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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과 7월, 대법원의 국가배상법 위헌판결과 서울형사지법에서 행한 시국 사건에 대한 연이은 무죄판결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만천하에 고취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독립성은 사실 평지돌출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무장군인 법원난입 사건이나 동백림 사건 당시의 괴벽보 사건은, 그때만 해도 법원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권력이 법원을 몹시 불편해했음을 보여준 사례다. 사법파동의 주역이었던 홍성우 변호사나 최영도 변호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사법 파동 이전까지 법관들은 권력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법원으로서는 중정이나 검찰의 눈치를 봐서 그 위세가 무서워할 걸 못한다든가 하는 분위기나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사법파동 이전까지는 상당히 자유롭고 배짱대로 재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누렸다. 그 당시 서울형사지법 단독판사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서 서울시장보다도 힘이 세다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위로는 대법원부터 아래로는 지방법원까지 박정희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이 연이어 나오자 정가와 법조계에는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사법부를 손볼 것이라느니 정부가 바라는 대로 판결하지 않은 판사들은 다칠 것이라느니 하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그리고 이 소문은 곧 현직 법관 두 명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라는 형태로 가시화되었다. 


(113)

대법원은 저항권은 인정할 수 없고 긴급조치는 위헌이 아니라면서 피고와 변호인의 고문 주장을 배척했고, 절차상의 위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공판조서가 QUSWHEHLJTEK는 주장도 묵살되었다. 확정판결 18시간 만의 사형집행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18시간 만에 사형집행을 하면 안 된다는 구절은 없으니 이 또한 철저하게 ‘합법’이었다. 유신체제는 그로부터 4년 6개월 더 지속되었는데 박정희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더는 군법회의로 보내지 않고 일반법원에서 재판하도록 했다.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살인으로 대한민국 법원은 사법부를 지독히 불신했던 박정희로부터 신뢰를 획득했다. 그러나 독재자의 신뢰가 깊어질수록 국민들의 마음은 사법부로부터 멀어졌다.


(259)

1986년 4월 23일. 김용철 대법원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 사법부에는 조용한 변화가 일었다.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나 시국사건에서는 여전히 정권이 깊이 개입했지만 사법부는 인산구속에 신중해지고 시국사건이나 공안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건국대 사건으로 1986년 11월 1,290명이 구속되면서 그 이상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어졌다. 김용철 대법원장은 적극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추구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 법관들에게 보복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이런 그의 모습이 안기부의 눈에는 “여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등 무능력한 업무 자세로 일관”하는 ‘주사급’ 대법원장으로까지 비쳤다. 결국 김용철은 1988년 제2차 사법파동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대법원장직에서 물러났다.



(353)

이 기막힌 결정에 대해 조영래 변호사는 이렇게 탄식했다. 조금 길지만 꼭 되새겨야 할 말이다. “우리는 오늘 우리 사법부의 몰락을 봅니다. 아무리 뼈아프더라도 이 말을 들어주십시오. 사법부는 그 사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한 그릇의 죽을 얻는 대가로 장자 상속권을 팔아 넘긴 것처럼, 사법부는 한갓 구구한 안일을 구하기 위하여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막중한 사법권의 존엄을 스스로 저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하여 사법부에 몸담고 있는 법관 개개인들만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그러나 적어도 사법부로서는 이 사태의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전가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해두고자 합니다. 용기가 없는 사법부, 스스로의 사명을 스스로 저버린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기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 말하거니와 이 재정신청 기각 결정으로 인하여, 이제 더 이상 사법부의 독립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법부의 존립 근거 자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 사태의 위험성에 대하여, 사법부에 몸담고 잇는 모든 법관들이 깊이 통찰하고 사법권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건곤일척의 몸부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아니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역사적 순간이 도래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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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1 0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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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1 2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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