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위픽
정해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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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픽 도장깨기~ 와 정해연 님이다. <홍학의 자리>를 읽고 너무 놀래서 사실 좀 피하려는 마음을 먹었지만 위픽은 짧으니까 작가 님의 필력은 대단하니까, 추리소설 매니아이기도 한 나니까 다시 찾아 읽는다.

 

정말 금방 읽을 수 있는 위픽 중에서도 짧은 이야기.

흡입력 짱~!

 

나는 트릭을 이용한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일본 장르소설 매니아여서 나름 유명한 것들은 최근은 아니지만 한 때 주구장창 읽어왔다. 약간 억지도 있고, 가끔은 눈에 보이기는 해도, 너무 흥미진진하잖다. 작가 님이 처음으로 트릭을 이용해서 쓰셨다는 소설, 안 읽을 수 없지.

 

정말 죽이지 않은 것 맞죠?”(5) 변호사 정우진은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한 살인 용의자 유대평을 만난다. ‘죽이지 않은 것이 맞느냐는 정우진의 물음에 유대평은 횡설수설할 뿐 스스로의 무죄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사건은 2023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명한 사진작가 유대평은 촬영을 위해 저수지 근처의 한 오피스텔에 머문다. 모델 이미래와 그의 어머니 천경선, 그리고 촬영 장비들까지, 준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행 중이었다. 유대평의 보조 작가 이우리가 칼에 찔려 사망하기 전까지는.

 

용의자 유대평은 사건 발생 전날 이우리와 함께 술과 마약을 했는데, 다음 날 장기가 보일 정도로 난자를 당한 이우리의 시신 옆에 그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발견된다. 모든 정황이 유대평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가운데 어마어마한 수임료를 뿌리치지 못한 정우진이 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고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다. 관계자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유대평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찾아 헤매는데……. 저수지 부근의 오피스텔, 이제는 피로 물든 사건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누구보다 유대평의 무죄를 믿고 싶은 정우진은 과연 이 사건에서 승소할 수 있을까.

 

재미있다. 근데 씁쓸하다.

작가 님 소설의 악인은 참 나쁜 인간들이다. 작가 님은 인간 내면의 추악한 모습을 탐구하는데 진심이신 것 같다. 작가 소개를 보니 20대에 로맨스 소설을 썼던 그는 더블이라는 작품을 내놓으며 스릴러로 전향하여 놀라운 페이지 터너’ ‘한국 스릴러 문학의 유망주라는 평과 함께 주목받았다.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의 장점은 흥미로운 설정과 뛰어난 가독성이다. 특히나 홍학의 자리에서는 이제까지 쌓아 올린 경험과 특장점이 집약되어 있다. 곧바로 스토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설정과 가독성은 물론, 매 챕터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스토리텔링, 완성도 높은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플롯으로 스릴러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니 20대에 로맨스 소설을 쓰셨다고?

한번 찾아봐야겠는데... 가독성이 높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엄청난 재능이니까.

 

짧지만 재미있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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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되고 싶어 위픽
김화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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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픽 시리즈 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요즘, 도장깨기 가운데 만나 산뜻한 연두색의 개구리가 되고 싶어’, 작가는 김화진. 처음 만나는 작가다.

시작은 도쿄 여행에서 만난 개구리, 책상 위에 자리 잡은 개구리 인형(?) 이야기로 시작된다. 도쿄에 가게 된 이유는 수경 같은 삶을 살고 싶어서였을 거다. 직장 동료의 후배로 소개 받았던 수경은 술과 잠과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신나게, 즐겁게, 생생하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표정이 좋아서 그곳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수경처럼 되고 싶었나보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와서도 권태기는 진행 중이다.


<출판사 리뷰>에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재미가 없, “하루 아홉 시간을 꼬박 9년을 다닌 회사가 가장 지루”(15)한 상태에 직면한 직장인 가은은, 사무실 책상 위에 자그마한 개구리 인형을 두고 소소한 위로를 받으며 지낸다. 정말 좋은 것도, 너무 싫은 것도 없는 권태와 함께 허우적거리는 나날들. “나에게 회사가, 회사에서의 나 자신이 익숙해”(16)진 가은의 권태감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반면 가은의 친구 수경은 즐거움의 신”(13) 같은 사람이다. 라테 한 잔을 마셔도 신나고 즐거워 보이는 수경의 모습이 가은은 늘 의문이다. “너는 어쩜 그렇게 좋니? 왜 볼 때마다 좋니? …… 나는 그런 게 안 되니?”(30) 단단하진 않지만 겹겹이 쌓여가긴 하는 권태-분노-크루아상의 굴레를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퇴사만이 답일까? 퇴사하면, 행복해질까?

잠깐씩 연기가 되어 미래의 일을 내다보고 돌아오는 수경, 1년 동안 가은과 기쁨과 슬픔을 나눴지만 어느 날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멀어져버린 완, 완이 떠나고 더 이상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기로 한 가은.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해 김화진 작가는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막연하고 연약한 유대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그처럼 느슨한 유대를 통해서만 실현 가능한 야망의 끈을 붙들며 관계의 힘을 긍정한다. 소설은 감정의 밑바닥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김화진 작가만의 문법으로 말해준다. 권태와 우울, 불만, 분노와 냉소주의가 삶을 지배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다시 한번 높이 뛰어오를 힘을 갖기 위해 끝까지 잃지 않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처음에는 그냥 권태로운 누군가의 일상 이야기인가 하며 보다가 친구 수경의 이야기를 보고 그런가보다. 했다가 권태감의 원인인 수경을 연결해주었던 회사 동료 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작품이 확~~ 좋아졌다.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잘하는 건 남 탓. 남 탓은 정말 쉽다. 그건 애쓰지 않아도 그냥 갖다 붙이면, 우기기만 하면 된다. 내가 탓하는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에게 탓을 듣게 된 데에는 그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냥, 잘못 걸렸을 뿐이다.

---p.30

권태-분노-크루아상의 굴레 속 충동적으로 연차를 내고 강릉으로 갔다가 수경에게 연락했더니 수경은 달려와 주었다. 그 때, 수경은 말한다. 다른 사람을 좀 좋아해봐. 다른 사람을 궁금해해봐.

타로점을 봐주면서 대화한다.

 

나 하고 싶은 게 진짜 없어.

그래?

. 퇴사? 퇴사 정도?

정말?

……. 아니.

---pp.34~35

기대했다가 실망한 게 있는 거 아니야?

그래, 있었다. 기대했던 모험이 중지됐던 때가.

 

가은에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해한 사람은 완이다. 내개 수경을 소개해준 회사 후배. 나에게 수경을 남기고, 완은 떠났다. 나의 기대와 모험심을 가지고 가버린 완.

 

완과 나는 죽이 잘 맞았다. 돌이켜보면 뭐가 딱히 잘 맞았다기보다, 운이 잘 맞았다.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는,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친구의 자리에 서로를 들이는 그 타이밍이 잘 맞았다.

---p.40

 

 

죽이 잘 맞았던 완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1년 동안 업무일지를 썼다. 다시 교환일기를 쓰는 중학생처럼 신나는 모험을.

야 회사원도 모험할 수 있어! 멋졌다. 그렇게 말하는 완이 멋져 보였다.

---p.43

 

당시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게 함께 공유했던 실험, 1년이 넘자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멀어진 완은 기대만큼 깊은 실망과 실망보다 깊은 절망을 주었다. 그 이후 띄엄띄엄 오다가 오지 않다가 완전히 홈페이지조차 없어졌고 휴가를 쓰다 결국 퇴사한 완. 수경을 통해 간간히 소식을 듣지만 겁이 나서 다시 연락을 하지 못 했다.

그러면서 혼자 덤덤해지는 연습을 한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고, 누군가를 알려고도, 나에 대해 알려주려고도 하지 않는 내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권태에 빠져있다.

묻지 않기. 보채지 않기.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보내주기. 나대로 살기. 혹은 나대로 살고 싶은 것을 참기. 무덤덤해지기. 기대하지 않기. 실망하지 않기.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 않기. 나에 대해 알려주려고 하지 않기.

---p.50

 

그러면서 대충 수경과는 덤덤하게 연락하고 만나게 되면서 친해졌다.

 

생각을 해보니 나는 개구리 같은 수경이 되고 싶었다.

내가 되고 싶은 건 개구리...

개구리처럼 되고 싶어.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마음먹으면 단번에 예상할 수 없는 높이와 거리를 뛰어오르기도 하는. 그런 잠재력이 내 안에 있다고 믿고 싶어.

---p.58

 

읽다가 너무 공감이 가고 짧은 글이지만 강렬하게 와 닿은 구절이 너무 많았다.

나도 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계속 마음을 닫고 있는 내가 무한정 모험과 사람 발견과 사랑이 넘치던 그 때의 내가 그립다가도 무덤덤해진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새싹이 되고 싶었고, 꽃이 되고 싶었고, 열매도 되고 싶었는데 이젠 나무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지만 굵지 않은 작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 작가님의 작품도 찾아 읽어야겠다.

행복한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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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빚을 져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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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소연 님의 글을 얼마 전 읽고 너무 좋았다. ‘소란한 속삭임이었나. 좋은 작가님의 좋은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 책도 얇다.

그럼에도 깊이가 있다. 생각할 것도 있다.

 

공감...

 

공감은 어디까지 가야할 것인가.

영원은 무엇인가

 

모두 석이처럼 슬퍼하고 아파해야만 하는 건가

 

우리 사회는 유독 아픈일이 많았다. 상실과 슬픔 들이 너무나 많았고 같이 슬퍼하다가도 어느새 내 일이 아니니까 타인의 슬픈이라고 외면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고 그런 마음들을 굉장히 잘 표현하신 작가 님이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출판사 리뷰에서> 혜란과 나()와 석이는 프놈펜 바울학교로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함께 떠나며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셋은 바울학교의 개교기념일을 맞아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한국에서 배가 침몰하는 사건을 보게 된다. “대상 없는 배신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수시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어”(33)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 셋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신들의 4개월간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혜란은 그 괴로움을 종교에 심취해 풀고, 석이는 바울학교의 학생 삐썻과 마음을 나누며 상처를 치유하려 애쓴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각자의 삶을 사느라 서로에게 소홀하던 어느 날, 동이와 혜란은 석이가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석이를 찾기 위해 무작정 캄보디아로 떠난다. 실종의 단서를 찾기 위해 만난 삐섯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 둘은 석이의 흔적을 찾아 피피섬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열심히 미래를 향해 달려 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과거에 사로잡힌 여정에 불과했음을, 그것을 미래라고 착각해왔을 뿐임을” “다시 말하자면, 내가 이곳에 온 게 아닌, 이곳이 내게 당도하고야 만 것이라는…….”(111) 깨달음을 얻으며 잊었다 생각했던 자신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은 일에는 쉽게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94)이었던 동이와 혜란은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서로에게 빚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를 속절없이 무너뜨린 상실의 경험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루된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위무하는 이야기이다.

슬픔은 저마다의 무게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무겁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서 도무지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은 바다를 압도한다. 그래서 가라앉을 수도 없다. 그것만이 침몰하지 않을 유일한 진실이다. (……) 그러니까 이들의 여행은 되돌릴 수 없는 배를 다시수면 위로 띄우는 재연再演이다. 기억의 머리맡으로 떠밀어 올려 영원토록 가라앉지 않게 언제까지고 되-살려야 할 슬픔의 무게가 그저 무겁다. 이 소설은 잊지 않을 결심이며, 슬픔의 무게를 헤아리는 배려의 윤리학, 그 빚진 마음이다.” (황유지)

상실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분명 타인과 나를 이어주지만, 그 확장의 범위는 내 시야와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 소설은 이러한 한계를 문제 삼으며, 우리의 상상력과 공감이 어떻게 혹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 영원에 닿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공허하고 추상적인 당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내 일과 남의 일, 가까운 것과 먼 것, 현재와 과거의 관성적 구분을 흐리면서 그것들이 결코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한다. 현재의 사건과 과거의 사건이, 가까운 슬픔과 먼 슬픔이, 개인의 번민과 집단적인 애도가, 자국의 참사와 외국의 참사가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베를 짜듯 엮인다. - 이희우, 작품해설중에서

 

세월호, 이태원 참사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상실과 슬픔, 공감... 과연 영원은 닿을 수 있는 것일까?

철학적인 질문과 사유를 해보게 하는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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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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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이다.

로봇, 외계인, 식물인간(?), 곰팡이 세상, 이끼... 그런 이들이 가장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그려냈던 작가님.

뭔가 미래 과학 SF 소설인데 서정적이고 따뜻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인가 보다.

이번에는 좀비다.

 

좀비로 인한 세상의 종말이 다른 종말보다 더 끔찍한 이유가 뭔줄 알아? ()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해.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시체가 되어버린 처참한 몰골을 봐야만 해. 이게 가장 끔찍한 종말이야.“ _ 1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종말은 좀비다.” 천선란은 이 문장으로 3부작의 문을 열며, 좀비를 익숙한 공포의 상징이 아니라 잊힘 속에서도 끝내 사랑을 붙드는 존재로 그려낸다. 그가 말하는 좀비의 비극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폭력과 상실, 병과 장애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잊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천선란은 그 상처를 지닌 자들을 좀비로 불러낸다. 세상이 무너지기 전부터 폐허를 살아온 그들은 대부분의 인간이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기억을 붙든다. 어떻게든 해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게 천선란의 좀비는 잊혀가는 세계 속에서도 잊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몸짓을 보여준다.

 

1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는 좀비가 되어도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마음, ‘너를 살려야 나도 살 수 있다3부작의 핵심 정서를 여는 출발점이 된다. 인류가 아직 재앙을 예감하기도 전에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향해 출항한 이주선을 배경으로, 동면에서 깨어난 옥주는 지구에서 감염 사태가 일어나 문명이 붕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러나 우주선에서도 비극은 되풀이된다. 좀비가 된 동료가 대부분의 선원을 죽였고, 오직 옥주가 사랑하는 묵호만이 죽지 않은 채 좀비가 된 몸으로 남아 있다. 옥주와 묵호는 가정폭력 속에서 자라며 일찍부터 폐허 속을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온 인물들이다. 묵호는 좀비가 된 이후에도 옥주를 물지 않고 끝까지 그녀를 지키려 하며, 옥주는 그 마음을 느낀다.

 

당장 죽을 것 같고, 가끔은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_ 2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중에서

 

2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는 멸망 이후의 지구, 그 잔해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대부분의 인간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거나 좀비가 되었고, 남은 이들은 좀비가 된 가족을 곁에 둔 채 버텨 나간다. ‘제비는 의식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엄마를 돌보며, 자신과 엄마를 지켜주던 아버지 비둘기가 사라진 뒤 스스로 가장이 되어 생존해 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리 하나를 잃은 채 딸 노윤과 살아가는 은미를 만난다. 은미는 정신 발달 장애를 가진 노윤을 보살피며 폐허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제비는 그런 은미의 목숨을 구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끝내 마음속에서도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는,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의지를 보여준다.

 

천국은 바라지도 않아. 어디든 저승의 남은 땅에 같이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가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데.“

_ 3우리를 아십니까중에서

 

3우리를 아십니까는 전 인류가 떠나거나 죽어버린 뒤 오직 좀비와 동식물만 남은 지구에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기억과 의식을 지닌 화자가 좀비가 된 아내를 리넨 카트에 싣고 바다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그는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동안 아내가 좀비가 되기 직전까지 남긴 녹음을 길잡이 삼아 걸으며, 두 사람이 함께 돌보던 거북이 장풍을 고향인 바다로 돌려보내려 한다. 이 마지막 동행은 도피나 생존의 발버둥이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 발을 들인 존재가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밟는 과정에 가깝다. 화자는 녹음 속 아내의 목소리와 자신의 머릿속에 파편적으로 남은 기억을 통해 아내가 지키고자 했던 인간성을 되새기며, 살아 있음이란 맥박이나 온도가 아니라 서로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야말로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유일한 힘임을 이해하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마음에서 죽였다. 살길 바라면서도 내 안에서 내가 죽여버린 사람.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 살아 있음을 너무 힘겹게 증명해야 하는 사람.”

_ 작가의 말중에서

 

재미라는 말보다 이 작품은 슬프다.

처음 읽을 때는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이야기인지 감을 잡지 못 해서 몇 번을 앞으로 보면서 다시 읽었다.

내가 집중력이 떨어져서이겠지. 그런 생각도 해 보았지만 쉽지 않네.

아름답고 강인한 좀비 이야기를 이번에 쓰셨으니 이제 유쾌하고 가녀린 좀비 이야기를 한 번 더 쓰신다고 하니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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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리커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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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고 놀랬다. 당시에는 그랬다. 빵을 좋아하고 마법사를 좋아하고 원체 환상적인 판타지를 좋아해서 제목만 보고 해리포터 같은 이야기를, 또는 말랑말랑 힐링 판타지를 꿈꾸며 책을 펼쳤는데... 당시 충격 받았다. 굉장히 흡입력있게 빠르게 보았지만, 잔혹사를 본 느낌이라... 사는 것도 팍팍해서 소설이나 영화는 말도 안 되게 예쁜 것만 좋아하던 나는 그 이후 구병모 작가의 작품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보지 않았다. 이후 작품들의 평이 내가 좋아하는 방향이 아니어서 사실 피했다.

이제는 모든 작품을 다 읽는다. 얼마 전 <위저드 베이커리>를 다시 읽으며, 작가님의 작품을 이제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먼저 만나게 된 책이 <파과>. 얼마 전 영화 소개에서 보면서, 이 작품부터 보고 싶더라고...

우선 도서관에서는 큰 글자 도서만 있었다. 예전엔 큰 글자 도서가 왜 있는지 몰랐다. 이번에 처음으로 펼쳐보니 그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아 나같은 사람을 위한 거였구나 알게 되었다. 책이 무거운 단점이 있지만 보기 진짜 편하던 걸... 이제 볼 수 있다면 큰 글자 도서로 봐야겠다.

 

... 정말 매력적인 여주인공이다.

 

출판사 리뷰

이름은 조각(爪角). 한때 손톱으로 불리던 그녀는 40여 년간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으며, 날카롭고 빈틈없는 깔끔한 마무리로 방역 작업을 처리해왔다. 하지만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한편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평생을 되뇌어온 조각의 마음속에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는가 하면, 청부 살인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발견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외면하고 살아온 조각의 눈에 타인의 고통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조각의 마음에 온기가 스며든다.

이 소설은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를 보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파과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다. 부서진 과일, 흠집 난 과실이 그 첫 번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 나이 16세 이팔청춘, 즉 가장 빛나는 시절을 뜻한다. 우리 모두 깨지고 상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파과(破果)’임을 받아들일 때, 주어진 모든 상실도 기꺼이 살아내리라 의연하게 결심할 때 비로소 파과(破瓜)’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처럼 소설 파과는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노인, 여성, 킬러.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가지를 조합한 주인공 조각은 65세 여성 킬러다. 한국 소설 가운데 이토록 파격적인 주인공이 또 있을까. 그동안 아가미를 가진 소년(아가미), 인간을 닮은 로봇(한 스푼의 시간) 등 환상적인 상상력을 통해 독특한 주인공들을 탄생시킨 구병모 작가는 한국 소설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60대 여성 킬러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여성 서사를 써내려가며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사회의 최약자로서 차별받아온 노인여성이라는 인물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 킬러라는 강렬한 이름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자신을 치료해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된 조각, 그런 조각을 경멸하는 투우, 킬러들에게서 가족을 지키려는 강 박사. 마침내 투우가 강 박사의 딸을 납치하고, 조각이 투우에게 총을 겨누며 생애 마지막 작업을 실행키로 결심하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향한다. 읽는 내내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듯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이 소설의 말미에서 조각과 투우가 벌이는 총격전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표지가 너무 예쁘고 주인공이 정말 파격적이다. 늙은 ... 65세의 게다가 여자 킬러의 이야기라.

이 작품이 처음 나왔던게 10년도 더 전인데 당시 그런 파격적인 설정이 있었을까?

조각이라 불리는 나이 많은 킬러... 40대만 되어도 노안은 물론, 안 아픈데가 없고, 기억력도 가물가물, 동작이 굼떠서 .. 나 왜 이러지...하며 사는 게 일상인데... 50대도 아니고 60대 중반의 여성 킬러? 둘러 본 리뷰에도 섹시하고 매력적인 주인공이라고 하도 얘기해서 내가 기대를 했음이 분명한데 읽다보니 그런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섹시하다고 말하기보다 암튼 너무 멋있는 거 아니야?

물론, 폭력, 살인, 요런 범죄 행위에 대해서 미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암튼 정말 독특한 캐릭터를 만났다.

캐릭터는 모두가 말하지만 읽어보니 문체나 흘러가는 구조가 정말 섹시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흔한 설정이 하나도 없거든. 풀어가는 방식이...

어디선가 주어 온 개의 이름은 무용’, 류에 대한 기억, ‘투우와의 관계성, 강 박사 네와의 접점, 마지막의 싸움 장면, 마지막 엔딩.... 모두 뭔가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매력적인 소설을 만나서 좋다.

왜 나는 그 많은 구병모 작가님 소설을 읽지 않았는지 후회스럽기도 하고 어찌보면 좋기도 하다.

기대되는 작품들이 너무 많으니까~~~ 앞으로 열심히 찾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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