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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의 황소
한이리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아빠가 읽은 책은 한이리 님의 <게르니카의 황소>라는 소설이란다. 이 책은 독특한 소설 제목과 먼저 읽은 이들의
높은 평점으로 아빠의 눈길을 끈 책이란다. 그리고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스토리부문 대상작이라고 하였어. 이 소설의 제목은 누가 봐도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에서 따 온 것을 알 수 있었단다. 아빠도 그 그림의 제목만 알았지, 자세한 내용은 몰라서 구글링을 좀 해봤더니 ‘게르니카’라는 그림은 스페인 내전 당시 게르니카 지역을 독일군이 비행기로 폭격한 참상을 기리는 마음으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구나. 그 크기가 349.3 x 776.6 cm나
되는 엄청난 크기라고 하더구나.
그런데 왜 이 소설에 그 그림에서 따왔을까, 궁금했단다. 지은이는 한이리 님이라는 처음 알게 된 분이었어.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스토리부문 대상작이고, 평점이 너무 좋아서 아빠가 너무 기대를 하고 책을 펴서 그런지, 그 기대에는 좀 못 미쳤단다. 아빠의 취향과 좀 안 맞는다고 할까?
1.
한국에서 부모님을 따라 미국 뉴욕으로 이민은 온 소녀. 신경질환을
겪던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딸도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 엄마는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혼자 남은 딸은 정신병원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그 딸은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엔 열 살 이전의 기억을 하나도 못하고, 심지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그 딸을 치료하던 의사 칼 벤헴은 그 소녀를 양녀로 입양하였고, 이름을
케이트라고 지어주었어. 케이트 벤헴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칼
벤헴에게는 친 딸 레이첼과 친아들 댄이 있었는데 레이첼과 댄은 케이트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단다. 케이트는
그 사건의 트라우마로 정신 질환을 겪고 약을 주기적으로 먹어야 했어.
그런 케이트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을 보면 안정을 찾았어. 그래서 칼 벤헴은 케이트의 생일 선물로 ‘게르니카’ 그림을 주었어. 케이트
방의 한 쪽 면을 ‘게르니카’로 가득 채웠지. 그 이후 케이트는 게르니카 그림 속 황소가 뛰쳐나오는 환상을 겪곤 했어. 그러다가
그림을 그리면 안정을 찾곤 하는데, 케이트의 그림이 수준급이었단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버지 칼 벤헴의 소개로 그가 근무하는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상대로 그림 치료 강의를 하기도 했단다.
케이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약을 먹지 않기도 했는데 그 때면 아버지한테 혼나고
다시 약을 먹었단다. 심지어 어쩔 때는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어.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약을 먹지 않아서 다시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했어.
2.
그런 병원 생활이 싫어서 탈출을 하고 친구 니콜의 집에서 숨어 지냈어. 그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꿈을 너무 생생히 꾸었단다. 그리고 케이트 자신도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어. 꿈속에서 알게 된 에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에린이
그린 그림이 엄청났고, 꿈속에 본 에린의 그림을 케이트가 다시 그렸어.
그런데 그 그림들이 그야말로 대박을 치게 된 거야. 꿈 속의 에린은 자신의 그림을 훔쳤다고
했어.
이 때부터 소설은 지금 이야기가 케이트의 꿈 속에서 일어나고 이야기인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인지 읽는 이들도 혼란스러웠단다. 에린이 정신병원 보일러실에 갇혀 있었는데, 케이트는 그 에린을 구출해 주고 시골의 한 별장에 지내게 하면서 그림만 그리게 했단다. 어찌 보면 케이트가 다시 에린을 가두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 아무튼
에린이 그린 그림들은 케이트의 이름이 붙인 채 고가에 팔리게 되었어. 사실 케이트가 현실에서 다시 그린
그림들이지만, 이미 케이트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어.
….
그런데 있잖니… 이런 이야기는 결말부에 가서 대 반전을 이루게 된단다. 지금부터는 아빠의 편지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나중에 이 소설을 읽을
마음이 있다면 아래 편지는 안 읽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케이트의 열 살 이전의
기억들 있잖니. 그게 모두 거짓이었어. 케이트는 열 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상실했고, 양아버지 칼 벤헴한테 들은 것들이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어.
모두 칼 벤헴의 짓이었어. 칼 벤헴은 아동성애자란다. 그가 납치 후 가둬서 죽인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었어. 그가 케이트에게
약을 먹인 것도 정신 질환 치료가 아닌, 옛 기억을 떠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수단이었어. 케이트의 부모님은 죽었냐고? 그렇지 않았어. 그들의 식구들은 여전히 코리아타운에 살고 있단다. 딸을 잃은 슬픔을
안은 채 말이야. 그리고 칼의 결말은 이 사실을 알게 된 케이트의 의해 끝나게 된단다.
…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마지막 예상치 못했던 반전은 괜찮았지만, 소설 중반부 꿈과 현실을 어지러움이 아빠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머릿속에서
그려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단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기분일까?
PS:
책의 첫 문장: 어머니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샤넬 No.5의 향기를 맡았다고 한다.
책의 끝 문장: 다시는 그 어떤 환상에도 속지 않도록 두 눈을 똑바로
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