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더 큰 자괴감은 외부검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하면서 찾아들었다. 교수님이나 간사 선배에게 한소리 안 듣기 위해, 막판에 대형사고를 치지 않으려고, 우리는 스스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누가 기획안을 내놓으면 그거 되겠어? 나갈 수 있겠어?”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물정 모르고 용감한 제안을 내놓는 동료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안팎의 압력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부자유를 스스로 선택하는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표현도 점점 에둘러서, 비판인지 아닌지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문장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검열의 눈을 피해가고 비껴갈 수 있었기에.

(49)

담배 없이 대체 무슨 낙으로 사니? 이 답답한 세상에 담배라도 없으면 정말 숨막혀 죽을 것 같 같은…… 너도 한번 피워볼래?”

담배 없이 무슨 낙으로라는 말이 내 가슴에 탁 꽂혔다. 그즈음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대학과 학보사를 둘러싼 숨막히는 분위기, 신문사를 떠난 동기, 야학과 신문사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

(89)

그도 그럴 것이 이날 언니가 연단에 선 장면은 그동안 우리 모두의 잠재의식에 깔려 있던 고정관념, 운동권의 기존 프레임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었다. 입학하고 난 뒤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들은 이야기는 데모할 때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돌을 날라다주거나 마실 물을 떠다주거나 피를 닦아주었다는 등의 미담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서 치마폭으로 돌을 나른 조선시대 여인들의 현대판이라고나 할까. 그런 남성 중심적인 대학에서 이념서클 출신도 아니고, 운동권에서도 사실상 무명이나 다름없는 여학생이 데모를 주동하다니, 일대 사건이었다. 그동안 소문으로 무성하게 나돌던 데모 주동자 예상 명단에 혜자언니는 올라 있지 않았다.

(117)

무고한 양민들이 좌익으로 몰려서 죽어간 4.3의 영향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도로 친정부적인 정치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억울하게 몰리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였으리라. 시장통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면서 바쁜 일상에 휘둘리던 우리 부모의 정치의식도 제주도민의 평균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평균 이상의 우파 보수층이었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는 인민군으로 강제 징용당해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혔지만 김일성 치하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남한을 선택한 이른바 반공청년단소속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당시 같은 문중이던 현씨 집안이 배출한 현오봉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던, 시장통의 공화당 조직책이었다.

(237)

그 좁은 방에서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등사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광주를 찾아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시기에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온몸으로 결기를 내뿜는 그녀 앞에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경험칙상 많은 걸 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지는 지름길이었다. 이렇게 만든 유인물을 누구를 시켜서 어디에 배포할 것인지 나는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도 내게 같이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한 차례 구속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했으므로.

(272)

행복! 당시의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사전 속에서나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는 그런 단어로 여겨졌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정치부 기자들의 최대 전쟁터, 시사지의 판도를 좌우하는 대목인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사지 편집장인 내게 행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총 맞고 전사하기 딱 좋은 전쟁터에서 이 악물고 용케 버텨내고 있었기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는 느낌이었고, 내 영혼의 우물물은 바싹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자각에서 진저리치는 나날이었다.

(280)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참한 심경이 들더라고.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맞서 싸웠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그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다니. 우리가 젊은 날 한 그 모든 일들이 역사로부터, 국민들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받는 느낌이랄까. 박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나는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입는 것 같아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못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