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산업문명 초기에 전체 육지의 14퍼센트에 불과했던 인간의 서식지가 77퍼센트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수치가 모든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지구 일부를 점유하는 조건 아래 지구와 균형을 유지하던 종(, species)으로서의 인류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이 되자 모든 병리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인간 중심적 행성화(anthropocentric planetization)라 부를 수 있고, 기후변화는 그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53)

지구 시스템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비선형적으로 작용한다. 환경의 비선형 변화가 갖는 위험은 현재 물리적으로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 나갈수록 증가한다. 어느 부분에서 언제 티핑 포인트에 도달해 재앙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가령 기온이 1.5도를 넘을 경우, 빙하가 녹아서 전 지구적으로 해수면이 높아질 뿐 아니라 산악지대 영구동토층이 녹아서 매장되어 있던 온실가스가 방출될 수 있다. 결정적인 위험 요소다.


(83)

정신이라 유기체들이 뇌와 고등신경계를 발달시키기 오래 전에 시작된, 생명의 복합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중요하다. 자연도 정신적 존재다. 정신은 생명 현상의 한 측면이다. 정신이란 살아 있음의 정수다. 생명계의 조직 원리들은 그 본질에 있어 정신적이다. “생명의 모든 수준에 있는 물질 내부에는 정신적인 것이 존재한다.” 카프라는 베이트슨이 생물학이 인간과 자연의 공통점에 주목해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처음으로 극복했다고 평가한다.


(115)

지구법학은 생태위기에 답하기 위해 창안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법학이다. 지구법학은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지구와 인간의 상호 증진적 관계를 지향하는 지구 중심적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면서 다듬어졌다. 산업문명과 근대법이 생명과 자연을 취급하는 생각과 방식에 근본적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세계관과 법 제도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123)

우리는 수십억 년의 시간 동안 만들어졌다. 그리고 1 2,000년 가까운 홀로세 기간에 적정 기후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100년도 안 되는 눈 깜짝할 새에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지금의 기후위기와 전염병을 우리 책임 밖의 일이라 할 수 없다. 기술이 해결해주리라고 쉽사리 낙관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주적 시간이다. 이 깊은 시간 속에서 먼 우리에게까지 이르는 역사적 사건들의 해석과 미래의 지침을 발견해 나가야 한다.”


(128)

생태대는 토머스 베리와 브라이언 스윔이 <우주 이야기>를 저술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지구 및 지구 공동체와 상호 증진하는 관계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생태대를 뜻하는 ‘EcoZonic’은 그리스어로 집을 의미하는 ‘oikos’와 살아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zoikos’의 합성어이다. 생물의 집’ ‘생물의 집’ ‘생명 공동체(지구 공동체)’라는 뜻이다. ‘생태(Eco)’생물(Zoe)’의 합성어는 통합적이고 생물학적인 용어다.


(171)

지구와사람은 학교를 목표로 한다. 만나서 배우고 가르치고 교류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지구와사람은 처음부터 학술 교육 문화의 세 영역을 미션으로 설정했다. 문화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작업을 통해 학습과정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대학 수준의 교육기관이 아니라 아주 작은 규모의 모임에서 이런 목표를 추구하며 운영해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자주 한계에 부닥쳐왔다.


(180)

인간은 지구가 낳은 의식이다. 지구의 이야기 속에서 아주 천천히 걸어나왔다 두 발로 서서 뒤뚱뒤뚱 무거운 머리를 천천히 흔들며, 두 손으로 쉴 새 없이 만지고 만들며 진화를 되돌아봤다. 이런 인간이 어느 날 눈이 멀었다. 지구의 생명체들이 죽어 지구에 묻히고 수십억 년의 세월을 거쳐 석유와 석탄 화석이 되었다. 인간은 화석을 파내어 탕진했다. 검고 끈끈한 화석이 얼굴을 뒤덮고 눈을 멀게 했다. 인간은 마음을 잃었다. 진화의 긴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이대로 가면 인간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가이아는 살아 있다. 눈을 잃어가면서 침묵하는 지구.


(184)

ESG라는 용어는 1992년 설립된 UN 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2004 6월에는 UN 글로벌콤팩트와 국제금융공사(IFC, 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 스위스 정부가 공동으로 발의한 이니셔티브 누가 이기는가(Who cares wins)’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UN 글로벌콤팩트는 20개 대형 금융 기관과 함께 기업들의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특히 주주들의 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해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그리고 거버넌스 측면의 사안을 관리해야 한다고 밝히며 ESG의 의미를 정의했다.


(188)

지구헌장과 현재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혹은 ESG 논의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자가 성장의 한계를 명백히 하고 자연과의 공존에 유의해야 한다는 생존조건을 명확히 한 데 반해, 후자는 우리 사회경제의 전체적인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현재 한국사회에는 탄소중립, 즉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에너지를 더 이상 쓰면 안 된다는 인식은 형성되었지만, 여전히 거대한 가속의 GDP 성장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이 가져올 미래 경제구조의 변화에까지는 아직 고민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11)

겸손은 반성적 자아가 충만한 상태다. 겸손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인간만이 정신적 존재라고 생각하며 우주와 지구를 물질에 불과하다고 업신여기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을 넘어 이들에게서 내가 비롯되었고, 지구의 지질시대 안에 내가 출현해서 살고 있다는 삶의 연속성과 거대한 통합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세계관은 거시적이면서도 가치에서는 인류의 겸손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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