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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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천선란 님의 소설을 두 권 연속 재미있게 읽고 나서, 또 다른 책을 찾아 읽은 것이 이번에 읽은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란 소설이란다. 안전가옥 오리지널 중에 하나인데, 안전가옥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뱀파이어가 나오는 이 소설과 안전가옥과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 집 밖에는 뱀파이어가 있으니 위험하니까, 안전하게 집 안에만 있으라고 말이야

그래, 이 소설은 뱀파이어가 나오는 소설이란다. 뱀파이어 관련 소설과 영화는 정말 많고, 특히 트와일라잇 시리즈 같은 경우는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단다. 그런데 우리나라 작가가 쓴 뱀파이어 소설이 있나, 한참 생각해 보았는데, 아빠의 독서 이력으로는 잘 생각이 나질 않더구나. 따뜻한 SF를 써 오신 천선란 님의 뱀파이어 소설 또한 따뜻한 소설이더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도 전형적으로 차가운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만은 따뜻함이 느껴졌단다. 소설 <나인>에서는 평범한 지구인들 사이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식물 외계인에 대해 그렸다면, 소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에서는 평범한 지구인들 사이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그렸더구나.


1.

줄거리는 간단히 이야기해줄게. 인천 구시가지 철마재활병원이 있었어. 재개발 지역에 있어서 주변도 썰렁하고 음산한 분위기 마저 드는 곳이야. 이 병원에는 치매 환자나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단다. 그런데 이곳에서 연속 자살 사건이 발생하고 있단다. 모두 유서도 있고, 타살 흔적이 없어서 자살로 사건 종결 처리를 했지만, 최근에 갑자기 늘어난 자살이 이상하긴 했어.

형사인 수연은 이 점을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자살 사건이 일어난 병원을 조사했단다. 그리고 그 병원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보살펴 준 은심 할머니가 계셨어. 친할머니는 아니지만, 인연이 닿아 보살펴 주었는데, 지금은 서로 의지하는 그런 사이란다. 수연은 이 자살들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면, 은심 할머니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수사를 해보니 이상한 점들이 있었어. 대부분 투신 자살인데, 시신에 피가 별로 없는 거야. (눈치 챘지? 이 소설은 뱀파이어 소설이라니까.) 그리고 시신들이 건물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었어이상하군.

수연이 현장 탐방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여자가 그 곳을 서성거렸어. 완다라는 여자였단다. 우리가 좋아하는 <어벤저스 시리즈>의 완다와 이름이 똑같아 반갑네. 완다는 다섯 살 때 프랑스로 입양을 했고, 모르스와 클레어 부부의 보살핌으로 잘 자랐단다. 그러다가 16살 때 릴리라는 독특한 친구와 절친이 되었는데아빠가 릴리를 왜 독특한 친구라고 했냐면,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고 있었거든. 그래, 이 릴리가 뱀파이어란다. 그리고 나이도 수백 살이었어. 수백 살이 되어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는 것.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뱀파이어의 전형적인 특징 중에 하나지. 완다도 릴리와 친해지면서, 릴리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뱀파이들 중에도 착한 뱀파이어와 나쁜 뱀파이어가 있다고 하는구나. 뱀파이어들은 주기적으로 피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착한 뱀파이어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맛은 없지만 주로 동물의 피를 먹는다고 했어. 그리고 영화와 달리 뱀파이어에게 물렸다고 해도 뱀파이어가 되지는 않는대. 릴리가 한동안 피를 못하고 힘들어 할 때, 완다는 자신의 피를 릴리에게 주기도 했단다. 그만큼 완다와 릴리는 많이 친했어.

그런데 어느날 릴리가 다른 사람의 피를 먹는 것을 완다에게 들키고, 돌연 사라졌단다. 죄책감 때문인 것 같았어. 완다는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완다는 이후 릴리를 찾아 나섰단다. 뱀파이어들을 뒤를 쫓으면서 말이야. 일명 뱀파이어 헌터. 그런 완다가 철마재활병원 사건 현장에 온 거야. 수연을 만나 대뜸 한다는 이야기가 이 사건은 뱀파이어의 소행이라고 했어. 증거로 시신의 목에 구멍 두 개가 있고, 시신의 피가 적을 것이라고 했어. 수연은 이 황당무계한 소리를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시신에서 발견된 구멍 두 개를 보고 완다의 말을 믿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수연과 완다는 사건의 범인을 함께 쫓게 된단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요 인물 서난주. 어렸을 때 불우한 가정 환경에 가고 싶었던 의대를 가지 못하고, 간호사가 되었단다. 늘 가난에 찌들어 사는 난주는 불법으로 프로포폴을 주사해서 뒷돈을 벌기도 했어. 그리고 우연히 만난 뱀파이어 울란을 도와 병원 환자들을 자살하게 만들었단다. 그러니까 뱀파이어 울란이 이 사건의 범인이었던 거야.

이후 소설의 이야기는 완다와 수연이 이 울란을 쫓고 쫓기는 이야기들이 이후에 펼쳐지게 된단다. 뒷 이야기도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주면 좋았겠지만, 밀린 독서 편지도 써야 하고, 아빠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스포일러 방지 차원이라는 핑계도 대고아무튼 잘 마무리 되었다는 정도만 알려 줄게.

천선란 님의 소설들은 좋은 문구들이 많아서 좋았는데,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문장들이 많이 있었단다. 이런 글들이 공감하게 하는 글들은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정말 능력자인 것 같구나. 그런 글들 중에 세 개만 소개하고 오늘 독서 편지는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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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엄청난 힘을 가진 세력이 있다고 하자.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아메리카 대륙 정도는 며칠이면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데도 그런 세력이 있다는 걸 인간 사회 전체에 알리는 게 과연 옳을까?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런 세력이 있다는 걸 인간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대부분은 나쁘고 위험한 세력이니 조심하자고 생각하겠지만 인간은, 분명 그중 몇몇은 그 세력과 손을 잡을 거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내다 팔겠지. 네가 보기에는 어때? 그럴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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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밤하늘에는 별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유난히 밝은 별들이 있다. 저 많은 별들 중에서도 유달리 존재감을 드러내는 별들. 모리스는 그것이 별이 아니고 행성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완다는 그게 별이든 행성이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완다의 눈에는 전부 똑같아 보이는걸. 가까이 들여다보면 별도 다 같은 별이 아닐 텐데 멀리서 보면 전부 똑 같은 별이었다. 그래서 완다는 멀리서 보는 것도 좋아했다. 완다는 언젠가 모리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다 똑 같은 별로 쳐요, 멀리서 보면 다 똑같으니까, 그게 좋은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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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세계를 넓혀 간다는 건 피부에 실을 꿰어 늘리는 과정이다. 피부가 두꺼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사람일수록 세계를 넓혀 가는 데 거침이 없다. 그들은 세계를 넓혀 가면서 동시에 빠른 속도로 세상에 적응한다. 세상을 이용하고, 세상을 지배하기도 한다. 많이 넓히려면 세세한 것은 지나쳐야 한다. 황무지나 불모지여도 상관없다. 풀 한 포기 살지 못하는 세계라도 개의치 않는다. 피부가 두꺼운 사람은 전체에서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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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뱀파이어야.

책의 끝 문장: 시선이 닿지 않는 곳곳에, 세상의 어둠 면면에, 그들은 언제나 고독한 피 냄새를 맡고 있을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 끝에 몰린 사람들은 울지 않거든. 잊었다고 해야 할지 소용없는 걸 안다고 해야 할지. 영혼 없는 눈동자로 허공만 바라보며 하루를 까먹지. 슬플 때 눈물이 난다는 거, 그래서 울 수 있다는 거, 그 나름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야. 의욕을 잃은 사람들은 울지 않거든. 운다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울지 않으면 몸속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지를 못해. 그 수분 때문에 피가 아주 묽어지는 거지. 잘 숙성된 적포도주처럼. 그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각이 발달해서 그 고독한 피의 향을 맡을 수 있어." - P118

낮에 뜬 구름보다 밤에 뜬 구름이 더 예쁘다. 해는 바라볼 수 없지만 달은 바라볼 수 있고, 해는 별을 감추지만 달은 별과 함께 뜬다. 밤에 듣는 새소리는 귀가 아닌 마음을 두드리고, 낮 동안 움직이지 않던 나무들은 그제야 부스스, 몸을 털어 낸다. 고양이 눈치를 보느라 움직이지 못했던 들쥐와 그들을 노리는 맹금류의 눈이 소란스럽게 지나가고, 그것들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계절이 내려앉는다. 새싹과 꽃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랐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렇다. 부끄러움이 많은 것들은 낮이 아니라 밤에 움직였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면, 주변이 너무 환하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 P226

"그 사람을 떠나보내도 살면서 누군가를 또 만나게 될 테니까. 한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아. 누군가를 좋아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 바닥에는 외로움이 깔려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모두가 각자 외로움을 깔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외로움을 타인으로 치유할 수는 없단다. 다만 누군가를 만나면 나 하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을 뿐이지."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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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9 23: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문장들이 좋아요. 아직 천선란 작가 책은 못봤는데 관심이 가네요.

bookholic 2022-01-30 08:37   좋아요 4 | URL
네, 저는 아주 좋았답니다...
천선란 님께서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라고 하시는 생각도 좋구요~~
<천 개의 파랑>, <나인> 조심스럽게 추천해 봅니다...

scott 2022-01-30 2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뱀파이어가 나와서 아이들이 무서워 할지도 ㅎㅎㅎ
북홀릭님 설 연휴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福마뉘 ^ㅅ^

bookholic 2022-01-31 00:00   좋아요 1 | URL
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추천하지 않았어요 ㅎㅎ
scott님도 즐거운 설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