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책을 펼쳐 들면 순식간에 나만 남습니다. 사람으로 가득 찬 한낮의
카페 한가운데 좌석에서든, 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는 한밤의 방 한구석에 홀로 기대 앉아서든, 모두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경험이지만, 그 고독은 감미롭습니다.
(13)
저의 서재에는 물론 다 읽은 책도 상당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서문만 읽은 책도 있고 구입 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도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사는 것, 서문만 읽는 것, 부분부분만 찾아 읽는 것, 그 모든 것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25-26)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중세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다.” <독일인의 사랑>을 썼던 막스 뮐러는 “하나만 아는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이다.”라고 말했어요.
(68)
독서를 즐기는 것과 어려운 책에 도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려운
책을 통해 지적인 성취감을 얻는 동시에 독서력에도 도움을 받는다면 그다음에 다른 책을 훨씬 더 즐겁게 읽을 수 있거든요. 가끔은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의 책에 도전해보세요. 일단 시작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힘든 일은 아닐 겁니다.
(77)
왜 하필이면 3분의 2 지점을
보는 거냐면, 저자의 힘이 가장 떨어질 때가 바로 그 부분입니다. 무슨
책이든 시작과 끝은 대부분 나쁘지 않습니다. 저도 책을 낼 때 그렇습니다. 원고를 배열할 때 잘 쓴 걸 앞에 둡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쪽부터
읽어나갈 테니까요. 한편 맨 뒤부터 슬쩍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맨 뒤에 넣죠. 바로 그래서 3분의 2쯤을 읽으면 저자의 약한 급소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부분마저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정말 훌륭하니까 그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98)
과학 분야 같은 것도, 중고등학교 때 기본적인 책을 재미있게 읽었더라면
나중에 책 읽기 훨씬 좋았을 텐데 싶어요. 지금은 독서에서 넓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적으로 한창 책에 깊이 빠져든 중고등학교 때 저는 깊이를 더 중시했던 것 같아요. 그게 좋기도 했지만, 특히 십 대에서 이십 대는 책을 넓게 읽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143)
낮 동안에 일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오늘 저녁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간다거나 그런 게 우리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습관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오히려
쩔쩔매는 시간이에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거죠. 그런데
패턴화되어 있는, 습관화된 부분이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세요. 그러면
그 인생은 너무 행복한 거죠. 시공간 속에서 매번 판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이 실존적으로 세상을
향해서 갑옷을 두르는 게 최상의 행복 기술인데 그 습관 중에 독서가 있다면 너무 괜찮은 거죠. 예를
들어 매일매일이 습관으로 빼곡한데, 모처럼 이번 달 말일에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니 책을 한번 읽어보자. 그러면 책 읽는 게 행복이 아니라 쾌락인
거예요. 그런데 습관화되어 매일 책 읽는 사람이 있다고 쳐보세요. 저녁
먹기 전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있으면 책을 자동적으로 펼치는 거예요.
그건 행복인 거예요. 똑같이 책을 읽어도 쾌락이 될 수도,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다만 쾌락은 지속 불가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