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렇게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 형태를 바꿔 가며 상태를 바꿔 가며 이런저런 화합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뿐이다. 누군가의 몸속에 있었던 원자든지 인간이 나고 자라고 죽고 문명이 성하고 쇠하고 꽃이 피고 지고 숲이 우거지고 새가 울다가 날아가 버리는 동안 언제나 같은 원자인 채로 남아서 세상을 떠돈다. 원자는 불멸의 존재다.

불멸의 원자라는 개념은 놀라울 만큼 일찍 인간의 문명 속에 나타났다. 2,400년 전 아브데라 출신의 데모크리토스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근본적인 물질인 원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세계관을 펼쳤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는 불멸의 존재였고 데모크리토스에게 이 세상은 빈 공간과 원자로 이루어진 물리적 대상이었다.

(23)

지구에 가장 많은 원자는 지구 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철이고 그 다음은 산소, 그리고 규소다. 그러나 우주 전체에 가장 많은 원자는 소소다. 수소는 우주 전체에 있는 원자 개수의 약 90퍼센트에 달한다. 그리고 나머지 10퍼센트는 거의 헬륨이다. 세 번째로 많은 원자인 산도도 0.06퍼센트에 불과하다. 태양을 비롯해서 우리가 보는 별은 대부분이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 있다. 수소는 별들이 타오르는 연료다. 중력에 의해서 성간 물질이 뭉쳐져서 별을 만들고, 내부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서 약 1000만 도에 이르면 별이 점화된다.

(26)

오늘날 우리는 우주에서 원자핵을 합성하는 모든 과정을 알고 있다. 밤하늘의 많은 별들 속에서는 지금도 계속 수소가 헬륨이 되는 핵융합이 일어나고 있고, 헬륨은 다시 탄소와 산소를 만든다. 더 무거운 별들 속에서는 네온과 마그네슘, 규소 등 점점 무거운 원자가 생겨나서 마침내 철과 니켈까지 만들어진다. 그보다 더 무거운 원자들은 중성자를 천천히 흡수해서 만들어지거나, 초신성이 폭발할 때와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중성자나 양성자를 급격히 흡수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28)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수십억 년 전 어느 별 안에서 만들어져서 초신성의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에 흩어지거나 적색 거성의 표면에서 흩날려서 떠다니다가 서로 만났다. 우리는 언젠가 우주 어디선가 일어났던 초신성의 흔적이며 수많은 별들의 죽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다. 우리가 언젠가 죽겠지만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언제까지나 남아서 지구 어느 곳인가, 혹은 우주 어느 곳인가에서 또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48)

맥스웰의 고전 전기 역학에 양자 역학의 원리를 적용한 이론을 양자 전기 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전자기적인 상호 작용이므로, 양자 전기 역학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습을 대부분 설명해 주는 근본적인 이론이다. 그래서 양자 전기 역학 이론을 확립하고 전기장의 양자 역학적 효과를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1920년대 후반부터 이론 물리학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55)

다시 전자를 바라보자. 우리가 전자를 볼 때, 우리는 전자와 전가기장을 따로따로 보는 것이다. 애초에 전자기장 없는 전자 그 자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전자만을 보려고 생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옳지 않다. 우리가 보는 진짜 맨물리량과 양자 역학적 효과를 모두 합친, 그러니까 재규격화된전자이며,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전자다. 이것이 양자 전기 역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일이다. 그렇게 우리가 전자 하나를 보는 일조차 근본적으로 이론과 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62)

숨은 쿼크는 양자 역학의 효과로 양성자 속에서 생성되었다가 소멸하는 쿼크-반쿼크 쌍이다. 전자가 양성자 안에 들어왔을 때, 드러난 쿼크를 만날 수도 있지만 마침 생성된 쿼크나 반쿼크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양성자가 너무나 작아서, 그 속은 양자 역학이 완전히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더구나 양성자 안에서는 대부분의 일이 강한 상호 작용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한 생성과 소멸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난다. 숨은 쿼크들은 항상 입자-반입자의 쌍으로 만들어졌다가 소멸하기 때문에 양성자 전체로 보아서는 이들의 성질은 서로 상쇄되어서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쿼크뿐 아니라 글루온도 강한 상호 작용 자체의 양자 효과로 계속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하고 있으므로, 전자는 쿼크뿐 아니라 글루온을 만날 수도 있다.

(86~87)

반입자는 입자와 질량은 똑같고, 전하뿐 아니라 모든 물리적 성질이 정반대인 상태다. 그래서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모든 물리적 성질이 서로 상쇄되어 0이 되고 두 입자는 소멸한다. 다만 입자와 반입자의 질량만은 상쇄되지 않고 남아서, 그 질량만큼의 복사 에너지가 된다. 한마디로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빛을 남기고 살져 버리는 것이다. 우리 세상은 그냥 물질로 되어 있으므로, 반물질이 나타나면 물질과 만나서 금방 소멸해 버린다. 그러니까 반물질을 보관하려면 보통 물질로 만들어진 용기에 그냥 담을 수 없고 항상 진공 속에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언가로 반물질을 붙잡아서 공중에 떠 있게 만들어야 한다. 양전자나 반양성자라면 전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전자기장으로 조종해서 일정한 위치에 잡아놓을 수 있다. 이는 베트라 부녀가 아니더라도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 CERN의 소장쯤 되는 사람이 놀랄 일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 구현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119)

페르미가 즐겨 그렇게 했듯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적절한 가정을 통해 단순화시켜서 자세한 계산 없이 정량적인 값을 어림해 내는 것을 페르미 해답(Fermi Solutio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페르미 해답을 구하도록 문제를 페르미 문제(Fermi Question)라고 한다.

(133)

1947 12 23, 바딘과 브래튼은 저마늄 표면에 0.05밀리미터 간격으로 놓인 텅스텐 침을 통해 진공관처럼 전류를 증폭시킬 수 있는 소자를 개발하고 특허를 취득했다. 이 소자의 이름은 트랜지스터로 명명되었고, 특히 이들의 발명품은 점-접촉 트랜지스터라고 부른다. 특허권자의 이름에 쇼클리는 없었다. 쇼클리는 이 발명은 자신의 이론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시금 충격을 받은 쇼클리는 호텔 방과 집에 틀어박혀서 몰래 새로운 방식의 소자를 연구했다. 두 종류의 반도체를 접합한 쇼클리의 트랜지스터는 1948년에 발표되었다.

(252)

오늘날 입자 물리학의 실험적 연구는 가속기 없이는 생각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입자는 시간이 지나면 보다 안정된 상태로 붕괴해 버린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물질은 모두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전자가 안정된 상태로 결합된 원자로 만들어져 있다. 다른 입자를 보고 싶으면 특별히 높은 에너지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지구에서 그런 높은 에너지 상태는 초신성 폭발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 입자인 우주선이 우주를 날아오다 지구에 부딪힐 때만 생긴다. 그래서 1940년대까지 입자 물리학 실험은 하늘 높이 띄운 기구에 설치된 검출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1933년 미국의 어니스트 로런스가 원형 입자 가속기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하면서, 가속기로 입자를 직접 만들어서 연구할 수 있게 되었고, 입자 물리학 연구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304~30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속도와 4차원 같은 새로운 발명으로

걱정거리를 만들죠.

미스터 아인슈타인의 이론에는

이제 조금 지쳤어요.

그래서 가끔은 땅에 내려와서

긴장을 풀고 쉬어야 해요.

무슨 전본가 있건

무엇이 더 증명되든

인생의 단순한 사실은

사라질 수 없다는 것.

험프리 보거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한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곡 <시간이 흐르면서( As time goes by)>는 원래 1931년에 허먼 후펠드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위해 만든 곡이다. 영화에 나오면서 이 곡은 대히트를 거둬, 1931년에 취입한 루디 발레의 곡이 10년도 더 지나서 뒤늦게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곡의 앞부분 가사는 사실 앞에 보인 내용이다. 이 가사를 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당대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충격을 미쳤는지를 느낄 수 있다.

(338~339)

이 모임의 이름은 홀브루 컴퓨터 클럽으로 결정되었다. 이 모임과 그 주변에서 앞으로의 컴퓨터 기술의 , 아니 컴퓨터 산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인물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당시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아마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은 홀브루 클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알테어용 컴퓨터 언어 베이직을 개발한 시애틀 출신의 깡마른 십대였다. 자신의 프로그램이 팔리기 시작하자 다니던 하버드 대학교를 때려치우고 컴퓨터 사업에 뛰어든 이 젊은 천재는 약 20년 뒤에 컴퓨터 산업의 황제가 되어,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다. 그의 시름은 윌리엄 헨리 게이츠 3, 흔히 빌 게이츠라고 부른다.

또 다른 인물들은 홈브루 클럽에 나오던 두 사람의 스티브였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 중에 나이가 많은 쪽은 전자 공학과 컴퓨터에 대한 전설적인 능력으로 유명해서, 그가 홈브루 클럽의 회합이 열리던 스탠퍼드 선형 가속기 연구소 강당의 뒷자리에 앉아 있으며 주변에는 그의 뛰어난 컴퓨터 능력을 숭배하는 추종자들이 몰려 앉아 있곤 했다. 어린 시절엔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던 어린 쪽의 스티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자 공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친구의 소개로 나이 많은 스티브를 알게 되어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얼마 후 나이 많은 스티브가 새로 나온 6502 칩을 사용해서 만든 개인용 컴퓨터를 홈브루 클럽에서 발표했다. 그는 그저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는 것이었지만, 이를 지켜본 어린 스티브는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함께 사업을 시작할 것을 권했다. 직접 만든 컴퓨터를 파는 그들의 사업은 곧 성공해서, 얼마 뒤에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른다. 무수한 우여곡절과 부침을 거친 후, 이 회사는 2011년 석유 회사인 액슨 모빌을 제치고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회사가 된다. 이 회사가 그들이 처음 만든 개인용 컴퓨터의 이름은 애플이고, 나이 많은 스티브의 이름은 스티븐 워즈니악, 어린 쪽은 스티브 잡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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