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혼자 있다고 꼭 고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은
물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벗삼고 있다. 반면 내자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 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구’가 다름이 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 (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이 거기 있을 때조차
그가 그리운 상태를 말한다.)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거기,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내가 모두 결핍되어 있는 단절도
있다.
(34)
“예술가는 고독 속에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끊임없이 통제되는 그런 환경 속에서만. 그것이
없다면 관념과 이 관념의 실현간의 불가분의 통일성이 외부의 침입에 의해 깨어질 수도 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떤 비율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낸 매시간에 대해 X시간을 혼자 보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늘 직감적으로 느껴 왔다. 이 X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만큼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한 시간이다. 아무튼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는 내게 매우 친근한 의사
소통의 수단이었으며, 나는 거의 중단 없이 라디오를 들어왔다. 내게
라디오는 벽지와도 같았다. 나는 라디오와 함께 잠이 들었으며, 넴뷰탈을
포기한 후로는 라디오 없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독의 메타포인 라디오는 여러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 마음내키는 대로 틀거나 끌 수 있으니까 우리가 원할 때 자리에 없고, 없어도 좋을 때 곁에 와 있는 타인들과는 달리.)
(41)
굴드는 청중 쪽으로 등을 반쯤 돌린 채 다리를 꼬고, 거의 비스듬히
앉은 자세로 첫번째 악장을 연주했다. 그리고 나서 느린 악장에 이르자 입이 반쯤 벌어지고 무대 천장에
눈이 고정된 그의 모습은 황홀경에 빠진 사람과도 같았다. 그 다음 마지막 악장에 가 거의 뒤로 나자빠진
듯한 자세가 된 그의 머리는 건반에서 너무도 떨어져 있어, 자신의 손을 마치 자기 것이 아닌 양 바라보는
것 같았다.
(59)
음악의 핵심 속으로의 온전한 칩거, 모든 것으로부터의 결별, 성급한 떠남, 이 모든 일은 굴드가 무대를 떠난 순간 이미 일어나
있었던 일이었다. 1963년의 사건은 그의 긴 탐구의 첫 단계가 아니고 마지막 단계였다. 후퇴 혹은 은거는 결렬이라기보다 음악과 이 반복되는 실종간의 해묵은 내밀한 공모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음악은 그에게 참으로 존재하며, 그를 사로잡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연주회는 한층 고통스럽게
그를 음악으로부터 갈라 놓는 것이었다. 집착하는 모든 것, 만남, 아이들, 일상의 작업들과 같은 기쁨과 고통의 이 매듭들은 늘 그에게
탈주를 꿈꾸게 했다. “아무곳이든지, 세상 밖으로.”
(74)
그는 음악에 옷을 입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이 옷을 벗기를
원했다. 또한 음악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살가죽을 벗기는 것을, 털을
곤두서게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사진들 속의 그는 몹시 마른 모습이다. 뼈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살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몸에는 엄청난 힘이 배어 있다. 일상의 과육이 해체되는 이 순간,
푸가의 골격에서 찾아지는 그런 힘이.
(99)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 시토회 수도자 토마스 머튼의 개념과도 비슷한 후퇴의 미학.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피아노 자신과도 거리를 둘 것. 그는 녹음이
있기 전 며칠 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것의 정신적인 형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의 손가락의 속박 사이에 일정의 투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손가락의 속박에서 우리가 해방된다. 형상이 “그 개념의
순수성으로부터 한눈을 팔아 피아노에 부딪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또 “피아노를 연주하는 비결은 어느 정도 자신을 악기로부터 떼어 놓는 방식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리의 순간들, 피아노와 음악을 분리시키는 기술들을 되새겨 보자.
(102-103)
굴드의 악기의 고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했다. 헐벗은 연주. 악기가 미혹시킨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장식적인 기능을 삭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바흐의 장식음들을 그는 마치 장식음이 아닌, 악절의
다름 음들과 똑 같은 멜로디와 화음의 가치를 지닌 음들처럼 연주한다. 이들의 필연성과 절박함을 발견하기
위해서인 양, 분해되어 나온 뚜렷한 음들로 천천히 연주한다. 그러므로
페달이 사용되지 않는다. 페달은 옷을 입히고 가리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의 몸이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를 원했다. 우리의 몸이 인위적인 장식들을 박탈당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살덩이의 치욕 속에 버려져 죽음으로 가듯이.
(106)
음악에 대해 그가 행사한 지배력은 음악 안에서의 지배력에 지나지 않았다. 음악에
오롯이 사로잡혀 있던 그는 절대로 음악이 그의 수중에 든 것처럼, 자신 안에 축적되고 정리되어 있거나
위협하는 것처럼 연주하지 않았다. 음악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아라우처럼 음악이 스스로 다가오도록 하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낳을 때처럼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음악을 수행하는 식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따고, 들어올리고, 아니면 공중에서 낚아채는 듯했다. 언제나 밖에서, 뒤로 물러서며 끝없이 한계를 넓혀 가는 어떤 공간
속에 있듯이 그는 음악 속에 있었다. 더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는 그것이 포착되지 않기를 바랐다. 친숙해지면
음악은 꺼져 버리고 만다. 근원은 우리가 그것을 찾아나서면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무서운 것이 잊혀지고 나면 아름다움은 부재한다.
(108)
굴드의 연주에는 몹시도 신비한 무엇이 들어 있다. 아주 스타카토적이고
점묘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이 세코(secco)식이 연주를 통해 탁월한 밀도와 놀라운 연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굴드는 페달을 통한 음의 용해나 손가락의 레가토 연주 증 외부적인 무엇으로 연결성을 만들어
내지 않고, 크레셴도와 디크레셴도를 통해 리드미컬하다기보다는 강양이 위주가 된 프레이징을 만들어 낸다. 연속성은 인접성을 통해서가 아니고, 완전히 별개인 음들의 꾸준한
단계적 상승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재봉틀로 땀을 드느냐, 모호한
후광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딜레마를 비켜 간다.
(124)
굴드는 불가능한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다.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두고 그가 음악의 ‘무형성’이라고
지칭한 그것이었다. 그가 보기에(아니면 실제로) 음악은 양극단 사이의 긴장이다. 대수의 복잡성과, 더 큰 초연을 지향하는 사고의 움직임. 그리고 음들 속에 감추어진
확고부동한 기반.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굴드가
확신했듯이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음악이 모습을 갖추자마자, 유한한
공간이 음악을 삼켜 버린다고, 결함과 결핍, 실추가 불가피하다고
믿어야 할까? 아니면 굴드의 연주를 듣고 내가 확신하듯이, 이
같은 타락 속에서만 무언가를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149)
고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음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따금 음악이 일체를 엄습해 깡그리 지워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음향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없을 수도 있지만, 음향은
거기에 있다.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다. 때론 아주 미미한 것, 거의 무효화된, 아니면 부서진 무엇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음악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음악 안에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외부로, 내면이 된 외부로
나아감이다. 마치 내면에 이미 외부가 존재하는 양. 음악은
신의 자질들을 지니고 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보존하면서 채운다. 그것은 에워싸고 조여 온다. 그러면서도 귀로 올라오는 기쁨, 혹은 첨예한 고통으로서,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 내부에 머문다.
(169)
굴드는 혼자 살았지만, 절대로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머리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면
자신을 보호하고 그가 나누고 있는 말, 때론 광적인 환희를 담고 있는 말로부터 스스로를 추방하기 위해
늘 배후에 음악을 두고 있었다. 종종 그는 말을 하다말고 물었다. “지금
내 생각 깊은 곳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생의
말기로 접어들면서 그 대답은 점점 더 예측 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변신>이었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존 리 로버츠는 굴드를 사로잡고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추측해 보아야 했다. 어떤
음악이 그의 말을 가로막고, 그의 내부에서 말을 하는지. 이번에
로버츠는 빗나가고 말았다. 굴드는 여전히 슈트라우스. 그의
마지막 작품 <4개의 마지막 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뒤 굴드는 완전히 지친 듯이 보였다. “나는
당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라고 상대방이 그에게 말한다. “그렇습니까? –벌써 마지막 노래에 와 있군요?-맞습니다. 정확히 그곳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시가 말한다. “벌써 죽음인가?” 악보에는 ‘여전히 보다 느리게’라고
적혀 있으며, 그 다음에는 리타르단도,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이끎음 Bb이
으뜸음 Cb과 경합할 때는 ‘아주 느리게’가 된다.
(185)
누가 진실 속에 있는 것일까? 누가 알겠는가? 그걸 알아야 할까? 사랑하려면 알아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사랑에는, 아니면
단지 귀기울이는 데에는 전기적인 앎과는 다른 앎이 있다. 설령 앎이 사랑을 확장시키고 활력을 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절대로 사랑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해하려면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
(190)
나는 굴드가 연주한 <골트베르크 변주곡>의 마지막 녹음의 마지막 부분(아리아의 재현)의 마지막 음들을 듣는다. 지속된 화음이 잠시, 새가 날아가 버린 가지가 희미하게 떨리듯이 부르르 떤다. 굴드를
들으며, 굴드에 관해 쓰며 결국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들의
삶을 살지 않았던 예술가들, 그러나 이들 덕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그나마 괜찮게 살 수 있게
된 그런 예술가들을 경험할 때 늘 그렇듯이. 이 놀라움은 놀래키고 당황하게 만들고 기발하게 보이려는
욕구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참된 놀라움은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가 “그래, 이거야. 이렇게밖에는 될 수 없었어”리고 말하도록 만든다. 발설된 것은 방금 전까지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예술은 가장 높은 사명을 지닐 때 거의 인간적이 아닌 무엇이 되어 버린다.”고
언젠가 굴드도 말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