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드 소설Q
이주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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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창비의 미션책으로 만난 해피 엔드북클럽은 하면 좋은 점이 아주 많지만 가장 좋은 점은 이런 모임이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아니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고 강제로 어떻게든 읽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작가 님과 이 책도 2월 미션 도서라 읽게 되었는데 참 좋았다. 이 책은 미션도 굉장히 좋았는데 읽고 나서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거였지. 책은 두껍지 않아서 좋다. 읽고 나서 찾아 본 책소개에는 사소한 하루하루가 모여 흘러가는 삶의 순간을 포착하여 특유의 귀엽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풀어낸 작품들로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잇달아 수상하며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두루 받고 있는 작가 이주란의 신작 소설 해피 엔드가 출간되었다. 창비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여덟번째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최근에 나는 위픽 시리즈에 꽂혀 있는데 창비에서도 경장편 시리즈 소설Q가 있었구나.

 

이 책의 시작은 참 우울했다. 뭔가 축 처져있고 우울한 것만 같은 이의 휴가인데 참 우울하고 윗집 이웃이 돌아가셨고 가장 친했던 친구와 이별한 이야기가 나온다. (벌써 2년 전에)

나는 참 우울한 이야기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인데 요즘 읽는 대부분의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다 우울하고 상황이 안 좋다. 외롭고 사유하고 가난하고 찌질해야만 주인공이 되는지 아니면 작가가 되는지 아니면 그렇게 시작해야 반전이 있고 감동이 있고 발전이 있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되는지.... 물론, 우울이 싫다면서도 보고 있는 요즘 우울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다 재미있게 읽었다. 나도 글이 쓰고 싶은데, 이왕이면 밝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밝은 이야기는 매력이 없나?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이야기를 쓰는 건 안 될 일일까 아무튼 그런 생각들을 해본다.

 

출판사 리뷰로 보는 줄거리

기주는 한때 각별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친구 원경에게서 문득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느냐는 연락을 받게 된다. 원경과의 다툼이 있고 26개월 만에 온 연락이었다. 과거 원경은 결핍이나 부족해서 감추고 싶은 마음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고, 그런 원경이 삶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이 기주에게는 오랜 시간 괴로운 일이었다. 원경과의 만남부터 시작해 다투던 순간 그리고 그 다툼의 현장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사람들까지도 곰곰 떠올려보던 기주는 원경을 만나러 갈 결심을 하게 된다.

원경은 기주가 사는 곳으로부터 꽤 먼 곳에서 까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애인인 상우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는 기주의 여행에 동행하는 이는 뜻밖에도 회사 동료인 장과장이다. 회사에서도 곤란할 때면 침묵하는 습관이 있는 기주에게 장과장은, 말수가 적은 기주와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주가 늘 궁금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여름옷을 모두 빨아 푹푹 찌는 날씨에도 기모바지를 입고 출근하기도 하지만 회사 공장에서 머무는 강아지 가니를 누구보다 성실히 돌보기도 하는 장과장에게, 기주는 가는 길은 두렵고 돌아오는 길은 외로울 것 같아서동행을 부탁하게 된다. 중소기업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장과장은 기주와의 여행 역시 브이로그에 담아도 되겠느냐고 묻고, 이를 기주가 승낙하면서 둘의 짧은 여행이 시작된다. 둘은 장과장의 조부모 집에 들르기도 하고 음식점에서 우연히 장과장의 채널 구독자들을 만나기도 하며 원경의 까페에 다다른다. 막상 도착한 그곳에서 가장 처음 마주한 사람은 원경이 아닌 원경의 어머니였고, 기주는 그녀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인생이란 그렇던데.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가 없던데.”

가장 가까웠지만 가장 큰 상처를 준 원경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끝내는 원경을 찾아 나선 기주이지만, 사실 해피 엔드에는 기주와 가까운 곳에 머물며 기주에게 크고 작은 위로를 건넨 사람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 곳곳에 서서 조금쯤 차가워진 기주의 마음을 미지근한 온도로 돌려놓곤 한다.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연인 상우, 품삯으로 못생긴 과일이나 달라고 하는 기주 어머니에게 기주는 예쁜 것을 먹어야 한다며 좋은 과일을 내놓는 황선아 아주머니, 여름휴가 기간에도 동네에 머무는 기주를 보고 휴가는 가지 않느냐고 묻는 편의점 사장님, 시끄러운 단체 손님들에게 떠밀려 가게를 나서게 된 기주에게 사이다를 서비스로 주며 미안해하던 전집 직원, 기주에게 향한 아버지의 폭력에 분노를 표하던 옆집 남자, 네 삶을 살라며 자신을 책임지지 말라고 해주었던 어머니 그리고 여행을 마치며 자기가 같이 오길 잘했느냐고 묻는 장과장까지.

기주의 일상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기주가 삶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이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가까운 이웃들이 나눠주는 소소한 마음, 전혀 모르는 이로부터 받은 친절 그리고 드물게 받곤 하는 타인으로부터의 아주 큰 위로가 우리의 삶에도 분명 존재한다. 이주란은 이렇듯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삶의 장면들을 붙잡아두고 그 위에 조심스레 돋보기를 올려 세밀하게 관찰한다. 새들의 마음까지도 걱정하는 시선으로, 이웃에게 얻어먹은 수프 그릇을 잘 씻어둔 장면을 따스하게 그려내는 마음으로. 그렇기에 이주란 소설 속 인물들이 건네는, 그들 스스로는 아주 작은 것이라고 생각한 마음들이 기주를 거쳐 우리에게 닿을 때는 그 온도가 몇배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미지근하게 기주의 마음을 덥혔던 그 마음들이 따스함으로 번져, 이 소설의 결말을 마주할 무렵에는 자연스레 지금 이 이야기를 손에 쥔 우리가 마주한 것이 곧 해피 엔드라고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읽는 동안 챕터마다 생각나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미션이 있었다고 했지.

처음에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나도 참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항상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절친이 있었다.

그 순간에도 알았었다. 이 친구들이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우리 10년 뒤에도 친구하자며 카드에 쓰곤 했었는데 지금 그 옛날, 아주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지금 내 옆에 없다.

그 친구들이 생각이 났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절친들 뿐 아니라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렇게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었고 상실과 비교 등을 통해 눈물났던 날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었던 따뜻한 사람들과 우리 가족들의 모습과 이웃들의 모습, 그리고 때때마다 만났던 많은 인연들과 친구들과 그리고 항상 아파하고 허구헌날 고민 많고 기도 많이 하면서 성장하고 울고 웃던 나까지.

젊은 작가의 책인데 이렇게 옛날 생각 많이 하게 하다니...

그래서 참 고맙게 잘 읽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편지도 많이 썼다. 취미가 편지였던 문학소녀가 다시금 깨어났다고 할까? 그리고 이 작품은 추천평이 참 아름다웠는데 추천평을 써주신 우다영 작가님의 글도 찾아 읽고 싶다.

시절 인연... 최근엔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다시 만나지 않더라도 항상 행복하길 바라는 나의 시절 인연들... 많이 고맙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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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위픽
정해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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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픽 도장깨기~ 와 정해연 님이다. <홍학의 자리>를 읽고 너무 놀래서 사실 좀 피하려는 마음을 먹었지만 위픽은 짧으니까 작가 님의 필력은 대단하니까, 추리소설 매니아이기도 한 나니까 다시 찾아 읽는다.

 

정말 금방 읽을 수 있는 위픽 중에서도 짧은 이야기.

흡입력 짱~!

 

나는 트릭을 이용한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일본 장르소설 매니아여서 나름 유명한 것들은 최근은 아니지만 한 때 주구장창 읽어왔다. 약간 억지도 있고, 가끔은 눈에 보이기는 해도, 너무 흥미진진하잖다. 작가 님이 처음으로 트릭을 이용해서 쓰셨다는 소설, 안 읽을 수 없지.

 

정말 죽이지 않은 것 맞죠?”(5) 변호사 정우진은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한 살인 용의자 유대평을 만난다. ‘죽이지 않은 것이 맞느냐는 정우진의 물음에 유대평은 횡설수설할 뿐 스스로의 무죄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사건은 2023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명한 사진작가 유대평은 촬영을 위해 저수지 근처의 한 오피스텔에 머문다. 모델 이미래와 그의 어머니 천경선, 그리고 촬영 장비들까지, 준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행 중이었다. 유대평의 보조 작가 이우리가 칼에 찔려 사망하기 전까지는.

 

용의자 유대평은 사건 발생 전날 이우리와 함께 술과 마약을 했는데, 다음 날 장기가 보일 정도로 난자를 당한 이우리의 시신 옆에 그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발견된다. 모든 정황이 유대평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가운데 어마어마한 수임료를 뿌리치지 못한 정우진이 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고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다. 관계자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유대평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찾아 헤매는데……. 저수지 부근의 오피스텔, 이제는 피로 물든 사건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누구보다 유대평의 무죄를 믿고 싶은 정우진은 과연 이 사건에서 승소할 수 있을까.

 

재미있다. 근데 씁쓸하다.

작가 님 소설의 악인은 참 나쁜 인간들이다. 작가 님은 인간 내면의 추악한 모습을 탐구하는데 진심이신 것 같다. 작가 소개를 보니 20대에 로맨스 소설을 썼던 그는 더블이라는 작품을 내놓으며 스릴러로 전향하여 놀라운 페이지 터너’ ‘한국 스릴러 문학의 유망주라는 평과 함께 주목받았다.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의 장점은 흥미로운 설정과 뛰어난 가독성이다. 특히나 홍학의 자리에서는 이제까지 쌓아 올린 경험과 특장점이 집약되어 있다. 곧바로 스토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설정과 가독성은 물론, 매 챕터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스토리텔링, 완성도 높은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플롯으로 스릴러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니 20대에 로맨스 소설을 쓰셨다고?

한번 찾아봐야겠는데... 가독성이 높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엄청난 재능이니까.

 

짧지만 재미있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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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되고 싶어 위픽
김화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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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픽 시리즈 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요즘, 도장깨기 가운데 만나 산뜻한 연두색의 개구리가 되고 싶어’, 작가는 김화진. 처음 만나는 작가다.

시작은 도쿄 여행에서 만난 개구리, 책상 위에 자리 잡은 개구리 인형(?) 이야기로 시작된다. 도쿄에 가게 된 이유는 수경 같은 삶을 살고 싶어서였을 거다. 직장 동료의 후배로 소개 받았던 수경은 술과 잠과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신나게, 즐겁게, 생생하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표정이 좋아서 그곳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수경처럼 되고 싶었나보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와서도 권태기는 진행 중이다.


<출판사 리뷰>에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재미가 없, “하루 아홉 시간을 꼬박 9년을 다닌 회사가 가장 지루”(15)한 상태에 직면한 직장인 가은은, 사무실 책상 위에 자그마한 개구리 인형을 두고 소소한 위로를 받으며 지낸다. 정말 좋은 것도, 너무 싫은 것도 없는 권태와 함께 허우적거리는 나날들. “나에게 회사가, 회사에서의 나 자신이 익숙해”(16)진 가은의 권태감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반면 가은의 친구 수경은 즐거움의 신”(13) 같은 사람이다. 라테 한 잔을 마셔도 신나고 즐거워 보이는 수경의 모습이 가은은 늘 의문이다. “너는 어쩜 그렇게 좋니? 왜 볼 때마다 좋니? …… 나는 그런 게 안 되니?”(30) 단단하진 않지만 겹겹이 쌓여가긴 하는 권태-분노-크루아상의 굴레를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퇴사만이 답일까? 퇴사하면, 행복해질까?

잠깐씩 연기가 되어 미래의 일을 내다보고 돌아오는 수경, 1년 동안 가은과 기쁨과 슬픔을 나눴지만 어느 날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멀어져버린 완, 완이 떠나고 더 이상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기로 한 가은.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해 김화진 작가는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막연하고 연약한 유대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그처럼 느슨한 유대를 통해서만 실현 가능한 야망의 끈을 붙들며 관계의 힘을 긍정한다. 소설은 감정의 밑바닥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김화진 작가만의 문법으로 말해준다. 권태와 우울, 불만, 분노와 냉소주의가 삶을 지배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다시 한번 높이 뛰어오를 힘을 갖기 위해 끝까지 잃지 않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처음에는 그냥 권태로운 누군가의 일상 이야기인가 하며 보다가 친구 수경의 이야기를 보고 그런가보다. 했다가 권태감의 원인인 수경을 연결해주었던 회사 동료 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작품이 확~~ 좋아졌다.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잘하는 건 남 탓. 남 탓은 정말 쉽다. 그건 애쓰지 않아도 그냥 갖다 붙이면, 우기기만 하면 된다. 내가 탓하는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에게 탓을 듣게 된 데에는 그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냥, 잘못 걸렸을 뿐이다.

---p.30

권태-분노-크루아상의 굴레 속 충동적으로 연차를 내고 강릉으로 갔다가 수경에게 연락했더니 수경은 달려와 주었다. 그 때, 수경은 말한다. 다른 사람을 좀 좋아해봐. 다른 사람을 궁금해해봐.

타로점을 봐주면서 대화한다.

 

나 하고 싶은 게 진짜 없어.

그래?

. 퇴사? 퇴사 정도?

정말?

……. 아니.

---pp.34~35

기대했다가 실망한 게 있는 거 아니야?

그래, 있었다. 기대했던 모험이 중지됐던 때가.

 

가은에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해한 사람은 완이다. 내개 수경을 소개해준 회사 후배. 나에게 수경을 남기고, 완은 떠났다. 나의 기대와 모험심을 가지고 가버린 완.

 

완과 나는 죽이 잘 맞았다. 돌이켜보면 뭐가 딱히 잘 맞았다기보다, 운이 잘 맞았다.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는,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친구의 자리에 서로를 들이는 그 타이밍이 잘 맞았다.

---p.40

 

 

죽이 잘 맞았던 완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1년 동안 업무일지를 썼다. 다시 교환일기를 쓰는 중학생처럼 신나는 모험을.

야 회사원도 모험할 수 있어! 멋졌다. 그렇게 말하는 완이 멋져 보였다.

---p.43

 

당시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게 함께 공유했던 실험, 1년이 넘자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멀어진 완은 기대만큼 깊은 실망과 실망보다 깊은 절망을 주었다. 그 이후 띄엄띄엄 오다가 오지 않다가 완전히 홈페이지조차 없어졌고 휴가를 쓰다 결국 퇴사한 완. 수경을 통해 간간히 소식을 듣지만 겁이 나서 다시 연락을 하지 못 했다.

그러면서 혼자 덤덤해지는 연습을 한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고, 누군가를 알려고도, 나에 대해 알려주려고도 하지 않는 내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권태에 빠져있다.

묻지 않기. 보채지 않기.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보내주기. 나대로 살기. 혹은 나대로 살고 싶은 것을 참기. 무덤덤해지기. 기대하지 않기. 실망하지 않기.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 않기. 나에 대해 알려주려고 하지 않기.

---p.50

 

그러면서 대충 수경과는 덤덤하게 연락하고 만나게 되면서 친해졌다.

 

생각을 해보니 나는 개구리 같은 수경이 되고 싶었다.

내가 되고 싶은 건 개구리...

개구리처럼 되고 싶어.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마음먹으면 단번에 예상할 수 없는 높이와 거리를 뛰어오르기도 하는. 그런 잠재력이 내 안에 있다고 믿고 싶어.

---p.58

 

읽다가 너무 공감이 가고 짧은 글이지만 강렬하게 와 닿은 구절이 너무 많았다.

나도 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계속 마음을 닫고 있는 내가 무한정 모험과 사람 발견과 사랑이 넘치던 그 때의 내가 그립다가도 무덤덤해진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새싹이 되고 싶었고, 꽃이 되고 싶었고, 열매도 되고 싶었는데 이젠 나무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지만 굵지 않은 작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 작가님의 작품도 찾아 읽어야겠다.

행복한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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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빚을 져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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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소연 님의 글을 얼마 전 읽고 너무 좋았다. ‘소란한 속삭임이었나. 좋은 작가님의 좋은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 책도 얇다.

그럼에도 깊이가 있다. 생각할 것도 있다.

 

공감...

 

공감은 어디까지 가야할 것인가.

영원은 무엇인가

 

모두 석이처럼 슬퍼하고 아파해야만 하는 건가

 

우리 사회는 유독 아픈일이 많았다. 상실과 슬픔 들이 너무나 많았고 같이 슬퍼하다가도 어느새 내 일이 아니니까 타인의 슬픈이라고 외면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고 그런 마음들을 굉장히 잘 표현하신 작가 님이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출판사 리뷰에서> 혜란과 나()와 석이는 프놈펜 바울학교로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함께 떠나며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셋은 바울학교의 개교기념일을 맞아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한국에서 배가 침몰하는 사건을 보게 된다. “대상 없는 배신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수시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어”(33)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 셋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신들의 4개월간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혜란은 그 괴로움을 종교에 심취해 풀고, 석이는 바울학교의 학생 삐썻과 마음을 나누며 상처를 치유하려 애쓴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각자의 삶을 사느라 서로에게 소홀하던 어느 날, 동이와 혜란은 석이가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석이를 찾기 위해 무작정 캄보디아로 떠난다. 실종의 단서를 찾기 위해 만난 삐섯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 둘은 석이의 흔적을 찾아 피피섬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열심히 미래를 향해 달려 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과거에 사로잡힌 여정에 불과했음을, 그것을 미래라고 착각해왔을 뿐임을” “다시 말하자면, 내가 이곳에 온 게 아닌, 이곳이 내게 당도하고야 만 것이라는…….”(111) 깨달음을 얻으며 잊었다 생각했던 자신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은 일에는 쉽게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94)이었던 동이와 혜란은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서로에게 빚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를 속절없이 무너뜨린 상실의 경험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루된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위무하는 이야기이다.

슬픔은 저마다의 무게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무겁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서 도무지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은 바다를 압도한다. 그래서 가라앉을 수도 없다. 그것만이 침몰하지 않을 유일한 진실이다. (……) 그러니까 이들의 여행은 되돌릴 수 없는 배를 다시수면 위로 띄우는 재연再演이다. 기억의 머리맡으로 떠밀어 올려 영원토록 가라앉지 않게 언제까지고 되-살려야 할 슬픔의 무게가 그저 무겁다. 이 소설은 잊지 않을 결심이며, 슬픔의 무게를 헤아리는 배려의 윤리학, 그 빚진 마음이다.” (황유지)

상실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분명 타인과 나를 이어주지만, 그 확장의 범위는 내 시야와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 소설은 이러한 한계를 문제 삼으며, 우리의 상상력과 공감이 어떻게 혹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 영원에 닿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공허하고 추상적인 당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내 일과 남의 일, 가까운 것과 먼 것, 현재와 과거의 관성적 구분을 흐리면서 그것들이 결코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한다. 현재의 사건과 과거의 사건이, 가까운 슬픔과 먼 슬픔이, 개인의 번민과 집단적인 애도가, 자국의 참사와 외국의 참사가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베를 짜듯 엮인다. - 이희우, 작품해설중에서

 

세월호, 이태원 참사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상실과 슬픔, 공감... 과연 영원은 닿을 수 있는 것일까?

철학적인 질문과 사유를 해보게 하는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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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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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이다.

로봇, 외계인, 식물인간(?), 곰팡이 세상, 이끼... 그런 이들이 가장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그려냈던 작가님.

뭔가 미래 과학 SF 소설인데 서정적이고 따뜻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인가 보다.

이번에는 좀비다.

 

좀비로 인한 세상의 종말이 다른 종말보다 더 끔찍한 이유가 뭔줄 알아? ()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해.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시체가 되어버린 처참한 몰골을 봐야만 해. 이게 가장 끔찍한 종말이야.“ _ 1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종말은 좀비다.” 천선란은 이 문장으로 3부작의 문을 열며, 좀비를 익숙한 공포의 상징이 아니라 잊힘 속에서도 끝내 사랑을 붙드는 존재로 그려낸다. 그가 말하는 좀비의 비극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폭력과 상실, 병과 장애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잊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천선란은 그 상처를 지닌 자들을 좀비로 불러낸다. 세상이 무너지기 전부터 폐허를 살아온 그들은 대부분의 인간이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기억을 붙든다. 어떻게든 해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게 천선란의 좀비는 잊혀가는 세계 속에서도 잊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몸짓을 보여준다.

 

1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는 좀비가 되어도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마음, ‘너를 살려야 나도 살 수 있다3부작의 핵심 정서를 여는 출발점이 된다. 인류가 아직 재앙을 예감하기도 전에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향해 출항한 이주선을 배경으로, 동면에서 깨어난 옥주는 지구에서 감염 사태가 일어나 문명이 붕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러나 우주선에서도 비극은 되풀이된다. 좀비가 된 동료가 대부분의 선원을 죽였고, 오직 옥주가 사랑하는 묵호만이 죽지 않은 채 좀비가 된 몸으로 남아 있다. 옥주와 묵호는 가정폭력 속에서 자라며 일찍부터 폐허 속을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온 인물들이다. 묵호는 좀비가 된 이후에도 옥주를 물지 않고 끝까지 그녀를 지키려 하며, 옥주는 그 마음을 느낀다.

 

당장 죽을 것 같고, 가끔은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_ 2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중에서

 

2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는 멸망 이후의 지구, 그 잔해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대부분의 인간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거나 좀비가 되었고, 남은 이들은 좀비가 된 가족을 곁에 둔 채 버텨 나간다. ‘제비는 의식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엄마를 돌보며, 자신과 엄마를 지켜주던 아버지 비둘기가 사라진 뒤 스스로 가장이 되어 생존해 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리 하나를 잃은 채 딸 노윤과 살아가는 은미를 만난다. 은미는 정신 발달 장애를 가진 노윤을 보살피며 폐허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제비는 그런 은미의 목숨을 구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끝내 마음속에서도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는,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의지를 보여준다.

 

천국은 바라지도 않아. 어디든 저승의 남은 땅에 같이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가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데.“

_ 3우리를 아십니까중에서

 

3우리를 아십니까는 전 인류가 떠나거나 죽어버린 뒤 오직 좀비와 동식물만 남은 지구에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기억과 의식을 지닌 화자가 좀비가 된 아내를 리넨 카트에 싣고 바다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그는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동안 아내가 좀비가 되기 직전까지 남긴 녹음을 길잡이 삼아 걸으며, 두 사람이 함께 돌보던 거북이 장풍을 고향인 바다로 돌려보내려 한다. 이 마지막 동행은 도피나 생존의 발버둥이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 발을 들인 존재가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밟는 과정에 가깝다. 화자는 녹음 속 아내의 목소리와 자신의 머릿속에 파편적으로 남은 기억을 통해 아내가 지키고자 했던 인간성을 되새기며, 살아 있음이란 맥박이나 온도가 아니라 서로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야말로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유일한 힘임을 이해하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마음에서 죽였다. 살길 바라면서도 내 안에서 내가 죽여버린 사람.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 살아 있음을 너무 힘겹게 증명해야 하는 사람.”

_ 작가의 말중에서

 

재미라는 말보다 이 작품은 슬프다.

처음 읽을 때는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이야기인지 감을 잡지 못 해서 몇 번을 앞으로 보면서 다시 읽었다.

내가 집중력이 떨어져서이겠지. 그런 생각도 해 보았지만 쉽지 않네.

아름답고 강인한 좀비 이야기를 이번에 쓰셨으니 이제 유쾌하고 가녀린 좀비 이야기를 한 번 더 쓰신다고 하니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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