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내가 물었다. “데키무스를 돕겠다는 겁니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살인자를?”
옥타비우스의 대답.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에케나스도 입을 다물었다.
옥타비우스가 다시 말했다. “우리 맹세를 기억하나? 그날 밤 아폴로니아에서? 너와 나,
아그리파와 마에케나스.”
내가 대답했다. “잊지 않았습니다.”
옥타비우스가 미소 지었다. “나도 잊지 않았어…, 데키무스를 증오해도 구해줘야 한다. 바로 그 맹세를 위해서. 그리고 법을 위해 살려줄 것이다. “ 순간 그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려보았아. 아니, 어쩌면 상대가 내가 아닐 수도… 그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본모습을 의식한 걸까?
(79)
우리가 입성했을 때 로마는 분쟁과 야욕으로 갈가리 찢긴 터였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친구임을 빙자해, 살인자들과 놀아나고 우리의 옥타비우스 카이사르가 양부께
물려받은 명예와 권력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옥타비우스 카이사르는 침탈자 안토니우스의 야심을 확인하자마자, 양부의 노병들이 땅을 일구고 있는 정착촌으로 달려가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때마침
암살당한 지도자를 애통해하던 터라 퇴역군인들은 충성을 맹세하고 우리와 함께 약탈자들과 싸워 국가의 꿈을 되찾기로 했다.
(88)
상황은 이틀 만에 끝이 났네. 로마의 피는 한 방물도 흘리지 않고.
우리 병사들은 무티나 전투 이전에 약속한 보상을 받았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옥타비우스를 입양한 것도 합법화되고 공석으로 남은 히르티우스의 집정관 직도 물려받았지. 그리고
열한 개 군단을 위 휘하에 둘 수 있었다네.
8월 11일(아, 당시 자네들은 섹스틸리스, 즉
여섯 번째 달이라고 불렀겠군그래.) 옥타비우스는 로마에 들어가 집정관 계승을 위해 제례에 참석했네.
그리고 한 달 후 스무 해 생일을 맞았지.
(358)
다행히, 젊음은 자신의 무지를 보지 못한다네. 도저히 감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지. 무지에 눈을 감고 그래서 후일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는 것도 필경 피와 살에 담긴 본능 덕분이겠지?
(361~362)
젊은이는 미래를 모르기에 삶을 일종의 서사적 모험으로 여기지. 오디세이아처럼
낯선 바다와 미지의 섬을 여행하며, 자신의 힘을 실험하고 증명하고 그로써 자신의 불후를 발견하고 싶은
걸세. 중년이 되면 꿈꾸던 미래를 겪었기에 삶을 비극으로 본다네. 자신의
힘이 아무리 위대한들, 신이라는 이름의 사고와 자연을 이길 수 없으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자기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노인은 삶을 희극으로 볼 수 있네. 승리와 실패를 가감한다면, 누구도
타인보다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네. 그 힘들과 맞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영웅도 아니고, 그 힘에 파멸당하는 운명의 주인공도 못 돼. 늙은 배우처럼 너무
많은 역을 맡은 탓에 더 이상 자기 자신일 수가 없는 거야.
(374)
전술했듯이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존재했네. 그래, 어쩌면 세상이 바로 내 시라고 볼 수 있겠군. 부분을 전체로 통합하고
이 파벌을 저 파벌과 통합하고 그 파벌에 걸맞은 역할과 혜택을 부여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내가 지은
시라 해도 세상이 시대를 초월해 존재할 수는 없을 걸세. 베르길리우스가 숨을 거두며 자신의 걸작 시를
파기해달라고 애원한 바 있지. 그 양반 말로는 미완성인 데다 부족하기까지 했어. 군단 하나가 패퇴하는 장면만 보고 다른 두 군단의 대승을 접하지 못한 장군처럼,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을 실패자로 여겼다네. 하지만 그의 로마 건국
시편은 로마 자체보다 오래 살아남을 걸세. 물론 내가 만들어놓은 이 허접한 세상보다도 장수할 거야. 난 그 시를 파기하지 않았네. 베르길리우스도 내가 그러리라고 생각지는
않았을 거야. 시간은 시가 아니라 로마를 부순다네.
(384)
내 생각은 이렇다네. 누구나 살다보면,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있을 걸세. 이해 못 할 수도 있고 형설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네. 아무리
초라하다 해도 본질을 넘어선 그 누구도 되지 못해. 나도 지금 말라빠진 정강이, 쭈글거리는 손, 세월에 얼룩지고 처진 살갗을 보고 있네. 한때 이 육신이 그 자체에서 벗어나 타인의 육신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니 우습기까지 하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혹자는 쾌락의 찰나에 온 생을 걸고는, 육신이 말을 듣지 않으며 괴로워하고 외로워하지.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육신이 아는 것이 오로지 쾌락뿐이건만, 그 쾌락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야. 오히려 우리 믿음과 달리, 성애란
그 무엇보다도 이타적이라네. 타인과 하나가 되어 스스로를 탈피하려 하기 때문일세. 그 때문에 대부분 가장 저급하다고 여기네만 성애도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네.
성애가 더욱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이야. 하지만 일단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아에 갇히지도, 자아 속으로 쫓겨나지도
않는다네.
(399)
하지만 그가 건설한 로마 제국은 티베리우스의
폭정을 견디고 칼리귤라의 극악무도한 폭력과 클라우디우스의 무능력까지 모두 이겨냈습니다. 이제 새 황제를
맞이할 때입니다. 바로 선생께서 어렸을 때 지도하셨고, 지금도
그 곁을 지키시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신임 황제께서 선생의 지혜와 미덕을 후광으로 통치하시라는 사실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네로 휘하에서 로마가 마침내 옥타비우스 카이사르의 꿈을 실현하기를 신들께 간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