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방사능은 결코 생명과 공존할 수 없다. 방사능은 생물의 세포를 손상시키고,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다. 이것은 기초적인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환경 속에서 측정되는 방사선량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호흡과 피부 또는 음식 섭취를 통해서 몸속에 흡수되어 쌓이는내부 피복이다. 아무리 저농도라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대기와 토양과 물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호흡과 먹이사슬을 통해 내부 피폭을 당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당장 눈에 띄는 상해가 나타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장기 노출로 인한 체내 축적의 결과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손들에게 어떤 가공할 신체적, 정신적 장해를 입힐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12)

아마도 초기에 핵 발전을 기획한 사람들은 원자로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만간 기술적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핵 발전에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대부분은 운전 중 핵 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만물은 생성, 성장, 노쇠, 사멸의 과정을 밟기 마련이다. 돌덩어리, 쇳덩어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고, 탄생의 장소가 있으면 죽음의 장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핵분열 반응의 생성물이라는 이 기괴한 물질만은 예외적이다. 아마도 이것이 자연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한 지식이 창조해낸 물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31)

특히 이 주장은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과장하는 데 문제가 있다. 발전 과정만 보면 화석연료 발전에 견줘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라늄 채굴, 제련, 운송, 원전 건설, 핵폐기물 처분 등 전 과정을 포함해 실증적으로 분석하면, 핵 에너지의 기후 안정화 효과는 알려진 것처럼 크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핵 에너지의 온실효과 감축 기여도를 2030년까지 10퍼센트, 2050년까지 6퍼센트로 예측한다. 반면 70~80퍼센트 감축은 에너지 효율과 재생 가능 에너지라는 진정한 녹색 에너지 시스템이 담당할 것으로 내다본다.

 

(88~89)

따라서 에너지 기술의 전환은 성장과 공급 중심에서 절약과 수요 중심의 에너지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라는 틀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에너지 전환의 토대가 되는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은에너지 커먼스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장과 이윤 추구에 집중된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에서 에너지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동안 국가와 시장이 맡아온 에너지 관리를 시민과 지역에게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의 참여와 책임, 그리고 협동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중심의 에너지 체제는 이윤이나 성장보다는 지속 가능한 수준의 에너지 생산과 소비 관계를 확립할 가능성이 크다 외부 자원에 의존해 에너지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에 힘쓰고 지역 에너지원(재생 가능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환경 부담을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112)

일본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올덴’(영어의 ‘All’과 전기를 뜻하는을 합한 말)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대부터 일본 전기 사업자를 중심으로 제기된올덴화전략은 가정의 난방, 냉방, 조리, 조명 등 에너지가 필요한 모든 부문에서 전기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가스 조리기 등 에너지가 필요한 모든 부문에서 전기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가스 조리기 등을 전기 조리기로 바꾸고, 심야 전력을 이용한 보일러와 비데, 다양한 온열기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명목상으로 전기를 이용해 깨끗한 생활을 영위하자는 것이지만, 실상은 전력 수요가 더 늘지 않은 상황에서 가스 사업자와 경쟁하는 국면에 내몰린 전기 사업자들이 내놓은 궁여지책의 일환이다. 도쿄전력 전력관에는 전기 오븐을 이용한 요리교실과 비데와 전기 족욕기, 욕실 체험장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풍부한 전기 생활을 통해 전기 사용의 이점을 보이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국 전력 산업, 특히 핵 산업계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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