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역사란 그 터무니없이 큰 나무와 같은 존재다. 건드려보고 즐겨봐도 어느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모조모 사용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하지만 광막한 들판에 서 있는 나무는 우리를 소요하게 만든다. 거기서 인생의 영욕과 의미,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는 세상의 흐름을 사색할 수 있다. 역사란 이 큰 나무처럼 우리에게 좀 더 크고 긴 안목을 주는 쉼터다.

 

(178)

관중은 굴러온 돌이었기에 기반이 없었다. 또 관중은 명문거족 출신이 아니기에 줄타기도 할 수 없었다. 관중, 포숙, 소홀은 의리와 실력으로 뭉친 선비 집단이었고, 이들은 오직 공과에 의한 작위를 주장함으로써 좀 더 진일보한 세대를 열고자 했다. 물론 관중 사후 제나라는 다시 거성귀족들이 차지하게 되지만 광중의 시도는 춘추시대 첫 번째 관료제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중의 정책들은 실로 다양하고, 그의 말과 행동은 개성이 넘친다. 그러나 관중을 생각할 때는 부귀한 말년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실력을 믿고 떠돌던 청년기와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현실정치의 살벌함을 피부로 실감하던 장년기에 바로 관중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210)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군주와 신하의 재능을 나눈다. 신하는 군주의 재능을 가질 수가 없으며, 또 군주는 신하의 재능을 다 가질 필요가 없다. 군주는 신하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으면 그만이다. 그 나머지 일들은 신하들이 한다. 군주는 신하들이 최선을 다해서 달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큰 인재와 작은 인재를 구분할 능력이 있으면 어떤 조직이든 다스릴 수 있다. 술을 좋아해도 술의 폐해를 알고 있으면 인재를 쓸 수 있다. 다혈질이라도 남이 제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자신은 허명을 쫓더라도 실속 있는 사람을 옆에 구면 된다. 제나라 환공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238)

고대 전제정치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대대손손 부귀를 누리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성을 쌓아야 하고, 궁정을 크게 지어 권위를 높이고, 공실의 창고에 재물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러나 관중은 말한다. 열심히 성을 쌓고 권위를 높이고 공실의 창고를 채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 바로 백성들이 열심히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생산한 부가 어디로 가겠는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그 나라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러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나라의 사람들이 만족하면 공실은 안정된다. 굳이 농민들의 노동력을 과도하게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관중은 백성들의 시간을 뺏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누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두렵다고? 그러면 스스로 오래된 사람들을 존경하면 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기풍 속에서 산다면, 함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설 땅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관중이 공실을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관중의 방법은 향후 2천 년이 훨씬 넘는 동안 여러 가지 변주를 울리며 중국사에서 위세를 떨친다.

 

(337)

그러나 명백한 것은 관중과 환공이 먼저 동쪽을 제패하고, 남쪽으로 초나라를 눌렀으며, 북쪽 융적의 동남진을 막았다. 말년에는 중원과 서방의 문제까지 끼어들어 혜공을 세우고 융을 공격하여 진()의 명백을 이었고, ()의 동쪽을 두드려 겁을 주고 제나라의 패권을 인정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과연 동서남북에서 일광천하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관중이 환공을 보좌하여 한 일이다. 춘추시기의 환경에서 이 정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관중과 환공의 조합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358)

포숙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포숙은 군자입니다. 천승의 나라라도 도로써 주는 것이 아니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지나치게 미워합니다. 한 가지 악을 보면 종신토록 잊지 않습니다.”

평생을 함께한 마음의 친구에 대한 관중의 정당한 평가였다. 이 말에는 포숙에 대한 진정한 우정이 묻어난다. ‘정치, 그것 정말 할 만한 것인가? 포숙은 좀 물러나서 인성을 보존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러자 환공이 다시 묻는다.

그런 누가 맡을 수 있겠습니까?”

습붕이면 됩니다. 그 사람은 잘 알면서도 아래 사람에게 묻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이 듣기로 덕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이를 인하다 하고, 재물을 나누어주는 이는 선량하다 합니다. 참함으로 남을 이기고자 하면 절대 복종시킬 수가 없고, 착함으로 남을 길고자 하면 복종시키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나라에 임해서는 남모르게 하는 일이 있고 가정에 임해서도 남모르게 하는 일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습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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