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스트라이크존에 대해 적응력이랴말로 타자의 성공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다. 볼넷 수는 그 타자가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는 방식을 알고 있음을 증명하는 최고의 지표였다. 폴의 분석에 따르면 대학야구의 타석에서 날카로운 눈을 가진 선수는 프로야구에서도 날카로운 눈을 보여줄 수 있다. 타석에서 보이는 절제력은 타고난 재능에 가까우므로 제멋대로 방망이를 휘두를 아마추어가 프로 무대에서 훈련을 거친다고 해서 바뀌기는 어렵다. 또한 폴은 타자의 팀 공헌도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통계를 분석하고, 그 함의를 깊이 이해했다. 예를 들어 타석당 투구 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출루율이 얼마만큼 중요한 지표인지 하는 것이다. 그는 소수의 증거가 아닌 방대한 양의 통계 데이터에서 일반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무한테도 설명하지 않았다. 빌리가 선수 출신에게 통계와 확률 이론을 설명해봐야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누누이 말했기 때문이다.

(66)

빌리는 미래의 메이저리그 선수를 찾는 방식에 관해 자기만의 신념이 있었다. 선수를 찾기 위해 방문해야 할 곳은 바로 폴의 컴퓨터였다. 그는 차라리 스카우터들을 전부 해고하고 폴의 노트북에서 곧장 선수를 지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인터넷을 활용해 미국 내 대학 선수의 세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고, 폴은 이런 모든 자료를 분석했다.

(중략)

통계는 자신의 눈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스카우터들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준점이 되어준다. 예를 들어 스카우터는 키 작은 우원투수를 싫어하고, 체격이 왜소하면 아무리 출루율이 좋아도 신뢰하지 않는다. 뚱뚱한 포수도 극구 꺼린다.

바로 이것이 지금 일어나는 충돌의 근본 원인이었다. 빌리와 폴은 어린 선수의 겉모습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기록과 성적에 따라 판단하고자 했다.

(85)

그제야 사람들은 빌리가 결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때는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선수였음을 떠올렸다. 라조이가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나는 그가 아직 선수로서 발전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라조이 단장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경기 도중 타석에서 빌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일 수 없었다. 그는 항상 움직여야 하는 성격을 타고났지만, 타석에 서면 꼼짝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야 했다. 그는 일종의 폐쇄공포증에 시달렸다. 그에게 타석은 그의 영혼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새장이나 다름없었다.

(162)

보라스는 다른 어떤 에이전트보다 아마추어 선수의 몸값을 많이 우려내는 것으로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만약 구단에서 자신이 요구한 금액을 내놓지 않으면 고객인 선수에게 1년간 야구를 쉬었다가 다시 드래프트에 참가해 그 돈을 줄 수 있는 구단에 들어가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211)

내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폴이 대답했다. “우린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려는 겁니다. 세상에는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 보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히는 경로가 조금 미묘하기는 해도 역시 결과에 해당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폴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말해 이미 벌어진 일을 보지 말고 우리 선수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겠다는 겁니다.”

(219)

이 같은 빌리의 열정과 지략, 뛰어난 머리 그리고 거구의 야구 선수조차 겁먹게 하는 카리스마 가운데 어떤 자질이 팀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는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단장은 선수 출신이 아니어서 메이저리그 선수 앞에서 움츠러들곤 했다. 반면 빌리는 선수 출신인데다 마치 온몸으로 나도 여기 있어 봤으니 메이저리거라고 큰소리칠 생각 하지 마!”라는 경고의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선수와 친구와 될 생각이 없었고, 클럽하우스를 벗어나면 사적으로 마주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선수와 마주한 순간에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그는 어느 누구보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360)

부정적인 타성은 강팀과 약팀, 앞선 팀과 뒤처진 팀, 훌륭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작용한다. 그 필연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형태의 강점은 하나의 약점을 숨기는 동시에 또 다른 약점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며, 모든 형태의 약점은 강점이기도 하다.

<2> 전략적 균형은 언제나 뒤처진 팀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한다.

<3> 심리 작용은 승자를 끌어내리고 패자를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다.

물리학이라기보다는 형이상학에 가까운 이 이론은 구단 전체뿐 아니라 개개인한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간절하게 승리를 원하는 사람, 승리하는 모습을 간절히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 간절한 갈망은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선수 시절 빌리는 그러한 갈망을 너무나 공개적으로 표출산 바람에 갈망이 약점을 넘어 저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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