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혹은 나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예 이유가
없든가. 혹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평균적인
사람은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합리적인 윤리학을 만들어 낸 다음, 그것에서 결점이 발견되었을 때 적절한 수정을 가한다고? 그건 순수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그들의 인격은 자기들이 제어할 수 없는 영향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본인이 그것을
원하고, 또 그것에 의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198)
문제는… 둘 중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당신이 관측을 행하기 전에는, 파동함수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파동함수는 단지 50대50의 확률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가르쳐 줄 뿐이에요. 하지만
일단 당신이 관측을 행한 후에는, 다시 한번 그 계를 관찰하더라도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와요. 처음에 상자를 들여다보았을 때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면, 다시 들여다
보았을 때도 여전히 죽어 있을 거라는 얘기죠.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관측한다는 행위가, 각기 다른 가능성을 대표하는 두 개의 파동함수의 혼합을 단 한 가지의
가능성만을 대표하는 ‘순수한’ 파동, 그러니까 고유 상태라고 불리는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파동함수의 수축’이라고 불리는 현상이죠.
(281)
그리고 만약 당신이 개개의 광자가 어떤 진로를 취하는지 관측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 계를 하나의 고유 상태로 수축시키고… 간섭 패턴을 파괴하고, 홀로그램을 망쳐버릴 거예요. 하지만 두 줄기의 광선이 방해를 받지
않고 다시 하나로 합치게 놓아둠으로써 두 개의 고유 상태들이 상호작용할 기회를 준다면, 홀로그램은 사라지지
않고 양쪽의 고유 상태들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확고한 증거로서 영구히 남게 되죠.
(322)
이봐요, 걱정하지 말아요. <ASR>는 <버블>의 존재 이유가 인간에 의한 가능성의 고갈을 방지함으로써 우주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당장 전 세계에 발표하지는
않을 테니까. 사람들은 설명이 없었어도 <버블>이 출현한 것만으로도 난리를 쳤잖아요. 진실이 너무나도 폭발력이
큰 탓에, 사람들이 그걸 오해하는 쪽이 위험할지, 아니면
그걸 제대로 이해하는 쪽이 더 위험할지 갈피를 못 잡겠군요. 인간의 지각이 우주 대부분을 소멸시켰다. 인생이란 다른 버전의 나 자신을 끊임없이 학살하고 행위다. 대중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던져주면, 그걸 중심으로 도대체 어떤 컬트 교단이 생겨날지 상상해 봐요.
(401)
그래서 나는 인간답게 기다렸다. 무의미하며 비생산적인
두려움에 고뇌하면서, 상상 불가능한 것을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만약
이 행성 전체가 영원히 확산 상태에 놓인다면,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는 것일까? 왜냐하면 수축은 아예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그 무엇도 현실이 될 수 없으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따로따로
체험하게 될까? 한 고유 상태당 고립된 의식이 하나씩 존재하는, 다세계
모델을 정말로 현실화한 듯한 방식으로 말이다. 혹은 모든 것을, 동시에
경험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들이 불협화음처럼 중첩되는 식으로? 그
어떤 미래에서도 모든 가능성들이 불협화음처럼 중첩되는 식으로? 그 어떤 미래에서도 수축 현상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왔든 일들-아니면 적어도
수축에서 살아남은 나의 기억들-은, 그런 우주의 본질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과거를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드는 수축 과정이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경험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