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0)

그러나 저택을 둘러본 뒤 다시 바깥으로 나왔을 때, 대부분의 문이 열려 있는 큰 새장 안에 외로이 남은 중국 메추라기 한 마리가 새장 오른쪽 측면의 창살을 따라 연신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치매에 걸린 것이 분명한 그 새는 뒤돌아설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이런 암담한 상황에 빠지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곤 했다. 서서히 어둠 속으로 침잠해가는 저택과 달리 주위의 녹지는 쏘머레이톤의 영예롭던 시절이 끝나고 나서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바야흐로 그 진화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물론 그 시절에 화단과 묘상들은 더 화려하고 손질이 잘돼 있었겠지만, 모든 폐토가 심어놓은 나무들은 이제 녹지 위의 하늘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더러 4분의 1모르겐(약 이천오백 평에 해당하는 과거 땅넓이의 단위)에 이를 만큼 넓게 몇몇 가지를 뻗어 당시에 이미 방문객들을 놀라게 한 삼나무들은 이제 저마다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68)

매년 수천톤의 수은, 카드뮴, 납과 산더미처럼 많은 비료와 농약이 강을 거쳐 독일의 바다로 흘러든다. 대부분의 중금속과 여타의 독성 물질이 도거뱅크(영국 동북쪽 앞바다의 해역)의 얕은 수역에 침전되는데, 여기에 사는 물고기의 3분의 1은 이미 이상발육과 기형을 안고 태어난다. 면적이 수십 제곱마일에 이르고 깊이가 삼십 피트에 달하는 해안 가까이에 독성 해초무리가 자주 형성되는데, 바다 동물들은 여기서 떼로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73~74)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런 막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자연사학자들은 인간이 생명의 순환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작은 일부에만 책임이 있으며, 독특한 생리학적 조직 덕택에 청어는 고등동물이 죽을 때 느끼는 몸과 영혼이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실은 우리는 청어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청어의 골격이 이백 개가 넘는 다양하고 지극히 복잡하게 구성된 연골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뿐이다. 외모에서는 힘 좋은 꼬리지느러미와 폭이 좁은 머리, 약간 돌출된 아래턱, 밝은 은빛 홍채 위에 검은 동공이 떠 있는 커다란 눈이 눈에 띈다. 등은 푸르스름한 녹색을 띤다. 측면과 복부의 비늘은 하나씩 보면 금빛 오렌지색을 띠지만, 전체적으로 순순한 백색의 금속 광채를 보여준다. 역광을 비추어보면 몸통 뒤쪽은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암녹색의 빛을 발한다. 그러나 죽은 뒤에는 색깔이 달라진다. 등은 푸르게 변하고, 뺨과 아가미는 피하출혈로 붉어진다. 청어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체가 공기에 노출되면 반짝거린다는 것이다. 인광과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 독특한 광력은 죽고 난 뒤 며칠이 지나면 정점에 이르렀다가 부패가 시작되면서 차츰 줄어든다.

(112~113)

그런데도 사람은 지구 표면의 어디에나 존재하며, 매시간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높게 치솟은 탑으로 이루어진 벌집 사이를 움직이며, 모든 개인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한 네트워크에 점점 얽혀 들어가고 있다. 수천의 케이블과 권양기로 얽혀 있던 과거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도, 쉴 새 없이 지구 위를 몰려다니는 정보의 흐름에 휩싸인 증권거래소와 중개업소 사무실에서도 그러하다. 비행기가 해변을 지나 녹색 젤리처럼 펼쳐진 바다로 접어들 무렵, 나는 이런 고도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다보면 우리가 우리의 목적과 결말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가 끔찍하리만큼 분명해진다는 생각을 했다.

(169)

동인도회사는 벵골 지방의 들판에서 양귀비를 재배하여 그 씨앗에서 얻은 마약을 주로 꽝저우, 샤먼, 샹하이 등지로 운송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행해진 영국의 선전포고는 이백년 동안 오랑캐의 침입을 막고 나라를 폐쇄해온 중국 제국이 강제적으로 개국되는 과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그리고 문명이 발전하기 위한 기본전제로 간주된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서방은 유럽 대포의 우월성을 과시했고, 일련의 도시들을 점령했으며, 강화조약을 강요했는데, 이 조약에는 영국 상관의 해안에서의 영업조장과 홍콩의 이양, 그리고 특히 어마어마한 배상금 지급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259)

때로는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It seems to me sometimes that we never got used to being on this earth and life is just one great, ongoing incomprehensible blunder)

(331)

이른바 퇴근 뒤에도 멈출 줄 모르고 머릿속을 맴도는 끝없는 생각, 잘못된 실을 붙잡았다는, 꿈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 사람을 막다른 골목과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직조공들이 그렇게 정신병을 앓았던 반면,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직전의 몇십년 동안 노리치의 제조공장에서 생산된 많은 비단들은 비단 브로케이드와 물결무늬의 태비넷, 쌔틴과 쌔티넷, 캠블릿과 채버렛, 프루넬라와 플로렌틴, 디아망테와 그레나딘, 블론딘, 봄바진, 베르아일과 마르띠니끄 등 실로 환상적인 다양성과 말로는 거의 묘사할 수 없고 빛깔이 연신 아른거리며 변하는, 새의 깃털처럼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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