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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의 뉴욕이란!
그런 뉴욕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뉴욕을 폄하할 생각은 물론 없다. 언제라고 뉴욕이 중요하지 않았겠니.
하지만 그때의 뉴욕은 그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그 도시, 오직 내 눈에만 새롭게 창조된 뉴욕은 다시 존재하지 못하겠지. 그 뉴욕은 책 사이에 끼워 말린 나뭇잎 책갈피처럼, 나만의 완벽한
뉴욕으로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단다. 너에게 너만의 완벽한 뉴욕이 있겠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의 뉴욕은 언제나 나만의 뉴욕이란다.
(357)
“네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비비안. 너는 절대 흥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 물론 예쁘긴 하지. 하지만
그건 오직 젊기 때문이란다. 아름다움은 곧 사라져. 하지만
넌 결코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없어. 내가 이 말을 해주는 이유는,
네가 스스로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네 삶도 중요하다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넌 전혀 흥미롭지도 않고, 네 삶도 전혀 중요하지 않아. 한때는 나도 네가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어. 네 고모 페그가 바로 흥미로운 사람이야. 올리브 톰슨도 흥미로운
사람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야. 하지만 넌 전혀 흥미롭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니?”
(498)
“아무나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해.” 올리브는 페그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해주신 말씀이지. 어른의 세상은 어린이의 세상과 다르다고.
너도 알다시피 아이들은 고통을 견딜 필요가 없지. 그런 기대를 받지도 않고.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려면 어른의 자리에 서야
해. 당연히 그런 기대도 받게 되고. 자기만의 원칙과 신념도
지켜야 하고. 희생도 필요하단다. 사람들은 널 판단하겠지. 실수를 하면 해결해야 하고. 어름이 되지 못한 사람보다 충동을 자제하고
더 고상한 입장을 취해야 할 때가 있을 거야. 물론 많이 아프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른의 자리가 힘든
거란다. 이해하겠니?”
(529)
나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아본 적은 없었다. 내
경험을 말로 표현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말한 어둠이 ‘죄’나
사악함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내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세상의 빛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오직 섹스만 그곳에 가닿을 수 있었다.
태곳적부터 내 안에 존재하는 곳, 문명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곳, 말이 가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우정으로도 불가능했다. 창의적 노력으로도, 경외와 기쁨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곳이었다. 내 안의 그 어둠은 오직 섹스를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그 어둡고 은밀한 공간에 도달하면 나는 마침내 나라는 인간의 기원에 내려섰다고 느꼈다.
(548)
“잘 들어요, 프랭크
그레코. 당신이 겁쟁이라면 그래요, 당신 말대로 그렇다고
쳐요. 그래도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내 고모 페그는
알코올 중독이에요. 고모는 술을 절제하지 못해요. 그래서
인생이 엉망진창 꼬였죠. 그게 무슨 뜻일까요? 아무 뜻도
없어요. 그렇다고 고모가 나쁜 사람일까요? 술을 조절하지
못한다고 실패한 사람일까요? 당연히 아니에요. 고모는 그저
그런 사람인 거예요. 어쩌다 알코올 중독이 된 것뿐이에요, 프랭크. 누구나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예요. 그 사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없어요. 빌리 삼촌은 약속을 밥 먹듯
어기고, 여자에게 충실하지 못해요. 그것 역시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에요. 빌리는 멋진 사람이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삼촌은
그저 그런 사람인 거예요. 그뿐이지 아무 뜻도 없어요. 그래도
우린 그를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