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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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정지아 님의 신간 에세이를 읽었단다. 아빠가 정지아 님의 책은 이번에 세 번째구나. 앞선 두 작품이 너무 좋아서 신간 소식에 바로 주문했단다. 이번에 나온 책은 에세이란다. 책 제목은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책 제목에 느껴지는 한 글자 단어를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이 떠오를 거야. 너희들처럼 어린 이들에게는 이 안 떠오르겠지만 말이야. 술을 먹어본 이들이라면 책 제목을 보면 술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구나. 그래, 이 책은 술에 대한 경험담을 적은 글이란다. 술에 대한 경험담으로 책 한 권을 낼 정도면 지은이 정주아 님은 애주가가 아닐까 싶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이런 애주가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알코올중독은 아닌 것 같구나. 술을 좋아하지만 적당히 술을 즐기고 절제하실 줄 아는 그런 분인 것 같았어.

지은이 정지아 님은 고향이 구례인데, 아빠도 구례에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구례라는 곳을 좋아한단다. 너희들도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구례에 여행을 간 적이 있어. 그리고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서 하룻밤 잔 적도 있고, 노고단 꼭대기에 올라가서 멋진 풍경도 감상을 했었잖니. 아마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기억이 날 거야. 너희들과 함께 간 것 이외에도 아빠는 여러 번 갔었단다. 주로 지리산 등반의 출발지로 갔었지. 아빠가 산을 많이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지리산은 참 좋더구나.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큰 산답게 나를 안아주는 그런 느낌도 받았어. 다녀오면 다리가 아파서 며칠 절룩거리기도 하지만, 그 바람, 그 냄새, 그 경치는 잊을 수가 없단다. 지은이 정지아 님은 그런 구례가 고향이라고 하시고, 타지 생활하시다가 지금은 다시 구례에서 생활하신다고 하니  좀 부럽구나. 정지아 님도 지리산을 무척 좋아하셨나 봐. 타지에 사셨을 때도 지리산이 그리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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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그 시절, 나는 엄마보다도 아빠보다도 지리산이 그리웠다. 백운산을 뒷산으로, 지리산을 앞산으로 보고 자란 탓인지 모른다. 서울 살 때도 나는 언제나 산 밑에서 살았다. 집을 고르는 조건의 첫째가 산이었다. 돈 없던 대학원 시절에는 북한산 밑에 살았고, 그 뒤에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이어지는 곳에 살았다. 등 뒤에 산이 버티고 있어야 숨이 쉬어졌다. 서울 사방이 산인데 가진 것이라곤 시간밖에 없는 수배자가 왜 산에를 못 갔냐고? 그 시절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산에 가면 이렇게 적힌 플래카드나 푯말이 붙어 있었다.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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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절 학생 운동을 해서 지명 수배를 받고 3년간 숨어 지낸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지리산이 너무 그리워 수배자의 신분으로 무작정 지리산을 갔었다고 하는구나. 신분을 숨긴 채 뱀사골 산장에서 혼자 패스포트라는 싸구려 양주 한 잔 하고 있었는데, 정지아 님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대. 그렇게 숨어 다녔는데, 지리산 산골짜기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다니알고 봤더니 그날 그곳에 묵었던 다들 이들도 노동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하는구나. 오랜 시월이 지나고 그들은 기억나지 않고 뱀사골 산장에서 마셨던 패스포트만 기억에 남는다고

 

1.

태어나서 처음 술을 마신 날은 다들 기억할 것 같구나. 고등학교 때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다들 먹었단다. 고딩 때 다들 조금씩 겉멋이 들어 있었고, 그 겉멋을 부리기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술이었으니아빠도 친구들과 맥주를 처음 먹어봤는데, 탄산 음료를 먹지 않던 아빠는 맥주 한 모금을 먹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 지금이야 가끔씩 시원한 맥주를 즐기기는 하지만 말이야. 지은이 정지아 님도 처음 술을 함께 한 기억을 이야기해주었단다. 3 겨울방학 대입 시험을 끝나고, 친구들과 밤새며 놀던 시절, 지은이의 부모님이 술상을 차려 주시고 자리까지 비켜주신 에피소드그 글을 읽는데, 괜시리 아빠도 눈이 뜨거워지더구나. 그래, 그렇게 친구들과 밤샘 이야기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적이 있었지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있어 보이는데 갈 수 없다는 것이 슬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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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내 예감이 옳았다. 영원할 것 같던 청춘은 참으로 짧았다. 우울하다,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한탄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청춘이 아니었다. 청춘을 함께했던 친구 중 둘은 미국에 있어 얼굴 보기 어렵고, 국내에 있는 친구들도 각자의 일이 바빠 얼굴 보기 어렵다. 드문드문 안부 전화나 주고받는 정도다. 그래도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믿기지 않거나 어색한 날이면 포천에서 그날 밤이 떠오른다. 쓸쓸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것, 그게 청춘이었구나, 그때는 정작 그걸 몰랐구나, 무릎을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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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정지아 님은 술 종류에 관계없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특히 양주를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시바스리갈, 조니 워커 블루, 오량 살루트, 맥켈란 1926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고, 위스키, 보드카 등에 관한 에피소드들도 있더구나. , 아빠는 양주는 너무 독해서 잘 안 먹었는데, 지은이 정지아 님께서 너무 예찬을 하시다 보니 아빠도 그런 술들을 한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구나. 술까지 땡기게 하는 책이로구나. 술 회사들이 이 책에 광고비를 좀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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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다 보니 아무래도 친구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해주더구나. 그러면서 아빠의 옛 추억 속의 사람들도 많이 생각나게 했어. 아빠가 최근에는 술자리가 많지 않아서 아빠의 술에 관한 추억은 거의 오래 전 일이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단다. 다들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이 책은 지은이 정지아 님의 글 솜씨로 재미를 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추억을 잔뜩 소환해 주었단다. 그것이 더욱 좋았어.

작년에 처음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처음 알게 된 정지아 님. 그 동안 어디 숨어 계셨던 건 가요? 정지아 님의 책들이 다 재미있구나. 이 책에도 소개 된 <빨치산의 딸들>도 조만간 읽어봐야겠구나. 이 책 때문에 수배를 당하기도 하셨다고 하는데, 책 제목부터 강렬하구나.

 

PS,

책의 첫 문장: 오래전, 부모님 이야기를 <빨치산의 딸>이라는 실록으로 쓰고 수배를 당했다.

책의 끝 문장: 이 책을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과 나의 블루와 요즘 나의 벗이 된 참이슬에게 바친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렇게 속절없는 게 아닐까. 무슨 일로 심사 복잡한 날이면 고립된 우주 같던 큰아버지의 방이 떠오르고, 큰아버지에게 술 한잔 대접하지 못한 게 마음에 얹히고, 위스키가 아닌 소주가 그리워진다. 위스키로는 달래지지 않는, 소주로밖에는 달랠 수 없는 어떤 슬픔이, 우리 민족에게는 있는 모양이다. - P106

이런 젠장, 달팽이가 존나 빨라 봤자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작가로서의 내 인생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날 존나 빠른 달팽이는 시바스리갈 700밀리 한 병을 다 비우고 꽐라가 되었다. 가관이었겠지만 뭐 괜찮다.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 유일한 목격자인 A는 맥주 세 캔에 취해서 나보다 빨리 기억이 끊겼고, 내 기억도 끊겼으니, 뭐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쿨하게. 어디에 가닿건 존나 빨리는 달려보자. 그게 그날의 결론이었다. - P164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보다 깊고 넓다고 생각했던 A 또한 나와 똑같이 청춘의 허세를 부렸을 뿐이라는 걸. 청춘은 허세다. 그러니까 청춘이지. 스무 살 언저리의 A는 인생도 문학도 독고다이, 쓸쓸하게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 그런 찬란하게 유치한 마음으로 홀로 걷고 홀로 마셨던 것이다. - P195

다정한 제자는 더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빈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그날 나는 다정에 대한 오랜 갈급함을 버렸다. 다정한 사람도 무심한 사람도 표현을 잘 하는 사람도 못 하는 사람도 다 괜찮다. 각기 다른 한계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니까.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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