으로 베고 쏴 죽이면서도 생각했다.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오로지 선행을 베푸는 것뿐이라고. 오, 세상에 정말!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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