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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우어
천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31/pimg_7351811964588557.jpg)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감성적이고 사람 향기 풀풀 나는 SF 소설을 쓰셔서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천선란 님의 신간 소설집이 나와서 읽어 보았단다. 아빠가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천선란 님의 단편소설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이번에도 큰 기대와 함께 책을 펼쳤단다. 너무 큰 기대였는지^^ 지난 소설들보다 약간 실망을 주기도 했지만, SF소설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단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미래의
지구는 어떻게 될까 늘 불안한 마음을 살다 보니, 미래 세계를 상상할 때면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이 그려지더구나.
요즘처럼 기후 변화의 위기를
몸소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빠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싶구나. 그래서인지 천선란 님의 소설도 미래를
배경을 한 소설은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이 많이 있었단다. 이번 소설에서도 소설의 중심에는 인간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전 소설에 비해 몽환적인 요소도 좀 곁들인 느낌이 들었단다. 그래서 가볍게 읽다 보면 소설 속 배경을 머릿속에 그려보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단다.
첫 번째 소설 <얼지 않는 호수>도 그런 측면이 있었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지구는 혹독한 추위와 엄청난 눈보라에 휩싸인 곳에 되어 있었어. 주인공이 어려움에 빠졌을 말하는 산양 ‘폴’이 구해주었단다. 산양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산양은 머릿속에 칩이 있어 말을 할 수 있었단다. 주인공은 산양과
오랜 세월 단 둘이 보냈는데, 어느날 야자라는 아이가 나타나 얼지 않는 호수로 간다고 했어. 그러면서 품 속에는 친구 ‘경’이
있다고 했는데, 품 속에 있는 것은 친구 ‘경’의 심장이었어. 꽁꽁 얼어버린 지구에 얼지 않는 호수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야자는 얼지 않는 호수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길을 떠났단다.
1.
두 번째 소설 <모우어>는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데, ‘모우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소설을 시작했단다. 인류는 점점 진화하여 더 이상 개체를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단다. 몸의
젊은 세포들이 늙은 세포들을 먹어 치우면서 계속 젊음을 유지했어. 1년에 한번 특정 시기에만 다른 지역의
인간들을 받아들였어. 그리도 또 하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어. 그동안
사용했던 인간들의 언어는 인간에게 해악만 준 실패한 것으로, 더 이상 언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어. 대신 의음이란 것으로 소통을 하는데 이 의음이라는 것은 머릿속의 생각으로 바로 소통하는 것이란다. 초우라는 사람이 어떤 호수에서 우는 아이를 발견하는데 그 아이는 진화가 덜 되어 입으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어. 초우는 그 아이를 숨겨서 보살피면서 모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단다. 모우에게
의음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쳤지만, 모우는 자라면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생기는 갈등을 이야기해주었단다.
….
<너머의 아이들>이란
소설은 외계 생명체의 침입했는데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외계에서 온 우주선에 타게 된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죽었지만, 죽음 너머의 곳에서 다시 깨어나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실제 세상. 그들이
실제라고 살고 있던 곳은 프로그램 속 세상. 영화 매트릭스를 비롯하여 비슷한 소재의 SF가 떠올랐단다.
…
<뼈의 기록>이란
소설은 천선란 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AI 나온단다. 이번
소설에서는 장의사 역할을 하는 안드로이드 로비스의 이야기. 주로 고독사하는 노인들의 장례를 맡곤 하는데
가끔은 자살한 젊은이, 사고로 죽은 아이도 장례를 맡는단다. 장례를
하면서 장례식장의 미화원 모미와 친해져 우정을 쌓게 돼. 그런데 로비스는 안드로이드이다 보니 늙지 않잖아.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 세월은 모미마저 데리고 가고, 로비스는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어기고 모미가 꿈꾸었던 우주로 보내주게 된단다.
이 일로 질책을 받기도 했지만, 로비스는 계속 장례 업무를 하는데 인연을 맺었던 이들을
모두 자기 손으로 보냈단다. 자신이 녹이 슬어 무릎이 고장 날 때까지 말이야. 미래는 인공지공이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니, 이 소설은
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점점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있는데 안드로이드에게도
감정이 있고 영혼이 있을까? ChatGPT나 빅스비와 이야기할 때도 보면 감정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말이야.
…
<서프 비트>는
이 소설집에서 실린 작품 중에 재미로만 봤을 때는 가장 재미있었단다. 초능력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지. 그런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았는데 작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무빙>이 많이 떠올랐단다. 물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어둠에서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그리고
또 다른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서프
비트>에 담겨 있단다.
…
그 외에 <사과가 말했어>, <입술과 이름의 낙차>, <쿠쉬룩> 이 실려 있단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천선란 님의 소설 속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나라도 작년 말부터 갑자기 디스토피아가 된 기분이구나. 역사
속에서만 들어본 비상계엄과 내란이라는 단어를 실제로 듣게 되다니…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많다는
것이 섬뜩하더구나. 그들이 아빠가 꼬박꼬박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어찌나 열 받는지… 얼른 이 상태가 마무리되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봤으면 좋겠구나.
….
아빠가 천선란 님의 소설들을
여럿 읽어보았는데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나은 것 같았단다. 신간을 내고 인터뷰를 한 것을 봤는데, 장편을 한편 계획하고 계신다고 했어. 그 장편을 기대하면서 오늘
독서편지는 이만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그녀는 그 일대의 파수꾼으로 삼십삼 년을 보냈다.
책의 끝 문장: 햇빛 가림막 아래서 불을 피우고 있는 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자연은 반복돼, 모우. 소멸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탈각(脫殼)을 집어삼키며 재생하고, 회복하고, 되살아나는 거야. 자연의 시간은 우리가 달라. 유한한 시간에 갇힌 건 인간뿐이야. 인간은 자연에서 떨어져나왔어. 아주 한때 하나였겠지만, 인간의 언어가, 언어를 가진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이 생태계의 이방인이 된 거야. - P33
초우, 현혹되지 마. 실패한 것에는 이유가 있어.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자세히 들여다봐. 언어가 장착되고, 그리하여 많은 것은 정립되고, 끊임없이 전달되면서 세상은 전쟁과 빈곤, 파괴와 몰살, 멸종의 길을 걸었어. 시야는 좁아지고 감각은 둔해졌지. 언어에 지배당한 인류의 끝은 자멸이었다. 우리의 뇌는 언어를 탈락시키며 발전했어. 언어가 통제했던, 최초의 인류가 가졌던 감각을 다시 깨웠다. 우리의 소리는 언어에 정복되지 않기 위한 저항이다. 언어가 생겨나고 규칙이 정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이지. 지켜라. - P49
"언어를 알게 되면서 엄마도 나와 같은 같은 시간을 살게 되겠지. 느려지고, 멀어지고, 작아지고, 힘겨워지겠지. 이건 저주야. 맞아, 저주가 맞아. 기껏 자연이 인간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저주의 주문이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영원히 말의 미로 속을 떠돌다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인간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러길 바라." 모우가 초우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의음으로 초우에게 속삭인다. 엄마, 영원의 없어. 가려진 세상을 제대로 봐. 인간은 진화하지 않았어. 그의 말이 맞아. 나는 인간의 저주야. 그러니 우리의 만남부터 언어로 새겨보자. 모두가 볼 수 있게. 그 시작은 엄마의 말이 좋겠어.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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