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3)

라지오스가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져서 타 버리기까지 버틸 수 있는 수명은 약 800만 년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현재 존재하는 정보의 상당량, 심지어 라지오스 제작 시점과 목적에 관한 정보마저도 소실될 수 있을 만큼 먼 미래다. 그 때문에 미국 국립 항공 우주국(NASA)은 내게 우리의 먼 후손에게 전할 일종의 인사말로서 라지오스에 부착할 작은 금속판을 디자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인사말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수억 년 전에 지구의 대륙들은 맨 위 지도처럼 모두 붙어 있었다. 라이오스가 발사된 시점에는 지구의 모습이 가운데 지도와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800만 년 뒤에 라지오스가 지구로 돌아올 때는 대륙들의 모습이 맨 아래 지도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음을 담아.”


(25-26)

많은 자문 위원들은 외계 문명이 메시지를 받을 확률은 기껏해야 미미한 데 비해 지구의 거주자들이 메시지를 접할 확률은 100퍼센트라는 점을 강조했다. 메시지의 내용은 결국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었다. 사실은 이 책이 그렇게 만든 셈이다. 올리버가 말했듯이, “외계인이 단 한 명이라도 금속판을 볼 가능성은 극히 작지만, 지구인은 틀림없이 수십억 명이 보게 될 겁니다. 따라서 금속판의 진정한 기능은 인류의 기상에 호소하고 그것을 북돋는 것,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접촉을 인류가 반갑게 기대할 사건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하인라인은 보이저호에 레이더 코너 반사경을 장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혹시 미래 세대가 내보낸 고속 우주 탐사선이 이 고대의 유물을 만날 경우 무심코 들이받는 대신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클라크는 1977 1 3일에 스리랑카에서 나와 통화하면서 우리의 먼 후손에게 나를 내버려 두세요. 내가 우주를 계속 항해하게 놔두세요.”라고 말하는 메시지를 담자고 제안했다. 클라크가 그런 메시지를 제안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문명이 그 메시지를 읽을 정도로 오랫동안 존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뜻이었다.


(64)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이 흐르면, 지구는 적색 거성으로 팽창한 태양 때문에 이미 숯덩이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저 레코드판들은 그때도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한때-만일 인류가 좀 더 거창한 활동에 나서서 다른 세상으로 이주한 뒤라면 그 전에-머나먼 행성 지구에서 번성했던 오래된 문명의 소곤거림을 간직하고 우리 은하의 어느 머나먼 지역을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179)

사람들은 보이저호를 그 속에 쪽지를 담아서 배의 난간 너머로 망망대해에 던져 보낸 유리병에 비교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병은 특수 제작된 것이고 쪽지는 연필이 아니라 컴퓨터에 갈겨 쓴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병을 광활한 하늘에 던져 보낸다. 우주의 해변을 걷던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우리 세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답은 우리의 먼 후손이 기대할 문제일 것이다.


(226)

인간의 음악이 다른 행성의 다른 지적 생명체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연히 보이저호를 만나고 그것에 실린 레코드판이 인공물임을 인식한 생명체라면 그것이 귀환의 희망 없이 발송된 물건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음악보다도 그 제스처가 우리 메시지를 좀 더 분명하게 전달할지도 모른다. 레코드판은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우리가 아무리 원시적인 존재로 보여도, 그리고 이 우주 탐사선이 아무리 조악해도, 우리는 스스로를 우주의 거주지로 여길 만큼은 알고 있답니다. 레코드판은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우리 안에는 스스로 이미 멸종했거나 못 알아볼 만큼 변했을 게 분명한 머나먼 미래의 미지의 발견자에게 닿고 싶어 할 만큼 크나큰 무언가가 있었답니다. 레코드판은 또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이든, 우리도 한때 별들의 거주지인 이 우주에서 살았고, 그리고 당신을 생각했답니다.


(270)

작곡하다(compose)’라는 단어는 무언가를 적절한 자리에 놓는다는 뜻, 무언가를 수선한다는 뜻, 그리고 어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무언가의 결과에 대해 굳건한 입장을 취한다는 뜻이다. 베토벤이 다른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되는 것을 듣고 떠나면서 내가 저걸 작곡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마도 이런 뜻으로 말했던 게 아닐까. 그는 저기 무언가가 있긴 하지만 그 작곡가는 그것을 모으고 떠받치고 고수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한 셈이었다. 한편 베토벤에게는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작곡가보다도 저기에 무언가가 많았다. 그에게는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부드러움과 활력이, 더 많은 비통함과 외로움이, 더 많은 분노와 유머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감정들을 우아하고 힘차고 탁월하게 작곡해 냈다. 그의 스케치북을 보면, 새소리나 대장장이의 망치 소리에 돌연 영감이 떠올라서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 교향곡을 쏟아내는 작곡가라는 낭만적 개념을 지지할 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 대신 우리는 끈질긴 지성으로 상상력을 다스렸던 예술가를 발견한다. 가령 베토벤 교향곡 5 1악장의 첫 마디에 나오는 주제는 언뜻 고통의 비명처럼 더없이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스케치북을 보면 이전 악상들을 힘들게 다듬어서 만들어 낸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베토벤이 한 인간으로서는 미치광이였을지라도, 예술가로서는 균형이 잡혀 있었다.


(303)

보이저 탐사의 주된 목표는 이렇듯 대단히 풍성한 과학적 정보를 얻는 것이다. 보이저 탐사는 역사상 최초로 외행성계를 상세히 정찰할 작업이며, 태양계의 다른 행성 가족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영영 바꿔 놓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우주에 대한 미적 감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보이저호에는 또 다른 것도 실려 있다. 전파 발신기가 죽은 지 한참 지난 뒤에도, 보이저 우주선이 태양권계면을 넘은 지 한참 지난 뒤에도, 그 까마득한 미래에도, 지구의 인사를 담은 두 장의 레코드판은 언제나 꿋꿋하게 우주를 항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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