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유모는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몰랐다. 엘파바는
악마의 씨일까? 반은 인간이고 반은 요정일까? 설교자로서
아빠가 제 구실을 못한 벌일까, 아니면 몸가짐이 헤프고 기억력이 나쁜 엄마에게 내려진 벌일까? 아니면 그저 모양이 괴상한 사과나 다리 다섯 개 달린 송아지처럼 단순한 기형에 불과할까? 유모는 악마와 신앙, 민간 전승 따위의 영향으로 자기가 세상을 보는
눈이 흐릿하고 혼란스러운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멜레나와 프렉스 부부가 분명 아이가 아들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프렉스는 일곱 번째 아들이었고 그의 아버지 역시 일곱 번째 아들이었으며, 심지어 그는 집안의 7대 목사였다.
어찌 다른 성의 아이가 감히 이토록 상서로운 순서를 따를 수 있겠는가?
유모는 어쩌면 이 초록색 아기 엘파바가 부모를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자기만의 성과 색깔을 고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52)
“아, 과학은
자연을 해부하여 보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부분으로 축소하지요. 마술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마술을 조각조각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 부분을 잇지요. 분석보다는
통합니다. 기존의 것을 파헤치기보다는 새로이 조립하지요. 정말로
재능 있는 사람의 손에서는(이 대목에서 그레일링 교수는 머리핀에 찔려 비명을 질렀다.)…… 예술입니다. 사실 누구나 마술을 우월한, 아니 가장 훌륭한 예술이라 할 거예요. 마술은 회화나 연극, 암송 같은 여러 예술과 다른 면에서 우월합니다. 마술은 세계를 꾸미거나
표현하지 않아요. 세계가 되는 거예요. 더없이 고귀한 소명이라
할 수 있죠.”
(348)
“아니야. 나한테
영혼이 있다는 증거가 어딨어?”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너한테 양심이 있을 수 있겠니?”
(349)
“어떤 것이 더 나쁠까, 피예로? 개성이라는 관념을 부정하는 것과, 고문과 감금과 굶주림을 통해 진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것 중에서? 봐, 넌 네 주변의 도시 전체가 불차고 진짜 사람들이 불에 타 죽어 가고 있는데도 박물관의 귀중한 감상적인 초상화를
구할 걱정이나 할 거야? 잘 좀 따져 봐!”
“하지만 무고한 방관자, 예를 들어 아무한테도 도움 안 되는 사교계 귀부인이라 할지라도 진짜 사람이야.
초상화가 아니라고. 네 비유는 논점을 회피하고 축소하는 거야. 범죄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거라고.”
“사교계 귀부인은 살아 있는 초상화로서 자신을 과시하는
쪽을 택했어. 그러니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지. 응분의
대가야. 일전에 한 얘기로 되돌아가서,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너의 악이야. 넌 할 수만 있다면 상대가 사교계 귀부인이든, 이
모든 압제적인 체제에 기대어 번창하는 기업의 사장이든 상관 않고 구해 주겠지. 하지만 다른 이들, 더 진짜인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그래서는 안 돼. 네가 그들을
구할 수 없다면 못 하는 거야.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