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블로그 알라딘 서재에서 알게 된 책,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이란 책을 읽었단다.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양장본으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드는 시리즈인데, 이 책도 그 시리즈로 나와서 아빠가 선택하는데도 한몫을 했단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편안한 죽음이라니누가 죽음을 경험해봤다고 편안한 죽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해주거나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 그저 다른 이의 죽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과연 편안한 죽음이 있을까.

이 책의 지은이는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분인데 보부아르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름이구나.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소개를 보니, 꽤나 유명한 사람인 것 같은데 아빠는 그저 낯설지 않은 이름이라고밖에 할 수 없구나. 얼마 전 알라딘 서재에서 많이 소개되는 책 <2의 성>이라는 책도 이 분의 작품이더구나. 지은이 소개를 좀더 읽어보니 프랑스 콩쿠르 상도 수상하고 페미니즘 운동도 하시고, 사회문제에 있어서 시위도 직접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셨더구나. 그리고 유명한 철학자 사르트르와 계약 연애를 했다는 내용도 지은이 소개란에 있더구나. 평생을 열정적인 삶을 사신 분 같구나. 이번에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경험,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적은 글이었단다.

다들 어머니라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일 텐데 그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사람이 힘들 거야. 그리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경험일 테고 말이야.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이자 지은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읽게 되었단다.


1.

엄마가 욕실에서 넘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보부아르.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되는데, 그 일인칭이 지은이일 테니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냥 보부아르라고 할게) 병원에서는 대퇴부 경부 골절이 발생해서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어. 의사들도 낙관적인 소견을 보이면 세달 뒤면 뼈 붙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고 했어. 엄마의 나이 일흔여덟. 기력이 없으셔서 욕실에서 넘어질 수도 있는 나이. 보부아르는 병원에 있으면서 지나온 엄마의 고단한 삶을 떠오르기도 했단다. 쉰네 살에 아버지가 죽고 혼자된 어머니의 삶. 아버지가 그리 착하신 분이 아니고 속만 썩이다가 가셔서 그런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히려 더 열정적인 삶을 사셨던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 한 평생 삶은 억압의 삶이라고 할 수 있었단다.

=====================

(58)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 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

나이 드신 분이 병원에 입원을 했으니 이것저것 검사를 받아보게 되었는데, 뜻밖의 발견. .

그 동안 소화가 계속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악성종양이 소장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라고소장을 막고 있을 정도의 종양이라면 진행이 이미 한창 되었다는 의사의 말.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지만, 부모님이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인정하기 싫어할 거야. 그만큼 두려운 병이 암이란다.

=====================

(34)

. 그런 것 같았다. 심지어 암인 게 분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눈언저리에 든 멍이며 살이 빠지는 것 하며. 그런데 의사는 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아들이 미쳤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인정하는 이는 부모고,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인정하는 이는 자식이기 십상이다. 엄마는 평생 동안 암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해 온 만큼 나와 내 동생은 엄마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곤 했다.

=====================

….

하지만 엄마에게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단다. 말기암이라는 것을 환자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야 하는가는 오래 전부터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구나. 최근에는 환자에서 솔직히 이야기하고 치료를 해서 고치자고 희망을 주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는 환자에게 숨기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구나. 보부아르도 어머니에게 숨겼어. 어머니에게는 그저 복막염이 발견되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렇다고 병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는 병의 위중함이 커졌다 작아졌다는 반복하면서 몇 번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셨단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선택. 말기암이라서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수술을 한다면 생명 연장을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 이 경우 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은 의사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린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수술을 거부할 경우 쏟아지는 비난을 어찌 감수할 것이란 말인가.

=====================

(79)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굳어 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게 되면 엄마가 장폐색증을 견디면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게 뻔했다. 의상들이 안락사를 거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아침6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N박사에게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두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N박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자 특유의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나를 냉대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머니에게서 몇 년 더 사실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셈입니다라고. 내가 엄마를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의사의 수술에 대한 낙관적인 이야기를 듣고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였단다. 엄마는 여전히 복막염 때문에 수술하는 줄 아시고


2.

보부아르의 가족은 동생 푸페트가 있는데, 푸페트도 병원에 와서 둘이 함께 어머니 병상을 지킬 때도 있고, 번갈아 가면서 병상을 지킬 때도 있었단다. 병원 밖에 있을 때 임종이 다가왔다고 연락이 오고 병원에 가보면 다시 위기를 넘겨 안정을 취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 이런 것을 몇 번 경험하는 것은 가족들도 심한 스트레스일 거야. 죽음에 두려움과 이런 순간들의 괴로움이 교차하는 모순. 보부아르와 동생 푸페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더구나.

=====================

(106)

푸페트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지냈다. 나 역시 혈압이 높아 얼굴이 붉어진 상태다.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 특히나 힘들었다. 고통과 죽음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죽은 듯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시계를 매달아 둔 검은색 리본이 미미하게나마 움직이는지를 확인하게 위해 엄마가 입고 있는 하얀색 실내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심스레 관찰하곤 했다. 이게 마지막 경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위가 쪼그라들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

수술을 통해 조금 더 늦춰진 엄마의 죽음. 지은이는 그 늦춰진 죽음에게 자신도 얻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수술을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괴로움을 없었다고자칫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죄책감에 괴로워 했을 거라고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이처럼 힘든 경험이란다.

=====================

(136-137)

그러나 엄마의 죽음이 늦춰진 결과,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얻은 게 있었다. 그 덕분에 거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수많은 후회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는 동시에 반대로 자신의 현존 덕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 삶에서 더 크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어야 했던 존재,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 삶 전부에 해당하는 존재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가 다른 이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신을 잃을 전도로 아찔함을 자아내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한계-물론 한계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

….

수술을 통해 조금 늦춰진 엄마의 죽음은 얼마 못 가 현실이 되었단다. 보부아르는 병원 밖에 있어서 임종을 지키지 못했단다. 병원에 뒤늦게 도착한 보부아르는 엄마의 얼굴에 드리워진 죽음의 신만 보았을 뿐.

=====================

(151-152)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사랑, 우정, 동료애가 죽음이 야기한 고독을 능가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을 때조차 나는 엄마와 함께 있지 않았다. 엄마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속고만 살아온 엄마를 거짓말로 끝내 다시 한 번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운명과 공모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거부하고 죽음에 맞서 싸우던 엄마와 세포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엄마의 패배로 나 역시 쓰러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임종하는 자리에는 세 번씩이나 참석했던 나는 정작 엄마의 임종은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의 머리맡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조소를 머금은 채 음산하게 춤을 추던 죽음의 신을 보았다. 한 손에 낫을 든 채로 문을 두드린다는, 밤새워 듣던 이야기에 나오는 그 죽음의 신을, 낯설고도 끔찍한 모습을 하고서 머나먼 다른 곳에서 찾아온다는 죽음의 신을 나는 보았다. 죽음의 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입을 활짝 벌리고 턱뼈를 드러내며 웃던 엄마의 바로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제목은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고 했지만, 지은이도 이야기한단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고 말이야. 그래 맞아.. 편안한 죽음은 없어. 자신에게도…. 남겨진 이게도 말이야. 지은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죽음은 폭력일 뿐이야. 그것도 부당한 폭력.

=====================

(153)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이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

이 책은 죽음에 관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단다.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그 누구도 피할 것 없는 것. 그래서 누군가는 그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빠는 솔직히 말해 자신 없구나. 고통은 둘째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어찌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PS:

책의 첫 문장: 1963 10 24일 목요일 오후 4시에 나는 로마에 있는 미네르바 호텔 방에 있었다.

책의 끝 문장: 하지만 각자에게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나는 엄마를 말리는 데 애를 먹었다. 엄마는 베개에 몸을 기댄 채 내 눈을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매가리가 풀린 게야. 너무 피곤하고 진이 다 빠져버렸어. 내가 늙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단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면 일흔여덟이야. 완전히 늙어 버린 셈이지. 그러니 준비를 해야겠구나. 인생의 책장을 한 장 넘기려고 해."
- P22

엄마가 다른 이들에게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에 나를 조금 더 믿고 내게 마음을 더 써 줬더라면 우리 관계가 좀 더 좋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가 그러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복수심이 너무나 컸고, 치료해야 할 상처가 너무나 깊었던 까닭이다. 무언가를 할 때면 엄마는 늘 스스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길 거부해 온 엄마가 어찌 나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 사이가 나빠지지 않도록 태도를 꾸며 내는 데 있어서도 엄마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 때면 엄마는 무척 당황하곤 했는데, 이는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도록 교육받은 탓이었다. - P9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2-25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스럽고 편안한 죽음은 없겠죠? 마지막 문장이 너무 공감이 가네요~ 저도 죽음은 의연하게 받아들이긴 힘들거 같아요 ㅜㅜ

bookholic 2022-02-25 23:29   좋아요 0 | URL
네,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말을 즐겁게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