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당연히 최도사는 거절할 리가 없고, 우리는 초가을 볕이 푸짐한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투명한 가을 햇살이 꿀꺽꿀꺽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서울에서 가져온 안주용 과자 몇 개를 내놓고 낮술을 마시니 골짜기 저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그래, 바로 이게 지리산의 맛이야’ 하는 생각에 흐뭇한데, 시인이 한 김 올라 완성된 초록색 호박찜에
빨간 고추 고명을 얹어 내밀었다.
(81)
버들치 시인은 술잔을 쥐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내가 왜 버들치
시인을 좋아하는지 안다. 답답해하면서 왜 그를 보면 존경을 표하는지 안다. 그는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고 남의 것을 남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어지러운 시절에 그건 너무나 귀한 덕목이었다.
(107)
나는 공항에서 신문에 실린 그의 기사를 보았다.
“한국 작가 회의의 젊은 문인들로 구성된 젊은작가포럼(위원장 임경섭)은 박남준 시인이 그 삶과 문학을 통해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치열한 고뇌와 성찰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이 상을 준다고 밝혔다.”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치열한 고뇌와 성찰. 그 욕망에서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는 빠지리라. ‘그래도 좋다!’고 나는 생각했다.
(119)
쪼물락 쭈물럭
단단하던 감들이 만지면 만져줄수록
쪼글쭈글 시들어간다
축축 늘어진다
사람의 모난 마음도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
둥글게 두리동동 동그래질 것이다
감을 깎다가 익거나 으깨져서 물러진 부분들
서걱 베어낸 곶감이 있다
그 베어진 상처 쪼물락 쭈물럭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더니
그러니까 상처가 씻기고 치유되어서
동글동글~
(124)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이들이 소유한 것의 양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가 의신마을 최도사다. 그는 계절별로 두어 벌의 옷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언제든 어깨에 달랑 지는 바랑 하나에 짐을 챙겨 그는 먼 길을 떠날 수 있으리라. 내
주변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분을 보았지만 최도사만큼 적게 소유하고 있는 이는 보지 못했다. 스스로 ‘내비도’의 교주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긴 간다.
(239)
“여기 지리산이야, 꽁지야. 친구들이 와서 지붕 다 고치고 지네들이 고기 사 와서 먹고 갈 거야. 넌
글이나 쓰라니까.”
그래, 거기가 지리산이었다. 소유가
전부가 아닌 곳, 욕망이 다다른 곳, 지혜가 다른 곳. 나는 문득 또 생각했다. ‘알았어.
내가 책 팔아 돈 많이 벌어서 지리산 한편에 땅이라도 살게. 그래서 다들 편히 살다가 갈
수 있게 할게’라고. 아마도 친구들은 또 지청구를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게 지리산 식이
아니라니까.”
(263)
유머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요즘 아재 개그라는 건 그러니까 유머가
아니다. 실소를 터뜨리게 하니까). 진정한 유머는 우선 교양, 그러니까 다양한 콘텐츠를 가져야 가능하고 그것을 구사하는 마음의 여유,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알아들을 귀 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머의 핵심은 남들이 은폐하는, 혹은 하려고 하는 진실의 과녁을 정확하게 조준하는 데 있다. 우리가
만일 어떤 사람의 말에 웃는다면 그것이 진실의 과녁을 맞혔기 때문이다. “임금님은 벌거벗었어요.”도 그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진실의 과녁에 닿은 것은
힘이 있다.
부처나 공자나 예수(출생 연도순) 역시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친 데는 그들이 가진 진리의 감화력 외에도 연설의 유머가 큰 몫을 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웃기지 않는 무명의 연설자에게 대중이 몰려들기란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하다. ‘부자가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게 쉽다’는 말은 지금은 위선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고리타분한
말일지 모르나 그 당시엔 얼마나 배꼽을 잡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얼마나 사실이며 듣는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큰 카타르시스를 주었기에 예수는 권력자들에게 죽기까지 했을까.
(326)
그의 요리를 먹은 후(어쩌면 내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나의 밥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소박한 것이 점점 좋아진 것도 그와 1년을 함께 한 탓이리라. 오늘 나는 찻물을 우리고 밥을 말아서 들기름에
볶은 김치랑 단출히 아침을 먹는다.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