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갓집은

초저녁이면 안팎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북쪽재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쨩쨩 쇳스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화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우란 배나무에 쩨듯하니 줄등을 헤여달고 부뚜막의 큰솥 적은솥을 모조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외갓집>


(38)

황토 마루 수무나무에 얼럭웅 덜럭궁 색동헝겊 뜯개조박 뵈짜배기 걸리고 오쟁이 끼애리 달리고 소삼은 엄신 같은 딥세기도 열린 국수당고개를 몇 번이고 튀튀 춤을 뱉고 넘어가면 골안에 아늑히 묵은 영동이 무겁기도 할 집이 한 채 안기었는데

 --<넘언집 범 같은 노큰머니> 中에서


(48-49)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가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수라(修羅)>


(59)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 나의 조상은 현재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북방(北方)에서> 中에서


(93)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은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 <선우사(膳友辭)> 中에서


(117)

빨간 물 짙게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뇨

빨간 정() 무르녹은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줄댄다. 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시월(十月) 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실찐 띠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한울이 눈부셔 한다

시월(十月) 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시월단풍도 높다란 낭떨어지에 두서너 나무 깨웃듬이 외로히 서서 한들거리는 것이 기로다

시월 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로 지지우리지 않느뇨

 --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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