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네, 그리하지요. 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을음입니다. 소나무를 태워 생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송연묵(松煙墨)이라 하고, 참기름, 비자기름, 오동기름 등을 태워 생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유연묵(油煙墨)이라 합니다. 아궁이에 소나무를
태우게 되면 굴뚝에 그을음이 붙게 되는데 위쪽에 모이는 것일수록 좋은 먹이 될 수 있습니다. 소나무의
송진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은 먹색이 맑고 깊습니다. 예로부터 중국 황산에서 나는 소나무로 만든 먹을
최상품으로 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보다 송진이 진하고 많아 가늘고 고운 그을음 입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탁하지 않고 맑은 먹을 얻어야 먹색이 깊어집니다.
(154)
내가 보고 싶었던 그림들이 바로 이것이다. 놀라는 얼굴 표정을 곁에서
보는 듯하고 밥 한술과 한 사발 탁주에 만족해하는 너털웃음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것 같구나. 길거리에서
송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어떤 판결이 내려지는지 한번 참견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서로
부대끼며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수령이 있으니 과인이 바라던 바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이토록 자세히 읽어내고 그려내다니, 마치 백성들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구나. 더욱이 표암이 유려한 필치로 느낌까지 적었으니 그 강평이 날카롭게 풍자되어 읽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만 하다.
(174~175)
김홍도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에서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표정을 잡아내 익살스러우면서도 해학적이고 감칠맛
나는 그림을 그렸다. 얼굴 표정 표정마다 이유가 있어 따뜻한 정도 묻어났다. 문무대관들이 아무리 설명을 한들, 아무리 서책으로 상세히 편찬해낸들
이 그림만 할까. 김홍도 그림 한 장이면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으니 무엇에
비견한단 말인가! 더욱이 그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숨겨져 있으니 느끼는 생동감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248)
정조가 원대한 계획을 펼쳐나가는 데 의지하고자 했던 인물은 채제공과 정약용, 그리고
김홍도였다. 외형적으로 붕당을 없애고 고루 인재를 등용하면서 노비제도를 철폐하여 위아래 없이 모두 잘사는
평등사회를 건설하면서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는 관행과 제도를 개혁하고 그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출판 사업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후대의 모범으로 남기를 바라며 문화 부흥의 꽃을 피워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노년에 이르러서는 화성 행궁으로 물러나 여생을 예술과 더불어 노닐고자 하는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313)
예리한 지적을 해주셨사옵니다. 인물뿐 아니라 의습선 또한 품위 있게
받쳐주어야만 그림에서 정기를 느낄 수 있사옵니다. 우리 초상화의 경우 중국과 달리 터럭 한 올 한 올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리면서도 생생한 생명을 불어넣듯 그리는 준엄성을 요구하옵니다. 채색 작업에서는 문무백관의
지위를 나타내는 흉배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 은은한 색조를 넣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색조가 들떠 보이거나 경박스럽지 않아야 화원의 진중함이 따라야만 비로소 완성의 미를 이룰 수 있사옵니다.
(318)
군주와 신하가 초상화 초본 석 점을 걸어놓고 자유로이 의견을 나누고 어느 초본이 마땅한지 정하는 과정이 참으로
민주적이다. 그리고 어진 작업을 일일이 살폈을 정조는 화원 이명기가 자신의 의도와 의중을 바로 살펴
어진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염려하면서도 복식보다는 눈동자가 주는 정채로움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처음부터
서편 유지본이 마음에 든다고 피력하였고 좌의정 채제공까지 동의하였는데도 신하들이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중앙 원유복 초본으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해 준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홍도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동편 유지본을 선택하였다. 대략 그려진 초본이기에 세밀하게 묘사되지 못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무언가 시선을 당기는 강한 기운을 느꼈고
주상의 어진 동참 화사로서 명주 올리고 채색을 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고려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