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 예술의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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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느낀 가장 강렬한 느낌은 좀 '시시한 부분'이었다.

"이 책 제목이 좀 잘 못된거 아냐?" 하는 흔한 불평이 가장 강렬했다는 것에 어떤 변명을 가져다 붙이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고풍스런, 화려하기 짝이 없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표지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 대해 심사가 뒤틀린 탓일 거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이 그림(?)의 제목은 <음, 어쩌면> 이란다.

음? 어쩌면?? "만화 주제에 무슨 작품이라고!!" 라며 터무니 없이 빈곤한 감상을 빙자한 불평을 늘어놓는대도 사실 할 말이 없을 것 같은 그림이다.

그래도 작품이라는데 비전문가인 내가 들이대 볼 말은 없다.

(개인적 인상이지만 이 무슨 슈퍼맨 풍의 그림 아닌가?!)

아, 그 옆에 있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어떤가? 대충 그려놓은 것 같은 굵은 실선과 그 실선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각형, 그리고 그 사각형 안에 들어가 있는 노랑, 파랑, 빨강, 검정, 연파랑(?)(아니, 흰색은?)의 채색은 또 뭔가?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이게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란 걸 몰랐다면, "어디 초등학교 포스터 인가요?"라고 무식한 질문을 날렸을 법한 그림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이 어쨌다는 건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전체적으로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는 이런 감상을 염려했던 모양인지 표지 안쪽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학문 자체와 예술 자체는 위대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바와 같이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걸 말하려고 한 시도의 하나이니 말해지지 않은 것 같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당부의 말이 전제 된 책이 었던 것은 아닐까?

이건 그저 개인적인 해석일 뿐, 작가가 말한 것도 작품이 말한 바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인데다 내 감상 또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속하는 바, 내 말이 서툴러 다 말하지 못했다고 해도 흉이 되지는 않으리라.

이 책은 석기 시대의 암각화와 동굴 벽화에서 시작해, 현대의 피카소에 이르는 미술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미술사를 단 한 권의 얇은 책으로 꿰뚫어 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보니 유명한 작가, 낯익은 작품이 자주 등장할 수 밖에 없고, 그 작품의 의미를 세세하게 적을 수 없는 지면의 한계에 의해 뭔가 부족한 인상을 줄 수 있음을 각오하고서도 저자는 써 내려갔던 듯 하다.

하지만, 지면의 한계를 생각해보면 중세의 건축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건축 양식의 세부적인 사항들은 내 얕은 깜냥으로는 '미술' 보다는 세부적인 구분으로 '건축'을 따로 적는 것이 흐름상 매끄럽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그게 좀 아쉬웠기에 미리 안타까움을 적어두고 넘어가는 바이다.

그래서 책이 어쨌다는 거냐? 는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다. (삼천포에서 돌아온 것만도 다행으로 알자.)

위쪽 그림은 좀 예술 작품 같다.

하지만 아래쪽 그림은 미묘하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라고?

"사라미 아니므니다~!"인 거다.

왼 쪽은 프라고나르,「목욕하는 여인들」 이고 오른 쪽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솔직히 프라고나르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피카소라는 이름은 너무 또렷하다. 그는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이고, 그래서 유명한 사람이며, 그의 그림은 무척 비싸다라던가? 왼 쪽 그림도 싸구려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거지라도 낯익은 사람이 덜 두려운 법이다.

중요한 건 금전적 가치가 아니다. 무엇이 이들의 그림을 '작품'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물음이야 말로 중요한 것이다.

그럼, 그 '작품'의 필수 조건은 뭘까?

저자는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가 부조리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한다. 부조리함을 실감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노력이 바로 예술이란 이야기인 셈이다.

파르테논 신전은(어쩌면 파르테논 신전 사진이 이것 하나밖에 없는지? 몇 권의 책에서 이 사진을 본 것 같아!!) 신화가 단순히 신화를 넘어서 인간 세상에 남겨진 유물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존재를 완전히 증명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시간을 넘어 인간의 존재를 그 위대함을 증명하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에서 미술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안에는 작가가 이해하고 해석한, 그리고 마지막에는 표출을 통해 재구성한 시대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동하고, 슬퍼하며, 또 다른 창조에 나서는 것이 아닐까?

작품에 철학이 없다면 죽죽 그어놓은 직선과 대충 색을 칠한 사각형에 불과할 그림이 철학적 해석을 통해 작품이 된다.

초현실적으로 구성된 구도와 인물의 형상, 어린 아이의 낙서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그림도 작가의 비판과 사상, 철학이 표출 될 때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고대의 동굴에 그려진 벽화도 같은 맥락에서 그 시대를 반영하고, 사람과 삶, 존재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작품이 된다.

삶의 무게, 존재의 가벼움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 생각을 아주 먼 훗날까지 남기고 전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증거를 남기는 일에 부지런히 임하는 이들이 있다.

시대를 따라 각각의 작품의 해석을 달라진다. 그 시대를 지배하는 철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형태로든 각각의 시대는 연대를 맺게 된다.

낯익은 그림들을 가볍게 만나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으리라. 그 후에 더 깊이 심취해 간대도 누가 말을 보탤 수 있겠나.

철학은 견고한 건축물의 받침돌과 같다. 수천 년, 수만 년을 견디게 하는 건 바로 그 철학의 힘인 셈이다.

철학이 있는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철학이 있는 역사도 언젠가 의미를 갖는다.

개개인의 삶에는 저마다의 철학이 있다. 하지만, 홀로 존재하는 개인이 없듯, 홀로 존재하는 철학 또한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거대한 시대의 구성원, 하나의 받침돌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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