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인간의 마음은 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음으로 몸을 다스리지만 반대로 몸을 바로잡음으로써 마음을 잡을 수도 있다. 다산은 이것을 분명히 알았다. 다산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몸을 바로잡았고, 몸이 흐트러질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일생의 꿈을 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마음을 다잡고 몸을 바로잡는 수신을 이룰 때 꾸준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간다면 이윽고 품었던 꿈도 이룰 수 있다.


(38)

또 한 가지 다산의 가르침은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시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산은 이렇게 가르쳤다. “이제 너희들은 폐족(무거운 죄를 지어 출셋길이 막힌 집안)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해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폐족으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 독서는 사람에게 가장 깨끗하고 중요한 일일뿐더러, 호사스러운 집안 자체는 그 맛을 알 수 없고, 시골에 자제들은 그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다. 반드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가 있고, 너희들처럼 중간에 재난을 겪어본 젊은이들이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다.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모르면서 그냥 글자만 읽어 내려가는 것은 진정한 독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49)

개인의 수양은 물론 세상의 화평을 위해서도 음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음악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다산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사라지니 형벌이 가중되고, 전쟁이 자주 일어났으며, 원망이 일어났고, 사기(詐欺)가 성행하게 되었다. 일곱 가지 감정(희로애락애오욕) 가운데 그 일어나기 쉬워도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분노다. 답답하고 우울한 사람은 마음이 화평하지 못하고, 분노와 원한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형벌을 써서 기분을 통쾌하게 하면 일시적으로 풀릴 수 있겠지만, 음악을 듣고 화평해지는 것만 못하다.”


(70)

다산은 이렇게 가르친다.

문장이란 무엇일까? 학식이 안으로 쌓여 그 아름다움과 멋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몸에 윤기가 흐르고, 술을 마시면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어찌 갑자기 이룰 수 있겠는가? 중화의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우의 행실로 성품을 닦어, 공경함으로 지니고, 성실로 일관하되, 변함없이 노력해야 한다. 사서(四書)로 몸을 채우고, 육경(六經)으로 식견을 넓히며, 사서(史書)로 고금의 변화에 통달해야 한다.”


(83)

배움을 지식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하고, 출세와 영달의 도구로 생각하는 세태다. 하지만 덕으로 뒷받침하지 않는 지식은 오히려 자신을 망치고 집안과 나라를 망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맹자는 지식을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덕목(是非之心)’이라고 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다면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옳고 그름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 공자는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정작 행동은 불의하다면 더욱 비난 받아 마땅하다. 가식과 위선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98-99)

다산은 직접 쓴 <여유당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병은 내가 잘 안다. 나는 용감하지만 지모가 없고 선()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맘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해 의심할 줄을 모르고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기쁠 수 있다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꺼림칙해 참을 수 없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멋대로 돌아다니면서도 의심이 없었고, 장성해서는 과거 공부에 빠져 돌아설 줄 몰랐고 나이 서른이 되어서는 지난날을 깊이 뉘우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을 끝없이 좋아했으나, 비방은 홀로 많이 받고 있다. , 이것이 또한 운명이란 말인가? 이것은 나의 본성 때문이니, 내가 또 어찌 감히 운명을 말하겠는가? 노자의 말을 보건대, “신중하라, 한겨울에 내를 건너듯이. 두려워하라 사방에서 에워싼 듯이라고 했으니, 이 두 마다 말은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애듯 하므로 부득이 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는다. 사방에서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하기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


(130)

다산은 책을 접할 때 단순히 많이만 읽는 다독이 아닌 초서(抄書)를 강조했다. ‘초서란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서 직접 기록하며 책을 읽는 것이다. 당연히 느릴 수밖에 없다. 아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다산은 초서를 이렇게 설명하며 권했다.

학문의 요령에 대해 전에 말했거늘, 네가 필시 이를 잊는 게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초서의 효과를 의심해 이 같은 질문을 한다는 말이야? 한 권의 책을 얻더라도 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뽑아 기록해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266)

오늘날 지식 공부만 강조하는 세태에서 반드시 새겨야 할 지점이다. <악기>에 실려 있는 글이 상세하게 그 이유를 밝혀준다.

예와 악은 잠시라도 몸에서 떠날 수 없다. 음악을 이뤄서 마음을 다스리면 조화롭고 곧고 자애롭고 신실한 마음이 솟아난다. 조화롭고 곧고 자애롭고 신실한 마음이 생겨나면 즐겁고, 즐거우면 편안하고, 편안하면 오래가고, 오래가면 그것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면 신령스럽다. 하늘은 말을 하지 않아도 신실하고, 신실하면 노하지 않아도 위엄이 있다. 음악을 이룸으로써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284)

맹자는 맑고 신선한 새벽의 기운인 평단지기(平旦之氣)를 말했다. 생명이 되살아나는 새벽은 낮과 밤을 지내는 동안 잃어버린 마음을 돌아보기 좋은 때다. 매일 그렇게 새벽에 깨어 스스로를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조금씩 마음이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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