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관계란 상대적이다. 어느 관계에서는 내가 우월한 입장이지만 다른 관계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순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약한 자에게 유독 가혹하게 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언젠가 더 강한 자가 나타나면 호되게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응립여수 호행이병(應立如睡 虎行以病)’이라는 말이 있다.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라는 뜻이다. 강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언제나 조심하며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진정한 고수는 절대 약자 앞에서 허세나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72-73)

송명시대의 학자 정자(程子) <논어>를 읽은 사람을 크게 넷으로 나누었다. <논어>를 읽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다 읽은 뒤 한두 구절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 다 읽은 뒤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논어>를 읽기 전에도 이러한 사람인데 다 읽고 나서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 즉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독서는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앎으로 승화되어야 하고, 그 앎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 속에서 진정한 보석을 골라내어 자신의 삶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급변하는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지식의 전사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87)

법이 항상 약자를 보호하는 건 아니다. 이처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음에도 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더 곤란을 겪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이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라고 말한 데에는 이처럼 약자 스스로 노력하여 원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을 것이다.


(126)

법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규칙인데 그 규칙을 제대로 아는 사람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규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협박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행위임에도 이런 일들은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살면서 누구나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때 명심해야 할 것은 혼자 앓지 말고 주위에 적극적인 자문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고 당할 수야 없지 않은가.


(136)

당장 오늘부터 대화의 방식을 바꿔보자. 내 말을 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에 대해 묻고, 그 질문에 대한 상대방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다. 이렇게 딱 한 달만 해보자. 상대방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얻음과 아울러 당신은 사려 깊은 사람으로 각인될 것이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올리버 웬델 홈즈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다.


(183)

완장을 찬 듯 어깨에 힘을 주며 임시로 주어진 권력을 마구 휘두른다면 결국 사람도, 자리도 모두 잃고 만다. 권력이란 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권력에 눈이 멀어 섣부른 힘을 행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상황과 위치가 바뀔지 모를 일이다. 기억하자.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악역도 현명하게, 최선을 다해서.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잃어선 안 될 것이다.


(262)

수십 권의 책을 읽어 지식을 쌓고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바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나 자격증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에 불과하다. 임상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과 지혜까지 겸비해야 진정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 정도 수준이 되어야 책임 있는 진단과 조언이 가능해진다. 책에서 배운 것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어설픈 전문가가 초래하는 위험은 생각보다 크다. 나의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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