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공부란 이렇게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공부에는 끝이 없다.

 

(34)

성적을 위한 공부든, 세상을 알기 위한 공부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욱, 공부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모두가 공평하게 공부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63)

진정한 를 찾은 사람이 주체적 개인이 된다. 자신의 분야에 진정성을 가지고 꿈을 키워가는 열정은 우열을 나눌 수 없다. 주체적인 개인은 서로를 존중하며 연대한다. 주체적 개인의 연대는 진정한 의 어울림이다. 갖가지 색깔을 가진 개인이 어우러지는 무지개 같은 연대는 개인을 더욱 창조적으로 만들고 사회를 더욱 풍성하고도 다양하게 만든다.

 

(79)

요컨대, 노력하는 둔재는 게으른 수재를 이길 수 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고 우보만리(牛步萬里)’. 우리 모두는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공부하는 인간으로 살아야 삶에 뿌리내릴 수 있고 더 나아가 행복해질 수 있다. 공부를 즐기는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공부의 출발은 호기심이고, 공부의 성공 조건은 노력이다.

 

(119)

한자로 사회(社會)’회사(會社)’는 어순만 다르다. 그러나 두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며 또 달라야 한다. ‘사회는 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만, ‘회사는 이윤의 논리가 작동되는 곳이다. ‘회사사회위에 서면 민주주의는 죽는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는 회사주의가 아니고 사회주의! 고원 교수의 정확한 지적처럼, 선진국에서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릴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민주주의가 정치적 자유의 수준을 넘어서 그 사회구성원의 실질적 삶에 직결되는 사회권(social right)’의 실현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시켰기 때문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3)

변화를 일으키는 결정적 순간은 이성으로는 억지할 수 없는 강한 감성의 힘이 자신을 지배할 때다.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그 무엇, 배꼽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는 그 무엇이 있어야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런 감정적 떨림 없이는 잘못을 인지하고도 행동하지 못한다. 지식 습득을 통해 머리로 깨닫는 것, 가능하다. 그로 인한 변화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지식이 가슴 떨림과 만나야 또 하나의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해야 할 공부는 이런 것 아닐까? 찰리 채플린의 명작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연설에 나오는 명대사는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었고, 우리의 영리함은 우리를 딱딱하고 불친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은 너무 많이 하지만 너무 적게 느낍니다.”

 

(211)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니다.” –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님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지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가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님

 

(232)

그렇다. 냉소하고 체념하면 안 된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두려움과 용기에 대해 마음 속의 용기야말로 비록 처음에는 겨자씨와 같아도 점점 성장해서 커다란 나무가 되는 것이다라며 의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용기라도 커다란 나무가 될 날을 상상하자. 그리하여 모든 두려움을 극복해나가자라고 토닥인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가진 권력이나 부의 크기가 아니라 정신과 기백과 영혼의 크기로 결정 난다. 세속의 삶에서 평민으로 살면서 사회귀족의 눈치를 보고 머리를 숙이고 무릎 꿇는 일이야 있겠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내면에서 굴종이 일어나선 안된다. 인간의 내면은 온전히 그 자신만의 것이다. 내면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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