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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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과학 관련된 책들을 좋아하잖아. 물론 어려운 과학책은 말고, 일반인들 상대로 쓴 교양과학책들. 그리고 과학을 주제로 한 소설들도 좋아하는 편이고이 책제목을 본 순간, 그리고 소설이라는 것을 안 순간, 과학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을 직감했단다. 이보다 더 과학적일 수 없는 책제목.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책 소개도 제대로 보지 않고, 장바구니로 골인.

책 소개만 제대로 본 것이 아니고, 책 표지도 제대로 보지 않았단다. 무슨 물고기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나 싶었는데, .. 아니더구나. 무척 야한 사진이더구나. 비둘기가 침대보를 잡고 날고 있고이 표지의 사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에 관련된 소설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나?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책표지. 이제서야 책소개를 보니.. 단편모음집이더구나. 앤드루 포터라는 미국 사람의 데뷔작이라고 하는구나. 책에 총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었단다. 그리고 책을 읽었는데재미있더구나.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에 별 다섯 개가 난무했던 이유가 있었구나. 기대했던 과학을 주제로 둔 소설은 없었지만, (심지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소설까지…) 참 재미있게 읽었단다.


1.

소설의 형식을 깬 소설들이라고나 할까. 10페이지도 안 되는 소설도 있었단다.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첫 도전은 이렇게 한다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소설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단다. 그들이 이만큼 재미있게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빠가 이 소설집을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는 10페이지도 안 되는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점과, 마치 자신의 경험을 수필 쓰듯 쓰는 소설들도 있었단다. 그래서 읽다 보면 지은이가 만들어낸 소설이 아니고 자신이 실제 경험했던 내용들일까? 이런 의심을 갖게 되는 소설들도 많았단다.

그리고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마치 어떤 장편 소설의 제1장 같은 소설들도 있었단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에는 이야기가 시작하려다가 끝나는 소설들도 있었어. 이웃집 아이가 사고로 구멍에 빠져 죽은 기억이 10년이 지나도 지나치지 않는 내용을 담은 <구멍>, 다큐 영화 하나가 성공한 이후, 가족보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코요테>. 이런 소설들은 더 이어져도 풍성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단다. 중간에 끊긴 기분이었어. 약간의 아쉬움.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고, 그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겪는 갈등을 이야기한 <아술>도 좋았어.

그리고 이어지는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어떤 물리학과 노교수 로버트와 여학생 헤더의 이야기부적절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란다. 헤더는 로버트와 시험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너무 말이 잘 통하고 그와 이야기를 하면 남자친구와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단다. 그렇다 보니 헤더는 자꾸 로버트와 만남을 갖고 이야기를 나눈단다. 그들의 이야기의 주제는 세상만사라고 할 수 있었어. 헤더는 로버트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도 아닌데, 로버트와 만남에 대해 무척 조심을 한단다. 남들의 시선도 의식하게 된단다. 헤더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로버트와 이런 만남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헤더와 로버트는 완벽한 정신적 교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지. 그들의 이런 감정은 사랑일까. 사랑의 정의는 어디까지일까. 분명 헤더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렇다면 로버트와 이런 관계는 정말 부적절한 관계인 것일까. 사랑만큼 어려운 것은 없는 것 같구나.

<강가의 개>라는 소설은 문제아 형 때문에 겪는 지은이의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인데읽은 이들은 나의 형제 중에 문제아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할 것 같았단다.

아빠는 참 다행이구나. 착한 동생 하나 있다는 것이

그 외에 <외출>, <머킨>, <폭풍>, <피부>, <코네티켓>이라는 소설들이 있었는데 읽을 때는 다들 재미있게 읽었는데, 메모를 안하고 책을 덮은 지 시간이 꽤 지났더니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줄 만큼도 머릿속에 남아 있질 않구나.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은 정말 사실인 것 같구나. 슬프구나. 기억을 잡아두고 싶지만, 메모 없이는 기억을 잡아두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야. 읽는 순간 좋았다는 것으로만 만족해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그 구멍은 탈 워커네 집 차고로 이어지는 진입로 끄트머리에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후, 개수대가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은 믿는 듯이, 마치 저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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