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 - 전민식 장편소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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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강치>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이 책을 인터넷에서 처음 봤을 때, 강치가 뭐였더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이러면서 책 소개를 읽어보았단다. , 독도에 살던 동물이구나강치는 독도 주변에 살던 바다사자의 한 종이었단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그 강치를 너무 많이 잡아가서 지금은 멸종이 되고 말았다고 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제 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 땅인 독도에 침범해서 독도에 서식하고 있는 강치들을 잡아 갔다고 하는구나.

독도를 상징하던 동물 강치. 지금은 비록 멸종되었지만, 여전히 독도를 상징하는 동물 중에 하나. 소설 <강치>는 독도에 관한 이야기란다. 조선시대 독도를 지키고자 했던 안용복이라는 사람에 관한 소설이란다.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사람, 안용복. 아빠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 예전에 읽은 김탁환님의 <독도 평전>이라는 책에서 잠시 소개되어 읽은 기억이 있을 뿐.


1.

독도 근해에서 어업을 하던 안용복 일행들 중에, 안용복을 비롯하여 세 명이 일본 어부들에 납치를 당한단다. 독도가 조선의 땅이지만, 조선 조정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놓았단다. 독도에서 어업을 하던 자국의 백성들이 자꾸 일본 해적들에게 피해를 입으니까, 내 놓은 정책이 독도를 하기 못하게 도해금지령을 내린 것이란다. 독도 주변에는 많은 고기들이 많아 어업에 많은 도움을 주는데, 해적들 때문에 못하게 하다니비어버린 독도는 일본 해적과 일본 어부의 차지가 되어 버렸단다.

도해금지령이라고 하지만, 조선의 어부들도 간혹 독도 주변에서 고기를 잡았단다. 안영복 일행도 그렇게 독도에 왔다가 일본어부들에게 납치 당한 거야. 그 중에 업동이라는 자는 중상을 입고 죽고 말았고, 안용복과 박어둔은 일본까지 끌려갔단다. 안용복과 박어둔이 일본까지 끌려가서 가장 많은 들은 이야기는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거야. 그 이유가 말도 안 되는구나. 일본은 80여 년 전부터 독도에서 어업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내 주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일본 조정에서 남의 섬에 가서 어업을 할 수 있게 허가를 내 주었다는 거지.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이더냐. 만약 일본이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허락을 맞고 어업을 하냐. 그냥 가서 잡으면 되는 거지. 허락을 받고 어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지. 안용복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들이 독도에서 가장 많이 잡는 것 중에 하나가 강치였단다. 강치는 고기뿐만 아니라 기름을 많이 뽑아낼 수 있었거든. 안용복은 그 전에 상인으로 일해서 일본말도 잘하고 검술도 뛰어났단다. 그를 납치해간 일본 어부들은 일본말도 잘하고 검술도 뛰어나다 보니, 안용복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영주에게 데리고 갔어. 꼭 같은 질문이 날아왔어. 왜 허락 없이 독도에서 고기를 잡았냐. 내 나라 땅에서 무슨 허락을 받고 고기를 잡냐이런 대답을 하는데 일본사람들을 상대로 혼자 싸우다 보니,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입장이 되었단다. 그렇다고 그가 조선 조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 자신은 뼛속까지 조선인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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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갑작스럽게 나는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 앞에서 기죽고 싶지는 않았다. 조선에 대한 원망이 깊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조선인이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모든 걸 빼앗긴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전국을 뒤져 가져온 산삼을 그렇게 헐값에 넘기진 않았을 터였다. 초량 왜관에 머무는 일본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날카로웠다. 그들에 대한 선입견에 휩싸여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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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과 박어둔의 납치 사건은 일본 막부인 쇼코에게까지 알려졌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우려한 막부는 안용복과 박어둔을 후하게 대해주고,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명시하는 서계를 직접 써서 주었단다. 그리고 그 서계를 가지고 조선으로 가라며, 일본에서 벗어날 때까지 호위무사까지 붙여 주었어. 서계를 가지고 조선을 향하던 안영복과 박어둔은 쓰시마에서 제동이 걸렸단다.

쓰시마 도주는 막부와 생각이 달랐단다. 막부는 조선과 갈등을 꺼려했지만, 쓰시마 도주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다시 일본은 중앙 막부가 영향력이 컸지만 먼 지역은 도주의 영향력이 더 컸어. 쓰시마 도주는 막부의 서계를 빼앗고 내쫓듯 하여 안용복과 박어둔은 힘겹게 조선에 도착했단다. 그들을 기다린 것은 곤장이었어. 도해금지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곤장 맞고 유배를 갔단다.


2.

일본에서 있었던 그의 일들이 소문이 돌았고, 일본의 사절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접위관 유일집이 안용복을 찾아왔어. 안용복은 그에게 서계가 있었고, 그것을 쓰시마 도주에게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했어. 그러자, 접위관 유일집이 몰래 그를 일본으로 보내기로 했단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명확히 하고, 빼앗긴 일본 쇼군의 서계를 받아오기 위함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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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우리가 가는 건 우리의 섬이고 우리의 땅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은 울릉도나 독도를 소유했던 번이 없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울진에 속해 있었지만, 저들은 근래에 와서 지들의 번에 속해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요. 게다가 독도든, 울릉도든 우리와 달리 일본 백성들이 거주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일본의 지난 쇼군 시절에 요나고 사람들이 울릉도에 와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도해 허가를 해준 일을 두고 자신들의 섬이라 우기고 있는 겁니다. 도해 허가를 내주었다는 사실도 웃긴 일이지만, 그런 사실을 파악했으면 강하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그리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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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직접 가면 다른 이들이 눈치를 챌 수 있으니, 울릉도와 독도를 통해 우회해서 가지로 했어. 그리고 유일집은 안용복에게 정 3품에 해당하는 감세장을 주는 등 도움을 주었어. 그렇게 안용복 일행은 다시 일본으로 갔단다. 온갖 어려움과 죽을 위기를 넘긴 안용복은 결국 쇼국 막부의 서계를 받아왔단다. 일본 최고 우두머리가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인정한 공식 문서인 거야.

그런 문서를 받아온 안용복이지만, 무능한 조선 조정은 별난 토론을 했단다. 안용복이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는 의견과 안용복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양분되어 격론을 벌였대. 결국 양쪽 모두의 의견을 들어, 안용복의 공을 인정하되, 죽음을 면하게 해주고 유배를 보냈다고 하는구나.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꽉 막혀 있던 나라였단다. 안용복의 그 이후 행적에 대한 기록은 없다는구나. 안용복은 아마 조용히 지내고 싶었을 거야. 어쩌면 몰래 울릉도에 가서 살았을 수도

실학자로 유명한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안용복을 재평가하였는데, 이 소설을 마치고 책 뒷편에 그 글을 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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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하여 강적과 겨루어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부개자와 진탕에 비하여 그 일이 더욱 어려운 것이니, 영특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상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형벌을 내리고 뒤에는 귀양을 보내어 꺾어버리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울릉도와 독도가 비록 척박하다고 하나, 쓰시마도 또한 한 조각의 농토가 없는 곳으로서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내려오면서 우환거리가 되고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를 한 번 빼앗긴다면 이는 또 하나의 쓰시마가 불어나게 되는 것이니, 앞으로 오는 앙화를 어찌 말하겠는가? 안용복은 한 세대의 공적을 세운 것뿐이 아니었다. 고금에 장순왕의 화원노졸(花園老卒)을 호걸이라고 칭송하나, 그가 이룩한 일은 대상 거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국가의 큰 계책에는 도움이 없었던 것이다. 안용복과 같은 자는 국가의 위급한 때를 당하여 항오에서 발탁하여 장수급으로 등용하고 그 뜻을 행하게 했다면, 그 이룩한 바가 어찌 이에 그쳤겠는가? – 이익의 <성호사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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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용복이라는 인물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단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 찬 달빛이 파도 위로 켜켜이 깔렸다.

책의 끝 문장 : 봄볕이 짚신 밖으로 삐져나온 오른발 엄지발가락 위에 가만 내려앉았다.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의 것이란 말이다!"
나는 독도와 울릉도가 나의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조선의 것이라 말했다. 우리를 끌고 왔던 어부가 몽둥이로 나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 꾸미려면 언제나 폭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한 차례 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섬이며, 그 섬의 바다는 조선의 바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본인의 매는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쏟아졌다. - P52

조선은 몇몇의 나라가 아니라 다수 백성의 나라여야 했다. 나라는 내게 목숨까지 버리라 말하면서도 사방이 막힌 이 순간에는 나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눈물마저 새카맣게 타버려 흐를 줄 몰랐다. 나는 버려졌다. 그 점은 억울하지 않았다. 나라가 내게 기대한 일이 없으며, 나 역시 나라에게 기대할 일이 없으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내가 마음이 아픈 건 살아남아도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사실이었다. - P194

*1693년 9월 초, 안용복과 박어둔은 돗토리 번에서 나가사키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당시 안용복과 박어둔을 납치한 내용은 오야 집안의 문서인 <죽도 도해 유래기 발서공, 이하 발서공>과 한자로는 ‘백기’로 적는 호키주의 일을 기록한 <이본 백기지>에도 실려 있다. <발서공>에는 안용복이 에도에 갔고,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에도 막부가 안용복에 대한 조사를 끝낸 뒤 안용복에게 무엇인가를 줘서 조선으로 귀국시켰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쇼군으로부터 받은 서계로 추측된다. 두 사람이 나가사키로 후송되었을 때 쓰시마 번 사람들이 두 사람을 맞이했는데, 이때 선물과 서계를 모두 강탈당했으며 이를 쓰시마 번에서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해 재해석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힌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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