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만해라는 존재는 평화 그 자체이다. 평화는 단지 전쟁(싸움)의 부재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부질 없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때 달성되는 것이다. 만해의 시는 이러한 해탈이 사랑의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속박으로 달성된다는 아이러니를 제시하고 있다. 평화는 문명의 궁극적 목표이며 자연의 원상(元相)이다. 평화라는 가치가 없으면 진과 선과 미가 모두 불인(不仁)해진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부재하면 모험조차 불인해진다. 인류의 역사는 과정이며 노경(老境)이 없다. 끊임없는 청춘의 노래이다. 청춘의 꿈은 항상 비극의 결실을 수확하게 마련이다. 이 우주의 모험은 꿈과 더불어 시작하지만 항상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수확한다. 이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만해는 자유라고 부른다. 이 민족에게 자유는 해방을 의미하며 일본이라는 사악한 권력의 패망을 사실로서 전제한다.


(40-41)

논개나 이순신, 김시민, 김성일, 김천일, 최경회 같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 항쟁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또다시 일본놈들이 이 조선삼천리금수강산을 짓밟는 강도질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제2차 진주성대첩 때 성내에 있었던 6만 명의 국민들이 모두 목숨을 던졌던 것이다. 열흘 동안에 25번의 전투가 있었는데 24번을 이겼고 마지막 한 번만 졌다. 그때는 성내에 사람이 없었다. 처절한 전투였는데 결코 일본이 승리한 전투가 아니었다. 조선땅에 있던 왜군 10만이 집결하여 4만 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만 생각하면 치를 떨었고 다시는 진주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3백여 년 후에 일본의 식민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집필하고 있는 이 시점의 정권은 일본의 한국상륙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후회스러운 현실인가! 지금와서 동아시아에 나토 비슷한 집단군사동맹체제를 만든다면 화약고를 자처하는 꼴이 아닌가?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아무리 보수라 할지라도 국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전쟁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닌가!


(44)

민중들의 생활이 다 무너져 젊은이들은 삶을 설계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자식 낳을 꿈도 꾸지 못한다. 물가는 치솟고 세계적으로 모범적으로 의료체졔를 망가뜨려 사기업화시키려 하고, 이상(異常)적인 금융체제 속에서 투자가들은 불건강한 투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동산, 토목공사, 건설업이 모두 건강한 싸이클을 벗어나고 있다. 이에 기후위기가 가중되고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사회통합이나 공통체모랄이 붕괴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독자적으로 해결해나갈 힘이 있다. 만해의 시대로부터 오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진보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은 자력갱생(自力更生)의 자결권을 확보하여 왔다. 이제 와서 반일 종족주의를 반성하고 친일로 나아가자니! 이게 도무지 국가비젼을 만드는 자들이 할 말인가?


(69-70)

나의 정과 한은 님의 이마보다 낮고 무릎보다 얕은 것이다. 나의 손은 낮고, 나의 다리는 짧다. 이것이 인간조건이다. 정하늘에 오르고 한바다를 건너려면, 즉 정과 한을 완성하려면 단 하나의 해결책 밖에는 없다. 님에게 안기는 것이다. 조국의 승리를 믿고 그 품에 안기는 것이다. 배반, 변절 없이 조국의 정과 한을 나의 삶 속에서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정과 한을 통해 정과 한을 극복하는 그 아이러니의 교차점에 님이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인간의 정())과 한()이라는 현실조건을 통해 인간의 이상(理想)을 창출할 수 있는 애국애민의 길을 노래하고 있는 위대한 운문이라 할 것이다.


(79)

만해문학에 쎅씨한 느낌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아름다운 여인 선호 성향운운하는 것은 만해문학의 오묘한 질감을 천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는 것만큼 본다 하는 것이 정론일 것이다. 여기 중요한 것은 젊은 여자가 아니라, 길에는 우주론적 법칙과 인간론적 행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론적 법칙은 객관적인 질서가 나에 선행하지만, 인생론적 법칙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발자취라는 질서에 선행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행동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사전>이 말하는 성지자성야(成之者性也)” 이루어지가는 것이 본성이다라는 인간의 능동성과 책임성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이라는 것이다. 도덕이란 자연의 법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내재하는 것이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 갑니다.”


(83)

만해는 어쩌다 술이 들어 거나하게 취하면 흥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한다.

만일 내가 단두대에 나감으로 해서 나라가 독립된다면 추호도 주저하지 않겠다.”


(90)

여기서 극히 조심해야 할 또하나의 의미의 뉴전(紐轉, 트위스트)이 있다. “인간(人間)사람이라는 만해의 표현이 말해주듯이, 만해의 용례에 있어서 인간사람은 전혀 다른 뜻이다. 같은 말의 반복이 아니다. 지금 우리 현대어에 있어서는 인간(人間)”은 사람을 의미하므로 인간사람이 되면 사람사람”, 즉 동어반복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일본식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한학의 세계에서는 인간(人間)”은 어디까지나 사람사이라는 의미로만 쓰였다. 인간은 사람사이, 혹은 사람사이의 세상, 그러니까 인간은 “man”이 아니라 잭이“society”를 의미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용례가 <장자> 내편의 인간세(人間世)”라는 표현이다. 인간은 곧 인간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논어><맹자>에도 인간보편을 말할 때는 그냥 인()”이라고만 한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은 타인을 말하며 자기를 말할 때는 ()”라고 표현한다.


(114)

만해의 시가 연작시라는 것은 주체의 흐름의 구성이 매우 명료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님의 친묵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별을 이야기한 님의 주제는 이제 마지막에 님의 오심으로 귀결되고 있다. 오서요라는 시는 85번째로 실려 있는데, “오심의 당위성에 관하여 읊고 있다. 님의 오심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고, 그 마땅함을 가능케 한 것은 님을 기다려온 민중의 주체적 역량이라는 것이다. 만해는 이미 25년 전에 광복을 예견하고 독립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133)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의 인권선언을 모태로 한 법질서,

세계사 민주주의의 모범을 달려온

조선민중의 피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이

고작 요 따위 양아치정권일까요?

대통령이 사법 입법 질서를

뭉개뜨리고

매일밤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연산군의 폭정은 개인적 슬픔의 사연이라도

있었습니다.

오서요. 어서 오서요.

이제 엎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끝판입니다.

오늘 우리 민중의 요구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닙니다.

폭정에 대한 해명도 아닙니다.

이 사회의 리더십이 저열해지고

퇴락하고 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현 정권은 역사의 근원적 퇴행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167)

만해, 금강산 표훈사에서 안중근의사의 기대를 읊은 한시를 짓다.

<해주에 사는 안중근> : “일만석의 뜨거운 피와 열말의 큰 담력, 담금질 끝낸 서릿발 칼날 칼집속에 넣어두고, 벽력치는 의용 홀연히 밤의 적막을 깨드리니, 육혈포 탄환은 꽃처럼 날고 가을빛은 드높더라.”


(169)

장남 벽초 홍명희에게 남긴 <유서> :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나 조선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187)

만해,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가출옥(만기 2달 남기고 가출옥시킴은 지속적으로 경찰의 엄격한 감시를 하겠다는 가혹한 행정). 출감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호기있는 답 : “내가 옥중에서 느낀 것은 고통적으로 쾌락을 얻고, 지옥 속에서 천당을 구하라는 말이올시다. 내가 경전으로는 여러 번 그러한 말을 보았으나 실상 몸으로 당하기는 처음인데 다른 사람은 어떻하였는지 모르나 나는 그속에서도 쾌락으로 지냈습니다. 세상사람은 고통을 무서워하야 구차로이 피하고자 하기 때문에 비루한데 떨어지고 불미한 일들을 듣게 되나니 한번 엄숙한 인생관 아래에 고통의 칼날을 밟는 곳에 쾌락이 거기 있고, 지옥을 향하야 들어간 후에는 그곳을 천당으로 알 수 있으니 우리의 생각은 더욱 위대하고 더욱 고상하게 가지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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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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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김금희 님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책을 이야기해줄게. 김금희 님의 소설은 <경애의 마음>이라는 장편과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 <문상>이라는 소설이 아빠가 읽은 전부란다. <경애의 마음>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었는데, 그냥 그랬던 소설로 기억이 된단다. 그래서 그 다음에 자주 찾지 않은 것 같구나. 이번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되어 책소개를 읽어보니, 창경궁의 대온실에 깃든 역사가 담긴 소설이라고 들었어.

창경궁이라고 하면 일제 시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어. 일제가 우리의 신성한 궁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바꾸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란다. 이름도 창경원이라고 바꾸고 말이야. 해방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동물들을 과천으로 옮겨 서울대공원을 만들고,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을 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일제 시대 지어진 대온실은 그대로 두었다고 했어. 이번에 읽은 소설 제목의 대온실이 바로 창경궁에 있는 대온실이란다. 너희들이 어려서 생각이 안 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 창경궁 대온실에 가 본 적이 있단다. 인근 대학로에서 어린이 연극을 보고, 시간이 남아서 창경궁을 갔었거든너희들이 너무 어렸을 때라서 기억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이번에 김금희 님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은 사람들이 이 책을 들고 창경궁 대온실에 가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는데, 우리도 한번 가볼까? 이 책은 읽다 보면 실제 있었던 일인가? 착각할 수도 있는데 작가의 말을 통해 모두 허구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어. 소설가들은 대단하신 것 같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창경궁 대온실을 가도 그 곳에 있는 식물들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인데, 대온실을 보면서 그 곳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니까 말이야. 이번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이번에는 김금희 님의 다른 소설들에 관심을 두게 될 것 같았어. 누군가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책을 리스트에 넣게 될 것 같구나. , 그러면 책 이야기를 해줄게.

 

1.

소설의 시작은 석모도에서 시작한단다. 석모도는 강화도 옆에 있는 작은 섬인데, 아빠는 두 번 가 본 적이 있단다. 처음 갔을 때는 배 타고 갔는데, 두 번째 갔을 때는 다리가 생겨서 차를 타고 갔었단다. 그 석모도에서 석모도의 헤밍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강영두가 주인공이란다. 남자 이름 같기도 하지만 여자야.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은혜의 소개로 일자리를 얻어 건축사 사무소에 갔단다. 그 건축사 사무소에서 이번에 창경궁의 대온실을 보수작업하기로 했는데, 그 보수 작업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 달라고 했어. 정식 명칭은 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 담당자. 그런데 하필 다른 곳도 아니고 창경궁의 대온실이라니…. 영두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려면 그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영두는 네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강화도에서 아버지와 둘이 지냈단다. 살림도 넉넉하지 않았어.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인근의 중학교가 없어서 고민을 했는데, 외할머니가 자신의 친구 문자 할머니에게 영두의 거처를 부탁했고, 그렇게 영두는 강화도를 떠나 서울에 와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어. 외할머니가 소개해 준 문자 할머니는 창경궁 옆 원서동이라는 곳에서 낙원하숙을 운영하셨어. 그곳에서 지내면서 근처 중학교를 다니게 된 거야. 그 집에는 문자 할머니의 손녀 리사도 있었는데, 영두와 같은 학년이었어. 영두는 그렇게 서울살이를 시작했는데, 리사와는 그리 친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단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인연이라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이순신과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

그런데 학교에서 중간고사 시험지가 유출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어. 영두는 그것과 관련이 없는 일인데, 리사가 영두도 보았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로 인해 선생님한테 불려서 영두도 조사를 받았지만, 영두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단다. 하지만 이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다시 강화도로 왔단다. 일 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서울생활이었지만, 이렇게 안 좋은 기억이라서 창경궁 대온실 보수 작업에 참가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것이란다. 그래도 일단 하기로 했단다. 영두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영두는 강화도로 내려와서 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로 학과과정을 마쳤단다. 문자 할머니가 강화도까지 오셔서 영두를 설득했지만, 영두는 그냥 강화도에 남았어. 그 때가 문자 할머니와 마지막 만남이었어.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 영두가 스물 살 때,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그 이후 영두는 혼자 지냈단다.

 

2.

일을 맡고 건축사 사무소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다들 좋은 사람들 같았어. 영두도 창경군 대온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보고서 준비를 했단다. 창경궁의 대온실을 처음 만든 이는 일본의 건축학자 후쿠바 노보루로 이 책에서 나오는데, 이 부분은 실제 인물인줄 알았단다. 그런데 책 뒤편에 나오는 일러두기를 읽어보니, 창경궁의 대온실의 총책임자는 후쿠바 하야토라는 사람으로, 소설 속의 후쿠바 노보루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단다. 이 소설은 창경궁의 대온실을 뺀 나머지 부분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실제로 최근에 창경궁의 대온실 보수 작업이 있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는데, 그것도 소설 속 허구란다.

암튼영두는 옛 설계도면을 보다가 대온실의 지하에 배양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이번 보수 때 이곳 지하까지 복원을 해야 하지 않냐고 의견을 내고, 담당공무원과 의견이 분분하여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 이번 복원의 책임자인 건축사 사무소장 빼자고 하여 일단락되었단다. 하지만 영두뿐만 아니라 다른 건축사 사무소 직원들은 문화재 보수를 하면서 원래 있는 곳을 보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

창경궁이 창경원이던 시절 식물원뿐만 아니라 동물원도 있었는데, 일제 시대 말기, 동물들 먹이를 줄 형편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워지자, 일제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대규모 학살하는 만행을 일으켰단다. 그 때 동물의 시신을 대온실 지하에 숨겼다는 소문도 있었어. 다시 찾은 창경궁그리고 자신이 지냈던 낙원하숙의 자리에 가보니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 있었어. 몇 년 전 문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줄곧 빈집이었던 거야. 명의는 리사로 되어 있는데, 리사는 미국에 살고 있었어. 영두는 빈 낙원하숙 집에 다시 갔다가 문자 할머니가 남긴 글들을 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글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을, 그러니까 문자 할머니의 인생을 다시 알게 되었단다. 문자 할머니가 일본인이었다고 이야기가 있는데, 그 글을 읽어보니 실제로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인 할머니가 어쩌다 한국땅에서 지내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단다.

 

3.

일제 시대 창경궁 관리 공무원 박목주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였는데, 그 일본인 아내는 재혼이었고 이미 딸 마리코가 있었어. 박목주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이후 아들 유마를 낳았단다. 그러니까 마리코와 유마는 엄마는 같은데, 아버지는 다른 남매였단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모두 일본으로 돌아가야 해서 일본인 엄마는 일본으로 돌아갔어.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갔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단다. 마리코와 유마는 한국인 아버지 박목주가 있으니 한국에서 지내는데 문제 없었단다.

이제부터 마리코는 박진리, 유마는 박유진이라는 한글 이름으로 생활했어. 하지만, 마리코는 아버지도 일본인, 어머니도 일본인으로 순수 일본인이었단다. 마리코의 엄마도 다시 한국에 못 온 이유 중에는 한국전쟁도 있었을 거야. 해방이 된지 얼마 안되어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에 있던 박목주는 피난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창충이라는 동료가 있었는데, 그가 황실 심부름이라면서 박목주에게 일을 시켰어. 피난준비를 하던 박목주는 아이들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대온실 지하 배양실에 잠시 머무르게 했어. 이틀이면 갔다 올 것 같다고 생각하여 안전을 위해 자물쇠를 잠그고 갔어. 진리와 유진은 지하 배양실에서 둘이 숨어 있었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데 약속했던 이틀이 지났지만 아버지 박목주는 오지 않았어. 진리는 자신들을 두고 혼자 피난을 갔나? 이런 생각까지 했어. 진리와 유진이 지하에 머무르고 있다가 유진이 열병이 나서 심하게 앓아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없다고 생각했어. 진리는 창문을 깨어 문을 열고 무작정 달렸어. 밖은 어두운 밤이었어. 간신히 약방을 찾아 약을 사서 다시 돌아오다가 절룩거리며 오는 아버지 박목주를 만났어. 다리를 다쳐서 늦었다고 했어. 그런데 이창충이 갑자기 나타나 박목주를 쏴 죽였단다. 이창충은 진리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고, 진리는 무서워서 지하실로 돌아왔단다. 하지만 동생 유진은 끝내 숨을 거뒀어. 그순간 그곳에 이창충이 찾아왔고, 진리에게 못된 짓을 하려고 했고, 진리는 숨겨두었던 주사기로 이창충의 눈을 공격하고 도망갔단다. 그런 아픔을 가진 진리가 바로 낙원하숙의 문자 할머니였던 것이란다. 그렇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던 거였구나.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박유진이 인천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을 알게 되었어. 문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영두는 인천요양원을 찾아가 박유진을 만났단다. 진리는 유진이 죽은 줄 알았지만, 사실 죽지 않았어. 그리고 진리에게 공격 당한 이창충이 박유진을 데리고 나와서 치료해주었다고 했어. 그 이후에도 이창충은 박유진을 보살펴주어 박유진은 이창충을 자신의 은인이라고 생각했어. 이창충이 뒤늦게 죄를 뉘우친 것일까. 영두는 박유진에게 문자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이창충이 한 나쁜 짓은 이야기하지 않았어

….

여기까지 굵직한 줄기의 줄거리란다. 그 밖에 영두와 은혜 사이의 우정 이야기, 영두와 건축사 사무소 사람들의 보수 작업 이야기, 어른이 된 이후 다시 만난 영두와 순신 이야기, 어른이 된 이후 다시 만난 영두와 리사 이야기 등도 담겨 있단다. 김금희 님은 이번 소설로 다시 보게 되었단다. 글에 흡입력도 있고, 짤 짜여진 틀 안에서 이야기 전개로 자연스러웠어. 다른 작품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너희들도 바쁘지 않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텐데이 책을 읽고 나니, 창경궁에도 또 한번 가보고 싶구나. 가 본 적도 오래되었으니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처음에 배운 건 수리의 종류에 관한 용어들이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잎을 다 떨구고 가지를 층층이 올려 나무로서 강건함을 띠는 벚나무를 올려다보다가 기쁘게 뒤돌아 다시 섬으로 향했다.



필요한 내용을 찾았는지 한동안 집중해서 읽던 산아가 사전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오늘 면접에서 받아 온 옛날 건축에 관한 사전이라 설명하고 몇몇 용어를 알려두었다. 중수는 손질하여 고치는 것, 중창은 다시 짓는 것, 재건은 크게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고. 한옥에서 문은 창살무늬에 따라 이름이 다 달라서, 세로살을 꽉 채우고 가로살을 위아래와 중간에만 넣은 건 세살문, 가로살과 세로살을 다 채운 문은 만살문, 문 중간에 빛이 들어갈 수 있도록 사각형이나 팔각형으로 작은 창을 낸 문은 불발기문, ‘完’자 형태로 살을 짠 문은 완자문, ‘亞’자 무늬가 있으면 아자문이라 한다고. - P18

학생 수가 많아서 그런지 교실은 마치 퍼즐판처럼 세밀한 경계로 각자 나뉘어 있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서른명도 되지 않는 석모도에서 그물처럼 성글었던 구분들이 여기서는 한층 촘촘해졌다. 어디 사는지, 출신 초등학교가 어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가 너무 중요한 기준이었다. 내 하굣길을 누가 볼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였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 학원 승합차를 타고 일시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 P84

그러자 당연한 수순처럼 순신이 수난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순신에게 손바닥을 펼쳐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얼음조각이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그러면 어떻겠어? 하고 물었다. 순신은 아주 시원할 것 같다고 해서 내 김을 빼놓았다. 나는 지금이 겨울이라 생각해보라고 다시 조건을 달았다. 이제 더 이상 매미도 울지 않고 나뭇잎도 일렁이지 않는다고, 길이 얼어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옷 밖으로 몸을 내놓으면 아플 정도로 바람이 차고. 그런 겨울에 손바닥에 얼음이 있으면 손이 얼겠지, 아프고 따갑고 시렵겠지, 그런데 얼음을 내던질 수는 없고 가만히 녹여야만 한다고 생각해봐.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험난하게 느껴지겠지. 그런 게 수난이고 그럴 때 하는 게 기도야. - P158

우리는 방을 나와 서로의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은 체 인사하고 퇴근했다. 나는 차창을 열어놓고 속력을 내어 섬으로 돌아갔다. 얼른 가서 무화과나무가 있는 마당을 지켜보며 마루에 누워 섬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작 마을에서는 파도가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물결치는 소리만이 섬 소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배를 타고 나갔다 빈 배로 돌아온 사람들의 불평 소리, 어느 집에서인가 쓰레기를 쌓아놓고 타닥타닥 태우는 소리, 밥을 짓거나 부엌에서 그릇을, 외할머니가 ‘설음질’이라고 부르던 것과 똑같이 설렁설렁 닦는 소리, 말린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들의 착지, 마을 노인정에서 들려오는 노래방 소리, 소라껍데기에 귀를 가져다대고 그 안에서 바닷소리를 발견해내듯 그런 섬의 소리를 변별하다보면 다시 평정이 찾아올 것이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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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아버지, ……아버지, 제발, 제발 내려오지 마세요. 만나서 당하는 비극보다 만나지 않고 그냥 그리워하며 사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북에서는 왜 자꾸 사람들을 내려보내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선가요? 그건 남쪽을 너무 모르고 하는 일입니다. 6.25를 겪고 난 남쪽 사람들은 공산당이나 사회주의를 너무 무서워하고 싫어합니다. 나라에서 감시하고 처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6.25를 통해 북쪽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며 공산당을 싫어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 사람들을 내려보내 무슨 효과를 보지는 겁니까. 여기 있는 가족들만 더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95)

정치란 마술 같은 면이 있고, 특히 기회 포착이 중대합니다. 국민이나 대중들은 순진한 관객이구요. 마술사가 연달아 실수하면 관객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특별법을 지연시킨 건 분명 잘못이고, 그걸 당장 만들 수는 없고, 국민들 마음은 급하고, 그렇게라도 임시방편을 하지 않으면 정말 수습할 수 없는 큰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한 의원님이나 저나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서 따낸 당선인데, 일도 못 해보고 밀려날 수야 없는 일 아닙니까/”

 

(189)

이규백은 핏빛 낭자한 동백꽃들을 바라보았다.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꽃. 그래서 저리도 선연한 핏빛으로 곱고, 처연한 느낌으로 아름다운지도 몰랐다. 바람결에는 아직 찬 기운이 서려 있는데도 동백꽃들은 어느 꽃보다도 먼저 서둘러 피어나고 있었다. 겨울 내내 푸르렀던 잎들은 봄기운을 타고 한결 싱싱한 초록빛으로 돋아오르고, 그 초록색에 떠받쳐 동백꽃 송이송이는 더욱 붉고 선명했다.

동백꽃은 색깔이 붉되 야하지 않고 정갈했고, 꽃송이가 크되 허술하지 않고 단아했으며, 시들어 떨어지되 변색하지 않고 우아했다. 그러나 동백꽃의 절정의 아름다움은 낙화에 있었다. 꽃이 지되 벚꽃처럼 꽃잎이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꽃송이 그대로 무슨 슬픔이나 서러움의 덩어리인 양 뚝뚝 떨어져내렸다. 변색하지 않고 떨어진 그 꽃송이들은 또 땅 위에다 새로운 꽃밭을 현란하게 이루어놓았다. 사무친 한을 풀 듯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두 번 피어나는 꽃이었다.

 

(222)

비상계엄이 선포된 상태에서 혁명군사위원회에서는 정권 인수와 국회 해산을 선언함과 아울러 장면 내각 장차관 전원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주한미국 대리대사와 미8군 사령관은 불법적인 쿠데타를 부인하고 장면 정권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윤보선 대통령은 쿠데타 지지를 표명하고, 쌀값은 당일로 치솟아 혁명위에서는 매점매석하는 미곡상들을 극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발동하고, 장면 총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그 행방이 묘연하고, 혁명위에서는 서울시내 각 경찰서장들을 중위 대위로 임명하고, 검열을 당한 신문들은 부분부분 먹통이 된 채 찍혀 나오고, 혁명 수행상 필요 시에는 체포, 구금, 수색을 영장 없이 집행한다는 포고령이 잇따르고 있었다.

 

(314-315)

그건 당연히 박수를 받을 만큼 잘한 일이오. 조직폭력을 일삼아 시민생활을 불안하게 한 깡패들을 소탕애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국민의 기본의무를 기피해 개인의 이득만 추구한 파렴치한 자들을 색출해내 국가의 기강을 바로세우는 건 백 번 잘한 일이오. 그런데 그런 겉에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 국민들이, 아니 이성적인 대학생들이 쿠데타정권의 부당성까지 망각하게 된다면 그건 큰 문제요, 무슨 말인고 하면, 지금 군인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 그 저변에는 불법으로 정권을 탈취한 부당함을 하루빨리 정당화시키기 위해 자기네 능력을 과시하고 민심을 회유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그거요. 그들이 참으로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그런 중요한 일들을 빨리 끝내고 군인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하고, 그땐 온 국민이 박수를 치고, 박정희에게는 중장 진급이 아니라 국민의 이름으로 별 다섯, 원수를 달아줘도 아까울 것 없소. 허나, 지금은 감시의 시기요.”

 

(315-316)

하 이거. 우리 아가씨가 본격적으로 나오시네.” 원병균은 싱긋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지금 그건 아무도 예측하거나 속단할 수 없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혁명공약이란 것에 밝히기는 했지만 그걸 전적으로 믿는 건 바보 중에 상바보요. 그건 모세가 받은 십계명이 아니라 자기들의 정치 목적을 위해 내세운 구호니까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요. 다시 말하면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이미 쿠데타를 모의할 때부터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들이었고, 정치란 거짓말 올림픽이고 정치인들이란 거짓말 선들이라 그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시해야 할 것은 미국 태도요. 쿠데타정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현재의 미국 태도를 보고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호하려 한다고 믿는다면 그건 혁명공약을 믿는 것보다 더 바보요. 미국이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자기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허울뿐이고, 그들이 진짜노리는 것은 자기네들 말 고분고분 잘 듣는 기생 같고 하인 같은 정권인 거죠. 미국이 날벼락 맞듯 한국에서 쿠데타를 당했고, 그 불쾌감과 불안감 속에서 지금 쿠데타정권을 겁 먹이고 어르기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참이오. 그러다가 어느 때 서로 짝짜꿍이 되면 미국은 민주주의고 정권이양이고 싹 감추고 딴전 피울 거요. 미국 정치인들은 한국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고수의 금메달 감들이니까. 현재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약소국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뭔지 알겠소? 그 나라 지배자들이 모두 미국의 말을 굽실굽실 잘 듣는 반민주적 독재자들이라는 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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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찌하여 이 땅의 권력을 쥔 자들이

또 다시 일본에게

이 땅을 팔아먹고

일본의 이익에

우리 삶을 예속시키며

일본의 군대가

이 땅에 상륙하는 것을

도우려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영원한 죽음의 사자들입니다.

 

(8)

여러분! 친일파들을 물리칩시다.

현해탄 건너 그들의

고향으로 보냅시다.

밀정들을 동해 건너

그들의 조국으로 보냅시다.

 

(35-36)

명진스님의 사자후

도대체 만해가 없었다면 이천 년의 호국불교를 자랑하는 한국 불교계가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듭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나라를 잃은 놈이 나라를 되찾는 데 헌신하지 않고 존재의 도덕성을 운운할 수 있냐 말이오. 민족의 해방 없이 어떻게 종교적 해탈을 운운할 수 있냐 말이오. 고귀한 종교적 경지? 다 헛말입니다. 불교계뿐 아니라 내외 전체를 통틀어 만해 스님만큼 뚜렷하게 항일운동을 한 사람이 없었어요. 천도교이건, 기독교이건, 유교의 선비이든 만해처럼 변절 않고 고고한 지조를 지킨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만해 덕분에, 체면치레라도 하고 사는 조계종 사람들이 만해를 존경하질 않았습니다. 시궁창에 내버려 두었어요. 만해를 역사의 잿더미 속에 덮으려고만 했어요.

그 와중에도 만해를 발굴한 것은 문학하는 사람들이었죠. 만해의 문학적 향기가 너무도 날카롭고 치열했기 때문에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겁니다. 만해는 일반인들에게 위대한 독립운동가니 심오한 종교적 사상가로서라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탁월한 시인으로서 접근이 되었던 것이죠.

 

(67)

나는 개인적으로 김수영의 시의 세계를 사랑하고, 그 인간됨을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후학이지만, 김수영이 조지훈보다 더 진보적이라든가, 조지훈이 김수영보다 더 보수적인 삶의 자세를 취했다는 것은 도무지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수영과 지운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지훈이 한 살 먼저 태어났고, 두 사람은 모두 같은 시점에 비명에 갔다) 지훈이야말로 역사의 굽이마다 정확한 행적을 남겼다. 지훈은 지조를 목숨보다 아끼는 선비였고 수영은 자유롭기에 좀 퇴폐적인 성향을 가진 도시인이었다.

 

(130-131)

이 몇 권 안되는 시집의 출현은 모두가 그 나름대로 한국근대시의 정체성과 조선의 근대적 시형(詩形)을 창안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각기 자기위상이 있다. 그러나 <님의 침묵>의 출현은, 김춘식의 평가대로 초창기 시문학의 전개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도약에 해당할 만큼의 파격적인 성취라고 평가되고 있다. 나는 차라리 1920년대 초반에 출현한 시집들과의 비교를 절()하는 독보적 가치와 형식과 주제의식을 유()하고 있으면서도 또 동시에 초창기 시유형의 모든 가능성과 연속성을 보유하는 특이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겠다. <님의 침묵>이야말로 조선인의 내면에 흐르는 시정(詩情)의 자연적 유로(流露)인 동시에 근대시의 독창적 아키타입을 형성하는 형이상학적 세계라는 좀 특이한 평어를 여기 남겨놓겠다. 1920년대의 어떠한 시들과도 <님의 침묵>은 비교될 수가 없다. <님의 침묵>은 너무도 심오하기 때문이다. “이라는 추상적 주제를 원융한 척수(脊髓)로 하면서 거기서 뻗어나가는 88개의 신경조식은 수억만 개의 뉴론세포의 화장(華藏)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 화장세계의 케미스트리는 범용의 지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154-155)

이 모든 논의를 리얼하고 신실하게 만드는 것은 만해의 삶의 지조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혁명에 투신하였고, 지고의 선의 경지를 증득하였고, 시인으로서 고매한 언어를 구사하였다 하더라도 단 한 번의 변절, 배신의 족적만 남겨도 위에 그린 삼각형들은 다 부서져 버린다. 멀리 산속으로 도망가 숨어 살면서 절개를 지키는 것은 혹 가할지 모르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조선총독부를 등지고 살면서 호통을 치면서 당당한 지조와 타협 없는 절대를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생과 사를 초월한 사람이 아니면 그 경지를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지훈은 만해의 절개가 그의 삶의 업적을 빛내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암흑 속에서 빛나는 유일한 진주임을 확인한다.

 

(158)

우리는 만해를 통해서 비로소, <독립 선언서>를 짓고도 자기 이름을 명단에서 빼달라고 비굴하게 요청한 육당이나, 창씨개명에 앞장서서 본인의 이름을 카야마 미쯔로오로 바꾸고, 황민화 운동, 대동아공영권을 지지하며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본군으로 나아가 싸울 것을 독려한 춘원이아, 타쯔시로 시즈오로 이름을 바꾸고 카미카제 같은 전쟁범죄를 찬양하며 조선청년들의 전쟁참여를 독려한 미당 서정주(1915~2000) 등등의 민족지도자들의 삶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만해의 시가 오늘까지 살아있지 아니하면, 일본 식민지강점시대의 암울한 저류를 흐르던 우리민족의 정의감이 그 좌표를 잃고 증발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176)

그러나 <서상기>에서는 최초의 무산지몽(巫山之夢)에 관한 기술에 있어서도 남자중심의 기술이 아니라 여자의 주체적인 선택을 나타내고 있다. 여자는 더 이상 남자에게 따멕히는존재가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보다 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이다. 앵앵은 여러가지 방편을 통해 장생을 시험한다. 그의 상사병이 진실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위태로운 증세임을 확인하고 스스로 이불과 베개를 먼저 보내고 장생이 누워있는 서상(西廂, 큰 건물의 서쪽 회랑)으로 나아간다. 앵앵의 모습은 연약하지만 모든 것을 비우는 듯한 극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 자태는 곡패 원화령(元和令)”의 운을 밟는 시로써 표현되고 있다.

 

(206-207)

20세기 일제강점이라는 사건은 메이지시대의 권력다툼의 분규 속에서 태동한 사쯔마 계열의 정한론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결국 알고보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망상이 재현일 수도 있다. 그 망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퇴각하는 일본함대를 남김없이 섬멸하기 위하여 이순신은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이 땅에서 최후 일 척까지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임란의 의병의 활약 중에서 가장 용맹스럽고 전투력이 출중한 부대가 승병조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님들은 철학이 있었고 호국불교의 사명이 있었고, 무술에 능한 자가 많았고, 조직적 전투력이 있었다. 명령계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기네 불교와는 달리 대처가 아닌 비구의 순결한 전통을 지니고 있어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역()이 말하는 바, 이간(易簡)스러웠다는 것이다. 일본침략자들에게 승병은 공포였다.

 

(236-237)

조선불료유신의 개혁을 꿈꼬고, 또 개혁의 실현을 위하여 8만대장경을 재편집하는 웅장한 작업을 하였어도 그것은 문자의 장난이었지, 자기가 추구하던 진정한 존재의 자유에 도달하지 못했다. 존재의 자유는 생활의 자유로 표현되지만, 생활의 자유는 내면의 정신적 자유가 달성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신적 자유는 스스로를 속박한 자박(自縛)의 상태로부터 자기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해방의 소리를 해풍 속에 쓸려가 떨어지는 잡물의 추락성 속에서 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객수(客愁)의 어설픈 고뇌가 사라지고 나 만해는 삼천계를 향하여 할파하노라! 백설(白雪)과 도화(桃花)의 편편은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우주의 실상일 때는 시공의 분별심을 초월하는 것이다. 복사꽃의 붉음이 흩날리는 백설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야말로 객수(客愁)가 사라진 고향의 모습이리라. 그것은 존재의 자유인 동시에 기나긴 방황을 거친 자기 삶의 족적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298-299)

조선왕조 전체를 개관할 때, 한글이 언문이라 하여 비하된 듯하나 그 실용적 가치는 꾸준히 증가되었으며, 세종의 창제동기를 충분히 실현되어 갔다고 볼 수가 있다.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여과없이 글에 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단지 방대한 한글자료들이 방치된 채 연구되고 있지 아니한 것이 현금의 정황이다. 백성이 권력기관에 항의하는 괘서들이 한글로 쓰인 예가 많았다 하고, 특히 임진왜란 이후로 한글의 사용은 급증하였다고 한다. 왜놈들이 읽지 못하는 암호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광해군 이후로 왕후들이 청정(聽政)이 많았던 까닭에, 한글정치라고 말할 정도로 국정문서에 한글이 많이 등장하였다. (김일근 <언간(諺簡)의 연구(硏究)>, 건국대학교출판부, p.330)

 

(317)

님은 갔습니다. ~~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이 첫 구절을 읽고 더욱이 1925년 만해가 이 시를 쓰던 시점에서 읽고, 3.1만세혁명을 떠올리지 아니하는 자는 천치바보이거나 위선자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거부하며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만을 여기다 덧붙이면서 순수문학을 운운하는 자도 무뎌빠진 감상론자, 아니면 뉴라이트의 근대화론의 정당화를 위해 애쓰는 자들의 도피처가 될 것이다. 물론 만해의 시가 위대하고 옹혼한 까닭은 개인의 사랑의 테마와 조국의 운명 혹은 코스믹한 해탈의 테마가 항상 병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님은 갔습니다의 최초의 인상이나 최종적 의미는 역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환상이 불러일으킨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민족의 독립이 가능하리라 믿고 목 터져라 만세를 불렀던 민중적 좌절감의 절규가 아니 될 수 없는 것이다. 님은 갔습니다. ~ ~ 사랑하는 나의 조국은 사라졌습니다.

 

(347)

그러나 타고르는 시종일관 거리를 두었다. 간디의 아이디어를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하다고 생각했고, 영국으로부터의 인도의 독립만이 장땡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독립보다 인도인의 정신적 개화가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간디를 독립이 곧 인도인의 정신적 해방을 가져오는 첩경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의 과정에서 인도인들은 근대적 가치를 배우고 구현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타고르는 인도인의 기질에 배어있는 선민주의나 비합리성, 신비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고, 아직도 서구에서 배울 것이 많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357)

타고르는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벵골의 구석에서 자라난 그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와 언어와 정감을 알 리가 만무하다. 그러한 타고르에게 민족의 구원을 기대는 예언자적 시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타고르는 근원적으로 픽션이다. 그가 쓴 등불시는 타고르와 간디의 사상적 대결을 연상시킨다. 타고르는 모르는 상대로부터 시를 부탁 받았기 때문에 최대한 소극적으로, 최대한 부딪힘 없이, 최대한 안전빵의 시를 쓴 것이다. 그러한 허구가 조선역사 정취의 1세기를 장악하였다면 우리의 한 세기 그 자체가 허구가 아니겠는가? 내 말이 너무도 혹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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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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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오랜만에 역사책을 이야기해줄게. 정통역사는 아니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면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란다. 조형근 님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라는 책인데, 책 제목은 이 책에 실린 18편의 이야기 중에 한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해.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요일 오전에 방영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도 있었어. 그래서 찾아보니 어떤 이야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된 내용이 있더구나.

책 제목에 나오는 콰이강의 다리는 어디에 있는 다리인지 몰랐지만, 오래 전 유명한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떠오르게 했단다. 이 영화는 유명해서 아빠도 제목은 알고 있지만, 워낙 오래된 영화이다 보니 아빠도 보진 못했단다. 그 다리에 어디에 있는 다리인지도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단다.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철도에 있는 다리인데 태국에 있다고 하더구나.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내용도 이 책을 통해서 조금 알게 되었는데, 콰이강의 다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잡혀온 영국군 포로들이 건설한 다리이고, 일본군 장교와 포로로 잡혀온 영국군 장교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다리에 조선인이 있었다고?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부역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으니 콰이강의 다리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 것 같구나. 다만, 노동자로 있는 것이 아니고 포로감시원으로 있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이야기해주려고 했어.

아빠가 작년에 읽은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에서도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단다. 일본군 밑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고 전범자로 분류되어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들이 많다는 내용도 기억나는구나. 이것이 올바른 재판인가에 대해 생각했었지. 이 책에서도 그런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어. 강제로 끌려오긴 했지만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임 몇몇은 인간적으로 대해준 사람들도 있지만, 포로들을 학대하는 등 비인간적으로 다루기도 했대. 이런 경우 그들을 전범자로 분류하는 것이 맞는가. 만약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런 짓을 했겠는가. 아빠 생각에 그들이 전범자로 교수형까지 당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단다.

 

1.

이 책에 실린 18가지 이야기 중에 조선인 포로감시원 이야기처럼 예전에 다른 책들을 통해서 알고 있던 이야기들고 있었고, 처음 알게 된 이야기도 있었단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이야기는 리샹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란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만주 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만들었어. 만주국은 1932년에 세워져 1945년에 사라진 나라로 아주 짧은 역사를 가졌구나. 이런 만주국의 최고의 스타로 알려진 리샹란이라는 배우 겸 가수가 있었단다. 당시 사진이 실렸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서구적인 미모를 가진 사람이었어. 만주국에서 만든 영화에 많이 출연하였는데, 주로 일본의 부역 영화였다고 하는구나. 가수로도 활약했는데, 등려군의 노래로 잘 알려진 <아래향>이라는 노래의 원곡도 이 사람이 불렀다고 하는구나. 리샹란의 신분이 철저히 숨겨져 있어서 중국, 일본,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리샹란의 부모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대.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 리샹란의 부모가 일본 사람이고 본명은 야마구치 요시코라는 것이 밝혀졌어. 일본이 처음부터 리샹란을 선정용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했어. 리샹란은 중국에서 추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대. 일본에 와서는 영화배우로 계속 활동하여 미국에서도 영화를 찍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는 참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서 활동을 했대.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활동하였지만, 정부의 입장에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단체 입장에서 기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비난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하지만 2014년 그가 죽고 나서 일본 정부 위안부에 대해 쓴 야마구치 요시코의 글도 삭제되었다는구나. 일본 정부는 못 말릴 사람들이구나.

올림픽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딴 사람은 손기정이라는 분이란다. 일제 시대에 참가하여 어쩔 수 없이 일장기를 달고 달렸지만, 그의 금메달 소식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었단다. 그리고 함께 달린 남승룡이라는 분도 동메달을 따서 기쁨은 두 배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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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방송은 끊겨도 신문은 쉬지 않았다. 베를린과 계속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손기정이 1위로 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 왔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새벽 1시께 다시 광화문에 사람이 모였다. 점점 더 많은 인파가 운집했다. 마침내 새벽 2시께, 동아일보 사옥 2층 창으로 여자 아나운서가 나타났다. “손기정 선수가 일착으로 골인해 우승했습니다.” 사람들은 잠시 멍했다. 이윽고 펄펄 뛰며 소리를 질렀다. “만세, 만세, 손기정 군 만세!” 잠시 후 제2보가 전해졌다. “다시 베를린에서 온 소식입니다. 손기정 군이 2시간 29 12초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였고 남승룡 군도 3위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손기정 만세”, “남승룡 만세소리를 질렀다. 함성은 어느새 조선 만세로 바뀌고 있었다. 온 조선이 함께 환호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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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올림픽이 하필 베를린이었구나. 히틀러의 나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던 그 베를린. 올림픽을 마치고 독일에서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사람이 올림픽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는데 손기정도 그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다는구나. 손기정을 더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친 나치이자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대. 전쟁이 끝나고 레니 리펜슈팔은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을 기록하는 등 다큐멘터리의 거장으로 거듭나지만, 나치 연루자의 꼬리표는 계속 달고 다녔단다. 레니는 자신은 그것에 대해 변명처럼 이야기하기를, 당시 자신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대. 너무 하기 쉬운 변명이 아닌가 싶구나. 레니 리펜슈팔과 달리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독일출신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고 하는구나.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 나치에 맞섰다고 하는구나.

레니 리펜슈탈처럼 처음부터 나치 연루자인 것이 알려진 사람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나치 친위대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이들도 있었대.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양철북>이라는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라는 사람이야.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난 몇 년 뒤 자신이 나치 친위대였다며 양심 선언을 했다고 했어. 그 전에 나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그였고, 노벨문학상까지 받고 침묵했던 그가 뒤늦게 양심선언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도 일었다고 하는구나. 양심 선언의 용기보다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컸다는구나.

….

너희들도 본,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 그 영화가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였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란다. 영화 속 히로인 마리아가 쓴 책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실제보다 마리아가 너무 미화되었다고 하는구나. 폰 트랍 대령으로 나온 아이들의 아버지는 실제로 아이들에게 무척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다고 했고, 마리아가 자신들의 집에 오기 전에 이미 악기들을 연주하고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 영화가 오히려 그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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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275)

아카테는 뮤지컬을 보고 울었다. 다른 가족들도 속상해했다. 무대에 오른 냉정한 남자는 아빠가 아니었다. 뮤지컬과 영화는 아름다웠지만 진실은 아니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마리아는 가족 이야기의 판권을 9000달러라는 헐값에 독일 영화사에 팔았고, 영화사는 다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제작사에 판권을 팔았다. 그리고 영화로 이어졌다. 가족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통제할 수 없게 됐고, 기억을 빼앗긴 느낌이었다고 90세가 다 된 아가테는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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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화를 바탕으로 두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너희들과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다행히 너희들은 몰랐다고 해서 아빠의 말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이 책에 실린 몇 가지 야이기를 해주었는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책에서 봐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단다. 하지만 내용들이 재미있어서 너희들에게도 추천하고 싶구나. 바빠서 책 읽은 시간들이 없긴 하지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23 3 28,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세상을 떠났다.

책의 끝 문장: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리샹란(1920~2014)은 만주국을 대표하는 스타였다. 영화배우와 가수로서 만주국을 넘어 중국과 조선,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각지에 명성을 떨쳤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사이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여성 스타라면 조선의 최승희와 만주국의 리샹란을 꼽게 된다. 최승희 후원회에는 여운형과 마해송, 후일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유명인들도 속해 있었지만, 그래봐야 이들은 권력 없는 문인이었다. 그에 비해 리샹란의 후원자들은 만주국의 실세들이었다. 그녀를 키운 건 일본 제국주의였다. 마치 푸이가 그랬던 것처럼. - P20

역사적 책임에 관한 오랜 고민들이 깃털처럼 가벼운 그 말들 속에서 증발했다. 리샹란, 아니 야마구치 요시코와 그의 동료들은 "아무리 사과해도 아물 수 없는 편법을 추진했다고 비판받았다. 지금은 한국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며 손을 젓고 있다. (역사의) 전진이나 후퇴와 같은 거칠고 자의적인 표현은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써야만 한다.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 P31

<나비부인>은 예술의 이름을 빌려 동양 여성에 대한 서양 남성의 성적 환상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탈리아 사람 푸치니가 어쩌다 미국 장교와 일본 여성 사이의 사랑을 오페라 소재로 삼게 됐을까? 전기에 따르면 코벤트가든에서 <토스카> 초연을 보기 위해 런던에 머물던 1900년 6월 무렵, <나비부인, 일본의 비극>이라는 단막극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미국 해군 장교가 일본에 파견 나와 게이샤를 아내로 두고 자식까지 낳지만, 곧 ‘진짜’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영어가 짧은 푸치니였지만 바로 이 이야기다 싶을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던 모양이다. 푸치만 그랬던 게 아니다. "당시 서양 세계는 이 이야기에 미친 듯 열광했다." - P133

베트남전쟁은 20세기의 가장 부도덕한 전쟁 중 하나였다. 크리스처럼 잠시 베트남에 온 미국의 시각으로는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베트남전쟁은 30여 년에 걸친 두 차례의 인도차이나전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만 그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오늘날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군이 진주한다. 나치의 괴뢰 비시프랑스 정부의 지시를 받은 프랑스군은 전투에 없이 일본군의 온순한 포로가 됐다. 종전 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베트남 남부에는 영국군이, 북부에는 중국군이 진주한다. 영국군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한 다음 프랑스군에게 다시 무기를 쥐여준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지배하겠다고 선언한다. - P141

2012년 3월 29일,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50년 경과를 기념하는 연설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이렇게 전쟁을 미화했다. "베트남전쟁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피부색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지닌 채, 매우 힘겨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함께 의무를 다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온 나라 구석구석에서 사랑하는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따뜻한 가족의 품을 떠나야 했던 미국인들의 이야기다." 권투 영웅 무하마드 알리처럼 부도덕한 전쟁에 끌려가길 거부하며 감옥행을 택했던 수많은 이들, 반전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미국인 대중의 분노를 생략하는 화법이다. 미군의 총칼에 죽은 베트남인에 대해 침묵하는 화법이다. - P144

님 웨일즈와의 인터뷰 말미에 장지락은 강경하기만 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이 아닐까? …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신념과 오류를 지닌 채 행복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어라. 근본적인 질문으로 타인의 영혼을 괴롭히지 말라."
적과의 싸움에 목숨 건 혁명가들이 동지가 밀정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의혹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렸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한 독립혁명의 길에서 증오가 자랐다. 미움이 서로를, 스스로를 파괴하기 일수였다. 사방이 캄캄한데 어쨌든 나아가야 했다. 싸우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반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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