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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평전
김희곤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육사라는 시인을 모르는 없지 않을까 싶구나. 학창시절 교과서에 이육사의
시가 실렸으니까 말이야. 청포도, 광야… 그 강렬하고도 뜨거운 시들…. 그리고 감옥에 수감되어 받아든 수인번호 264를 따서 이름을 이육사로 바꿨다는 일화까지… 일제시대 저항시인의
작품은 시험에도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의 시는 달달 외우고, 철저하게 분석을 해야만 했단다. 요즘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려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빠도 사실 그의 대표적인 시만
알고 있었지, 그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단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단다. 이육사 평전.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였던, 그의 짧은 삶을 그려 낸 이야기. 1904년
태어나 1944년 돌아가시다.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암흑의 시대에 짧은 삶을 사셨구나. 광복 일 년을 앞두고 눈을 감으셨다니… 우리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광복된
조국을 보셨을 테니. 비록 다시 둘로 갈라질지언정….
1.
이육사 정도 되면 상당히 유명하신 분인데, 그에 대한 자료가 이렇게 적은 줄은 정말 몰랐단다. 그 동안 이육사에게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그나마
이 책의 지은이 김희곤님이 여기저기서 이육사의 자료들을 모아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았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그의 행적에 있어 추정한 경우도 많더구나. 그가 삶을 마감한
곳도 베이징의 동창후뚱 1호라는 곳도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고 했어.
안타깝구나.
…
이육사. 수인번호를 따서 지었다는 이름… 그가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 받은 이름은 이원록이었어. 그는 이육사라는 이름 이외도 이활 등 여러 이름을 사용했단다. 그의 나이 26살 때 광주학생항일투쟁의 여파로 일본 경찰은 전국적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는데, 대구에서 대구청년동맹 간부로 있던 이육사도 체포되었어. 그때 수인번호가 264였다고 하는구나.
다시 풀려나서 조선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는데, 그때 사용한 필명 중에 하나가 ‘대구 이육사(二六四)였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그의 공식 한자는 李陸史라고 해… 이육사라는 이름에 한자를 여러 개로 바꾸어 썼다고 하는구나. 二六四로 시작했지만, 肉瀉(고기를 먹고 설사하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戮史(역사를 죽이다)라는 이름도 사용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陸史로 정했다고 하는구나. 그는 기자로도 일하면서 이러 평론을 썼다고 하는데, 국내 정세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 대한 비판의 글들도 많이 썼다고 했어. 평론을 쓸 때는 필명을 ‘이활’을 사용했다고 했어.
…
2.
1932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에 그는 중국으로
길을 떠났단다. 독립운동을 하려고 말이야. 아빠가 이육사가
그런 무장투쟁을 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단다. 이육사는 의열단을 이끄는 김원봉이 운영하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대. 그렇다고 정식 의열단원이 된 것은 아니었어. 김원봉과 사이가 썩 좋지 않다고
했어. 당시 독립운동의 최고봉이었던 김원봉과 대립각을 세울 정도라면,
이육사라는 분은 자신의 주장도 뚜렷했었던 것 같구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마치고, 상해에서 루쉰을 만나기로 하고,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고 했어. 그러다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동기생이자 처남인 안병철이 체포되면서, 체포되었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나고, 다시 글을 쓰기도 했어. 이 시절에
시들을 비롯하여 많은 글을 썼다고 했어. 그렇다고 그의 독립운동의 의지가 중단된 것은 아니란다.
…
그리고
1943년 다시 중국으로 가서 무력투쟁을 위한 준비를 했어. 하지만 국내에 귀국했다가 체포되어.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시 베이징으로 붙들려갔어. 그리고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동창후뚱 1호라는 곳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어. 나라 없이 살았던 짧은 삶. 그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조국을 되찾고 노력했던 많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구나.
…
이육사..
그를 그리면서 그의 시 <광야>를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았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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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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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를 이육사(李陸史)라고 부른다.
책의 끝 문장: 이미 광복된 날을 내다보며 미리 민족의 가슴에 노래를 불어넣은 그 자신이 곧
‘백마 타고 온 초인’이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