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의 교사인 파블로 뮤리엘은 자기네 학교 졸업생들에게 이런 좋은 대학교들은
모두 필드스톤 같은 이질적인 환경이라고 설명한다. 필드스톤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런 대학교에 가도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과 익숙한 커리큘럼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게 되지만 유니버시티 하이츠 졸업생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라켈은 아주 특별한 경우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브롱크스 아이들의 꿈인 중산층 진입에 가장 유리한 고지에 들어간 것이다. 라켈에게도
대학교 졸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고등학교 동창들이 줄줄이 대학을 중퇴하는 것을 보면서
그 역시 대학을 졸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에게 “너는 자격이 있어, 너는 자격이 있어”를 되뇌었다고 한다.
(62)
외로운 사람들도 일종의 궁핍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궁핍은 인간관계의 부족, 즉 친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인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것. 그렇게
보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어색해지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대인관계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집착이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막는다. 이는 그 개인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궁핍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그들을 붙잡고 있는 환경이다.
(77)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도날드 트럼프는 이 사건을 두고 “(뉴욕주에) 사형제도를 재도입해야 한다”며 이들을 사용하자는 전면광고를 신문에
게재했다. 트럼프는 이미 그때부터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사고에 기반한 분노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쌓아온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인종주의자들의 표를 끌어오기 위해 돌아선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나중에 이들의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당시 게재한 광고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104-105)
칼슨에 따르면 자유로운 남자들이 주머니를 독점하면서 주머니는 남성의 실용성과 호기심의 상징처럼
묘사되기 시작한다. 우선 남자가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에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포켓 사이즈(pocket-size)’ 버전이 생겨났다. 일하는 남자들이 언제든 도구를 꺼내어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준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던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이었다. 철학과 과학, 건축과
농업,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형적인 계몽주의자였던 제퍼슨은 주머니에 작은 가위와 줄자, 칼, 톱, 온도계, 나침반 등 다양한 (포켓 사이즈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해서 “걸어 다니는 계산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제퍼슨이 휴대한 물건 중에는 상아로 만든 노트도 있었다. 제퍼슨은 쓰고지울 수 있는 상아 노트에 생각을 적고 나중에 집에 가서 종이에 옮겼다고 한다. 그에게 주머니는 움직이는 실험실, 작업실이었던 셈이고 이는 계몽된
남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117)
지금은 어떨까? 몇 년 전 한 대학교 캠퍼스 옆에서
아이폰 수리점을 운영하는 분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소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깨진 화면을 수리하러 오는 사람 중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이 많으냐는 게 내 궁금증이었다. 내 주변에서 화면이 깨진
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답은 “깨진 화면 수리를 원하는 고객은 9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그 이유를 두고 온라인에서도 많은 추측이 있지만 여자 옷에
스마트폰이 들어갈 주머니가 남자 옷만큼 많지 않아 손에 들고 다니는 시간이 길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196-197)
미국인의 문제는 문화적 폐쇄성이었다. 미국인들은
남미와 남유럽 문화를 영미 문화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들의 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은 맵거나 향이 강한 음식을 ‘흥분제’라고 생각했고
이런 음식은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향이 강한 음식은 카페인이나 알코올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취급했고 그런 음식을 좋아하다 보면 결국 코카인과 헤로인 같은 중독성 마약에 빠져들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인들은 올리브를 기피했고 마늘과 식초가 반드시 들어가는 피클
같은 음식도 피했다. 물론 지금 미국인들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갖고 있어서 다양한 문화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지위 상징이 되었다. 이런 태도가 과거 미국에도 퍼져서 남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남유럽 문화에서 먹는 것처럼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가 사용되었더라면 대기근과 대공황을 견디기 훨씬 쉬웠을 거라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이들에게 음식 문화의 다양성은 배려가 아니라 삶과 경험을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요소다.
(209)
이렇게 조니 뎁의 인기가 시들어가던 시기가 앰버 허드와 결혼 생활을 하던 때라고 해서 허드를
‘악처’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허드가 가정에서 어떤 사람이었느냐와 상관없이 뎁의 인기하락은 본인의 관리 능력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할리우드에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남자 배우가 자기관리에 실패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런 인물로 대표적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우니 주니어는 그런 일을 젊은 시절에 겪으며
바닥을 치고 올라온 반면 뎁은 50이 넘어 인기가 사그라지는 시점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연예계 소식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롤링스톤>이 2018년에 실은 기사 “조니
뎁의 문제”는 이 모든 잘못이 분명하게 뎁 본인에게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는 “조니 뎁은 술과 마약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으며,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라이트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현재 뎁은 “재산을 날리고 고립되어
있으며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업계에서 추방당할 것”이라는 잔인한 진단을 내렸다. 앰버 허드의 칼럼보다 4년 앞서 나온 기사였다.
(251)
슐츠의 아내 진 슐츠는 2000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회상하면서 그의 만화가 워낙 부드러운 톤을 갖고 있어서 ‘스포츠는 여학생들이 하는 게 아니다’라는 당시 사회적 통념과 배치된 내용을 그려도 사람들은 반발을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피너프>의
캐릭터들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여자아이들이 스포츠 활동을 하는 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 슐츠는 남편의 역할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여성들이
불평을 하고 법안 통과를 촉구했기 때문이지, 남성들이 준 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11)
하지만 미국의 중산층 백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흑인들의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제 중요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상황에서 흑인들의 추가적인 요구는 지나치다고 여겼다. 사회의 변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니 성급하게 요구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백인들의 생각에 대해 킹 목사는 유명한 <버밍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종분리의 날카로운 고통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기다리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나운 무리가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침없이 폭행해서 죽이고 당신의 형제와 자매를 물에 던져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면, 증오가 가득한 경찰이 흑인을 욕하고 발로 차고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면 (…) 기다리는 것이 왜 힘든지 이해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