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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신화 - 쾌락적응, 생존에는 유리자히만 행복에는 불리한
소냐 류보머스키 지음, 이지연 옮김 / 지식노마드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필수 조건은 무엇인가?
혹시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어떤 것이 결핍되었다는 이유에서가 아닌지?
흔한 예를 들어보면, "난 돈이 없어. 그래서 불행해.", "난 병에 걸렸어. 그런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와 같은 명제에 대해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 책은 우리 삶에 두루 퍼져있는, 신화처럼 여겨지는 행복의 필수 조건들이 진정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단순히 직관에 의지해 이론을 펴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끌어낸 결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 행복을 망칠만한 생각을 하는 것도 우리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 하나의 실험이 있다.
선생님은 입구가 넓은 유리병을 아이들의 앞에 놓고 그 안에 큰 돌을 채운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이 대답한다.
"네~!" 선생님은 이렇다 저렇다는 말 없이 큰 돌 사이에 작은 돌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네~!!" 아이들은 이번에도 힘차게 답한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이렇다 저렇다는 답 없이 모래를 넣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은 이번에야 말로 틀림없다며 "네~!!!!"하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병 안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묻는다.
"이제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은 선뜻 답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질문을 바꾼다.
"이 실험이 주는 교훈이 뭘까요?"
아이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기대한 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답은 단순히 직관에 의지한 충동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믿는 것에 대한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행복이라는 필수적인 요소에 대해 우리는 너무 많은 부분에서 직관과 헛된 믿음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선생님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 실험의 교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결론은 직관에 의지한다기 보다 확실히 과학적 근거에 의해 지지받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대답한다.
"이 실험의 교훈은 큰 돌을 먼저 넣는 것입니다."
이 예삿말이 내 뇌리에 얼마나 큰 소리로 울렸는지 아마 상상할 수 없으리라.
"큰 돌을 먼저?, 내 삶에 있어 큰 돌의 의미를 갖는 것이 뭐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그 어떤 물음에도 자신있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해서 거기서 멈춰버리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없어진다.
"늦게 시작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 역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신화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짝의 신화, 둘째 일과 돈의 신화, 셋째 나이듦의 신화다.
구체적으로는 좋은 짝, 헤어짐, 아이, 싱글, 직장, 돈, 부자, 병, 꿈, 인생의 절정을 지남과 같은 요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 한다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선생님은 큰 돌을 먼저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큰 돌과 작은 돌, 모래와 물은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집어넣는 순서에 있고, 우리 행복은 각각의 요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찾는다. 쉴 새 없이 행복을 바라고 구한다. 하지만 그 누구의 말처럼 우리가 행복을 찾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의 결정적 요소라고 믿는 것들은 분명 결정적 요소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요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혹은 자신의 불행이나 행복은 타인이나 세상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는 명제가 절대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슬퍼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의 힘이 미치는 것, 우리가 바꿀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행복의 절대명제라는 것에 너무 자주, 또 오래 노출되어 왔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성경에 쓰여있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매일 같이 다툼과 싸움을 계속하면서도 자식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이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가? 부자는 분명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다툼을 계속하는 것과 이혼을 통해 다툼을 마무리 짓는 것, 어느 쪽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이들은 순간의 충격(이혼)보다 오래 노출된 스트레스(지속되는 다툼)에 더 큰 심리적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히 우리가 믿어온 신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행복의 신화들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어떻게 활용하고 이용할 것이가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 삶을 타인이 결정짓도록 방치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모든 행복과 불행이 자신에게 달려있으며, 책임 또한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세상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이 하는 말에 끌려가기 보다는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일에 더 당당해지면 어떨까?
행복의 신화에 하나를 더해 보고 싶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
똑똑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기 위해 읽는 책이란 얼마만큼의 의미를 갖는 것일까?
책을 읽고 아무리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해도, 그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경험으로 재현하지 않는다면 그 깨달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저자는 이야기한다. 돈을 쓰더라도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소비'를 하지 말고, 자신의 경험에 투자를 하라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타인을 위해 사용해 보라고 말이다.
행복에 왕도는 없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수십 억의 사람이 살아가듯 행복으로 가는 길도 수십 억 가지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을지 어떨지도 모를 신화에 휘둘리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신화를 적어나갈 때 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