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서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떨림이다. 우리가 말하는 동안 공기가 떤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나의 말을 상대의 귀까지 전달해준다. 빛은 떨림이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시공간상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지만 우리 주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전자기장의 떨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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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모든 원자는 마치 인간의 지문처럼 그 자신만의 독특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19세기
말 이미 이런 사실이 알려졌지만 원자가 왜 그런 독특한 스펙트럼을 갖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원자는 물질을 이루는 최소단위라고 생각되었다. 원자가 공명의 특성을 보인다면 그 안에 일종의 진동이
있다는 의미다. 그 진동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원자의
흡수스펙트럼은 양자역학이 탄생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이해는 못 해도 이용할 수는 있는 법이다. 태양광의 스펙트럼은 수소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태양이 수소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1868년 피에르 장센은 태양광의
스펙트럼에서 지구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명을 발견했다. 결국 장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원자가 태양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헬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헬륨은 태양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헬리오스’에서 온 것이다. 스펙트럼은 별에 가보지 않고도 별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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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현재 1초의 정의는 세슘 원자가 내는 특정 진동수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언젠가 미래에
인류문명이 멸망하더라도, 이 정의를 본 누군가는 1미터를
정확히 복구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90억 번가량의
진동을 정확히 셀 수 있어야 하므로, 엄청난 정확도로 진동수를 알고 있어야 한다. 2005년 노벨물리학상은 존 홀과 테오도어 헨슈에게 주어졌다. 이들의
업적은 정확한 진동수를 갖는 빛을 만든 것이다. 최근 이 방법을 사용하여 진동수를 19자리까지 알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서울과 뉴욕 사이의 거리를
원자 하나의 크기보다 작은 오차로 잴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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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명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봄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모든 것이 원자의 일이라는 말에 허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이 모든 일은 사실 원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원자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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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1)
미토콘드리아의 공생이 아름다움 협력일 거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포는
자살할 수 있다. 자신에게 치명적은 결함이 있거나 심각한 감염이 일어나면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 전체를
위해 좋기 때문이다. 이때 미토콘드리아를 붕괴시키는 방법이 이용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에너지공장이니까 로봇으로 비유하자만 전원을 차단하는 셈이다. 세포
스스로가 자살을 하기도 하지만 외부에서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세포를 죽이는 세포자살을 결정하는
것은 핵이 아니라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다. 세포자살은 다세포생물이라는 사회조직을 유지하는 공권력이다. 쓸모없는 세포가 제때 사라져주지 못하면 생명은 유지되기 어렵다. 미토콘드리아가
없었으면 애초에 다세포생물과 같이 복잡한 생명체가 탄생할 수도 없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휴대용 에너지
유닛이 없었으면 복잡함을 유지할 에너지 공급을 할 수 없기 때문에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의 발전소’는 원자력발전소만큼 위험하다. 미토콘드리아가 잘못되면 ‘자유라디칼’이라는 것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노화를 일으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토콘드리아와 죽음도 함께 밎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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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67)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전가지력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신문 또는 스마트폰에서 출발한 전가지파, 즉 빛이 당신의 눈에 도달했다. 눈의 망막에 있는 분자들이 빛 때문에
변형을 일으키고, 그 결과 화학신호가 발생하고, 그것이 전기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되는데, 이 모든 것이 전자기력 때문이다. 심지어
당신의 글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뇌 속의 전기적 작용, 즉 전자기력 때문이다. 우리가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모두 전자기력이라. 우리
주변 대부분의 기계들이 전기를 이용하는 이유다. 전기가 예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269-270)
과학은 불확실정을 안고 가는 태도이다. 충분한 물리적 보상이 없을
때, 불확실을 전망을 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과학의
진정한 힘과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있는 데에서 온다.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시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