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는 일은 단지 음악 작품을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방면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우리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려는 시도다. 베토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인생을 조명하는 것이 음악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감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62)
베토벤 역시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찰나의 순간
듣고 끝나는 무언가가 아닌, 영원히 신화처럼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작품에 일일이 작품 번호를 매기고 엄격하게 관리했다. 작품 번호를 붙이지 않은
곡도 있지만 심혈을 기울여 애착이 가는 작품에는 꼭 작품 번호를 붙여 정식으로 출판했다.
(64)
침묵은 자신의 마음이다. 그 마음 안에 불필요한 생각과 감정이 가득
차 있다면 이어질 음악이 온전하게 느껴질 리 없다. 그래서 침묵의 순간에는 고요함과 평온함을 유지해야
하며, 그 깊은 안정감에서부터 에너지를 일으켜야만 모든 격한 감정들을 요동치게 만들 수 있다.
(88)
누구나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약점이나 트라우마가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강점으로 승화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현재 자신의 사정이 너무
불리하다고 해서 미래의 가능성마저 닫아버려서는 안 된다. 과거는 이미 끝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현재보다 더 중요한 시간은 없다.
과거의 시간에 매몰되어 절망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미래를 바꿀 현재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
(101)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제하고 나보다 남의 시선을 우선시하면서 연주하는 연주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면
좋겠다. 고전 음악가라고 불리는 그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유는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정신을 음악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이 세월을 관통해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치의 위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105)
시대를 앞서간 피아노 명인 호로비치 역시 비슷한 어록을 남겼다. 1986년 1월 23일,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콘서트 홀에서 한 기자가 호로비치에게 사람들이 마지막 낭만주의라 부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보다는 나를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최후의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개인적이지, 표준화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나에게는 나만의 견해가
있는 반면, 오늘날의 피아니스트들은 비평가들의 의견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죠. 나의 예술적 유산은 19세기에서 전수받은 것입니다.”
같은 기자가 음반 산업이 요구하는 완벽함을 강조하자 호로비츠가 보인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나의 연주를 매끈하게 손질하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가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더듬기도 하지 않습니까. 걸을
때는 넘어지기도 하죠. 한마디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108)
음악이야말로 표현이 자유로운 언어다. 사회가 문학을 검열하고 억압했을
때 마지막까지 자유롭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던 도구는 바로 음악이었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연주는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누가 연주하는지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그들은 기계처럼 악보대로 연주하는 수준을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곡을 재창조한다. 이그나츠 프리드만이 연주하기 시작하면 즉시 그임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나의 전폭적인 찬탄의 대상이다.
(109-110)
젊음이 가지는 눈부신 활력과 무모함은 그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장년의 지혜와 깊이 있는 열정은 장년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간혹 젊은 음악가들이 왜 벌써부터 하얀
머리가 난 철학가처럼 심오한 분위기를 풍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나간 젊음은 다시 오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이 20대 때 작곡했던 초기 피아노 소나타의
열정과 활기를 그대로 표현해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140)
음악에서 말하는 템포는 속도가 아닌 ‘시간’을 뜻한다. 이탈리아어로 시간은 템포(tempo), 영어로는 타임(time), 프랑스어로는 떵(temps)인데, 굳이 여러 나라 언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모든
단어들이 라틴어 ‘템푸스(tempus)’에서 유래된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여기서 ‘템(tem)’은 무언가를 자른다는 뜻으로, 즉 템푸스는 ‘시간을 자른다.’ ‘시간을 나눈다.’라는
뜻이라고 보면 되겠다. 절을 영어로 ‘템플(temple)’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자른다는 뜻의 ‘템’에서 유래되었다. 속세에서 떨어져 있다는 뜻에서 템플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