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그럼 최남선의 경우는 어떨까? 최남선은 최린과 근거리에서 독립운동에 긴밀히 관여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였다. 구한국 관료들을 민족대표로 내세우려는 시도가 실팼을 때, 최린은 자신을 포함하여 최남선과 송진우가 나서면 되지 않겠냐고 호기롭게 얘기했다. 하지만 최남선은 거절했다. 학자의 삶을 유지하는 게 꿈이니 정치운동의 표면에는 나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린이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부착했을 때에도 최남선은 선언서를 쓰긴 하겠지만 작성의 책임은 자신이 아니라 최린이 져야 한다고 했다. 얼마 후 이 사실을 안 한용운이 책임질 수 없다는 최남선에게 어떻게 선언서를 맡길 수 있느냐며 차라리 자신이 짓겠다고 했다. 최린은 최남선에게 계속 맡길 것을 고집하여 한용운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일본 유학 시절부터 친밀했던 사이이기에 여러모로 속상했을 것이다.


(65)

전 민족이 참여하는 대규모 독립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날의 결정은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남았다. 그들의 결정은 끝까지 이해받지 못했고, 격렬한 불협화음을 낳았다. 민족대표 33인은 민족대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학생과 시민 앞에 서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대규모 독립운동의 전 과정을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독립선언을 발표하는 것만으로 한정했다. 독립을 선언한 이후 구체적으로 진행될 독립운동에서 직접 지도하는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기획한 독립운동에서 스스로 이탈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탈인지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68-69)

민족대표들이 세운 독립운동 계획은 완전하지 않았다. 선언서를 기초하고, 선언서를 배포하고, 조직의 힘으로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 가능한 몇몇 지역의 시위를 조직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할 수 없었다. 많은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독립을 선언한 후 다음 계획도 치밀하지 않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수정할 계획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곳곳이 비어 있었고, 곳곳이 허점투성이였다. 그러나 결핍은 참여를 낳았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부족함을 느낀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스스로 빈틈을 메워나갔다. 독립운동은 그렇게 민족대표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92)

우리를 외롭다고 말하지 말라. 16억의 양심이 우리를 후원한다. 우리를 약하다고 말하지 말라. 2천만의 심인(心刃, 마음 속 칼날)은 우리의 무기다. 아아, 세계는 바야흐로 정의와 인도 위에 일대 부활을 수행하려 한다. 조선과 조선인은 이제야 생존과 존영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지니고 있다. 거듭 말하겠다. 시대는 개화하고 있고 조선인은 자각했다고. - <독립통고문>


(120)

손병희 등이 파고다공원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심판사의 질문에 강기덕이 답했다.

마음에 불평이 있었소.”


(136-137)

청주경찰서 경부 이성근(33)은 인종익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체포한 지 몇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아무리 두들기고 매달아도 묵묵부답이었다. 부풀어오른 눈꺼풀을 들어올릴 때 간혹 보이는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 쉬이 비밀을 털어놓을 리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아는 그였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았다. 두드리고 매달다가 살살 어르고 달래면 결국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없는 것까지 털어놓는 게 인간이라고, 여태껏 그렇지 않은 인간은 본 적이 없다고 굳게 믿었다. 단지 시간이 남들보다 좀더 오래 걸릴 뿐, 인종익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그였다.


(174)

동혁이 예심판사 앞에 섰다. 예심판사가 묻는다.

피고는 학생이면서 어째서 이번 계획에 가담했는가?”

동혁이 답했다.

난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습니다.”


(219)

예심판사가 김백평에게 물었다.

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면 독립이 된다고 생각했나?”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를 부르며 조선인이 독립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발표하면, 일본 정보나 세계 각국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독립을 희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학생이니 다른 것은 모릅니다. 다만 조선은 4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일본과 병합되었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원래대로 독립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243-244)

어머님! 우리가 천 번 만 번 기도를 올리기로서니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려질 리는 없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목을 놓고 울며 부르짖어도 크나큰 소원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도 없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랬다. 그 큰 힘이 있어 역사가 앞으로 나갔다. 아무리 큰 폭력과 억압이 있어도 그 힘을 누를 수 있는 건 고작 10, 20년뿐이었다.

심대섭은 그 큰 힘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만세 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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