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여섯 번째 책 <토니오 크뢰거>를 읽었단다.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있어서 언제 다 읽나 싶었는데, 어느덧 여섯 번째구나.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이라는 작가의 중편 소설인데, 아빠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마의 산>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사람이란다.
지은이 소개를 보니, 1875년 독일에서 태어나서 1955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이 시절 독일이면 히틀러를 빼놓을 수 없는데,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외국으로 망명 후 나치 정권을 비판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1929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읽을 책들이 많아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가 노벨 문학상을 타는데 큰 역할을 한 <마의
산>도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1.
제목 토니오 크뢰거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단다. 이 소설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었어. 토니오 크뢰거는 영사의 아들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났단다. 학창시절
토니오는 동경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어. 한스 한젠라는 친구인데, 아버지가
사업가라서 이 집안도 부유한 집안이었고, 한스는 우등생에 승마도 잘하는 엄친아라고 할 수 있었지. 그에 비해 토니오는 학교 성적도 안 좋았어. 하지만 둘은 절친이었고, 특히 토니오가 한스를 엄청 좋아했어. 그것이 살짝 우정을 넘어서는
느낌도 들어서 잠깐 퀴어 문학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하지만 좀더 자라나 열여섯
살이 된 토니오는 잉에보르크 홀름이라는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저 짝사랑으로 끝이 났어. 토니오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곧바로 재혼해서 집을 떠나면서
집안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토니오도 고향을 떠나야만 했단다.
…
다시 몇 년이 흐르고 토니오는
등단을 해서 정식 작가가 되었단다. 어렸을 때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책 읽는 것을 엄청 좋아했었는데 결국 작가가 되었구나.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라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리자베타는 화가였어. 문학가와 예술가 사이의 깊은
대화는 책이 갑자기 어려운 책으로 만들기도 했단다. 둘 간의 대화를 통해서 문학가로서 지은이 토마스
만이 하고 싶었던,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를 다 들려주는 듯 했단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책이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던데, 여자 친구와 이런 심오한 대화를 나누었다니… 그런데 왜 그는 가슴에서 나오는 따듯한 감정이 진부하고 쓸모 없다고 했을까.
너무 평범하게 살지 말라는 소릴까.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한테 버림받아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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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고, 근본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소재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미학적 형상물을 만들어 내려면 유희적이면서도 차분한 태도로, 우월한
입장에서 이러한 소재를 짜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말하려는 내용에 너무 집착해서, 그로 인해 당신의 가슴이 너무 따뜻해진다면 당신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격하게 되고 감상적으로 되며, 다듬어지지 않은 것, 아이러니가 결여된 것, 양념이 덜 된 것, 지루하고 진부한 것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만을 보일 거고, 결국 당신은 좌절하여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겁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거니까요, 리자베타. 감정 말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감정은 언제나 진부하고
쓸모없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망가진, 우리의 정교한 신경
조직의 발끈하기 쉬운 예리함과 차가운 황홀함만이 예술적인 것입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거나 비인간적으로 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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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을 읽다 보면, 심리적으로 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여자친구가 한마디 명확하게 해주더구나. 당신도 한 명의 시민이다, 그저
길을 잘못 든 시민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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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있을 것 같기도 해요. …… 토니오, 난 당신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오늘 오후에 한 모든 말에 알맞은 대답을 해 드리지요.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말하지요! 그 해답은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당신은 누가 뭐래도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요?” 그는 이렇게 물으며 약간 주저앉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요? 충격이 크겠죠. 또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그러니 형량을 조금 줄여 주려고 합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당신은 <길을 잘못 든 시민>입니다, 토니오 크뢰거-<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이지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그는 단호한 태도로 일어서더니 모자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고맙습니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이젠 안심하고 집에 갈 수 있겠습니다. 난 처리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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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니오는 글을 쓰기 위해
덴마크 여행을 나섰단다. 가는 길에 고향이 있어서, 오래
전에 자신이 살았던 집도 들러보았단다. 그곳은 공공도서관으로 변해 있었어. 그런데 고향에서 그는 경찰에서 도주자로 의심받고 심문까지 받았단다. 기분
좋게 고향을 들르려고 했으나 자신도 평범한 시민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단다. 자신은 특별하고, 때론 고뇌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데 말이야. 그리고 덴마크의 한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누가 참석했는지 알아? 자신이 어렸을 때 동경했던 친구 한스 한젠..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이 한때 짝사랑했던 잉에보르크 홀름. 둘은 연인 사이가 되어 행복한 커플로 여행 온 듯했어. 반가운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는 척은 하지 않았어. 잉에보르크가 그를 본 것 같았지만 말이야. 그 자리를 뜬 토니오. 그는 자신만의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그리움과 질투와 경멸이 있지만, 충만한 행복도 있다면 말이야.
…
아빠가 소설가가 아니고 예술가가
아니라서 모르지만, 토니오의 고뇌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예술가와
소설가도 어차피 이 세상에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니 경계를 너무 그으려 하지 말았으면 하는구나.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갑갑한
도시의 상공에 겹겹이 낀 구름 뒤에서 겨울 해가 우윳빛으로 희미하게, 애처로운 빛을 내며 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그 속에는 그리움이 들어 있고, 그리고 우울한 질투와 아주 조금의
경멸과 순결하기 짝이 없는 더없이 충만한 행복감이 들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