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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앉힌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지금도 일본과는 껄끄러운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10억 엔을 주었으니 이제 아무 소리 말고
소녀상도 철거하라는 일본 당국자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그 낯짝에 오물을 뒤집어씌우고 싶습니다. 2015년
말에 일본 당국자와 서툰 협상을 벌여 일본에 꼬투리를 잡힌 등신 같은 우리 정부 당국자가 한없이 원망스럽습니다.
우리 정부의 총체적 능력의 한계를 보는 듯한 비애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무능하면
그것은 국가의 위상 추락은 물론, 국가 존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이 결국 나라를 망친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위안부 문제 협상은 반드시 다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156)
“여기는 에스토루가 아니고, 우글레고르스크다. 이제부터 조선사람들은 조선말을 써도 좋고, 특히 소련 말을 빨리
배워라. 그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여라. 한 사람도 놀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조선에는 언제 보고 주마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다만
세상이 일본 사람들의 것에서 소련 사람들의 것으로 바뀌었을 뿐, 조선 사람들은 전혀 숨도 크게 못 쉬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일본 사람 대신 소련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기 시작했다.
물론 종전 직후의 소련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더 무섭게 을러대고 손찌검을 하고, 심지어
총을 쏘아 죽이기도 했지만 조선
사람에게는 그러진 않았다.
(263)
이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초의 각서(SCAPIN 822)에 이미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구일본인 점령지의 일본인 귀환 및 일본으로부터의 비일본 귀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및 동국의 지배하에 있는 영토로부터의 일본인 포로 및 일반 일본인의 귀환과 더불어
북위 38도 이북의 북조선 재일 조선인의 귀환에 관하여 본 협정을 체결한다.”
이러한 협정을 보면 사할린에 있는 조선인의 귀환은 처음부터 귀환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게다가 소련 지배하의 사할인 여러 항구에서 일본 귀국선에 승선시키는 일체의 권한과 책임은 소련관헌에게 있었다. 일본의 강제연행에 의해 사할린까지 끌려온 수많은 조선인들은 당연히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조선에까지 귀국시켜야
함에도 일본은 이를 깨끗이 외면했다. 패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을 법적으로는 일본인과 같이 보았고, 국적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었다. 그것뿐인가. 종전 직후 사할린의 조선인들은 연합군 총사령부로부터 ‘일본 국적을
가진 비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전범자로 처벌된 사례까지 있었다. 그러니
당시의 조선인은 이리 걸면 벌받아야 할 일본인이었고, 저리 걸면 절대로 귀국 대열에 끼지도 못하는 ‘특수 일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