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정확히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싸우는 거다. 브르타뉴에서 배웠지. 이 참혹한 세계는 약하고 무기력하고 굶주리고 슬프고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약자를 외면하는 건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일 게야. 특히 네가 군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전사가 어떤 남자의 딸을 빼앗고 싶으면 그냥 빼앗고, 땅을 원하면 죽이면 되니까. 결국 넌 전사가 아니더냐. 너한테 창과 탈이 있는 반면에 상대는 부러진 쟁기와 병든 소뿐인데, 거칠 게 뭐가 있겠냐?” 물론 대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저 조용히 걷기만 했다. 서쪽 성문의 통나무 계단에는 새로 내린 서리가 하얗게 쌓여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계단을 올랐다. 아서가 입을 연 건 계단 위에 완전히 올라선 후였다. “하지만 데르벨, 우리가 군인이 된 건 바로 그 약자들이 우리를 군인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란다. 그가 곡식을 키워 우리를 먹이고, 가죽을 무두질해 보호해주고, 물푸레나무를 깎아서 창대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지. 우린 그 사람들한테 봉사할 의무가 있어.”

(389)

그냥 대화나 하자는 것 아니냐! 대화는 문명의 이기야, 데르벨. 칼과 방패와 욕설만으로 삶을 꾸릴 수는 없지 않겠니? 우리 같은 사람들만이라도 그 명예로운 이기를 시도해야지.” 그가 콧방귀를 끼었다.

(515-516)

당연히 아니지. 데르벨, 사람들은 아서를 과서평가하고 있어. 그의 선과 친절을 보고, 정의 대한 웅변을 듣지만, 그 안에 정말로 어떤 불이 타오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데르벨, 자기도 모르긴 마찬가지야.”

어떤 불입니까?”

야망.” 그녀가 담담하게 내뱉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영혼은 두 마리 말이 끄는 화차야. 야망과 양심. 하지만 데르벨, 야망의 말이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양심은 그 말에 끌려갈 수밖에 없어. 게다가 그 사람, 능력도 있잖아. 그것도 상상도 못할 능력이.(슬픈 미소) 그 사람을 잘 지켜봐, 데르벨. 모든 것이 파괴되고 절망적인 순간이 되면, 사람들을 정말로 놀래줄 테니까. 전에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그 사람은 이겨. 그때마다 양심의 말이 고삐를 빼앗아, 적을 용서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문제지만.”

(557)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을 들여다보면, 문득 그 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그 눈빛에 숨이 한 박자씩 빨라지고, 그 눈만이 행복의 모든 조건이며, 그 눈이 없으면 영혼은 공허한 껍데기가 되고 말 거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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