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출간되어 아빠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라 있던 <영초언니>를 이번에 읽었단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소설인줄 알았어. 그런데, 소설이 아니고 지은이 서명숙과 그와 함께 젊음을 불태웠던 언니들과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꼭 한번 읽고 싶었어. 아빠와는 약 20년 차이를 두고 대학 생활을 했던 그들그들의 젊음은 어땠는지 알고 싶었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세 여자>라는 소설이 떠올랐단다. 시대는 달리 했지만, <세 여자>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영초언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있었지. 불의에 참지 않았고, 부조리한 사회를 손수 고치려 했고, 무식한 권력에 저항했던 여인들행동하는 지식인들

아빠가 책을 읽을 때 북커버를 두르고 읽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북커버를 벗겼는데, 책 뒷면에 유명 인사들의 추천사가 실려 있었단다. 그들 중에는 아빠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조정래, 손석희, 유시민도 있었어.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이 추천한 책이었다니.. 그들의 추천사 중에서 유시민의 추천사를 발췌해본다.

===================================

이 책이 그린 것은옛사랑이 아니라첫사랑이다. 세상에 대한 첫사랑으로 불타올랐던 청춘, 같은 대상을 두고 첫사랑에 빠졌던 여자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설명할 길 없는 불운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영초언니를 대신해, 대책 없이 씩씩했고 지금도 여전히 어여쁜 그 첫사랑의 떨림과 짜릿함을 전해준 서명숙이 내게 물었다. 짧고, 부질없으며,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우리네 인생에서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대답한다. 없다!

===================================

, 조정래 선생님의 추천사도 소개해주고 싶구나.

===================================

우리는 지난 겨울의 매서운 밤추위를 무릅쓰며 1700만 개의 촛불을 밝혀 끝내 민주시민 혁명을 이룩해냈다. 그 줄기찬 협동과 용기와 인내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 뿌리는 바로 유신독재 투쟁으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더 온전한민주세상을 갈망한다면 필히 이 <영초언니>를 읽어야 한다. 영초언니의 희생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대해 책임지는 마음으로.

===================================

1.

이 책의 지은이 서명숙은 제주 서귀포 출신으로 올레길 개척자로도 유명한 사람이란다. 기자 출신이라고 해서 취재한 글을 모은 책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적은 글이었어. 서귀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제주도 안에서만 자랐어.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으니, 바깥세상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왜곡된 텔레비전 방송뿐이었지. 그렇다 보니 서명숙은 어린 시절 박정희를 존경했다는구나.

그러다가 1976년 고려대에 입학하게 되고, 고대 학보사에서 기자생활을 했대. 그러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 알고 지냈는지 깨닫게 되었대. 점점 세상을 볼 수 있는 진짜 눈을 갖게 된 거야. 그런데, 그 세상이라는 것이 그동안 생각했던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온갖 불의가 판을 치고, 부조리한 세상이었어. 그들의 아름다운 청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상.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들은 총칼 앞에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었단다. 몇 해 전부터 연이어 내려진 긴급조치 때문에 대학에는 사복경찰들이 잠복해 있었고, 대학가에서 시위가 사라진 것도 한참 전이었지. 그렇게 1970년대 대학가는 암흑의 도시와 같았단다. 그러고 보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아빠는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앞서 1970년대,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선배님들의 저항에 감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서명숙은 학보사 선후배 모임에서 졸업생인 천영초를 알게 되었어. 말로만 들었던 전설적인 선배, 천영초. 천영초의 권유에 따라 같이 자취를 하게 되었단다. 천영초는 72학번으로 고대를 졸업하고 한신대에서 대학원으로 다니고 있었어. 천영초를 통해서 고려대 여학생 선후배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가라열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대. 그 모임을 통해 같이 공부도 하고, 여권 운동도 했었대.

2.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긴급조치로 인해 시위가 없었다고 했잖아. 대학생들이 암암리에 약속을 해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습적인 시위를 했대. 천영초도 이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나와. 서명숙은 같은 학보사 동기 엄주웅의 제안으로 야학활동을 하기도 했어. 구로동에 공장들이 많아서 그곳에서 야학교사로 일했고, 그러면서 다른 대학들의 학생들과 교류도 많이 했대. 그때 반가운 이름도 등장을 했단다. 서울대 78학번 서울대 새내기 유시민유시민의 등장은 이 책의 큰 줄기에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이 까메오처럼 등장해서 반가워서 이야기한 것이란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습 시위 이후 경찰의 단속은 더욱 심해졌고, 대학가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시 시위가 벌어졌어. 학생들의 용기들이 커져갔어. 아니, 시대가 점점 절박한 상황이 되어갔던 거야. 고려대에서도 각종 학생회에서 시위를 준비를 했는데, 가라열 모임에서미모를 담당했던 생물학과 혜자언니의 시위 주동은 뜻밖이었다고 하는구나. 당시 주위 시동을 하게 되면, 감옥에 가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감옥에 가면 모진 고문을 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럼에도 시위의 주동을 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었어. 얌전하고 조용하던 혜자언니가 그걸 해내다니

==================================

(89)

그도 그럴 것이 이날 언니가 연단에 선 장면은 그동안 우리 모두의 잠재의식에 깔려 있던 고정관념, 운동권의 기존 프레임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었다. 입학하고 난 뒤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들은 이야기는 데모할 때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돌을 날라다주거나 마실 물을 떠다주거나 피를 닦아주었다는 등의 미담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서 치마폭으로 돌을 나른 조선시대 여인들의 현대판이라고나 할까. 그런 남성 중심적인 대학에서 이념서클 출신도 아니고, 운동권에서도 사실상 무명이나 다름없는 여학생이 데모를 주동하다니, 일대 사건이었다. 그동안 소문으로 무성하게 나돌던데모 주동자 예상 명단에 혜자언니는 올라 있지 않았다.

==================================

혜자언니는 예상했듯이 감옥에 갔고, 예상했듯 모진 고문에 시달려야 했어. 이후 혜자언니는 줄곧 노동운동 일선에 있었고, 나중에 결혼도 노동운동 때 만난 운동가와 했으며, 최근까지도 활동을 하고 있다는구나.

티격태격하던 학보사 동기 엄주웅이 어느날 늦은밤 찾아와 사랑 고백을 했어. 그리고 바로 다음날 시위를 주동하고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갔다고 하는구나. 서명숙 또한 감옥에 다녀왔어. 조금이라도 학생운동을 했다가는 긴급조치에 걸려서 감옥 구경을 아니할 수 없던 시절이었지. 교생실습 때문에 고향에 내려왔다가 교생실습은 나가보지도 못하고, 다시 서울로 끌려와 감옥에 갔단다. 당시는 그런 시대였어. 그리고 그런 시대는 한 발의 총알이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할 때까지 계속되었단다.

3.

시대가 바뀌어 1980년대가 되었지만, 불운하게도 봄은 오지 않았어. 여전히 군사독재시대.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 소식은 콱 막혀서 전혀 알지 못했어.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려는 운동을 했어. 영초언니는 늘 그랬어.  언제나 그런 사람인 것처럼

==================================

(237)

그 좁은 방에서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등사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광주를 찾아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시기에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온몸으로 결기를 내뿜는 그녀 앞에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경험칙상 많은 걸 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지는 지름길이었다. 이렇게 만든 유인물을 누구를 시켜서 어디에 배포할 것인지 나는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도 내게 같이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한 차례 구속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했으므로.

==================================

진실을 밝히려고만 했을 뿐인데, 그런 일들로 영초언니는 감옥을 들락날락해야만 했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 이야기란다. 영초언니는 같이 운동을 하던 정문화라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으면서 영초언니도 젊은 날의 열정이 점점 사그러들었다고 하는구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나봐. 그리고 정문화와 헤어지고, 아이와 둘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하는구나. 아이가 한국에서 왕따를 당해서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대. 홀로 남은 정문화는 젊은 나이에 큰병을 얻어 그만 세상을 일찍 뜨고 말았대. 다른 운동권들이 정치계에 뛰어들어 이름을 날리던 것과 상반되게, 그의 죽음은 너무 허망했단다.

지은이 서명숙은 가끔 영초언니와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캐나다에 정착을 하고 나서 영초언니가드디어행복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비록 완벽한 행복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얻은 행복이었지.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 캐나다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를 크게 다쳐서 시력을 잃고,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고 하는구나. 사고소식을 듣고 서명숙은 바로 캐나다로 날아가서 영초언니를 만났지만, 아무 기억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영초언니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그저 눈물만….

영초언니는 나중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요양을 하고 있대. 기억은 작은 파편들만 기억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신연령도 서너 살 정도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던 영혼은 타지의 교통사고와 함께 육신 밖으로 튕겨 나간 다음에 찾아오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모두에게 잊혀진 사람이 되었어. 서명숙은 그런 영초언니의 기억을 이 책을 통해 기록한 것이야. 그러면서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어. ,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하지만 우리고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자신의 젊음을 마쳤던 사람을 알게 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

바람이 있다면, 기적이 일어나서, 영초언니의 영혼이 잃어버린 육신을 찾아 돌아와, 모든 기억을 되찾아 민주주의 완성체가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에 보고 환하게 웃으셨으면 좋겠구나.


(43)
더 큰 자괴감은 외부검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하면서 찾아들었다. 교수님이나 간사 선배에게 한소리 안 듣기 위해, 막판에 대형사고를 치지 않으려고, 우리는 스스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누가 기획안을 내놓으면 “그거 되겠어? 나갈 수 있겠어?”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물정 모르고 용감한 제안을 내놓는 동료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안팎의 압력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부자유를 스스로 선택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표현도 점점 에둘러서, 비판인지 아닌지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문장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검열의 눈을 피해가고 비껴갈 수 있었기에.

(49)
“담배 없이 대체 무슨 낙으로 사니? 이 답답한 세상에 담배라도 없으면 정말 숨막혀 죽을 것 같 같은…… 너도 한번 피워볼래?”
‘담배 없이 무슨 낙으로’라는 말이 내 가슴에 탁 꽂혔다. 그즈음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대학과 학보사를 둘러싼 숨막히는 분위기, 신문사를 떠난 동기, 야학과 신문사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

(117)
무고한 양민들이 좌익으로 몰려서 죽어간 4.3의 영향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도로 친정부적인 정치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억울하게 몰리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였으리라. 시장통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면서 바쁜 일상에 휘둘리던 우리 부모의 정치의식도 제주도민의 평균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평균 이상의 ‘우파 보수층’이었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는 인민군으로 강제 징용당해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혔지만 김일성 치하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남한을 선택한 이른바 ‘반공청년단’ 소속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당시 같은 문중이던 현씨 집안이 배출한 현오봉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던, 시장통의 공화당 조직책이었다.

(237)
그 좁은 방에서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등사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광주를 찾아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시기에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온몸으로 결기를 내뿜는 그녀 앞에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경험칙상 많은 걸 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지는 지름길이었다. 이렇게 만든 유인물을 누구를 시켜서 어디에 배포할 것인지 나는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도 내게 같이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한 차례 구속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했으므로.

(272)
행복! 당시의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사전 속에서나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는 그런 단어로 여겨졌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정치부 기자들의 최대 전쟁터, 시사지의 판도를 좌우하는 대목인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사지 편집장인 내게 ‘행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총 맞고 전사하기 딱 좋은 전쟁터에서 이 악물고 용케 버텨내고 있었기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는 느낌이었고, 내 영혼의 우물물은 바싹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자각에서 진저리치는 나날이었다.

(280)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참한 심경이 들더라고.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맞서 싸웠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그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다니. 우리가 젊은 날 한 그 모든 일들이 역사로부터, 국민들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받는 느낌이랄까. 박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나는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입는 것 같아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못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