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신화라는 절대적인 가치관이 붕괴된 시대에 상대주의를 대표한 철학자가 프로타고라스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주장했다.

(31)

아내 크산티폐에게 기를 펴지 못하고 결혼해라.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고, 나쁜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 소크라테스

(38)

우선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의 진정한 의도다. 결국 그는 특별히 무지를 자각하고 있는 자신이 위대하다고 겸허함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무지를 자각해야만 진리를 알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른다고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85)

샤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을 받고 있다라고 말한 철학자로도 유명한데, 그는 왜 자유를 형벌이라고 했을까? 일반적으로 자유라고 하면 모두가 추구하는 훌륭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자유란 무엇이 올바른지 알지 못하는데 알아서 하라며 내팽개쳐진 불안정한 상태를 말하네.”

(96)

동양은 왜 역사에 그런 대략적인 방식을 취했을까? 동양에서 역사란 영원히 돌고 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시간에 끝이 없고 역사가 영원히 계속된다면 몇만 년 전 아주 오래전부터 같은 일은 몇 번이고 되풀이됐을 것이고, 앞으로 몇만 년 후 미래에도 몇 번이고 되풀이될 것이다. 어떤 남자가 여성에게 빠져 멸망하는 일은 몇만 년 전에 존재했던 남자도 겪었고, 몇만 년 후의 남자도 겪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시간이 움직이고 장소가 바뀌어도 인류의 일상은 바뀌지 않는다.

(143)

아니다. 민주주의에도 큰 결함이 있다. 얼핏 보면 민주주의는 모두가 어떤 일을 결정하기 때문에 공평하고 타당한 국가 운영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체계를 다 숙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운영은 정치 전문가, 즉 직업 정치가에게 일임된다. 민중이 정치에 흥미를 느끼고 충분히 고민한 후에 뛰어난 정치가에게 투표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민중은 정치가의 사상이나 공약의 내용도 모른 채 왠지 당당해 보여서, 지도자 자질이 있어 보이니까등의 이미지만으로 투표한다. 그렇게 되면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만 잘하는 무능한 선동 정치가가 지지를 받아 국가가 점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상태를 중우정치라 한다.

(165)

타자를 죽이는 자유를 포기한 보상으로 안전을 얻는다. 다시 말해 국가란 개인의 자유를 포기해서 손에 얻은 안전보장 체계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에 이런 말을 썼다. 리바이어던이란 성서에서 나오는 무서운 짐승의 이름으로,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모습이야말로 국가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 인간의 끝없는 파멸적인 욕망을 제한하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 리바이어던(국가, )이라는 가상 괴물을 만들어 그 괴물을 두려워하고 복종함으로써 어쨌든 서로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안전보장 체계가 국가의 정체라고 홉스는 주장했다.

(268)

무욕의 삶이 결코 자연 본래의 삶은 아니다. 인생에는 이뤄야 할 것이 존재한다. 싸우더라도 쟁취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쟁취하기에 너무 높은 장애가 있다면 장애를 극복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앞에 적이 있다면 적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힘을 손에 넣으면 된다.

(274)

니체는 자신의 저서에서 종말의 시대, 즉 모든 가치관이 붕괴된 세계를 사는 종말인이라 불리는 자의 모습을 묘사한다. 종말인이란 그 무엇도 목표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그저 건강과 좋은 잠자리만을 원하며, 원만하게 인생을 보내기 바라는 평범하게 살아갈 뿐인 존재다.니체는 가까운 시일에 신이 죽은 세계가 도래하고 종말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백 년도 훨씬 전에 예언했다. 이런 종말인의 삶이 현대를 사는 우리와 정말 다를까.

(275)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말 저런 말 해봤자 소용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라는 기이한 괴물에 저항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있든 없든 사실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스마트폰을 자본가를 위해서 매일 시간에 쫓기면서 만든다. 그리고 건강에 신경 쓰고 귀찮은 일은 피하며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여가 시간을 허비하기나 한다. 그러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 다음에는 그저 별일 없이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인생이 바로 무사안일주의다. 인생에서 정점에 오를 일 없이, 고통을 극복하며 성취할 목표도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인생이 이대로 흘러가길 바란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내가 예언한 종말인의 삶의 방식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338)

이러한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만약 당신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고 가장 소중한 가치가 있는 무어가가 존재한다 해도 당신이 죽으면 그 존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바라보는 세계는 당신 특유의 가치로 재단한 세계이며,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당신 특유의 가치로 재단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없는 세계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던 세계 그대로 결코 존재하지 않고 지속되지도 않는다.

존재란 그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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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carlus22 2019-11-0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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