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8)
사진은 대체로 지시 사항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토는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순종의 표정은 미소도 아니고 찡그림도 아니고, 그 양쪽을 다 섞은 것도 같았다. 이토는 비서관을 불러서 같은 앵글로
찍은 다른 사진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다른 사진에서도 순종의 표정은 마찬가지로 모호했다. 다시 찍을 수는 없었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이 사진을 공포하면 정책
효과가 클 것이었다. 이 사진이 조선 민심의 상처를 자극하겠지만 위력으로 압도하는 힘이 있을 것이고, 그보다도 폭민과 양민 사이에 장벽을 쌓아서 폭민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낼 것이라고 이토는 판단했다. 남행의 성과는 작지 않았는데, 그 크기는 서서히 나타날 것이었다.
(69)
김아려는 대문에서 남편과 작별했다. 분도는 방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헤어질 때 무슨 말을 했는지 김아려는 기억하지 못했다.
안중근은 문중 사내 몇 명과 함께 새벽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아려는 남편이 결코 땅의 속박에서 풀려나지 못하리라는 예감에 눈물을 흘렸다. 마을 어귀까지
따라온 사내들은 개울가에서 돌아갔다.
(159)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