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 예술의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느낀 가장 강렬한 느낌은 좀 '시시한 부분'이었다.

"이 책 제목이 좀 잘 못된거 아냐?" 하는 흔한 불평이 가장 강렬했다는 것에 어떤 변명을 가져다 붙이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고풍스런, 화려하기 짝이 없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표지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 대해 심사가 뒤틀린 탓일 거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이 그림(?)의 제목은 <음, 어쩌면> 이란다.

음? 어쩌면?? "만화 주제에 무슨 작품이라고!!" 라며 터무니 없이 빈곤한 감상을 빙자한 불평을 늘어놓는대도 사실 할 말이 없을 것 같은 그림이다.

그래도 작품이라는데 비전문가인 내가 들이대 볼 말은 없다.

(개인적 인상이지만 이 무슨 슈퍼맨 풍의 그림 아닌가?!)

아, 그 옆에 있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어떤가? 대충 그려놓은 것 같은 굵은 실선과 그 실선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각형, 그리고 그 사각형 안에 들어가 있는 노랑, 파랑, 빨강, 검정, 연파랑(?)(아니, 흰색은?)의 채색은 또 뭔가?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이게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란 걸 몰랐다면, "어디 초등학교 포스터 인가요?"라고 무식한 질문을 날렸을 법한 그림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이 어쨌다는 건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전체적으로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는 이런 감상을 염려했던 모양인지 표지 안쪽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학문 자체와 예술 자체는 위대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바와 같이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걸 말하려고 한 시도의 하나이니 말해지지 않은 것 같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당부의 말이 전제 된 책이 었던 것은 아닐까?

이건 그저 개인적인 해석일 뿐, 작가가 말한 것도 작품이 말한 바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인데다 내 감상 또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속하는 바, 내 말이 서툴러 다 말하지 못했다고 해도 흉이 되지는 않으리라.

이 책은 석기 시대의 암각화와 동굴 벽화에서 시작해, 현대의 피카소에 이르는 미술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미술사를 단 한 권의 얇은 책으로 꿰뚫어 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보니 유명한 작가, 낯익은 작품이 자주 등장할 수 밖에 없고, 그 작품의 의미를 세세하게 적을 수 없는 지면의 한계에 의해 뭔가 부족한 인상을 줄 수 있음을 각오하고서도 저자는 써 내려갔던 듯 하다.

하지만, 지면의 한계를 생각해보면 중세의 건축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건축 양식의 세부적인 사항들은 내 얕은 깜냥으로는 '미술' 보다는 세부적인 구분으로 '건축'을 따로 적는 것이 흐름상 매끄럽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그게 좀 아쉬웠기에 미리 안타까움을 적어두고 넘어가는 바이다.

그래서 책이 어쨌다는 거냐? 는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다. (삼천포에서 돌아온 것만도 다행으로 알자.)

위쪽 그림은 좀 예술 작품 같다.

하지만 아래쪽 그림은 미묘하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라고?

"사라미 아니므니다~!"인 거다.

왼 쪽은 프라고나르,「목욕하는 여인들」 이고 오른 쪽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솔직히 프라고나르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피카소라는 이름은 너무 또렷하다. 그는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이고, 그래서 유명한 사람이며, 그의 그림은 무척 비싸다라던가? 왼 쪽 그림도 싸구려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거지라도 낯익은 사람이 덜 두려운 법이다.

중요한 건 금전적 가치가 아니다. 무엇이 이들의 그림을 '작품'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물음이야 말로 중요한 것이다.

그럼, 그 '작품'의 필수 조건은 뭘까?

저자는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가 부조리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한다. 부조리함을 실감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노력이 바로 예술이란 이야기인 셈이다.

파르테논 신전은(어쩌면 파르테논 신전 사진이 이것 하나밖에 없는지? 몇 권의 책에서 이 사진을 본 것 같아!!) 신화가 단순히 신화를 넘어서 인간 세상에 남겨진 유물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존재를 완전히 증명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시간을 넘어 인간의 존재를 그 위대함을 증명하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에서 미술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안에는 작가가 이해하고 해석한, 그리고 마지막에는 표출을 통해 재구성한 시대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동하고, 슬퍼하며, 또 다른 창조에 나서는 것이 아닐까?

작품에 철학이 없다면 죽죽 그어놓은 직선과 대충 색을 칠한 사각형에 불과할 그림이 철학적 해석을 통해 작품이 된다.

초현실적으로 구성된 구도와 인물의 형상, 어린 아이의 낙서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그림도 작가의 비판과 사상, 철학이 표출 될 때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고대의 동굴에 그려진 벽화도 같은 맥락에서 그 시대를 반영하고, 사람과 삶, 존재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작품이 된다.

삶의 무게, 존재의 가벼움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 생각을 아주 먼 훗날까지 남기고 전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증거를 남기는 일에 부지런히 임하는 이들이 있다.

시대를 따라 각각의 작품의 해석을 달라진다. 그 시대를 지배하는 철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형태로든 각각의 시대는 연대를 맺게 된다.

낯익은 그림들을 가볍게 만나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으리라. 그 후에 더 깊이 심취해 간대도 누가 말을 보탤 수 있겠나.

철학은 견고한 건축물의 받침돌과 같다. 수천 년, 수만 년을 견디게 하는 건 바로 그 철학의 힘인 셈이다.

철학이 있는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철학이 있는 역사도 언젠가 의미를 갖는다.

개개인의 삶에는 저마다의 철학이 있다. 하지만, 홀로 존재하는 개인이 없듯, 홀로 존재하는 철학 또한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거대한 시대의 구성원, 하나의 받침돌인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의 신화 - 쾌락적응, 생존에는 유리자히만 행복에는 불리한
소냐 류보머스키 지음, 이지연 옮김 / 지식노마드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필수 조건은 무엇인가?

혹시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어떤 것이 결핍되었다는 이유에서가 아닌지?

흔한 예를 들어보면, "난 돈이 없어. 그래서 불행해.", "난 병에 걸렸어. 그런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와 같은 명제에 대해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 책은 우리 삶에 두루 퍼져있는, 신화처럼 여겨지는 행복의 필수 조건들이 진정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단순히 직관에 의지해 이론을 펴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끌어낸 결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 행복을 망칠만한 생각을 하는 것도 우리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 하나의 실험이 있다.

선생님은 입구가 넓은 유리병을 아이들의 앞에 놓고 그 안에 큰 돌을 채운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이 대답한다.

"네~!" 선생님은 이렇다 저렇다는 말 없이 큰 돌 사이에 작은 돌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네~!!" 아이들은 이번에도 힘차게 답한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이렇다 저렇다는 답 없이 모래를 넣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은 이번에야 말로 틀림없다며 "네~!!!!"하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병 안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묻는다.

"이제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은 선뜻 답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질문을 바꾼다.

"이 실험이 주는 교훈이 뭘까요?"

아이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기대한 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답은 단순히 직관에 의지한 충동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믿는 것에 대한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행복이라는 필수적인 요소에 대해 우리는 너무 많은 부분에서 직관과 헛된 믿음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선생님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 실험의 교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결론은 직관에 의지한다기 보다 확실히 과학적 근거에 의해 지지받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대답한다.

"이 실험의 교훈은 큰 돌을 먼저 넣는 것입니다."

이 예삿말이 내 뇌리에 얼마나 큰 소리로 울렸는지 아마 상상할 수 없으리라.

"큰 돌을 먼저?, 내 삶에 있어 큰 돌의 의미를 갖는 것이 뭐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그 어떤 물음에도 자신있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해서 거기서 멈춰버리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없어진다.

"늦게 시작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 역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신화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짝의 신화, 둘째 일과 돈의 신화, 셋째 나이듦의 신화다.

구체적으로는 좋은 짝, 헤어짐, 아이, 싱글, 직장, 돈, 부자, 병, 꿈, 인생의 절정을 지남과 같은 요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 한다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선생님은 큰 돌을 먼저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큰 돌과 작은 돌, 모래와 물은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집어넣는 순서에 있고, 우리 행복은 각각의 요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찾는다. 쉴 새 없이 행복을 바라고 구한다. 하지만 그 누구의 말처럼 우리가 행복을 찾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의 결정적 요소라고 믿는 것들은 분명 결정적 요소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요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혹은 자신의 불행이나 행복은 타인이나 세상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는 명제가 절대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슬퍼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의 힘이 미치는 것, 우리가 바꿀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행복의 절대명제라는 것에 너무 자주, 또 오래 노출되어 왔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성경에 쓰여있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매일 같이 다툼과 싸움을 계속하면서도 자식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이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가? 부자는 분명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다툼을 계속하는 것과 이혼을 통해 다툼을 마무리 짓는 것, 어느 쪽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이들은 순간의 충격(이혼)보다 오래 노출된 스트레스(지속되는 다툼)에 더 큰 심리적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히 우리가 믿어온 신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행복의 신화들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어떻게 활용하고 이용할 것이가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 삶을 타인이 결정짓도록 방치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모든 행복과 불행이 자신에게 달려있으며, 책임 또한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세상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이 하는 말에 끌려가기 보다는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일에 더 당당해지면 어떨까?

행복의 신화에 하나를 더해 보고 싶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

똑똑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기 위해 읽는 책이란 얼마만큼의 의미를 갖는 것일까?

책을 읽고 아무리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해도, 그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경험으로 재현하지 않는다면 그 깨달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저자는 이야기한다. 돈을 쓰더라도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소비'를 하지 말고, 자신의 경험에 투자를 하라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타인을 위해 사용해 보라고 말이다.

행복에 왕도는 없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수십 억의 사람이 살아가듯 행복으로 가는 길도 수십 억 가지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을지 어떨지도 모를 신화에 휘둘리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신화를 적어나갈 때 인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들쥔장과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비밀과외 2390
이동윤.박신영.윤들닷컴수험서개발팀 지음 / 윤들닷컴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컴퓨터 그래픽스란 이제 막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배우기 시작한 내겐 사실 조금 높은 벽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넘지 못할 벽이란 없다는 마음으로 펼쳐봤다.

 

그리고 난 세 번 놀랐다.

 

 

 

처음 놀란 건 가볍고 얇은 책의 두께와 부피였다.

"아니, 수험서가 이렇게 빈약해도 되는거야?"

 

어쩔 수 없이 따라붙은 의문이었다. 그만큼 그동안 두껍고 무거운 수험서에 익숙해졌기에 낯설었던 것이다.

거기에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럴 수가!!

 

하지만 책을 들춰보다 곧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난 두 번째 놀랐다.

 

이 책은 거의 혼자 작업해서 완성했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맙소사!!"였던 거다.

아무리 주위에서 도움을 주었다고는 해도 보통의 수고로 책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대략은 알기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과 편집, 교정과 교열, 감수까지 혼자 다 했다는 건 엄청난 강행군을 견뎌왔을 것이란 말이나 다름 없었다.

 

세 번째 놀란 건 조금 뒤다. 동영상이 제공 된다기에 가입을 위해 찾아간 홈페이지.

동영상이 생각보다 길고, 많다.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책은 가볍게 핵심을 짚어 적고, 자세한 기법과 노하우는 동영상에 담기로 했다는 그 방침을 실현한 결과였던 거다.

얇은 책에서 받은 충격도 이쯤 오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세상엔 아직 양심이 살아있고, 이이가 그 양심의 한 자리를 지탱하고 있던 거다.

 

책의 구성은 참으로 간략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술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시험에 임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꼼꼼히 짚어주고, 시험에 관한 정보를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랜 강의 경력을 지니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헛말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단출한 목차다.

시험에 관한 정보를 먼저 싣고, 자주 올라오는 물음들을 정리한 후 바로 실전 예제 풀이에 들어가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 낯설지만 깔끔하다.

 

자격 시험을 본 경험이 있다면 낯익을 Q-Net 홈페이지다. 간단한 것이라 넘어가기 쉬운 것부터 짚어준다.

출제 범위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고 있어 참고할만 하다.


본문은 역시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다.

먼저 문제의 예시를 주고, 그 예시문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각각의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는 방식.

익숙한 사람이라면 책만으로도 따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영상과 함께 할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에서 주의할 점은 자세한 설명을 적고 있지 않기에 각각의 프로그램의 툴이나 환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수험자들은 각각의 프로그램의 기본서들을 통해 관련 지식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만능일 수는 없는 법이다. 자신이 해야 할 몫은 한 후에 불평을 해야 그 불평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리라.

 

이 책의 가격은 결코 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종이로 된 책이 이 책의 가치의 전부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문제에 10개가 넘는 동영상이 있고 각각의 동영상이 10분이 넘어 책 제목도 2390인 거다.

 

2390이란 2390분이라는 의미라는 말이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껴보길 바란다.

 

세상에 책은 많고, 그 안에 수험서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험서는 이제 개성을 상실한 채 '팔기 위해' 내놓는 경향이 있다. 계속 팔기 위해서는 한 권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는 안되기에 더더욱 함량 미달의 수험서가 넘쳐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래픽스 운용기능사의 꿈을 꾸는 분들의 도전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책에 의지하는 건 책이 해줄 수 있는 만큼에 대해서다. 나머지는 내 노력이 필수적임을 잊지 않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이력서 - 오만불손한 지배자들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이정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이력서란 무엇일까?

이력을 적은 서류라는 말일텐데, 그럼 적어내려가는 이력들의 선별 기준은 무엇인건가?

이력서는 무척 위험한 서류다. 그 서류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위험인 셈이다.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이력서는 자신이 그 서류를 보일 사람이 원하는 이야기를 적어낼 수 밖에 없다. '기대하는 그 무엇'을 적어내는 셈이기도 하다.

 

이 책, <인간 이력서>는 내게 그런 느낌으로 읽혔다. 마음껏 저자가 적고 싶은 것을 적어 내려간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고, 그러면서도 무척 욕심을 내서 되도록 많은 사례들을 담고자 했다는 느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구 모아들인 듯한 인상을 생각하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는 셈인 것도 같다.

 

이력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을 말한다. 인간이 지구에 등장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슬쩍 살펴보기엔 적당한 책이다.

 

 

이 책 속에는 여러 책들에 대한 단서들이 들어있다.

신석기 시대 인류가 정착 생활의 시작과 함께 행한 '농업'의 폐해를 지적하며 <채식의 배신>의 단서를 던지고, 안정적인 육류의 공급을 위해 시작한 가축 사육의 폐해와 비효율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육식의 종말>을 떠올리게 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세계 제패도 가능할 것 같던 나라가 순식간에 붕괴하는 것을 보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가 떠오르고, 마치 종말을 향해 치닫듯 달려가는 세계를 보면 <성장의 한계>에서 지적한 한계에 오래 전에 부딪혔음을 새삼 깨닫는다.

(한마디로 제러미 리프킨이나,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들을 섭렵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란 뜻이다.)

 

거기에 <제노사이드>를 떠올리게도 했다.

 

인간이란 참으로 몹쓸짓을 많이 했고, 그걸로도 부족해서 지금도 끊임없이 저지르고 또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을 홍보하고자하는 이력서를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경고와 함께 지금껏 저질러온 과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촉구나 경고가 올곧게 들리지는 않았다.

 

 

저자는 어딘가 뒤틀려있다. 저자가 뒤틀린 것이 아니라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다루려다 보니 지식의 한 부분이 뒤틀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실컷 인류가 저질러온 만행을 고발하고, 지금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속하고 있거나, 모른 척 계속하고 있는 오만한 행위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을 때, 저자는 지속 가능성에 눈을 돌린다.

과거의 석학들, 위대한 지성들이 내놓았던 예상들이 보기좋게 빗나가는 것을 보여주며, 현대에 쏟아져 나오는 낙관론과 비관론을 싸잡아 훈계한다.

 

 

인간이 오만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바로 '인류'라는 생각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선대에게서 전해져 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 만의 것이라는 믿음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한다. 이 이상 오만한 지배의 역사를 지속한다면 그 어떤 종족보다 빨리 번성을 이루었다는 영광과 함께 그 어떤 종족보다 빨리 멸망했다는 오명이 달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면, 좀 더 깊은 이야기, 주관적인 가치판단과 재단된 사고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추천한다면, 인간의 이야기,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데 아직 어느 분야를 먼저 읽을지 정하지 못한 이에게, 인간의 오만의 역사를 두루 살피고 싶은 이에게는 추천할 수 있겠다.

 

주제 넘는 것 같지만 당부하자면, 저자의 견해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이 견해들은 확고부동한 사실에 의거한 결론이라거나 대다수의 동의를 얻어 내놓은 대답이라기 보다 개인적 견해이자, 판단이다.

 

인간은 사고의 유연함을 잃어버릴 때 그 어느 순간보다 오만해진다.

 

나는 오만한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줏대 없는 회색 분자가 되는 길을 택하겠다.

아,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건, '주석'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참으로 친절한 주석이라 반가웠다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0일 인문학 - 흔들리는 직장인을 위한
이호건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담긴 철학적 담론은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 '방대하다'는 표현이 모자라다.

하지만, 미리 겁내거나 하지는 말자. 책 속에서 인용하는 칸트가 했다는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여러분은 결코 저에게 '철학'을 배울 수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과 똑같은 어떤 한 사람이 '철하하는 것'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철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의 총체가 아닌가 싶다. 과거 철학의 영역에 들어있던 과학 역시 인간의 삶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고 증명하며, 예측하고자 했던 바람에서 발달했다. 그러다 인간의 생활 영역을 벗어나는 수준에 이르면서 떨어져 나갔다. 과학이 단순히 삶 속에서 사유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만큼 발전한 것이다.

이렇게보면 철학은 결코 우리 삶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거리는 대단히 가깝고, 가깝지 않으면 철학이 아니게 된다.

저자 역시 칸트의 '철학하는'이라는 표현을 가져다 '철학함'이 철학이라며 "철학하자"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철학적 '지식'이 부족함을 알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주눅이 든다거나, 어떤 철학자의 책을 읽기를 머뭇거리고 두려워한 일은 없다.

내 주의는 이렇다. "읽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면 돼."

예를 들면 이런거다.

칸트와 사르트르의 자유에 관한 담론에 있어, 칸트는 '자유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고 했고, 사르트르는 '자유는 무한하기에 책임도 무한하다'라고 했다고 해석한 글을 읽었다고 하자.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말하길 "전쟁에 참여했다면, 그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도망이나 자살)를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전쟁에 참여한 것을 선택했기에 전쟁에 책임이 있다"라고 했다. 사르트르는 정말 자유를 무한하다고 봤을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왜냐하면 도망이나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자유에 의한 것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사르트르가 '구토'를 일으킬 것만 같다.

칸트의 말에서도 의문을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은 피조물로 순수한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는 오직 신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자유란 있을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책임이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철학은 자의적 해석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개개인의 삶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류라는 흐름이 철학에도 있다. 그것은 시대마다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달라지기 때문일거다.

이 책 <30일 인문학>은 '직장인'의 관점에서 철학한다. 직장에서의 갈등, 슬픔, 기쁨과 선택의 순간들을 철학하는 것으로 현명하게 넘길 수 있도록 사고의 폭을 확장시켜줄 수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촉매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일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를 실현한다는 말은 어딘가 꿈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오히려 고행과 수도에 가까운 느낌이 더 강하다. 스스로 느끼는대로 움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인간은 많은 순간 기준을 요구한다.

권위와 신뢰를 지닌 흔들리지 않는 기준 말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기준은 없다. 답은 스스로의 몫인 셈이다.

 

이 책은 의지할 수 있는 여러 기준들을 제공한다. 반드시 이것에 따르라는 지침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심리학자 메라비언 교수는 문자의 전달 능력이 불과 7% 밖에 안 되며, 시각에 대한 인상이 55%, 청각에 의한 인상이 38%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지금 읽고 있는 것이 문자로 된 책이라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꺼내 놓은 것이 메라비언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는 얼마나 능숙하고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해 나가고 있는가?

스마트 폰이 일상화 된 사회의 모습은 대화보다는 '인스턴트 메시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보인다.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될까.

책 속에서는 '이모티 콘'을 적절히 사용해서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라고도 하지만 책의 다른 부분에 있는 말이 더 멋지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만을 뜻하지 않는다. 소통에 있어 사랑 만한 메신저는 다시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을 시작하게 되는 순간은 모든 것이 익숙하고 수월하게 돌아가는 순간이 아니라, 뭔가 익숙하지 않고, 정상적이지 않은 순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을 거치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러니 두려워 말자.

철학자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을 두려워해 도망만쳤다면, 지금 우리가 적절히 인용해 쓸 명언이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당신의 말이 인용될런지.

 

 

앞서도 말했지만 철학이 '하는' 것이라면, 그 해석의 여지는 대단히 다양하게 주어진다. 누가 이렇다고 말했다 해서, 나까지 그렇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강력한 법치를 진시황이 죽고 난 후 불과 15년만에 무너진 진나라를 이야기하면서 강압적인 법치만으로는 금새 한계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진시황의 뒤를 이은 왕이 진시황처럼 뛰어나고 철저하게 법치를 실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정답지가 아니다. 높은 점수를 준다고 해도 참고서 정도가 될 것이다.

해답을 구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지만, 궁리의 근거를 발견하기 위함이라면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연함은 신체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사고의 유연함 역시 신체의 유연함 만큼, 어쩌면 더 우리의 삶 속의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얽매이지 말자.

 

중요한 건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철학자의 이야기를 읽고 들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실행에 옮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