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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눈 - Julia's Ey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리스닝은 전혀 되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들을 수 있었던 말은 'por favor'와 'si' 뿐이었다. 네이티브의 속도는 상상 그 이상이었고, 동사 변형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줄리아의 눈]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교훈이 있다면 '아직 스페인어를 구사하기엔 부족하다'라 할 수 있겠다.

참 정직한 영화다. 용두사미, 밑도 끝도 없는 반전으로 마무리 하는 한국형 스릴러에 비해 참 깔끔하다. 스릴러 답게 컴컴한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청소년 관람불가답게 피가 낭자 하며, 공포영화답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계속된다. 시나리오 내용, 음악, 연기라는 삼 박자가 참 잘 어우러졌다.
언니의 죽음을 추적하는 동생, 줄리아의 이야기다. 언니의 자살에 의심을 품은 줄리아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언니의 죽음을 추적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웃들의 등장,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남편, 줄리아의 말을 믿지 않는 경찰들 속에서 그녀의 노력은 점점 진실에 가까워진다.

[죠스]에 나왔을 법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옆 사람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눈 앞을 지나간다. 날카로운 음악이 가슴을 후벼판다. 둔탁한 음악은 너무 솔직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든다.
후반부에 볼 수 있는 연출 기법은 정말 대단하다. '시각'을 소재로 '인식'과 '의식'의 미묘한 선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카메라의 '터짐'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포'를 아주 적절하게 보여준다. 이런 방식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미술학을 공부한 감독이라 가능했던 걸까. 인물을 등장시키는 방법도 예사롭지 않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얼굴을 볼 수 있는 등장 인물은 단 몇 명에 지나지 않는다. 시종일관 뒷 모습과 옆 모습만 보여줌으로써 모든 인물을 의심하게 한다.
심리 묘사도 눈여겨 볼 만 하다. 범인을 추적하는 줄리아에게 한 노인이 이런 말을 한다. '그 자는 자신을 숨기는 법을 알고 있어. 눈에 분노가 가득하지만, 공허한 듯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자야' 영화 후반부에 가면 분노와 공허가 뒤범벅된 자아를 대략 삼분 정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다. 소름끼칠 정도다. 고통, 두려움, 외로움, 고독 따위가 동공에 응어리져있다. 소외된 사람의 눈에서 느껴지는 negative effect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원석'같은 영화다.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솔직하다. 스페인어 공부를 하려고 본 영화였는데 '타인에 대한 존중'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가족의 의미'와 같은 따뜻한 교훈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well-made 영화! 앞으로 기옘 모랄레스 감독을 눈여겨 봐야겠다.