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데이터의 진정한 위력은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수준을 넘어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추동한다는 데 있다. 데이터가 이렇게 많고 평등하게 공개되는 세상이니 점점 정보에 대한 허세, 즉
‘내가 다 알아’라는 으스댐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는 강요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 수석합격자가 아무리 ‘예습 복습만 잘하면 누구나 서울대 갈
수 있다’고 겸손하게 말해도 데이터와 통계는 이미 우리에게 서울 강남구 출신의 서울대생이 강북구 출신의 21배에 이른다는 냉정한 현실을 말해준다.
(87)
그래서 데이터가 필요하다. 내 말을 믿지 않는 상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데이터는 필요하고, 내 감이 타당한지 검증하기 위해서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회사에는 ‘발설자 책임주의’라는
게 있기 때문에, 매출 올릴 방안을 마련하라고 회의할 때 누구라도 입을 열면 그 사람이 사업 주체가
되곤 한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가 데이터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면? 만에
하나 말한 대로 되지 않으면 발설자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 무책임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머릿속 상상으로 만든 고객과 시장과 컨셉을 검증도 하지 않고 아이디어라고 풀어내는 것은
훗날 내 목을 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썰’을 풀어서
먹고 살던 세상은 가고 있다.
(161)
마케터로서 내가 바라보는 시장의 핵심 타깃은 2049, 젊은 층이다. 반면 적어도 나 같은 마케터가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계층이 있다. 50대
이상 남성이다. 오죽하면 50세 이상을 겨냥한 프로그램에는
광고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으니까. 소비를 할 뿐, 아내가 사주거나 점원이 권해주는
대로 산다. 마케터는 구매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이나 아이들, 젊은이들의 욕구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는지
아는 기업이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기업 구성원들의 밥줄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의사결정을 CEO가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CEO들 중 상당수는 하필이면 시장의 욕구와 괴리된 그들, 50대
이상 남성이다.
(178)
내가 하는 일은 데이터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수단일
뿐,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온갖 것을 보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는 데이터가 가장 풍부하고 유용한 수단이기에
데이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틀마다 생겨나는 데이터의 양이 5엑사바이트, 0이 18번 붙는 규모다. 하루에
생성되는 한국어 트윗이 500만 건에 이르며,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 결과를 가지고
경영관리, 프로세스 관리, 품질관리, 재고관리, 브래드관리, 인사관리
등 기업의 전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
(213)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객관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내가
‘당신 어머니는 말야’라고 험담하는 말이 불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시야를 높여 조감(鳥瞰)하듯 바라보면 그 사람도 피해자다. 아내가 한국 문화의 관습의 피해자로서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것이니,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를 안아주는 것이 현명하리라. 이렇게 객관화해보면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 연민이
생기고 공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