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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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코로나가 길어지고, 끝이 안 보이는 요즘여러 매체를 통해서 소개되고 있는 책이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서,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읽는 고전 중에 하나였어.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 사람이었는데, 그가 살던 시대의 알제리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였단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어. 하지만 안타깝게 47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는구나. 그는 <페스트>뿐만 아니라 <이방인>, <시지프 신화> 등 여러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지. 하지만 아빠에게 그의 책들은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서 그의 책들을 멀리했어.

이번이 카뮈의 책은 처음이란다. 코로나 시대에 너도나도 이 책을 읽어서 아빠도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책을 폈단다. , 그런데 아빠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한번에 깨주는 책이었단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참 흥미롭게 읽었어. 코로나를 겪고 있는 오늘날 세계의 모습과 비슷해서 더욱 공감이 갔단다.

페스트라고 하면 중세시대 유럽을 휩쓸었던 병이라고 알고 있어서, 이 소설이 당연이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지 알았단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1940년대이고,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해변 도시가 배경이란다. 지금은 오랑이라는 도시가 알제리에 속해 있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40년대는 알제리가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프랑스의 도청소재지로 나온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소설은 무척 재미있었단다. 무서운 전염병을 대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 오늘날 코로나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소설 속에서 볼 수 있었단다. 우리는 소설 속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로다.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그곳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야.


1.

소설은 194x년 프랑스 해안 도시 오랑이라는 평범한 도시에서 시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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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우리의 작은 도시에서는 기후 때문인지 이 모든 것이 이곳 사람들은 권태로워하고, 습관이라도 가져보려고 애를 쓴다. 우리 시민들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그것은 대개의 경우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거래에 특히 관심이 많고,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무엇보다 사업에 몰두한다. 물론 단순한 기쁨에 대한 흥미도 없지 않아서 여자와 영화, 해수욕을 좋아한다. 그러나 매우 합리적인 사람들이어서 이런 쾌락들은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을 위해 아껴두고 주중의 다른 날에는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한다. 저녁에 퇴근하면 일정한 시간에 카페에서 모이거나 늘 같은 대로를 산책하고, 아니면 집에 가서 발코니에 자리잡는다. 젊은이들의 욕망은 격렬하고 짧은 데 반해, 나이든 사람들의 취미 생활은 공굴리기 모임이나 친목회 회식, 큰돈을 걸고 카드놀이를 하는 동호회 정도에 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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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의사 베르나르 리외라는 사람이었어. 서른 살인 아내가 일년 가까이 병으로 누워 지냈는데, 진전이 없어서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서 치료하기로 결정했어. 아내가 없는 동안 집안일을 도와주기 위해 리외의 엄마가 오기로 했어.

어느 날 이 평범한 도시에전에 없이 쥐들이 엄청나게 출몰하였고, 그 쥐들이 피를 토하며 죽었어. 죽은 쥐가 너무 많이 쌓여서 골치거리가 되었단다. 그런데 수백 수천 뒤끓던 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어. 그렇게 쥐들이 사라진 즈음에 리외가 살고 있는 건물의 수위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단다. 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시점은 쥐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때였어. 그래, 뭔가 연관성이 있는 거지. 그가 죽기 전 보인 증상은 체온은 엄청 높고, 림프절이 심하게 붓고 옆구리에는 거무스름한 반점이 있었어. 그건 시작이었단다.

이후 몇몇 사람들이 같은 증상을 보이며 죽고 말았단다. 리외는 동료 의사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리외는 머릿속에 스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  몇 십 년 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병. 페스트다시 나타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 지금까지 1억명 이상 페스트로 죽었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병이니중세의 유럽을 휩쓸던 그 무서운 병죽은 이들의 증상이 바로 그 페스트의 증상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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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몇 가지 사례만 보고 전염병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고, 예방책을 잘 세우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 알고 있는 사실들에 집중해야 했다. 마비와 탈진 증세, 눈의 충혈, 구강 오염, 두통, 사타구니의 명울, 극심한 갈증, 정신착란, 전신에 돋는 반점, 몸안에서 느껴지는 찢어질 듯한 통증, 그리고 마침내는이런 것들에 이어서 어떤 문장이 리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의학서적은 이런 증상들을 열거한 뒤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맥박이 실낱같이 약해지고 무의미한 몸짓을 하고는 사망한다.’ 그렇다. 이런 증상들이 모두 나타난 후에 환자는 한낱 실에 매달린 형국이 되고, 그들 중 4분의 3-이것은 정확한 수치였다-은 죽음을 재촉하는 그 미미한 몸짓을 서둘러 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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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외는 도청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청 보건 위원회가 열렸어. 도청에 있는 공무원들과 의사들도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 병에 대처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다행히 현명한 판단들을 한 것 같구나. 페스트에 대한 공고문을 냈어. 하지만 이미 그 병은 많이 퍼져 있어서 환자와 사망자가 크게 늘어났단다. 포고령과 도시 폐쇄령도 내렸단다. 도시 안팎 이동을 강제로 막았어. 우연히 도시 밖으로 나갔거나 다른 곳에서 오랑으로 온 사람들이 가족이나 애인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어. 조금 봐준 것은 도시 밖에 있는 가족들이 오랑 시로 들어오는 것은 가능했어. 하지만 오랑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절대 안 되었단다. 오늘날 코로나 시대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더구나.

소설 속에서 대처하는 모습이나 시민들이 반응하는 것이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로 겪고 있는 모습과 똑같더구나. 우리는 지금 무서운 소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구나.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평범한 일상으로 그리워하기도 하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갖게 되면서 또 다른 정을 쌓기도 하고, 때론 다투는 모습들도 볼 수 있어. 신문기사에서 볼 수 있는 코로나 시대의 소식이 이 소설 속에 그대로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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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던 감정, 더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미 말했듯이 오랑 시민들은 단순한 열정의 소유자들이다)에서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배우자를 전적으로 믿어온 남편들이나 연인들은 자기들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가볍게 여기던 남자들은 다시 성실해졌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들들이 기억 속에 자꾸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의 주름살 하나에도 염려하고 후회했다. 완벽할 정도로 갑작스러운데다 언제 끝날지 예견할 수도 없는 그 이별에 망연자실한 채, 우리는 그토록 가까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토록 멀어진 존재, 그리고 이제 우리의 삶 하루하루를 다 차지해버린 존재에 대한 추억에 저항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이중의 고통-우리 자신의 고통 그리고 집에 없는 사람들, 즉 자식, 아내 또는 연인이 겪는 고통을 상상 속에서 함께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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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 타루. 외부에서 오랑에 왔다가 도시 폐쇄로 오랑에 머물게 된 청년이었단다. 그는 리외를 찾아와서 보건대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했어. 정말 열심히 그는 페스트 환자들을 위해 일을 했단다. 장 타루와 달리 랑베르라는 기자도 취재차 오랑에 왔다가 도시 폐쇄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는 기를 쓰고 도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단다. 리외를 찾아와 자신이 건강하다는 증명서를 써달라고 했어. 그리고 도청 공무원에게 보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어. 그래서 그는 불법으로 돈으로 써서 도시 밖으로 탈출하려고 했지만, 돈만 뜯기고 사기 당해서 밖으로 나가질 못했단다. 그러면서 리외와 장 타루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았어. 그들에게 감명 받고 그도 도시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보건대에서 돕기로 했단다.

도시폐쇄가 길어지고, 페스트로 죽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시민들의 인내도 바닥이 나기 시작했단다. 범죄가 늘어나고 도시를 탈출하려는 시도도 많아지고 여기저기에서 충돌이 났단다. 장례식에는 가족들도 못 가고 묘지도 부족해서 집단 매장을 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화장하기 시작했단다. 오랑의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 그렇게 고통에 익숙해지고 죽음이 일상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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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우리 시민들, 적어도 이별로 인해 가장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졌을까? 익숙해졌다고 말하면 그것은 결코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헐벗음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페스트 발생 초기만 해도 그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뚜렷이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행복해했던 어떤 날, 이런 것들은 모두 분명하게 기억났지만, 그들이 그 사람을 다시 그려보는 바로 그 순간에, 또 이제는 그렇게도 먼 곳이 되어버린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그 시기에 그들은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페스트가 둘째 단계로 접어들자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지만, 얼굴에 살이 없어져 마음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관련해 초기 몇 주 동안에는 환영만 상대한다고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그후에는 추억 속에 간직해온 희미한 색깔마저 잃어버림으로써, 환영도 예전보다 살이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기나긴 이별을 겪자 그들은 전에 누렸던 친밀감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했고, 언제라도 손을 얹을 수 있었던 존재가 어떻게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었는지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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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파늘루라는 신부가 있었어. 그는 페스트는 하느님이 내린 벌이라고 설교하였지만, 리외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단다. 특히 아이들도 페스트에 죽는 걸 보면서 말이야. 빨리 치료제를 구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리외의 동료 의사 카스텔은 치료용 혈청을 개발했어. 임상 실험할 시간도 없었어. 바로 환자에 투입오통이라는 수사검사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에 걸려서 그 아이에서 시험해 보았어. 부디 좋은 결과가 오기를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오래 버틴 것 같았지만 결국 죽었단다. 실패.

이 무서운 병은 언제 끝나는가. 하느님이 내린 벌이라고 설교하던 파늘루 신부도 페스트가 점점 악화되면서 자신이 한 말에 혼란을 느꼈어. 하느님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하느님을 깊이 믿었던 그 자신도 결국 페스트에 걸렸어. 그는 신의 뜻이라고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 갔지만 너무 늦었어.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단다.

사라질 것 같지 않던 페스트가 어느 날 갑자기 수그러들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새로 개발한 혈청도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단다.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축제분위기였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했지만 그 동안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억눌려 있었던 거야. 아직 산발적으로 환자가 발생하고 있었는데, 그 산발적인 경우에 장 타루가 걸리고 말았어. 그렇게 페스트가 극심하던 시기에도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타루아무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그를 페스트로 죽게 만들다니

또 시간이 지나고 페스트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선언했단다. 소설 속의 끝은 그래도 끝이 났구나. 코로나는 도대체 어떻게 끝을 맺을까.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으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코로나와 공존하며 사는 시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 이제 코로나에 적응해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배워야 할 게 참 많구나. 지구 온난화에 적응하는 법도 배워야 하는데 말이야


PS:

책의 첫 문장 : 이 연대기에서 다루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일어났다.

책의 끝 문장 :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사실 냉정을 잃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시민들의 생각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고뇌에 빠져 있는 가운데, 그들은 사랑의 이기적인 성격 덕분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고, 페스트를 생각할 때도 페스트 때문에 이별이 끝도 없이 계속될까봐 염려스럽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전염병이 한창일 때도 그들은 건전한 여유 같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침착함으로 착각했다. 절망감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불행에도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 중에서 누가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대개의 경우 그 병을 조심할 여유조차 없었다. 유령 같은 존재와 나누던 기나긴 마음속 대화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그는 지체 없이 대지의 가장 무거운 침묵에 내던져졌던 것이다. 그가 뭔가를 할 시간적 여유는 전혀 없었다. - P95

그 늙은 경비원은 타루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 차라리 지진이면 좋겠어요! 지진은 한번 흔들리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 사망자와 생존자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잖아요.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병을 앓게 한다니까요." - P138

‘새벽이면 아직 인적 없는 도시에 산들바람이 분다. 밤의 죽음과 낮의 고통 사이에 있는 그 시간에도 페스트도 잠시 쉬고 숨을 돌리는 것 같다. 가게의 문은 모두 닫혀 있다. 그러나 그중 몇 곳에 붙어 있는 ‘페스트로 인해 폐점’이라는 게시문은 다른 가게와 달리 이 가게의 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신문팔이들은 조느라 뉴스를 외쳐대지는 않지만, 길모퉁이에 등을 기댄 채 몽유병자처럼 신문을 가로등 앞으로 내밀고, 잠시 후 첫 전차 소리를 듣고 깨어나면 도시 전역으로 흩어져 ‘페스트’라는 글자가 도드라진 신문들을 내밀고 다닐 것이다. ‘가을에도 페스트가 유행할 것인가? B교수는 부정적으로 대답.’ ‘페스트 발생 94일째, 사망자 124명.’ - P142

재앙만큼 보잘것없는 것은 없고, 큰 불행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런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페스트 치하에서 보낸 끔찍한 날들을 화려하고 잔혹한 커다란 불길처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발아래 놓인 모든 것을 짓밟아버리는 끝없는 답보 상태로 기억하는 것이다. - P212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페스트와 보조를 맞춰, 꼼꼼하긴 하지만 생기라곤 전혀 없는 태도로 일을 해나갔다. 모두 겸손해졌다. 처음으로 헤어진 사람들은 헤어져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쓰는 말투를 쓰기도 하고, 자기들의 이별을 전염병의 통계수치와 연결해 검토해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자신의 고통을 집단적 불행과 완강히 분리해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두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억도 희망도 없이 현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로 변했다. 페스트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나눌 힘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 앗아갔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랑에는 어느 정도 미래가 요구되는데, 우리에게는 순간들만 남은 것이다. - P214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돌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 없어요. 하지만 나 역시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것을 돌보지 않고 있죠."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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