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쪽)
올해는 유엔이 정한 콩의 해인 것을 아세요?
콩이 기본적으로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며, 또 콩의 재배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여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므로 그러한 가치를 인정해서 콩의 해로 지정했다고 해요.
그런데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와 만주잖아요?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자급률은 10% 정도에 불과해요.
미국은 불과 19세기부터 콩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한국이 미국산 콩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습니다.(2014년 기준, 전체 126만 톤 대두 수입량에서 48%가 미국산).
게다가 최근에는 이집트콩, 렌탈콩 등 외국산 콩의 수입량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어요.
요즘 텔레비전의 소위 '먹방', '쿡방'과도 연결돼서 '슈퍼곡물'이라는 외국의 곡물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우리 토종 곡물도 영양상 전혀 뒤지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으레 먹방 다음에 이어지는 홈쇼핑 프로그램에 그 외국산 곡물들이 등장하지요.
장삿속이라는 것이 참 집요하지요.
(65쪽) <농(農)을 살리는 세계로> '자유협동주의의 이념' 中에서...
이익균점권을 주장할 때 전진한 선생의 논리는 아주 명쾌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노동을 상품으로 간주하여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매우 고루한 사상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참신하고 용기 있는 발언이에요.
'노동력=상품'이라는 관념은 19세기적 발상이라는 거예요.
시대를 그렇게 앞서 나갔던 분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어떤 진보적 지식인이 이렇게 과감한 논리를 펼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맑스를 공부한 사람들도 늘 노동력 상품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평생의 화두로 안고 살잖아요.
자본주의체제하에서의 노동은 상품이다,
라는 명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지는 않고 말입니다.
그러나 전진한 선생은 그것을 고루한 사상이라고 단정하고,
자본가가 돈을 출자했다면 노동자는 자기의 '노력'을 출자한 또하나의 '자본가'라고 선언합니다.
노동자도 출자자라는 거죠.
출자자와 출자자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생기는 이익을 고르게 나누는 것, 즉 균점(均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당한 권리다, 이런 논리죠.
'노동자=임금노예'라는 진부한 공식이 이 명쾌한 논리로 단번에 척결돼버린 거죠.
(114쪽)
그(장일순)의 결혼 주례 이야기도 남다르다.
오늘날 세상은 온통 경쟁으로 가득 차 있네.
너나없이 남보다 한발 앞서서 남을 밟고 이겨야 해가 산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채 살고 있어.
그렇지만 삶이란 건 일등부터 골찌까지 다 저마다 할 일을 하며 함께 도우며 사는 거라.
이 이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사람만이 아니고 자연과 더불어 이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 모두가
서로 존귀하게 여기며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이 말이야.
그게 참다운 공생의 삶인 거지.
오늘 새로 결혼하는 두 사람도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천지신명과 더불어 그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133쪽)
장일순의 글을 인용하면서....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마라.
앉은 자리 선 자리를 봐라.
이루려 하면은 헛되니라.
자연은 이루려 하는 자와 함께하지 않느니라.
나는 한적한 들에 핀 꽃 밤이슬 머금었네.
나를 돌보는 사람 없지마는 나 웃으며 피어났네.
누구를 위해 피어나서 누구를 위해 지는 것일까.
가을바람이 불면 져야 해도 나는 웃는 야생화.
(159쪽)
이제 다시는 묻지 않으리
- 시천주 2014년 4월 16일
홍일선
길섶 풀 한 포기
외진 곳 몽돌 하나이
응달 습생들 벌레 한 마리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공경의 말씀 이 땅에 누대로 계셔서
은빛 갈대들이 기꺼이
마을숲이 되어주었던 강마을
앉은뱅이꽃으로 만든 집 울타리
아기들 옹아리도 뉘엿뉘엿 지는 노을도
그 마을 저녁 연기 만나 지극했으리라
그러하온데 갈대숲 너머
단양쑥부쟁이들이 스러지던 봄날
연둣빛 신생의 아픔이 그믐달처럼
그 집을 찾아주신 것
이기지 못하고 늘 지는 것들 쓰라린 것들
그것들 슬픈 눈빛들이야말로
온 생명 보듬어 안아야 할 대덕이시라고
어머니시라고 그리운 님이시라고
한 농부에게 조용히 일러주신 것
그 농부 그믐달이 이윽한 마당에서
그리하여 흙님 숲님 강님 햇빛님 곡식님께
삼가 무릎 꿇어 삼배 올린 것
하늘 아래 생명 가진 것들에게는
하늘님이 계시다고 그 농부 믿게 되었을 것이다
산천 오랜 기다림들이
꽃망울 터뜨리는 봄날
2014년 4월 16일 봄날
그 집에선 어미 닭들
줄탁동시 산고가 있더니
병아리들이 세 마리 다섯 마리
아홉 마리 열네 마리
목숨의 꽃들을 꼬옥 보듬어 안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봄날을 뵈옵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그러하온데 진도 어디라 했던가
어여쁜 꽃들로 가득 찬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청천벽력의 소리가 들려왔던 것
울음이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들려왔던 것
그 집 갓 태어난 병아리들도 들었을 것이다
앉은뱅이꽃 울타리 홍씨도 들었을 것이다
못자리 물을 대던 이장도 들었을 것이다
아욱 씨를 파종하던 새마을 지도자도 들었을 것이다
비닐하우스를 손보던 김씨도 들었을 것이다
배꽃이 영 글렀다고 한숨짓던 배씨도
밀린 사료값 때문에 밭 한 두락 내놓은 황씨도
4대강 공사가 끝난 뒤부터 양수장 물이 말렀다고
투덜대던 강씨도 들었을 것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 들었을 것이다
살려달라는 소리 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대저 에프티에이가 무엇이기에 난리를 치는 거냐고
묻고 또 묻던 구노인회장도 들었을 것이다
대처 나가 사는 아들 내외 온 김에
땅콩이며 강낭콩 옥수수까지 심어 한시름 놓았다는
홀로 사는 충주댁 할머니도 들었을 것이다
부녀회장님 당나귀 다정이도 들었을 것이다
언평 벙어리 내외도 들었을 것이다
오호라
거룩한 봄 날
꽃 피는 봄 날
소용없는 그리움이었을까
처음부터 부질없는 비나리였을까
이 나라 귀태鬼胎들의 시간 어디였을까
가여운 가여운 팽목항에
붉은 동백꽃들이 하나씩 하나씩 질 때
마침내 우리나라 꽃이 다 질 때
밭에서 일하는 게 큰 죄를 짓는 서 같아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 귀 세우는 시간
앉은뱅이 꽃집 어미 닭의 일곱 시간은
지극한 생명의 시간이었는데
꽃이 지기 시작한 오전 아홉 시부터
꽃이 가뭇없이 진 오후 다섯 시 그때까지
거룩한 생명의 시간이었으리
이제 다시는 박근혜 그에게 묻지 않으리
오늘부터 쓰러진 것들에게 물으리
아픈 강물에게 물으리
시든 풀들에게 물으리
깨진 몽돌들에게 물으리
쓰라린 생명들에게
공경의 말씀으로 물으리
누구는 봄날이 간다고 설워하기도 하지만
이 땅 또 찾아주신 붉은 진달래꽃이 고마워서
시천주로 고요히 호명하노니
봄날 어린 꽃들이여
우리나라 꽃들이시여
(177쪽) <토마스 페인, 한 혁명가의 삶과 사상> 中에서
개인재산은 사회의 영향으로 생겨났다.
사회의 도움 없이 한 개인이 개인재산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가 땅을 처음 만들어낸 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개인을 사회로부터 분리시켜 그에게 하나의 섬이나 대륙을 소유하도록 해보라.
그는 개인재산을 결코 획득하지 못한다.
그는 부자가 될 수 없다.
그처럼 수단과 목적은 분리할 수 없다.
수단이 없으면 목적도 없고 목적이 없으면 수단도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스스로의 손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모든 개인재산의 축적은 그가 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함으로써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정의와 감사와 문명의 원칙에 의거해 볼 때, 그가 축적한 재산의 일부는
그 모든 것이 거기서 유래하는 사회로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